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아벨은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혹시 TV에서 "진품명품"이라는 프로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프로에 보면 출연자는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진귀한 물건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나름대로 생각한 가격을 적어 냅니다. 그러면 전문가들은 그것을 자세하게 감정해서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가름합니다. 그리고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매긴 가격을 알려줍니다.
재미있는 것은 출연자들의 표정입니다. 희비가 완전히 엇갈립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한 점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는 여태까지 그 그림이 진짜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귀중하게 보관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가격도 당당하게 오천만 원이라고 적어 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자세하게 감정을 하고 난 뒤에 이러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그림은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가짜입니다. 값도 기껏해야 이십만 원에 지나지 않는 모조품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면 그 그림의 주인은 완전히 실망한 표정을 짓습니다. 정 반대의 결과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한폭의 그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오래된 것 같긴 하지만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감정을 받고 싶어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가격을 매길 때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삼십만원 정도라고 적어 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감정을 하고 난 뒤에 뜻밖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진짜입니다. 보기 드문 보물입니다. 부르는 것이 값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적어도 일억은 넘어갈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예컨대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만일 두 사람만 천국에 간다면, 한 사람은 서기관일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바리새인일 것이다."
그만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잘 믿는다고 소문이 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마5:20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분명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으로는 천국의 백성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불꽃같은 눈초리로 살피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믿음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눅18장에 나오는 세리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가슴을 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 당시 세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세리가 오히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세리의 믿음이 진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믿음과 세리의 믿음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앞에서까지도 인간의 의, 자기들의 의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인간의 의, 인간의의 행위를 내세우면 그 믿음은 진짜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촛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믿음을 소중히 여겨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벨과 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길래 똑같은 날, 똑같은 장소에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열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믿음을 진짜라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인의 믿음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진짜라고 판단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가짜라고, 모조품에 불과하다고 판정을 내리시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아벨의 믿음처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믿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아벨의 믿음을 세 단계로 나누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둘째로, 아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셋째로, 아벨은 죽었지만 그 믿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보배로운 믿음, 반석과 같은 귀한 믿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히11:4 본문의 말씀 상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더 낫다는 말은 물론 양적인 의미가 아니라 질적인 의미입니다. 예컨대 우리에게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가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인간적인 의입니다. 냄새나는 더러운 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들보다 더 나은 의, 질적으로 전혀 다른 의가 있습니다. 이는 온전한 의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인과 아벨은 질적으로 다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한마디로 가인의 제사는 믿음이 없는 제사, 인간의 의를 강조하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믿음으로 드린 제사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촛점을 맞춘 제사였습니다.
창4장에 기록된대로 가인과 아벨은 형제지간이었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난 뒤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고난 뒤에 태어난 아들들이 가인과 아벨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롬10:17의 말씀대로, 그들은 자기들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법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길래 그들은 똑같은 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각자가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내용이 달랐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땅의 소산물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반면에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가인의 제사가 더 풍성하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땅의 소산물로 하나님께 드리니까 얼마나 종류가 많았겠습니까? 보기에도 깨끗하고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아벨은 단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양의 첫 새끼였습니다. 그것도 산채로 드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기름으로 드렸으니까 양을 잡아 죽여서 피를 흘려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양의 몸에서 흘린 피가 제단을 붉게 물들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의 제사가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기 임의대로 아무렇게나 제사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규례대로 제사드리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에게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일러주었을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때와 장소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제물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일러 주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에게 이렇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얘들아,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죄를 짓고 말았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죄된 모습을 가리기 위해서 어리석게도 무화과나무의 잎을 엮어서 우리 스스로 옷을 만들어서 가리워 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옷은 우리의 죄된 모습을 결코 가릴 수가 없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된 모습을 가리워주시기 위해서 친히 옷을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은 짐승을 잡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서 우리의 수치를 가리워 주셨다."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가인과 아벨이 무엇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들의 죄된 몸을 가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만든 옷이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만들어주신 옷을 입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죄를 덮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울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는 피흘림의 제사가 요구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죄사함을 위해서는 피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어떤 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까? 그는 자기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내가 왜 죄인인가? 나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으면 지었지, 내가 왜 그 죄를 그대로 물려받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땀흘리면서 열심히 농사를 지었을 뿐인데… 나는 내 식으로 제사를 드릴거야."
물론 구약 성경에 보면 농산물로 제사를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죄사함을 받기 위한 제사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피흘림의 제사를 드리고 난 뒤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소제, 곧 피없는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이미 이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히9:22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죄사함을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의 제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가인은 그것을 무시해버리고 자기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가인의 제사는 한마디로 불순종의 제사였습니다. 비신앙적인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믿음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 양처럼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이 양의 피와 기름을 받으시고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 아벨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리고."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자기의 의, 인간의 행위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둘째로, 아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4절 중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가인도 아벨도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가인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벨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가인은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은 믿음이 없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돈의 초청을 받고 오래간만에 출가한 딸네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딸은 모처럼 친정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래서 온갖 솜씨로 진수성찬을 마련해서 아버지에게 대접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녁을 마친 후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묻습니다.
"여보, 모처럼 딸네 집에 갔는데 대접을 잘 받고 돌아오셨겠지요?"
그런데 남편에게서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다시 묻습니다.
"아니, 딸이 모처럼 친정아버지를 뵈었는데도 대접을 시원치 못하게 했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그는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식을 잔뜩 차려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달걀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두부도 없던걸. 이가 시원치 않은데 그 질긴 음식들을 도대체 날더러 어떻게 먹으라는거야?"
음식을 잔뜩 차려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드려야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음식을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 못하는 것은 고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면서 잘 믿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해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가인의 문제점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롬10:3의 말씀대로, 그는 자기의 의를 내세우느라고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제사를 자기식으로, 임의로 드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를 어찌 의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반면에 아벨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순종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드린 제사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벨만 의롭다고 하시고 가인은 의롭다고 하시지 않은 것을 우리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에 대하여 증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열납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제물을 열납하실 때 하늘에서 불을 내려 보내셔서 그 제물을 사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이 대결할 때였습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각을 떴습니다. 나무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후에 그들은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바알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끝내 바알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각을 떴습니다. 나무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주변에 도랑을 팠습니다. 물을 채웠습니다. 물을 퍼다가 번제물과 나무위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고난 뒤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왕상18:37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기도하자마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습니다.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태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불은 먼저 번제물을 태웠습니다. 그 밑에 있는 나무를 태웠습니다. 돌과 흙을 태웠습니다. 도랑에 있는 물을 핥았습니다. 하늘에 불이 내려서 그 제물을 열납해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이 보는 눈 앞에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벨은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는구나.'
그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의 예물이 열납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안색이 변할 정도로 심히 화를 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떠한 심정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가인처럼 인간의 의, 인간의 행위를 가지고 나아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벨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촛점을 맞추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면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용납해주십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아벨은 죽었지만 그 믿음으로써 말하고 있습니다.
4절 끝 부분입니다.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이따끔씩 집에 손님들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음식을 정성껏 장만을 해서 대접을 합니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마련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손을 대지도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마련했는데 저런 식으로 음식을 대하는거야. 내가 다시는 초대하지 말아야지.'
이 사람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모임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자기입니다. 손님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손님들이 맛없어 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것을 자기 반성의 계기로 삼고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 내가 실수했구나! 다음 번에는 손님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더 맛있게 장만을 해서 대접을 해야겠다.'
이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 아닌 손님위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제사, 순종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달랐습니다. 자기가 잘못했으면 뉘우치고 회개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안색이 변할 정도로 몹시도 화를 냈습니다. 결국 동생 아벨을 시기해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아벨은 형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의로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벨은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누구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아벨은 하나님에게 말합니다. 창4:10입니다.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아벨은 죽었지만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의 피, 순교자의 피를 사람들은 몰라줄 수가 있습니다.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고 상주십니다. 계6:10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순교자의 피를 신원해주십니다. 갚아주십니다.
둘째로, 아벨은 가인에게 말합니다. 창4:11입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아벨은 자기를 죽인 형에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동생 아벨도 거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의로운 아벨의 피를 받은 땅,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도 가인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인이 저주받은 땅을 갈 때마다 이런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내가 의로운 내 동생 아벨을 죽였구나.'  
셋째로, 아벨은 우리에게도 말합니다. 히10:38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The Righteous Shall Live by Faith."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진리를 아벨은 지금도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나의 형 가인처럼 인간의 의, 인간의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마십시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촛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한가지 진리를 잊지 말고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옛날 아벨이 하나님께 드렸던 양은 아벨 한 사람, 그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 하나님은 유월절이 되면 이스라엘의 집집마다 양을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양은 한 가정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 하나님은 일년에 하루, 대속죄일을 맞이해서 한 마리의 양을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양은 이스라엘 전 민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을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양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예배는 가인의 예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이 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고 나왔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저의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흠뻑 적셔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저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옵소서."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오늘 여러분 어떠한 심정으로 나오셨습니까? 신앙의 연조를 자랑하기 위해서 나오셨습니까? 목사, 장로, 권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그동안 봉사한 것으로 나오셨습니까? 그렇다면 가인의 제사입니다.
인간의 의, 인간의 행위로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비록 겨자씨와 같이 작은 믿음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믿음을 소중히 여겨 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상훈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