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2: 28-32, 눅22: 52-62, 빌4: 4-9

1. 오순절 성령의 역사
오늘은 성령 강림절입니다. 사도 행전 2장에 따르면 주님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모여있던 성도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불처럼 나타났고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삶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가 시작된 날이기에 교회의 생일이라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이 절기는 긴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처음으로 시작된 절기는 아니라 구약 시대부터 내려온 절기였습니다. 후기 유대교에서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준 날을 기념하는 날로 지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출애굽 후 50일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순절은 추수와 율법 수여의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2.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
성령 강림절의 중요성은 교회만이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큰 의미를 갖는 절기입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은 바로 성령에 따라 사는 삶이요 성령의 도움과 인도하심 가운데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하시며 어떻게 역사 하시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모습이, 우리 신앙인들의 삶이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기보다는 나 자신이나 다른 대상을 의지하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까지도 성령보다는 세상을 더욱 의지하는 모습이 더 흔하지 않습니까?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겠습니까? 왜 우리가 그리해야 합니까? 아니면 오늘 본문은 우리들과는 무관한 본문입니까?

3. 시대의 흐름과 성령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바로 시대의 흐름입니다. 우리가 성령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데 있어서 시대의 흐름과 정신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 지 모릅니다.
우리 인간은 지난 500여 년 동안 근대 사회라는 시대를 거쳤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고 그리고 과학을 발달시켰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일을 이루었습니다. 수많은 질병이 극복되고 수명이 엄청나게 길어졌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풍부하고 편리해졌습니다. 나아가서는 우주까지도 가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거의 매일 또다른 엄청난 소식들을 듣고 있습니다. 이제는 생명까지도 우리가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치병도 치료할 수도, 병에 아예 걸리지 않게 할 수도, 늙지 않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여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 시대에 우리에게는 성령의 역사는 무엇을 말합니까?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어쩌면 우리는 가장 성령의 역사를 멀리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 있어서는 가장 성령의 역사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2000년 전에 마가의 다락방에 역사하셨던 성령의 역사는 그 때만 아니라 지금도, 이 자리에서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도행전 본문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을 보게 됩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되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엄청난 일들이 일어 성령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겼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베드로에게서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4. 변화된 베드로
우리가 잘 아는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가장 충성했고 용기있었던 제자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주님이 돌아가실 때에 보여준 베드로의 모습은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누가복음 22:54절 이하에 주님께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 뜰에 있었던 베드로가 대제사장 집의 비자 앞에서 세 번 부인한 사건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도 행전에 나타난 베드로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두려움이라고는, 나약함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혀 새로운 모습입니다. 무엇이 베드로를 이렇게 변하게 했습니까? 더 정확히 질문한다면 어떻게 사람이 죽음을 극복했습니까? 대답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이었습니다. 오늘도 성령의 역사는 성도로 하여금 죄와 죽음의 역사를 극복하게 합니다. 이제는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도록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도록 합니다.

5. 오늘날도 죄와 죽음의 역사는 계속 됩니다.
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죄와 죽음의 문제가 없습니까? 왜 성령의 역사가 없습니까? 과학이 발달하고 생활이 편리해지면, 죄와 죽음의 문제는 극복이 됩니까? 그러면 성령의 역사도, 하나님의 역사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까? 모든 시대의 흐름이 성령을 몰아낸다고, 우리 또한 성령을 몰아내야 합니까? 과학의 배후에는 "정복"이라는 동기가 숨어있습니다. 모든 것을 정복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신의 자리에 서겠다는 몸부림입니다. 오늘날 교육의 배후에 숨어있는 죄의 역사가 얼마나 강한지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교육의 경우에도 이제 철저하게 하나님을 분리합니다.

결 론.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시고, 그리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모든 삶의 터전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우리의 호흡이 되어야 합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