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축복   (신명기 28장 1-10절)

지난주일 예배 후에 제가 너무 피곤해하니까 아내가 말했습니다. “내일 효도관광 직접 갈 필요가 있나요? 요새 너무 바빠서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권사님들도 담임목사가 있으면 오히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갑자기 고민이 되었습니다. “내일 효도관광을 가야 돼나? 말아야 돼나?” 몸은 피곤하고 할 일은 많았습니다. 7월 1일 장신대 목회자 평생교육원에서 할 설교 강의 교안을 5월 중순까지는 만들어주어야 했고, 요새 미국에서 어머님이 오셔서 어머님 모시고 갈 곳도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함께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그날 어버이 주일 설교를 하면서 “시간을 내기 힘든 상황에서도 부모님을 위해 시간을 내라!”고 설교했는데 전도사님에게 “권사님들 잘 구경 시켜 드리고 오세요!”라고 하는 것보다 직접 시간을 내고 친밀한 교제를 하면서 좋은 곳을 구경시켜드리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권사님들과 월요일에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해대교를 거쳐 안면도 영양굴밥 집에서 점심을 하고, 안면도 해안도로를 죽 드라이브 하고, 꽃지 해수욕장을 거쳐 롯데 캐슬 콘도에서 과일을 먹으면서 1시간쯤 대화를 하고, 안면도 수목원에서 산림욕을 하며 꽃길을 걸었습니다.

그때 권사님들이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재밌게 대화도 하고, 맑은 공기도 마시고, 좋은 구경도 해서 아주 소녀처럼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몸은 힘들었지만 직접 권사님들을 모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도 또 어르신들을 모셔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밤 8시 40분에 분당에 도착해서 냉면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냉면집의 앞길이 약간 고르지 못해 한 권사님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셨습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권사님들 한분 한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이제는 권사님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매일 기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식사를 끝내고 교회로 돌아올 때 밤 9시 20분쯤 핸드폰 소리가 울렸습니다. 멀리 사는 중학교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받으니까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한규 목사! 요새 자동차 때문에 고생이 심하지! 내가 자동차 한 대 사주고 싶다. 내일 소나타나 SM5 중에 마음에 드는 차와 색깔을 골라 말해줘!”

마치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저는 대번에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효도하는 자에게 축복하신다고 하더니 이렇게 순식간에 효도의 축복을 체험하게 하시는구나!”

다음날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차종과 차 색깔을 말한 후에 자기는 전세로 살면서 2천만 원이 넘는 차를 사준 것이 너무 고맙고 너무 미안해서 말했습니다. “OO집사! 너무 고맙고 너무 미안하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나야말로 고맙다!” 그 말을 듣고 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이번 주에 저는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하나님이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는지 다시 한번 생생한 체험을 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르신들을 잘 대접하면 반드시 그 이상을 축복을 받고, 또한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순종하는 만큼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 축복의 기회를 잡으려면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축복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축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 축복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런데 왜 누구는 축복받고 누구는 축복받지 못합니까? 그 차이는 “축복 기회를 잡았느냐? 못 잡았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우리가 축복의 기회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시간에 3가지만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여기서 삼가 들으라는 말은 주의해서 잘 들으라는 말입니다. 사실 위대한 예언자가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이 앞으로 축복받을 사람인지, 아무개가 앞으로 축복받을 사람인지 대략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말씀을 듣는 태도에 대략 그 앞날의 축복과 저주가 희미한 그림자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말씀을 잘 들었던 사람들은 다 축복 받았습니다. 느헤미야 8장 6절을 보면 학사 에스라가 성경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서서 말씀을 들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하는 말씀을 하자 손을 들고 아멘으로 응답하며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를 경배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처럼 말씀을 높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려주십니다.

정말 축복받기를 원하면 말씀 듣는 태도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 태도에는 사람됨과 인격도 들어있지만 축복도 들어있습니다. 강의를 듣는 태도에 학생들의 미래의 성적이 들어있는 것처럼 말씀을 듣는 태도에 성도들의 미래의 축복이 들어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딴 생각을 하고, 비판적으로 듣고, 가볍게 흘려듣고, 팔짱을 끼고 들으면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선배나 윗사람이 누구를 끌어주려고 합니까? 말을 경청해서 잘 듣는 사람을 끌어주려고 합니다. 듣는 태도가 나쁘면 능력이 좋아도 별로 정이 가지 않습니다. 반면에 듣는 태도가 좋으면 능력이 부족해도 아주 정이 갑니다.

저의 목회 초창기에 가끔 어떤 분이 기도한다고 교회에 오는데 자정이 넘어서 왔다가 새벽 4시에 교회를 떠납니다. 제가 가끔 “새벽 예배를 드리고 가시지요?”라고 하면 자기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기 때문에 목사로부터 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참 불행하게 사는구나!”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듣지 않고 봉사하는 마르다보다 먼저 말씀을 겸손하게 듣는 마리아에 대해 “좋은 편을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목회자가 원하는 사람도 봉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겸손하게 듣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봉사를 해야 그 봉사가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 듣지 않으면 봉사하면서도 부작용이 생기고, 봉사가 오래가지 못합니다.

대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사람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깁니다. 가정문제, 부부문제도 잘 듣지 않아서 생겨난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듣지 않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하나님! 내 말을 들어주세요!”라고는 하지만 “하나님! 제가 하나님 말씀을 듣겠습니다!”라고 하는 태도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원하면 말씀을 듣는 태도부터 바꿔야 합니다. 우리에게 말씀의 문이 열리면 축복의 문도 열릴 것입니다.

2.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잘 듣고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본문 1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축복은 말씀을 잘 듣고 나서 그 말씀대로 잘 행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가끔 하나님 말씀이 내 뜻과 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축복의 기회입니다. 그때 순종하면 축복받고 그때 불순종하면 축복이 사라집니다. 영적인 능력과 축복은 잘 듣고 믿음으로 행할 때 나타납니다. “이제 말씀대로 살아야지!”하고 각오하고 그대로 살려고 애쓰면 거기에서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고 축복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이방 왕의 포로였지만 말씀대로 살았을 때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순종한 사람들의 복 받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렙다 과부가 한 병 기름밖에 없었지만 순종의 기회가 왔을 때 순종하자 병에 기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축복의 기회가 없다고 탄식하지 말고 순종의 기회가 왔을 때 순종해야 합니다. 결국 나중에 보면 순종의 기회가 축복의 기회입니다. 순종의 기회가 왔을 때 순종하면 여지없이 축복이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이 입양을 위해 고아원을 찾았습니다. 고아원에서는 두 아이 중의 한 아이를 택하라고 해서 아이들을 보러 갔더니 마침 두 아이가 2층 침대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양부모될 사람은 그 아이들을 향해 손을 벌리고 “뛰어내려볼래.”라고 하자 한 아이는 겁 없이 뛰어내렸지만 한 아이는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뛰어내린 아이가 입양되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믿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부모가 보기에 효자도 자녀이고 불효자도 자녀이지만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효자는 더욱 사랑 받고 축복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효자 성도를 더욱 기뻐하십니다. 제 멋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은 순종으로 받습니다.

사람들은 왜 순종의 축복을 잘 깨닫지 못합니까? 첫째 이유는 말씀에 순종해도 당장 복이 임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장 복이 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더디게 올 때가 많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모습으로 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반드시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둘째, 사람들이 순종의 축복을 잘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는 말씀에 순종한다”고 본인은 생각하지만 사실상 잘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순종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 순종합니다. 진짜 순종이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진짜 순종하면 진짜 축복이 주어집니다.

결국 복을 받고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순종의 차이입니다. 복된 존재가 되려면 자기 방식대로 살지 말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도 고난이 많은 사람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그 고난 중에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고난도 있지만 자기가 자초한 고난도 있습니다. 자기가 자초한 고난은 대개 말씀을 잘 듣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신앙생활을 해서 생깁니다. 그처럼 불순종은 불행과 저주를 불러오지만 순종은 행복과 축복을 불러옵니다.

3.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도대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할까요? 결국 겸손히 십자가를 지는 삶이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현대인에게 십자가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변명을 하지 않고 남 탓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죄의 누명을 뒤집어써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남 탓도 하지 않고 그냥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처럼 죄의 누명을 뒤집어쓰면 불명예가 따르고 사람들이 쑥떡거립니다. 그래도 묵묵히 십자가를 지면 곧 문제는 잠잠해집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커지고 구설수가 나옵니까?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십자가를 지고 사람 앞에서 변명하지 말고 하나님의 변호를 받아야 합니다.

앞으로 교회에 문제가 생긴 후에는 이런 얘기를 하면 소용이 없으니까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여기저기 찾아다니지 말고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래서 “야, 저 집사는 얼굴도 두껍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스럽나!”라는 소리가 들려도 사람을 찾아 동조자를 구하려고 하지 말고 교회의 평화를 위해서 조용히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에 문제가 생길 때 목사님보고도 “목사님! 그 사람을 찾아가보세요!”라고 하지 마십시오. 목회를 처음 할 때에는 거의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사람을 찾아가면 해결될 줄 알고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체험은 쓴 체험뿐입니다. 결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가 더 패이고, 오해가 생기고,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는 모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가만히 하나님을 찾으면 문제 성찰의 능력의 생기고, 용서와 이해의 능력이 생깁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문제가 풀리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처럼 누가 구설수를 흘려도 입을 벌리지 말고 묵묵히 충성하십시오. 그처럼 내가 남의 죄를 뒤집어쓰면 나 때문에 누군가가 의로워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안 지려고 하니까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풍파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처럼 문제가 생길 때 내가 문제의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도 십자가이지만 일이 형통할 때 칭찬을 남에게 잘 돌리는 것도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잘못이 생기면 여기저기에서 “제가 잘못했지요”라고 하면서 잘못한 사람이 수두룩하게 생기고, 교회에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다 “저 집사님이 정말 수고했어요.”라고 하면서 남에게 다 공로를 돌리니까 잘한 사람은 한 사람도 찾을 수 없는 교회가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가 되겠습니까?

자세히 보면 남보다 똑똑하고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십자가를 잘 안 집니다. 그래서 똑똑한 것보다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차라리 멍텅구리처럼 따르는 사람이 낫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대개 멍텅구리 같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멍청하게 순종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 보여도 주님께 철저히 순종하면 우리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모가 너무 초라했습니다. 그분이 지방 어느 지역에 집회를 갔는데 차에서 내릴 때 구레나룻이 잘 자란 한 멋진 안수집사가 먼저 내렸습니다. 그러자 마중하는 여자가 “아, 강사님! 먼 길 오시느라고 수고했어요.” 그때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강사 목사님은 제 뒤에서 오십니다.”

그 말을 듣고 뒤따라오는 강사 목사님을 보니까 너무 꾀죄죄하게 생겼습니다. 그러자 대놓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번 집회 다 틀렸구먼. 어떻게 저런 사람을 강사로 모시나?” 그리고 목사님에게 “아니, 어떻게 저런 사람을 강사로 모셨습니까?”라고 따지는 소리가 목양실 바깥까지 들렸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고 합니다. 그 일을 보고 목사님은 더욱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해서 집회에 큰 은혜가 넘쳤고, 나중에는 그 무시한 집사가 깊이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그때 목사님은 처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예수님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컸는가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외모만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말고 자신의 얄팍한 지식으로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연약한 인간이 내리는 옳은 판단이 아니라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는 실질적인 헌신입니다.

주님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려면 내 지식과 외모, 내 체면과 명예, 내 본능과 욕심을 다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끔 몸이 피곤할 때 주일에 이런 음성이 들립니다. “오늘은 주일예배 한번 쉬자!” 그러나 바로 그때 일어나 교회로 와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벌떡 일어나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수요일 저녁이 되면 갈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연속극을 볼까? 3일 예배를 갈까?” 이런 것은 영적 싸움도 아닙니다. 그냥 가야 합니다. 이런 싸움에 지면 부끄러운 일이고 그런 식으로 한 보씩 양보하다 보면 결국 사단에게 잡힙니다. 우리는 작은 한 걸음을 지지 말고 작은 한 걸음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어느 날, 마귀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주제는 “어떻게 예수 믿는 것들을 시험 들게 할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우락부락한 마귀가 말했습니다. “의장! 믿는 것들은 물질로 두들겨 패면 시험 듭니다.” 그러니까 마귀들이 박수를 치면서 좋은 의견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삐쩍 마른 어른 마귀가 말했습니다. “의장! 진짜 잘 믿는 것들은 두들겨 패면 하늘의 면류관이 있다고 더 잘 믿습니다. 그 방법은 우리 마귀의 역사 이래로 많이 해왔지만 실패했습니다.”

결국 그 안건이 부결되었습니다. 그때 한 마귀가 말했습니다. “의장! 예수 믿으면 옥에 가둡시다.” 그러자 또 나이 먹은 마귀가 말했습니다. “의장! 그것도 안 됩니다. 예수쟁이들은 옥에 가두면 더 기도하고 더 믿음이 커집니다.” 그 안건도 부결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늙은 마귀가 다 안 된다고 하니까 의장 마귀가 말했습니다. “이제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지 말고 의견을 말해보시오.” 그때 그 마귀가 말했습니다. “의장! 잘 믿는 것들은 핍박하면 더 믿기 때문에 작은 것으로 유혹해야 됩니다. 새벽기도 가겠다고 맘먹고 일어나려고 할 때 ‘내일부터 가자!’고 하면 됩니다. 술집에서 술을 안 먹으려고 하면 ‘한 잔만 먹자’고 하고, 담배를 끊으려고 하면 ‘오늘만 피자’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내일, 모레도 항상 이길 수 있습니다.” 듣고 보니 아주 그럴듯해서 만장일치로 그 방법이 가결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 내일이 없고 다음 주가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하겠다고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구경꾼으로 지내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는 결코 소외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일이 펼쳐질 수도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원하지 않는 일에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순종하고 십자가를 지는 사람에게 놀라운 하늘의 상급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 순종하는 삶의 축복 >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을 허락하실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순종하는 자에게 여러 가지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어디에 가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결국 형통하다는 말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가끔 학생들이 묻습니다. “목사님! 제가 필리핀에 선교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황당합니다. 그것은 본인이 선택할 문제이지 남이 선택해줄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계속 그 문제를 생각하고 기도했던 본인이 더 잘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때 제가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선교 나가도 형통하고, 미국 가도 형통할 것이다.” 그처럼 우리가 순종하면 신발 장사를 해도 복을 받고 우산 장사를 해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신발 장사를 해도 망하고, 우산 장사를 해도 망할 것입니다.

2. 가정과 자녀가 축복받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로마서 5장 1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으며, 한 사람의 순종함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순종하면 우리 가정과 자녀들이 축복받고, 우리가 불순종하면 우리 가정과 자녀들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진정 복 받는 가정, 복 받는 자녀가 되도록 하려면 말씀에 힘써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3. 물질적인 축복을 받습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다 보면 온유하고 친절한 성품을 얻게 됩니다. 또한 땀을 흘리게 되고, 책임의식이 투철하게 됩니다. 결국 그런 식으로 살면 대개 물질적인 축복도 따라오게 됩니다.

4. 승리와 명성의 축복을 받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 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또한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이 구절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컫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서워한다는 말이 아니라 존경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비참해할 때는 존경받지 못할 때입니다. 아무리 돈과 권력이 있어도 사람들에게 멸시받으면 인생살 맛이 없습니다. 반대로 가난하고 연약하고 장애가 있어도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면 그때는 살맛이 납니다.

언제 우리가 존경받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존경받습니다. 제가 믿음생활을 하니까 처음에 어떤 친구는 처음에는 저를 많이 비하시키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많이 했지만 나중에는 그들과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보고 친구이지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를 결국 높여주시고 존경받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순종의 기회가 축복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된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되면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줄 알아야 합니다. 반면에 일이 못 되면 내가 불순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진짜 복 있는 사람은 허물은 내가 담당하고 공로는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입니다. 일이 안 되는 것을 하나님 탓, 교회 탓, 남 탓으로 돌리면 절대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너무 초라하게 살면 불신자들에게 본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과 가정을 축복해 주시고 모든 것을 회복 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여러분들의 삶과 신앙생활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출처/이한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