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들(1)  (히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미국의 뉴욕대학교 병원은 의료 기술이 뛰어난 병원으로 잘 알려 있습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워싱턴에 있는 병원을 찾지 않고 그 병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 병원의 프레드 엡스타인(Fred Epstein) 박사는 신경 외과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의사입니다. 그가 쓴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도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If I get to five, 내가 다섯 살이 되면" 이러한 제목의 책입니다.
하루는 그의 병원 응급실에 나오미라는 이름의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들것에 실려 왔습니다. 의식을 잃은 채 혼수상태에 있었습니다. 뇌 속에 있는 종양 때문에 동맥이 파열되어 뇌출혈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살릴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수술이 잘 되어서 나오미는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그 아이는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그저 그의 눈과 입과 코만 살짝 드러 내놓았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나오미의 두 눈은 생기가 넘쳐흘렀습니다. 그는 매일 자기를 진찰하러 들어오는 엡스타인 박사에게 자기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다섯 살이 되면요 줄넘기하는 법을 배울 거예요. 뒤로 넘는 법도 배울거고요."
나오미는 매일 두 눈을 반짝거리면서 자기 앞날의 다른 꿈을 엡스타인 박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다섯 살이 되면 저는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거예요."
다음날은 또 달라졌습니다.
"선생님, 제가 다섯 살이 되면 오빠처럼 만화책도 읽을 거에요."
물론 나오미 자신도 본능적으로는 자기가 네 살을 넘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희망의 싹을 띄우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습니다.
의학적으로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었던 나오미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 후에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 나오미는 어느 가게의 점원이 되어서 오늘도 활기찬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엡스타인 박사는 나오미의 삶을 보면서 오히려 의사인 자기가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삶의 진정한 용기가 무엇이며, 강하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환난의 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습니다. 네 살짜리 꼬마 나오미가 절망하지 않고 희망의 줄을 붙들고 용기 있게 살아서 인생의 승리를 일구어 내었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이야 더 말한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장인 히11장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는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눈에 보지 못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증거로 나타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우리의 믿음에 아름다운 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부터 시작해서 기생 라합까지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통해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러고 난 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모두 여섯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허물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한 가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기뻐하시면서 그들의 믿음에 아름답게 응답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합니다. 허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탓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들추어내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여섯 사람 가운데서 기록된 순서대로 앞에 나오는 세 사람의 믿음을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이 귀한 믿음을 얻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기드온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사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에는 모두 12명의 사사가 등장을 합니다. 그 가운데 다섯 번째 사사가 바로 기드온입니다. 사사기6∼8장까지 세 장, 100절에 걸쳐서 기드온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기드온은 12명의 사사들 중에서 제일 길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기드온은 300명이라는 적은 수의 용사로 135,000에 이르는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치고 큰 승리를 거두었던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가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에게 강한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가 전술에 능해서 작전을 잘 짜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그의 믿음에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셨습니다. 기드온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미디안의 연합군과 대항해서 싸울 이스라엘 군대를 소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모두 32,000명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을 보시면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Too many, 너무 많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두려워서 떠는 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 말에 따라서 22,000명을 돌려보냈습니다. 일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기드온을 향해서 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Still too many, 아직도 많도다."
사실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한다면 수긍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서 모인 미디안 연합군의 수는 135,000명입니다. 그들은 메뚜기의 중다함처럼 그 수가 많았습니다. 그들이 군마로 타고 다니는 약대의 수는 해변의 모래처럼 무수했습니다. 그런 미디안 연합군의 수에 비하면 일만 명의 숫자는 너무나도 부족한 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많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기드온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일만 명 가운데 9,700명을 돌려보내고 300명만 남게 했습니다. 그때 기드온은 어떤 방식으로 300명을 남게 했습니까? 덩치가 좋은 사람을 뽑은 것이 아닙니다. 힘센 사람을 뽑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물 마시는 모습만을 보면서 뽑았을 뿐입니다. 이런 자세로 물을 마시느냐? 저런 자세로 물을 마시느냐?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적은 수의 인원을 남기게 하기 위해서 그러한 방식을 택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300명이라는 적은 수만 남기셨습니까? 많은 수를 가지고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자기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과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원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300명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기드온과 300명의 손에 들려주신 무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빈 항아리와 그 속에 감추어진 횃불, 그리고 나팔이 전부였습니다. 이런 것들만 가지고 싸움터로 나간다는 것은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는 밤중에 세 대로 나뉘어서 미디안 진영을 에워쌌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은 신호에 따라서 일제히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감추어진 횃불을 밝혔습니다. 소리 높여 나팔을 힘차게 불었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그 우렁찬 소리를 들으면서, 또한 붉게 타오르는 횃불을 보면서 약대들은 놀라서 날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은 잠자던 미디안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셨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적인 줄 오인하고 칼로 찔러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은 적과 한번 맞붙어 싸우지도 않고 큰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믿음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6.25동란 때였습니다. 앞서 가던 소대장이 갑자기 소대원들을 향해서 소리쳤습니다.
"수구래! 수구래!"
경상도 말로 수구래 하는 것은 엎드리라는 뜻입니다. 수그리라는 뜻입니다. 그 말을 알아 듣고서 수그린 사람은 다 살아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사람들은 적들이 쏘는 총에 맞아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삶의 악조건들이 미디안처럼 우리를 억압해 올 때가 있습니다. 내가 강한 줄 알고 내 힘으로 싸우려고 하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수구래 하십시다. 엎드려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12:10에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함이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믿음으로 미디안을 물리치고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바락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바락은 이스라엘의 사사는 아니었습니다.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을 때 이스라엘 군사 일만 명을 이끌고 가나안 군들과 싸웠던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벌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파셨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철병거 900승을 의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몹시도 학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큰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우신 사사가 여선지 드보라였습니다. 드보라가 바락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일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 적장 시스라가 이끄는 철병거 900승을 무찌르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바락은 드보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내가 가지 아니하리이다."
바락은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만 명의 군대 힘보다는 한 사람, 곧 하나님의 사람 드보라를 더욱더 소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락의 믿음이었습니다.
바락의 요구에 드보라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한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사실 장수로서 전쟁의 승리에 대한 공이 다른 사람의 손에, 그것도 일개 가냘픈 여인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락은 전연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이 높아지든지 낮아지든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이 구원함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그는 족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바락은 드보라와 함께 일만 명의 이스라엘 군사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때 적장 시스라는 철병거 900승의 위용을 자랑하면서, 기손 강가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락은 그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승리를 안겨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바락의 믿음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락보다 앞서 가셔서 시스라와 그의 군대를 치셨습니다. 하나님은 폭풍우로 그들을 치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시스라의 철병거 900승은 진흙탕 속에 갇혀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울러 옆에 있는 기손 강이 폭우에 범람했습니다. 넘쳐흐르는 강물에 철병거가 떠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적장 시스라는 어쩔 수 없이 철병거를 내버리고 도보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는 기진맥진한 몸으로 한 여인의 장막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 장막의 주인은 헤벨의 아내 야엘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야엘은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야엘은 시스라를 숨겨주는 척하면서 일단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시스라가 곤히 잠들었을 때 말뚝으로 그의 몸을 박아서 죽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적장 시스라는 드보라가 예언한 대로, 한 여인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드보라도 물론 귀합니다. 적장 시스라를 죽인 야엘도 물론 귀합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오직 바락의 이름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바락의 믿음이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바락은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의 여선지요, 사사였던 드보라를 일만 명의 군대보다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아울러 그는 공명심에 불타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이름이야 높아지든지 낮아지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사람들은 몰라준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바락의 믿음을 잊지 아니하시고 아름다운 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승리케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바락의 이름을 오늘 본문에 기록 되게 하심으로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영구히 기념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허물이 많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기뻐해 주십니다. 우리의 과거를 탓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들추어 내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를 귀하게 사용해 주십니다.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이 귀한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잡고 날마다 매순간마다 믿음을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삼손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12명의 사사들 가운데 마지막 12번째 사사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사사기 13∼16장까지 네 장에 걸쳐서 나옵니다. 장 수로는 기드온보다 한 장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절 수로는 96절입니다. 기드온보다는 4절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사사기에서는 기드온에 대한 설명이 가장 길고, 그 다음으로 긴 것이 삼손에 대한 설명입니다.
삼손은 도덕적으로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사로서 결코 이상적인 삶을 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사사로 세우신 것은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관계를 맺었던 세 여성 모두가 블레셋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사람, 딤나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블레셋 사람, 가사의 기생, 곧 창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눈이 멀도록 사랑에 빠졌던 여인 들릴라도 역시 소렉 골짜기에 사는 블레셋 여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사사로서 성결한 삶을 살기보다는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에 사로잡혀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택정된 나실인이었습니다. 민6장에 의하면 이 나실인은 특별히 세 가지 사항을 지키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시체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둘째, 포도주를 입에 대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나실인이었던 삼손은 이 세 가지 사항 모두를 하나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가 딤나의 여인을 자기 부모에게 선보이기 위해서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갈 때였습니다. 그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 어린 사자가 한 마리 나타나서 으르렁거렸습니다. 삼손은 그 사자를 염소 새끼 찢음같이 찢어서 죽였습니다.
그 뒤에 삼손이 결혼을 하기 위해 다시 딤나로 내려갈 때였습니다. 그때 삼손은 자기가 찢어 죽였던 그 사자의 몸 속에 벌떼와 꿀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될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자기 손으로 사자의 시체 속에 들어있는 꿀을 끄집어내서 먹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나실인의 규례를 어그러뜨린 첫 번째 경우였습니다.
그 뒤 삼손은 그 당시 세상 사람들의 풍습에 따라서 신부의 집에서 한 주간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블레셋 청년들 30명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면서 한 주간 동안 여흥을 즐겼습니다. 그 유명한 수수께끼 게임이 이 기간 중에 있었습니다. 그는 포도주를 입에 대서는 안 되는 나실인의 규정을 위반함으로 나실인으로서의 규례를 두 번째로 또 어기고 만 것입니다.
그는 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들릴라의 꾀임에 빠졌습니다.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자는 동안 그만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던 삼손이었습니다. 부모 말도 듣지 않았던 삼손이었습니다. 그러던 삼손이 여자에게는 몹시도 약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나실인이라는 비밀을 들릴라에게는 털어놓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세 가지 사항을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다 어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토록 삼손은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당당하게 오늘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이방 여인을 취한 적은 있었다 할지라도,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의 신들을 섬긴 적은 없습니다. 그는 끝까지 믿음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두 눈을 뽑힌 채 블레셋 사람들의 신전 두 기둥 사이에 섰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세운 든든한 기둥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두 기둥을 손으로 밀면서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부디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이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기를 원하나이다."
허물 많은 삼손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기둥이 흔들리면서 불레셋 사람들의 신전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삼손은 그 곳에 모여 있던 삼천 명이나 되는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삼손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도록 택함 받은 나실인이었습니다. 우리도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삼손이 나실인으로서의 규례를 어겼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도 삼손처럼 세상 즐거움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길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도 삼손처럼 허물 많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삼손의 부족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그를 귀하게 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과 허물도 탓하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를 귀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의 모든 부족과 허물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흰눈보다도 더 희게, 양털보다도 더 희게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딸이라 부르시면서 영원한 천국의 문을 활짝 여는 열쇠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돈독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드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상훈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