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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열어 주세요

 

- 나희덕 -

 

 

옆구리에 열쇠구멍이 있을 거예요

찾아보세요

예.. 거기에 열쇠를 꽂아주세요

 

아니면 태엽이라도 감아주세요

여기 계속 서 있는 건

아무래도 너무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몇 걸음이라도 걸어야 살 것 같아요

 

열쇠를 찾을 수 없다구요?

당신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있잖아요

손가락보다 더 좋은 열쇠는 드물죠

 

때로는 붓이 되기도 하고 칼이 되기도 하는 손,

지문의 소용돌이를

열쇠구멍의 어둠 속에 가만히 대보세요

 

아, 드디어 열렸군요

이제 구멍 밖으로 걸어갈 수 있겠네요

태엽을 넉넉히 감아주세요

염려하지 마세요.. 곧 돌아올 테니까요

궤도를 벗어나지도 않을게요

 

내 구두에는 스프링이 달려 있어

통, 통, 튀어올랐다가 이내 가라앉고 말지요

혹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눈 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줄 아세요

 

당신의 인형이라는 것도 잊은 채

땅에 코를 박고 허둥거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다시 일으켜 줄 어떤 손을 기다리면서,

처음 인 것처럼

 

 

  Hiko - Unspoken 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