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비밀   (엡 3:2-9)  

성도라면 전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일없습니다..
그런데도 보면, 부끄럽게도 전도에 힘쓰지 못한 채 지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올해는 새해 벽두부터 '전도'하는  교회의 면모를 보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전도하지  못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의 위대성과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음이요.
또 다른 하나는 순종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학생이 성적이 좋지  않아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의
일반적 이유가 되는 것이 무엇이겠읍니까?
공부를 집중해서 정말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선생님이나 학부형의 권면을 인정하거나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비록 몸은 피곤하고 힘들겠지만 남들보다 더 열심히 밤늦도록 공부하라고 종용하고 원합니다.그러나, 불행한 일이라고나 할까, 부모님들이 언뜻 보기에는 자녀의 방엔 불은 켜져있어 '그래, 공부하는구나' 생각하지만, 사실은 불만 켜 놓았지 마음은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다가 인기척이 나면 책상에 얼른 걸터앉아서 공부하는 척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보기엔 눈은 책을 보지만 그 눈이란 것이  공부와는 별 무관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학생의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적이 아니라고서야 뻔하지 않습니까?

교회나 성도들에게 있어 전도하는 것이 그와 같아선 안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여전도회, 남선교회다, 기관마다 전도부가 있고, 교회 예산에 전도
비가 책정되고, 강단에선 전도에 대한 말씀이 수시로  선포되기에, '전도하고 있
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별 소득이 없고 결실이 없습니다..
전도의 방엔 불은 켜 놓고도 전도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우리 전도하지 않음에 다같이 회개야 하겠습니다.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전도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 데는 복음 자체가 지닌 위대한  성격이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계시이지 인간의 논증이나, 경험에 의한 진술이나, 이해가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1. 복음에는 '비밀'의 성격이 있습니다..(4절)
    바울은 복음을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에게 복음은 곧 계시이었습니다. 그가 '깨달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깨닫도록 도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이 계시인 것을 안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가능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이해는 인간의 지성이나  경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모르고 복음을 인간적인 두뇌와, 인간의 지식의 합리성으로 이해하려고 들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큰 차이와 한계가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길은 인간의 길보다 높
고 그 생각 역시 높다’고 하였습니다.(사55:9)
  
     ☞ 이제 걸음마를  간신히 하는 아이와 숨바꼭질 하는 것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숨바꼭질 놀이를 아이들은 아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은 숨은 사람을 자신들의 힘으로는 찾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감각과 지각 ,운동신경이 둔해서 빨리빨리 움직이는 큰 아이들이나 부모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래서 손가락으로 숨은 곳을 슬쩍 가르쳐 줍니다. 아이들은 그것으로 술래를 찾고 기뻐하며 좋아합니다. 이 아이들에겐 누군가 숨겨진 곳, 숨겨진 사람을 은밀히 말해 주어야지 그 놀이가 그 아이들에게 제대로 재미난 놀이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알게 해줌으로 가능해 집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성령
을 통해 복음을 듣는 이들이 복음을 영접하도록  깨우쳐 주십니다.
물론 전도의 효과적 방법을 배워 그 방법으로 효과적인 전도를 할 수 있겠지만, 전도하는 열의(熱意)나 정성(情誠)보다 그것이 결코 앞설 수  없습니다.
서투른 전도에도 하나님은 복음의 비밀을 듣는 이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전도의  비법을 연구하는 것 보다, 전도하는 것이 우선 입니다.
전도하면서 전도의 방법론에 신경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는 대로 지금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전도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성령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 한 성도가 은혜가 충만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그랬더니 상대방이 '천국은 무슨 천국, 당신이나 가요'.
그르더랍니다. 그 영혼이 가련하고 불쌍해서 성도는 '그럼 당신 지옥이나 가요' 그랬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화를 내며 무슨 욕설이냐고 대들더랍니다.
'천국이 안 믿어지면서 왜 지옥은  믿습니까, 천국 없으면 지옥도 없는데 뭘그래요’ 라고 대꾸했더니 그냥 가 버리더랍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도를 해도 좀 어수룩하고 멍청스럽게 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좀더 세련되게, 교양과 품위를 가지고 했더라면 좋았지 않았겠는가 생각 안하십니까?  '지옥이나 가라는 말을 그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 평생 죽을 때까지 예수, 교회, 하면 이를 갈지는  않을까 걱정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그건 우리 생각뿐이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분이 더러 있다는 사실입니다.

방법은 서툴러도 마음이 제대로 되어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능력을 통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2. 복음은 은혜의 경륜입니다.(2절)
우리 주변에는 주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누가 구원을 받을 런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추측하거나, 기대하거나, 간구하거나, 믿음으로 확신 할 수는 어느 정도 있겠으나 인간의 이성이나 지각으로 확정해선 안되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되어지는 예정입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원하는 뜻대로 되는 것으로, 이것은 영원부터 정해진 것입니다.(엡3:11절)
    예수님 당시 구원과 가장 근접해 있을 것을 자부하고 예상했던 사람들이
라면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었고, 구원과 거리가 먼 자들은 거리의 창녀들이
나 세리들, 경건치 못하게 율법의 규례와는  동떨어지게 살아간 자들이었읍니
다. 하지만, 누가 이미 도끼가 그들의 나무뿌리에 놓여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서기관과 율법 학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러기에 쉽게 예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역사가 49년이나 됩니다. 그 동안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귀가 따갑도록 복음을 전해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다행한 일이겠지만, 이 지역에 아직도 주님께서 기쁘게 예정하여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상당 수 있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 지금 지구상에는 엄청난 수의  지뢰가 묻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캄보디아에서는 앞으로도 100년 동안 지뢰 제거 작업을 해야만 지뢰를 다 수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하루에 20-30명 정도가 지뢰에 의해 죽거나 심각한 상처를 당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나 세계 지뢰 수거 협회가 이 중요한 사항을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한시도 제거 작업을 멈출 수 없는 심각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멈출 수 없이 이 일은 아주 시급하게 작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땅 밑에 묻혀진 지뢰를 찾아내야 하듯 우리가 알지 못하나 구원받도록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므로 그들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속히 살아가도록 하는 작업을 우린 게을리 하거나 멈출 수 없습니다..

     3. 복음은 능력으로 역사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통해 이방인이 하나님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
여하는 자가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단계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주시는 자녀 됨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거듭 태어나는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6절)
     전에는 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
질상 진노의 자녀요 불순종의 자녀요 마귀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엡2:3,엡5:6).
     복음의 능력은 자녀가 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지체로서의 자녀가 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성도들의 지체 의식, 서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유기체임을 인식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시고 도우십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된 풍성한 기업과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참여하겠금 이끌어 주십니다.

    ☞ 어느 한국인이 일본의 호텔에서  호텔 종업원에게 편지를 부쳐 달라고 부탁했더니 일본인 종업원이 거기에 드는 비용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한국인 투숙객이 '꼭 부쳐 주셔요' 여러번 이 말을 되풀이하면서 부탁했더랍니다. 그러니까 일본인이 자꾸만 믿지 못해 말하는 그 사람에게 '전 일본입니다' 그르더랍니다. 자신이 틀림없이 일본인이라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일본인은 정직한 민족이니까, 염려 말고 믿으라는  말이었습니다.. 당신네 한국인은 속고만 살고 있느냐 그 말입니다.
    ☞ 지난 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은 후 한 시민은 방송극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이든 일본이든 어느 민족에 속하든  그것은 변할 수 없겠지만 그 민족 됨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민족성과 민족혼을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입니까? 한 일본인은 민족의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드러냈지만 한 한국인은 그러치 못한 것을 볼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됨을  인정하고 확인해 주고, 단계적으로 그 백성 됨의 생활, 백성 됨의 성격, 백성 됨의 행위, 백성 됨의 삶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이런 각 단계의 완성을 성취해 가는 가능성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능력을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는 말씀을 하신  바있습니다..
    주님을 아직 믿지 않고 있으나, 나중 믿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더 쓰임 받는 일군이 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은, 우리가 미처 하지 못하고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새롭게 도전하고 실천하며 성취해 가는 계기가 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군이 적다라는 말씀에서 추수할 일군은 이미 믿는 자가 일하라는 요청이며 부탁이기도 하지만, 먼저 믿는 자들의 전도해야 할 당위성과 그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이방인을 위하여  주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방인은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불 신앙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임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합니다. 이방인의 나의 가족이요, 나의 친지요, 친구요, 동료며,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에서 성취되고 활동되어지는 것이지 비판하고 평가하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은 모교회 집사님하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다니는  교회 이야기를 하면서 '저희 교회는 전도의 열이 없습니다.. 교인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사랑도 없어요. 참 큰일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자꾸만 시들어지고 교인 수가 줄어들고...큰일이예요'. 아주 심각하게 전도하지 않는 자기 교회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말을 했습니다.
'집사님이 전도하세요. 집사님이 전도하시면서 전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모범을 보이세요. 비판하지 마
시고 몸소 하세요. 그러면 전도의 불길이 번지고 활활 뜨겁게 달아오를 것 아닙니까'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성도는 전도에 힘쓰고 공을 들이는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며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고 교역자를 진정 돕는 것은 전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비판하는 행위가 아니라 전도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는 전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앙화가 임할 것이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여러분, 전도하지 않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직분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도리어 책망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겠습니까?
구원 중에도 부끄러운 구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불구덩이에서 겨우 구출된 구원과 같다는 뜻일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고, 일년 동안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결코 좋은 것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일군에게 줄 상을 어찌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금년이야말로 전도에 최선을 다하는 한해가 되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칭찬을 듣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