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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와 우리교회 (마태복음 28:16-20)
세계에서 제일 부자였던 록펠러에게 어떤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회장님 어떻게 해서 이렇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까?" 그러자 록펠러는 "나는 우리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유언대로 산 것 뿐인데, 하나님의 축복을 이렇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기자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 유언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록펠러가 공개한 어머니의 유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친 아버지로 섬겨라
둘째,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셋째, 오른쪽 주머니에는 항상 십일조를 준비해 두라
넷째, 원수를 만들지 말라
다섯째, 예배를 드릴 때 항상 앞자리에 앉아서 드려라
여섯째, 항상 아침에는 그 날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일곱째,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를 드려라
여덟째,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아홉째, 주일날 예배는 꼭 본 교회에서 드려라
열번째, 아침에는 제일 먼저 말씀을 읽어라
이와같은 어머니의 유언을 그대로 지킨 가난한 소년 록펠러는 훗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모님의 유언도 잘 지키면 크게 되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유언을 그대로 지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유언은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을 앞두고 갈릴리 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유언을 가리켜, '지상최대의 명령'(The Great Commission), 혹은 '대위임령'이라고 합니다. 이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이 명령은 이 세상이 지속되는 한, 교회가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할 주님의 최상의 명령입니다. 오늘 이 지상명령을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주님이 우리 교회에게 주신 사명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뵙고도, 도저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17절에 보면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가 있더라"(17절)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보아야 뭔가 믿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이 의심하였다고 하니, 아무리 눈으로 본다 하더라도 믿음이 없이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의 의심은 예수님의 권세에 대한 의심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는 하지만, 로마제국을 비롯하여 당시 기득권층이 그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심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군사들에게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선전하라고 지시를 내릴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경계망은 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제자들이 어떻게 안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면에서 제자들의 의심은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 또한 세상 권력자들의 힘 앞에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면, 우리 나라가 강대국의 횡포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일본의 독도 문제나 역사 교과서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 미국의 세계경영전략으로 인한 굴욕적인 처사 등은 울분을 삼키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언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저들과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될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증폭되어 가는 북핵문제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경제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나 그 안에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의심의 고삐를 늦출 수 없었던 제자들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불안과 두려움을 일시에 해소시켜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자신에게 주셨다고 자신있게 말씀셨습니다(18절). 빌립보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도록 하셨다고 했습니다(빌 2:9-1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왕 중의 왕으로 높여 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입을 자들로서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임을 확실히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왕 중의 왕"이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지상 최대의 명령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주적 권세를 자신에게 주셨으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복음전파와 제자화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오늘 우리를 향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명령 앞에 순종하는 일만 남아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듯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대해서도 즉각 순종했듯이(창 22:3), 우리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2. 우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리신 지상명령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19-20)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의 현장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모든 족속을 예수의 제자로 삼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일찍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길'과 '사마리아인의 고을'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10:5-6). 또한 예수님 자신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만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15:24). 그런데 이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이제 더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差別)이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인종적, 문화적, 지리적인 경계를 뛰어넘어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 교회는 8차에 걸쳐 청년 및 장년들이 인도 단기선교를 해마다 진행해 왔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인도 천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을 전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던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교회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단기적인 선교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즉 예수의 삶과 인격을 닮은 제자를 키워 세계 각지로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를 삼으라'는 말은 '제자를 만들라'는 명령입니다. 즉, 가르치고 훈련시켜 주님의 제자를 키우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예수님의 멍에를 함께 메며(11:29),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요구를 생명처럼 여기고 순종하는 자를 말합니다.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제자도의 핵심은 주님 앞에 모든 것,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앞으로 가질 모든 것, 그리고 우리 자신, 우리가 앞으로 될 모든 것을 기꺼이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자가 바로 제자입니다('당신의 삶을 세워주는 제자도의 7가지 핵심'-마크 베일리).
우리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이들이 모두 그러한 '제자'가 되도록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훈련은 자기 자신이 제자가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를 닮은 인격과 품성을 가질 때, 세상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품성을 닮은 삶으로 가다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제자를 삼는 것을 사명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교회의 존재 의미입니다. 예배를 비롯한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은 바로 이것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재를 키우려는 것도, 지역사회를 섬기려는 것도, 세상에서 상처 받은 이들을 치유하려는 것도, 세계 선교를 감당하려는 것도, 바로 이 대명제 앞에 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힘써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3. 우리는 주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제자가 되는 것, 제자를 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눅 14:26-27). 그 길은 결코 편한 길 만은 아닙니다. 제 2차 대전 때, 나치에 저항하다가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본 훼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는 『제자의 길과 십자가』라는 글에서 "고난이야말로 진정한 제자의 길의 상징"이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레 겁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홀로 그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화의 길로 나선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0절)
잠시 동안만 함께 있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할 때만 함께 있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생각나면 함께 있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약속을 들어 보십시오.
· · · · ··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0절)
여기서 "세상 끝날까지"는 '세상 끝' 혹은 '완성'을 의미 합니다. 곧 예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파루시아"(παρουσια)를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도입될 출발의 시간, 즉 세계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때를 말합니다. 그날까지 주님은 그의 교회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는데 장애물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신호와 함께 출발한 아이들 중에서 그 학교 육상선수인 아이가 선두를 달리게 되었습니다. 맨 뒤에는 키가 작은 아이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열심히 사다리를 통과하고, 뜀틀을 뛰어넘고는, 밀가루가 가득 담긴 쟁반에서 입술로 종이를 하나씩 입에 물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함께 결승점으로 달려야 할 사람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등으로 달리던 아이가 접힌 종이를 펼치는 순간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종이에‘할머니’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일등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맨 꼴찌로 달리던 키가 작은 아이는 종이를 펼치는 순간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거기엔 '체육 선생님'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입니다. 체육 선생님 손을 잡고 뛰는 그 아이는 하나 둘씩 다른 아이를 제치고 앞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걸음이 시원찮았던지 체육 선생님은 그 아이를 들쳐업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아이와 체육 선생님은 1등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장애물과 고비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빨리 가고 못 가고는 내 소원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함께 뛰는 경주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체육 선생님과 달리는 아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디를 가든 걱정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 지도자를 잃고 갈팡질팡하며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제 새롭게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그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하나님과 함께하심을 믿고, 새로운 강남교회 시대를 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감당해왔던 교회의 사명을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에 교회의 존재의미를 새롭게 일깨우고자 합니다.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써 그 생명력을 발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 새로워진 교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새롭게 일군 우리의 교회를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삭이 야곱에게, 야곱이 12지파 족장들에게 물려 주었던 가나안 땅 같이, 우리도 아름다운 우리 교회를 물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 데 어찌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심을 믿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 번, 이 성전을 건축할 때에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정성껏 참여한 사람들은 다 복을 받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도 많았지만, 저마다 최선을 다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동참해 주셔서 아름다운 교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성도님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도, 천 만 원을 작정하고 그것을 드리기 위해, 눈물겨운 내핍생활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훗날 하나님께서는 그분들을 놀랍도록 축복해 주셔서 그 가정의 두 자녀가 모두 훌륭하게 자라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이번에도 건축헌금을 그때보다 몇 배로 작정하셨습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저를 만나면, "목사님 우리는 잘 될 겁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성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먼저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야 합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 주시겠다는 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강남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전병금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