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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를 행하라 (딤전5:3~4)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요시야(Josiah)라는 랍비가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너는 참으로 복을 받은 자로다. 이제 백정 네네스 옆에 서게 될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깨어 생각해 보니 자신의 위치가 백정 옆이라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백정은 매우 천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 왔는데 백정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율법공부를 그만두고 기도도 게을리 하면서 하나님 앞에 시위합니다. 그러다 문득 백정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만나 보리라 생각하였습니다. 백정 네네스는 유명한 랍비가 찾아 온 것에 너무도 황송하여 문 앞까지 나와 영접하고 제일 좋은 자리에 모셨습니다. 랍비는 물었습니다. "당신이 도대체 무슨 선한 일을 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 옆에 서라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려 주게". 네네스는 말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그런 사람이 못됩니다. 또 그런 일을 한 적도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변명합니다. "나이 많은 어머님을 모시느라 저는 회당에도 잘 나가지 못했으며, 좋은 일도 많이 하지 못했으니 용서해달라" 는 것입니다. 랍비가 그의 어머니 계시는 곳에 가보았더니, 어머니는 나이가 많아 기동을 전혀 못하시고 대소변도 못 가립니다. 네네스가 늘 어머니 옆을 지키며 대소변을 가려내고, 어머니의 친구가 되어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랍비는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제야 저의 자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백정 네네스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도 황송할 따름입니다." 이처럼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시는 행위인 것을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2백년 전에 선교사들이 중국에 선교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유교문화에 깊이 젖어있는 중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모여 궁리합니다. 기독교가 효의 종교인 것을 전하기로 뜻을 모으고 전도지에 효에 관한 성경 말씀을 삽입키로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5절의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장 17절의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는 말씀들입니다. 옳습니다. 기독교처럼 효를 강조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효도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죽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사람은 살 자격도 없으며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4절에도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고 강조합니다. 자녀나 손자들의 앞에서 부모님께 효를 행하여 그들로 배우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의 '효를 행하다' 는 말은 '유세베오' 라는 단어로서 '존경하다, 경배하다' 는 뜻입니다. 즉 자녀들은 마땅히 부모를 존경하며 효를 행하여 본이 되어야 합니다. '효를 행하라' 는 것은,
첫째, 힘을 다해 순종하여야 합니다
어느 마을에 화목하기로 소문난 집이 있었습니다. 동네사람마다 그 집을 부러워합니다. 한번은 화목치 못한 집의 노인이 화목한 집에 방문하여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화목한 집의 노인은, "우리 집이 왜 화목한지 보여주겠다" 며 큰아들을 불렀습니다. "얘야, 내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불러라." 나이가 40이 넘은 아들은 아무 대꾸 없이 아버지 앞에서 춤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둘째 아들을 부릅니다. "뒷마당에 가서 감을 따오너라" 하고 명하였습니다. 감 열매가 겨우 맺히기 시작하는 철인데 둘째는 이유도 묻지 않고 감 열매를 따왔습니다. 셋째 아들을 불러 "막내야, 외양간에 있는 소를 지붕에 몰고 올라가라" 하십니다. 그러자 셋째 아들은 소를 몰고 지붕에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를 놓고 야단법석을 하더랍니다. 그때 노인은 말합니다. "우리 집안의 화목은 자녀들의 순종에 있다네."
'순종하다' 는 '휘파쿠오' 란 단어입니다. '밑에서' 라는 '휘포' 와 '듣는다' 의 '아쿠오' 라는 말이 합쳐져 생긴 말로서 '아래서 듣는다' 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진지하게 진솔하게 듣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부모의 말씀을 선택해 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골로새서 3장 20절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모든 일에 순종하십니까? 힘을 다하여 모든 일에 순종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부모님께 순종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 전심으로 공경하여야 합니다
교회 유치부에 다니는 아이가 돌아와 무엇인가를 열심히 외웁니다. 부모가 잘 들어보니 십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제5계명을 외우는데, "네 부모를 공격하라. 네 부모를 공격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빠가 "공격이 아니고 공경이야,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어." 그러자 아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아빠, 공경하고 공격하고 뭐가 달라요. 똑같은 것 아니에요." 그 아이는 공경이라는 말이 어려워 이해되지 않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하는 아빠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공경이라는 말의 뜻은 바로 공격하라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부모는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공경의 대상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는 말씀은 '부모를 무겁게 여기라' 는 의미입니다. 이는 부모를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귀중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무식해도, 얼굴이 못생겼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부모를 귀하게 여기는 일이 공경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공경이란 말의 원어인 '티마오' 는‘굉장한 가치를 지니는 대상에 대한 친밀한 반응’을 의미합니다. 이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부모를 존중히 여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순종이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의미한다면 공경은 마음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즉 행동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 부모님을 존경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 이유는 약속 있는 하나님의 첫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공경은 엄중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부모 공경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우선해야 합니다. 다른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부모 공경은 그보다 우선입니다. 부모 공경은 기본 윤리입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해도 부모 공경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 없는 자식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 공경이 가정의 기초 윤리임을 깨달아 언제나 마음을 다하여 진심으로 부모님을 공경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 정성으로 보답하여야 합니다
미국의 20대 대통령 가필드(Garfield)가 대통령 취임하는 날, 시간이 다 되어도 식장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참 후 대통령이 한 노인을 부축하며 식장에 들어섭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습니다. 가필드는 늙은 어머니가 취임식장에 가지 않겠노라고 말하자, "어머니가 안 가시면 저도 가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어머니를 설득하여 모시고 나온 것입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제가 이렇게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도 다 어머니의 은혜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대통령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라며 어머니의 은혜를 보답하며 말하자 참석한 많은 이들이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사무엘 존슨(Sammuel Johnson)이 어느 날 복잡한 장터에 홀로 서서 눈물을 흘립니다. 다섯 시간이 지나도록 그냥 말없이 울며 서 있습니다. 지켜보던 제자들이 "선생님, 왜 그렇게 서 있습니까?" 물으니 대답을 합니다. "50년 전 아버지가 바로 이 자리에서 헌 책장사를 하셨다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불편하니 네가 하루만 이 자리에서 일해다오. 약속한 사람이 찾아올 것이니 그 분에게 이 책을 드려라' 고 하셨는데 나는 '아버지가 헌책 장사하는 것도 창피한데 내가 왜 그 일을 해요' 하면서 거절을 했다네. 그러자 아버님은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시며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그 날 일하셨네. 그런데 그 일이 무리가 되었던지 그 날 이후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으시다 돌아가시고 말았다네. 지금에 와서야 지난날 내가 아버지께 순종하지 못한 것, 아버지를 존경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네. 그런데 아무리 후회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안되겠기에 내가 나를 벌주기 위해서 여기 서 있는 것이네." 여러분은 부모님의 은혜에 얼마나 보답하며 사십니까? 혹시 살아 계실 때 섬기지 못하여 울고 서 있는 양심은 아닙니까?
본문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여기의 '보답하다' 라는 말은 '보상을 갚는다' 란 말입니다. 부모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은혜와 사랑을 되돌려 드린다는 뜻입니다. 즉 효란 부모께로부터 받은 것을 자식이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다 부모님의 것입니다.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곧 효를 행하는 것을 자녀들로 손자들로 배우게 하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가르치는 것은 내가 주체이지만 '배우게 하라' 는 것은 배우는 사람이 주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손자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먼저 부모에게 보답하는 본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효자 집에 효자 난다' 고 말합니다. 효자인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 자식이 배워 효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식들을 부모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자녀들이 어찌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겠습니까?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서는 '효도 실천 십계명'을 가르칩니다. 첫째, 부모에게 신앙을 갖도록 해드려라. 둘째,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라. 셋째,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말라. 넷째, 궁금증을 풀어드려라. 다섯째, 자유롭게 쓰실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용돈을 드려라. 여섯째, 향토적인 음식을 해 드려라. 일곱째,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려라. 여덟째, 일거리를 드려라. 아홉째,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드려라. 열째, 등을 긁어드리고 손발톱을 자주 깎아드려라.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고 효를 행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버이의 은혜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낳으시고 기르시며 돌보아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살아 생전에 효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효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께 드릴 최고의 선물은 구원받게 하는 일임을 더욱 명심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효를 행하여 자녀와 자손들이 본 받을 수 있는 부모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힘을 다해 순종하며, 전심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해 보답하며 사는 복된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광일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