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의    (로마서 4 : 1 ~ 15)

들어가는 이야기

여러분! "구원받았습니까?" 라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십니까? 구원파 사람들은 이렇게 잘 묻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글쎄요,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천국에 가 봐야 알겠지요." 라고 대답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부끄러워서 겸손의 자세로 대답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겸손할 때가 따로 있지 이런 때는 겸손하면 안됩니다.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구원파 사람들은 아주 끈질깁니다. 구원받았다고 대답을 해도 또 묻습니다. "구원받은 것을 무엇을 보고 알지요?" 보통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해 합니다. 혹 "나는 성경에서 믿는 사람은 구원받는다고 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을 해도 "어느 성경 몇 장 몇 절로 구원받았지요, 언제 몇 년 몇 월 몇 일에 구원받았지요?" 라고 물어댑니다. 그래서 말문이 막히게 되고 대답하지 못하면 자기들을 따라오라고 합니다. 확신을 가지십시오. 자신이 아무리 부족해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실증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야 기를 통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진리를 증명합니다. 율법 이전의 믿음의 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할례 이전의 믿음의 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로로 얻는 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은혜요 선물입니다. 오늘은 봉독한 본문을 중심해서 <믿음의 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청하시는 가운데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고 감사하며 찬양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바울은 믿음의 의를 증명하기 위하여 두 사람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서 칭의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선조로서, 한 사람은 위대한 왕으로서 유대인 역사의 중심인물입니다. 마태도 예수님을 소개할 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가장 확실한 두 사람을 들어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증명하였습니다. 그 훌륭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토록 훌륭한 다윗 왕이 믿음으로 구원받음으로 행복해 했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훌륭하다는 것은 유대인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아브라함은 우리가 보기에도 훌륭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조건 없이 믿고 따르는 그의 믿음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고향을 떠나라 하시면 고향을 떠났습니다. 자식을 바치라 하시면 자식을 바쳤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따랐습니다. 또 조카 롯에게 좋은 길을 양보하던 그의 넓은 마음은 어떻습니까? 어쩌면 아브라함 정도라면 행함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겠습니까?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공로를 쌓으려고 했던 바리새인들이 유대 신앙의 중심에 있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의 의로 구원받았음을 바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물론 다윗도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신하를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을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은 곧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 사건을 배경으로 시편 23편을 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심정을 말하기를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나이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3절). 그러나 용서받고 나서는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1-2절). 이 말씀을 바울이 인용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사함을 받고 복되다고 한 것은 은혜로 사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슨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면 자랑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찬양하였습니다.

믿음의 의

이처럼 바울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들어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증명하였습니다. 공로가 있어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훌륭함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핵심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15장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상속자인 자식이 없었으므로 더이상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속자를 주실 것이며 자손을 하늘의 뭇 별처럼 셀 수 없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공의로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의로 '여기신다'는 말의 헬라어 뜻은 '통장에 넣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을 의로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그 의를 그 사람의 통장에 입금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의가 믿음의 선을 타고 믿는 자의 통장에 온라인 입금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의가 온라인으로 믿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옮겨집니다. 믿음을 가지고 의를 대신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7절의 '가리우심을 받는다'는 말과 뜻이 통합니다. 이 말은 죄가 없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여전히 거기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보자기로 가리우시고 보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죄인 그대로를 의인으로 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로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할례 이전의 칭의

이제는 믿음의 의와 할례와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칭의와 기독교 의식과의 관계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바울 당시 유대인들은 할례를 중요한 표식으로 생각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받아 주시는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할례를 받으면 구원이 보증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할례 받은 사람은 지옥에 갈 수 없다고 랍비들은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지옥의 문에 담았다가 할례 받은 이스라엘 사람은 못 들어가게 하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할례를 행할 때 다음과 같이 축복하고 기도했습니다. "어머니의 태도부터 거룩히 구별된 자에게 복이 있을 지어다. 그의 자녀로 인침을 받은 자에게 복이 있을 지어다." "몸에 아브라함의 인침을 받지 못한 자는 유월절 떡을 먹지 말지어다." 이런 기도와 함께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할례에 대한 자긍심이 강합니다. 할례를 너무 믿고 자랑합니다. 그래서 '할례당' 이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어떤 분이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설교자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설교하더랍니다. 그래서 유대교나 기독교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웃이 누구냐를 설명하는데 "할례 받은 자들만이 우리의 이웃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기독교와 유대교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너무 할례를 믿고 자랑했습니다. 할례를 구원의 보증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믿음의 의로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은 할례 받기 이전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어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은(창15:6), 할례를 받은 것(창17:10)보다 14년 전의 일입니다. 할례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김 받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표입니다. 이것은 입학하고 후에 입학식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사랑을 약속하고 후에 결혼식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의식은 내용을 확인하는 표현 일뿐입니다. 11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는 구원받는 조건이 아닙니다. 세례는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베풀어 갖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표입니다.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기에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즉 세례도 구원받는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전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율법 이전의 칭의

이제는 믿음의 의와 율법과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율법도 유대인들에게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을 율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율법은 거룩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구원의 수단, 칭의의 수단은 아닙니다. 율법은 오직 하나님의 완벽한 표준을 보여주고, 이를 통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며 그리고 이렇게 무능력한 인간을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줍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귀한 것이지만 율법을 지켜 행함의 의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바울은 율법의 귀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잘못임을 지적했습니다. 13∼14절을 함께 보십시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율법 이전의 믿음의 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도 행위에 있어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행위에 의하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모세의 율법보다 훨씬 이전의 인물입니다. 바울이 이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은 율법을 아는 것이나 율법에 따른 행위와는 무관합니다. 오직 은총으로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자랑하라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자랑해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아브라함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도무지 없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는데 무슨 자랑을 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자랑할 뿐입니다.

또 5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 여기서 일은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행위가 없을지라도 믿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경건치 못한 자들도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행한 노력의 보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자랑하지 맙시다. 헌금을 많이 드려도 자랑하지 맙시다. 그것으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만 자랑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뉴웰(W. R. Newell) 목사님이 세인트루이스에서 집회를 하였습니다. 하루는 로마서 4장 5절을 가지고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을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읽으라면 성경 읽고 기도하라면 기도하고 구제하라면 구제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하여 견딜 수 없다고 하면서 무엇을 해야할지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뉴월 목사가 말했습니다. "오늘 제가 한 설교를 못 들었습니까? 로마서 4장 5절을 다시 보십시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 시나니... 이만 하면 됐지요?" "아니 뭐가 됐다는 겁니까?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죠?" "「일을 아니할지라도」를 읽으세요. 무슨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없어도, 경건치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어제 그 사람이 간증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앞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명언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수많은 명언을 만났지만 이번에 발견한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 이것이 최고의 명언입니다. 과거에는 제가 무엇을 해야 구원 얻는 줄 알고 잠을 못 이루었지만 이제는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 감격하여 잠을 못 잤습니다. 저의 인생은 이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고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무슨 공로로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자랑하십시오. 그에게 감사하십시오. 감사함으로 은혜를 갚으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진리를 가지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감격이 있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황광민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