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24
깃발 날린 사람 (출애굽기 17:8-16)
성경에는 히브리말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 주는 감동적인 말씀이 몇 번 나옵니다. 하나는 오늘 분문에 기록된 여호와 닛시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신, 여호와의 승리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창세기 22장에 보면 여호와 이레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재단을 쌓을 때 말씀을 해 주신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준시하시는 분이시다.’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여호와 살롬입니다. 사사기 6장에 나오는 ‘여호와는 평화이시다. 평화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평화의 왕이시다.’ 에스겔 48장에 여호와 삼마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또 여기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라파, ‘여호와께서 치료해 주신다. 우리의 질병을,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대체로 많이 말씀을 듣고 이해를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저희 교인들은 초신자가 또 많습니다. 1년에 우리 교인들이 3천 명 정도 등록을 하면 반 정도는 초신자입니다. 그래서 “다 아시죠?” 하고 넘어가면 그분들은 “모르는데요.” 그렇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10년 정도는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가는 기간에 아말렉이라고 하는 에서의 자손이 아주 강퍅하고, 또 강한 민족입니다. 아마 광야에 있는 유목민 가운데 아말렉 같이 강한 민족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 때까지 계속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아주 강대한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길을 가로 막고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무기가 없으니까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높은 산으로 인도하여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는데 이 전쟁에 이스라엘이 승리하여 그곳에 재단을 쌓고, 그곳에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감사하며 이름을 정했는데 ‘여호와 닛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기게 해 주셨다.’라고 했습니다. 승리하신 하나님,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깃발을 꽂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늘 싸워야 하는데, 우리가 싸우는 싸움의 승리의 모델입니다. 우리는 안 싸울 수가 없습니다. 아말렉이 우리를 도전해 오니까 끊임없이 인간은 싸움의 연속입니다. 또 모든 승리는 싸움 뒤에 옵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지 않습니까? 모든 이 세상의 영광은, 행복은 승리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천국도 승리하는 자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싸움에 이겨야 됩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오늘 말씀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따라 가고 순종하면 반드시 여러분 남의 생애가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높은 산에 모세가 꽂았지만 여러분 가정에 꽂게 되고, 여러분은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면서 사는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나 수많은 스포츠, 여름, 겨울 경기할 것 없이 이기는 자는 모두 국기를 휘두르고 한 바퀴를 돌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감격해 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또 승리자에게는 아예 국기가 올라갑니다. 시상대에서 그 나라 국가와 함께 그 나라 국기가 올라가는 것을 봅니다. 이기는 자는 국가가 올라갑니다. 여러분도 모든 일에 승리하여 여호와의 닛시의 깃발을 올리고, 깃발을 휘두르는 축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싸움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싸워야 할 싸움이 있고 싸우지 않아야 할 싸움이 있습니다. 하나의 싸움은 육적인 싸움입니다. 정욕을 위한 싸움입니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싸웁니다. 다 이런 싸움을 싸웁니다. 이런 싸움은 부부간에도 일어나고 형제간에도 소송하며 무섭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소송하고 죽이며 고소하고, 잔인한 싸움을 계속 싸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잘 아는 저의 친척도 남매간에 싸웁니다. 소송을 했습니다.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습니까? 무서운 싸움들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이 싸우고 소송을 합니다. 검찰에다 고발을 합니다. 검찰에 가서 너무 곤욕을 치르고 오니까 나오다가 자살해 죽어버리는 분도 많습니다.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런 싸움은 싸워서도 안 되고, 싸워서도 유익이 없고, 지는 자 이기는 자가 없고, 이런 싸움을 싸우면 성경에 피차 망한다고 그랬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자마다 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싸워서 이기는 이런 정욕적인 싸움은 반드시 싸움을 거는 자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옛날에는 싸움을 먼저 걸기도 했는데, 사무엘서를 읽어보니까 절대로 싸움을 먼저 걸면 안 됩니다. 사울 왕은 사위 다윗을 죽이려고 얼마나 힘을 모아서 창을 갖다 찌르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사울이 망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싸움을 싸우는 것은 먼저 망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잡아 죽였습니다. 그 사람은 이기는 것 같지만 지는 겁니다. 그런 싸움은 배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사울도 공연히 사위를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사탄이 그렇게 역사한 겁니다. 거기에 보면 악령이 사울에게로 들어가더라고 했습니다. 악한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로 들어가더라고 했습니다. 죄가 가인의 마음에 들어가서 동생을 죽인 겁니다. 사탄이 들어간 겁니다. 부부간에 신나게 싸울 때에 이것은 사탄의 역사임을 알아야 됩니다. 따라 하십시오. “사탄이구나.” 그리고 둘이 빨리 안 싸워야지, 사탄에게 둘 다 놀아나면 안 됩니다. 마귀가 역사하는 겁니다.
그러나 싸워야 할 싸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도 싸웠습니다. 이삭과 야곱도, 이 싸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싸웠습니다. 다윗 왕, 모세도 싸웠습니다. 이 싸움은 예수님도 제자들도 안 싸울 수가 없는 싸움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지키기 위한 싸움, 의의 싸움, 선한 싸움, 영적인 싸움, 마귀와 싸움, 내 자신과 싸움, 죄와의 싸움, 이런 싸움은 싸워야 되고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되며, 승리해야 됩니다. 이 싸움을 이기는 자에게 평화가 주어지고, 이 싸움에 이기는 자에게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받아쓰리라 선한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 우리 싸움 마치는 날 의의 면류관 예수살렘 성에서♬(찬송가 402장) 오늘 나오신 우리 모든 성도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의 가정에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휘날리고 여러분의 인생에 여호와 닛시의 깃발 휘날리시기를 바랍니다.
실패자는 깃발을 꽂을 수가 없습니다. 실패자의 깃발은, 국기는 내려집니다. 그 적을 점령한 국가가 그 국기를 올리고, 그 나라 모두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2장 19절에 보면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했습니다. 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이긴 자의 앞에서 굴복하며, 엎드리고 모든 지배를 받아야 되니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는 져서는 안 됩니다. 이겨서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는 복된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승리의 모델은 본문에 나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말렉과 싸울 수 있고 이길 수 있느냐? 이것만 알면 우리는 모든 일에 이길 수 있습니다. 의의 싸움, 우리가 반드시 승리해야 할 싸움은 이렇게 싸워야 됩니다. 모세의 길, 아말렉과 싸우는 길을 배우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승리는 누구에게로부터 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모세의 깃발이 아닌 여호와의 깃발입니다. 모세의 승리가 아닌 여호와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닛시입니다. 모세의 닛시가 될 수가 없습니다. 승리는 하나님께로 옵니다. 모든 이기는 것은 하나님께로 온다고 역대상 29장 11절에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와 로마시민과 귀족들이 보는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노예들이 칼싸움을 합니다. 둘이 싸우다가 마지막 한사람이 집니다. 그러면 목을 발로 밟고, 창을 들고 그 사람 찌르기 전에 누구를 봅니까? 황제가 있는 곳으로 봅니다. 결정은 내가 못 짓는 겁니다.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겁니다. 결정은 누가 하느냐? 황제가 합니다. 손을 내리면 찌르고, 올리면 사는 겁니다. 벤허에도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생명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하나님의 손에 있고, 내 생명도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께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생명을 잡아주시고 내 앞날을 인도하시면,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겁니다. 수많은 사람이 여러분을 대적하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손을 잡고 계시면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씀이 오늘의 말씀이고, 성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약하고 부족하며, 능력이 없고 할 수 없어도 주님 앞에 손들고, 주의 품 안에 안기우면 주님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괜찮다. 괜찮다. 걱정하지 말라. 너는 할 수 있다.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돕는다. 너는 큰일을 할 수 있어. 이것은 문제가 아니야. 되. 이겨. 감당할 수 있다니까. 잘될 수 있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언제나 용서와 사랑과 희망과 위로와 승리의 말씀입니다. “너의 집은 여호와 닛시의 집안이다.”, “복의 근원 집안이다.”,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이긴다.”, “너는 염려하지 말라.” 주님의 품 안에 안기우면 항상 100% 누구에게나 똑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너는 안 된다는 말은 주님에게는 없습니다. “너는 할 수 있다.” 오늘 많은 사람은 “나는 할 수 있다”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나는 할 수 있고,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모세와 같이 손드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너무 용기가 없습니다. 좌절합니다. 우리나라는 우울증 환자가 320만 명으로 우울증 공화국입니다. 너무 용기가 없습니다. 젊은이도 용기가 없습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대학마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합니다. 우리나라 최고로 좋은 대학들도 그 대학 안에 우울증을 치료하는 병원이 있습니다. 계속 해마다 늘어납니다. 이렇게 힘과 능력을 다 가지고 있는데도 현대들은 이 시대를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들도 요새 아예 결혼할 때 연상의 여인을 만나 “먹여 살려달라.”고, 아예 “나 살려달라.”고, 아예 다섯 살 열 살 많은 “누나, 누나, 엄마, 엄마”하고 따라갑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하고 따라갑니다. 자신이 없어 그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갖추었을지라도 오늘 너무나 이런 힘 있고 능력 있는 이 시대를 내 연약한 힘으로 뚫고 나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가정에서도 모두 자신이 없어 합니다. 집안에서 남편을 직장으로 보내놓고 우울증에 빠집니다. ‘항상 이런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있을까? 나, 이 아이들을 못 기르겠다.’ 힘들어 합니다. 결혼해서 부모들이 어렵게 하고 간섭하며, 남편은 말을 하나 안 듣고 하니 자신이 없습니다. ‘나는 못살겠다.’ 그래서 죽어버리는 겁니다. 병드는 겁니다. 많은 부인들이 우울증에 걸립니다. 여러분! 오늘 이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옵니까? 세상으로부터 용기가 없고 자신이 없어지며, 살면 살수록 힘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가면 갈수록 여호와는 우리에게 새 힘을 주셔서, 이사야 40장에 있는 것처럼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너는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의 손을 들라는 겁니다. 모세는 그러므로 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었습니다. 기도의 손, 믿음의 손을 들었습니다. 경외하는 손, 찬송의 손을 들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손을 들었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부족합니다.” 고백의 손을 들었습니다. “나는 연약합니다.” 자기를 시인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의 손을 들었습니다. “나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나는 아무 배경이 없습니다. 빽이 없습니다. 가진 것 없습니다. 여호와여! 나를 건져주시옵소서.” 손을 들어도 이런 손을 들어야지, 하나님 앞에 교만한 손을 들고 도와줘도 좋고 안 도와줘도 좋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안 됩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죄를 가진 자의 손은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장15절에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 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 할 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죄에 매인 자는 하나님 앞에 손을 들 수도 없거니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손을 줄줄이 잡고 있는 사람, 위로 손을 못 듭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어야 손이 위로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손을 바라볼 때만이 손을 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만이 손을 들 수가 있습니다. 교만한 손,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절대로 손을 못 듭니다. 물질 앞에, 인기 앞에, 명예 앞에, 출세 앞에 손을 들고, 세상의 돈 벌기 위해서는 손을 다 들지만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 앞에는 손을 못 드는 것입니다. 죄인은 손을 들 수 없습니다. 마귀에게 속한 사람은 이 손을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적어도 그런 일에는 손들지 않습니다.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 영혼 드리리라♬ 두 손 들고 주님을 찬양하고, 부부간에도 한번 밥상 하나 가져다 놓고도 밥을 먹기 위해 사는 동물로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찬양한 다음에 먹어보십시오. 자신이 얼마나 거룩한 피조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등대지기가 있었습니다. 정부로부터 기름을 부여받았는데도 마음이 얼마나 착한지. 그래서 옆집 아줌마가 하루 저녁에 와서 “아저씨! 불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너무 춥습니다. 기름 조금만 도와주세요.” 그래서 그 아줌마를 저녁마다 도와주었습니다. 또 하루는 “아저씨! 불 피울 것이 없습니다. 등에 불을 켜게 좀 주세요.” 그래서 또 그 아줌마도 도와주었습니다. “우리 집은 연료가 떨어졌습니다.” 아저씨도 도와주었습니다. “기계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 집에도 도와주었습니다. 또 하루는 목사님이 “우리 집에도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거기도 줬습니다. 다 도와주었습니다. 등대에 불을 켤 수가 없었습니다. 등대 불이 다 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배들이 그만 길을 잃고 방황합니다. 헛된 곳으로 갑니다. 나중에 국가에서 감찰이 나와서 “기름을 어디에 썼느냐? 왜 이곳을 지나가는 배는 길을 잃어버리냐?”하니 “아줌마가 와서 빌려달라고 해서...” “야 이 사람아! 등대 불이 얼마나 중요한 데 아줌마 돕는 것과 이게 비교가 되는 줄 아느냐? 몇 천 명, 몇 만 명의 국가의 재산을 지키는 것을 어떻게 해서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기도라고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내 생명을 지키고, 내 영혼을 지키는 겁니다. 마귀로부터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것이 기도인데, 기도의 시간이 그래서 귀한 겁니다. 레위기 6장 13절에 보면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기도의 불이 꺼져 가면 옆집 아줌마 도와주고... 그래서 어떤 일을 다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기도 못합니다. 자식 좋게 하고, 남편 좋게 하고, 설거지 다 하고 그러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뒤로 미룬 사람치고 기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를 앞세워야 기도가 되는 것이지, 다 끝나고 저녁에 하겠다, 저녁에도 볼 연속극이 또 있는데 어떻게 기도합니까? 마지막까지 기도 못합니다. 일생 끝날 때까지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못한 사람은 기도를 제일 마지막에 두는 겁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니까 가정에 영적인 불이 꺼져서 마귀가 들어오고, 깃발이 빼앗기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놀라운 믿음의 승리의 깃발을 사탄이 빼앗아가는 것은 기도가 꺼지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손을 들면 반드시 교회는 승리합니다. 교회가 많이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손을 든 사람이 있어야 그 교회가 승리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기도하지 않아도 승리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인기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출세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은 성공은 오래 갈 수 없고, 참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은 반드시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 때만이 옵니다. 손들지 않아도, 이 세상에서도 세상을 향하여 손드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러나 이 성공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제가 한 가지 예를 들면 여러분이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히틀러입니다. 히틀러는 1934년 8월 2일 독일의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죽고 나서 이 분이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그 나라 총통이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대통령 겸 총 서기가 되고, 모든 국방부장관까지 되면서 군까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제도, 구습, 각종 모든 것 다 폐지해서 사회개혁을 단행합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그는 야심을 가지고 독일 전체를 점령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다른 나라에 대한 욕심을 가지면서 드디어 2차 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첫 번째가 1937년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합병하고,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대전의 불을 지피기 시작합니다. 한 나라 통일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오스트리아를 다 점령하고, 체코와 폴란드를 손 안에 넣었습니다. 너무 쉽게 모든 나라가 무너집니다. 1940년에는 노르웨이 덴마크를, 5월에는 네덜란드, 벨기에를, 6월에는 프랑스를 점령했습니다. 모든 군사전문가가 3년 정도는 갈 줄 알았는데 이 프랑스라고 하는 강대국도 한 달 만에 다 손안에 쥐어졌습니다. 백전배승이 아니라 천전천승입니다. 가는 곳곳마다 나치의 기를 휘두르며 독일군민은 열광했습니다. 온 나라는 깃발을 휘둘렀습니다. 모든 전쟁을 다 이기니깐 그런 일이 옛날 같으면 가능합니다. 이 어마어마한 국력을 가진 국가들이 그냥 무너질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나폴레옹 군대가 있는 프랑스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겠습니까? 그런데 이 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41년 4월에는 유고슬로바키아와 그리스를 함께 다 점령합니다. 1941년 6월 22일의 드디어 러시아를 침공합니다. 세계 최대 강대국인 러시아를 향하여 진군하는 겁니다. 역시 모스크바까지 갔습니다. 1941년 그해 12월에는 미국을 향하여 선전포고를 해서 미국하고 전면전으로 나섰습니다. 한 번도 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1942년 영국도 반격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지지 않고 깃발을 휘두르던 히틀러도 서서히 그의 종말이 가까워 왔습니다. 결정적인 결정타는 1942년 12월 제6군단이 이끄는 군단이 전차군단입니다. 스탈린그라드, 러시아를 향하여 포위가 되었을 때 자기가 조금만 겸손해서 전략적으로라도, 작전이라도 조금만 후퇴하라고 그랬더라면 다 살릴 수 있었는데 그 힘 있는 독일의 군대 22만 명을 몽땅 죽인 겁니다. 완전히 포위당해서 다 죽으면서 드디어 독일의 군대도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그 충성스러운 부하들, 장군들 다 죽고 잃어버립니다. 드디어 그 해에 영국과 전쟁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영국은 그때 통치하던 사람이 유명한 윈스턴 처칠입니다. 이것하고 대조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영국군 35만5천명이 프랑스 해안 단케르트라고 하는 곳에서 독일군에게 완전 포위가 되었습니다. 프랑스가 무너지면 바로 국경 접경이니까 프랑스를 도우려고 갔다가 독일군에게 당합니다. 독일을 이긴 나라가 하나도 없으니까 그래서 포위를 당합니다. 영국 국기를 드디어 내릴 긴박한 순간에 믿는 자와 안 믿는 자가 무엇이 다릅니까? 어려운 일 환란을 당할 때 다릅니다. 처칠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온 나라, 온 민족,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나가서 하루 종일 하나님 앞에 눈물로 똑같이 부르짖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히틀러를 향하여 이길 수가 없으니까 35만5천명의 포위된 군인이 한 사람도 돌아올 수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군인 35만5천명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35만5천명이면 아마 쉽게 10개 군단 정도는 될 겁니다. 30개 사단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전방 전체를 다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엄청난 군대가 포위됐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도했습니다. 한쪽은 탱크와 비행기를 가지고 바로 폭격하려고 하고 있었고, 그때는 다 죽이니까. 유대인 7백만을 가스실에 넣어서 죽일 정도로 잔인한데 적과 싸우는 군인이야 다 죽이는 겁니다. 인정사정없이 죽이는 겁니다. 그런데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태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쏟아져서 비행기를 한 대도 못쓰고, 계속해서 비가 막 쏟아져서 탱크가 하나도 못 움직였습니다. 비가 오면 미끄러우니 탱크가 못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35만5천명이 한 명도 안 죽고, 포위된 데서 다 빠져 그 해협을 건너서 영국으로 돌아왔다 아닙니까? 많은 분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히틀러와 윈스턴 처칠과의 관계는 여러분은 잘 모릅니다. 2차 대전의 가장 중요한 이 전쟁에 한 사람은 기도로, 한사람은 힘으로 싸웠습니다.
여러분! 독일은 세계 최고의 지성인입니다. 아마 이 세상에 독일 민족 같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지식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독일의 지성사회가 히틀러가 망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을 못했습니다. 어느 과학자든, 어느 분이든 히틀러는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일 전체국민이 열광했지만 극소수 그리스도인만이, 기도하는 자만이 저 깃발은 오래 휘두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구만이 압니까? 기도하는 자만이 아는 겁니다. 기도하는 자만이 모든 권력은 10년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악한 세력은 오래 휘두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깃발은, 인간이 만든 이 깃발은 오래 휘두를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깃발은 아무 능력이 없는데 2천년 동안 휘둘렀습니다. 이 깃발을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꽂는 사람, 가정, 나라는 영원히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의 깃발을 꽂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히틀러는 영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1945년 4월 29일 그 애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그날 처음으로 하고, 그 다음 날 둘이 방공호에 들어가서 권총으로 자살해 죽었습니다. 갈 곳이 없었으니까. 부하가 다 죽었으니까. 나라를 다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연합군이 와서 다 폭격했으니까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무 곳, 세계를 다 점령하여 가는 곳곳마다 열광했지만 마지막 이 깃발을 내리는 순간에는 아무도 받아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이 절대로 넓은 세상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야만이 가는 길이 많습니다. 끝까지 도와 줄 이가 많고, 함께 할 이가 많은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기도는 승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만 아닙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나가서 싸웠습니다. 두 개가 조화를 이룹니다. 기도만 아닙니다. 교회만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해서 다른 것 다 무시하는 그것은 아닙니다. 싸움은 열심히 싸워야 합니다. 일은 또 열심히 하고 기도하고, 사업하는 분은 열심히 사업하고 기도하고, 이 두 가지 조화가 필요합니다. 가정생활도 남편이 나가 열심히 일하면 부인은 집에서도 열심히 해 줘야지 여기는 나가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집이 안 되는 겁니다. 양쪽이 다 잘해 줘야 되는 겁니다.
많은 사람은 돈 벌기 위해서 열심히 사업을 하고 남편이 돈을 벌어오면 아껴 쓰고 저축하며, 이렇게 해야 집이 되지, 돈벌어주는 대로 펑펑 쓰면 그것은 안 되는 겁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그러고 막 써버리면 안 됩니다. 그런 집은 안 되는 집입니다. 아껴 살아야 됩니다. 남편이 월급을 적게 가지고 오면 거기에 맞춰서 써야 됩니다. 미장원도 덜 가야 됩니다. 화장품도 국산을 바르고 마사지도 덜 하며, 찜질방에도 덜 가야지, 월급은 얼마 가지고 오지 않는데 좋은 옷 입고 막 휘두르고, 이런 깃발 날리면 옷 같은 것은 여름에는 겨울옷을 사고 겨울에는 여름옷을 사면 1/3 값이면 살 수 있습니다. 아껴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지 남편은 어렵게 너무 힘들여서 돈 벌어오는데 그냥 펑펑 쓰는 그런 집들을 제가 많이 봤습니다. 그런 손은 안 됩니다.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기도할 때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올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여러분! 이렇게 살면 승리합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생활, 믿음의 생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를 섬기고, 또 나아가서 열심히 살면 길은
열리고 도와주시며,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겁니다. 믿음대로 되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꽂은 깃발이 여호와 닛시입니다. 여호수아의 깃발이 아닙니다. 모세의 깃발도 아닙니다. 이분이 손들었지만 손 든 공로는 없습니다. 손든다고 이기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기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우리는 자랑하면 안 됩니다. 어떤 것도 자랑하면 안 됩니다. 교회도 내 깃발을 꽂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영원히 하나님의 깃발만 꽂아야 되고, 여러분의 가정에도 누가 “자네 최고다.” 그래도 절대로 여러분은 가정에도 하나님의 깃발을 꽂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승리한 것도 하나님이시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도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면 물맷돌 가지고도 골리앗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래를 가지고도 뿌리면 골리앗이 무너지는 것은 잡은 데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위를 가지고 이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손에 있는 모든 것은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겁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늘 기도해야 할 이유가 아말렉은 항상 쳐들어옵니다. 안심하면 안 됩니다. 이만하면 됐지, 아닙니다. 됐을 때, 좋을 때 아말렉이 더 쳐들어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사업에 성공하고 아는 사람, 종업원들, 직원들, 참모들, 비서들 많을 때 기도를 안 합니다. 그럴 때에 그 아래 손 든 부대가 더 중요한데 성공하고 나면 손드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손들지 않아도 되는 줄 압니다. 이 모든 사람이 도우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성공할수록 손을 들어야 되고 손 든 사람과 잡아야 되며, 손 든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그 축복이 오래 가는 줄로 믿습니다. 한때 성공했다고, 한때 착하다고, 못 믿습니다.
히틀러도 원래는 목사하려고 그랬답니다. 교회성가대도 잘했답니다. 나중에 나빠지지 않습니까? 청년대학부 때 아무리 착해도 사람이 한 순간에 변하는 겁니다. 태어날 때 강도로 태어나는 애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린아이들 순진난만하고 천사 같고 천진난만하지만, 아말렉이 들어오면 다 인간은 아말렉의 옷을 갈아입는 겁니다. 사람은 착한 사람 없습니다. 여자도 연애할 때 손잡아 보십시오. 벌벌 떱니다. 어쩔 줄 모르고, 그래도 몇 년 지나 보십시오. 내가 떱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사람이 변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믿을 이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착하다고 믿어서도 안 되고 잘된다고 믿어서도 안 되며, 이렇게 아무 염려 없다? 아닙니다. 아말렉이 있는 세상에 손들지 아니하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는 이 진리를 일생동안 간직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삼환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