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6, 계 1:1-3

복 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독교는 복 받는 종교입니다.
흔히 기복주의를 이야기합니다만
실제로 우리들은 진정한 복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세상이 말하는 복과는 구별됩니다.
시편 1장 1절은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1) 악인의 꾀를 좇거나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자입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자입니다.
      복된 자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시1:1).

   2)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시1:2).

   3)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모든 행사를 모두 주께 의지하는 자입니다.  
     과실을 많이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행사가 형통합니다(시1:3).


정말 그렇습니다.
복 중에서도 가장 큰 복은 여호와께서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사장이나 선생님이나 윗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대단한 복입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상관에게 인정받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그러니까 여호와께 인정받은 자가 성경에서 말하는 복 있는 자인 것입니다(시1:3, 6).

그러나 계시록은 때가 가까운 만큼 더욱 분명한 복을
너무나 쉬운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며 선언합니다(계1:3).

  
첫째, 말씀을 읽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말씀은 고전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현재!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편지입니다.
   아무리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약속이라 할지라도
   읽지 아니하면 알지 못하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이 놀라운 약속의 글을 읽고 그 능력을 깨닫는 사람들이 됩시다.


   평양에 있는 봉수대교회나 칠골교회 등에서는 성경책이 자꾸 얇아진답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종이가 부풀어 더 두꺼워진다는 말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왜 성경이 자꾸 얇아집니까?
   말씀을 읽고 싶어서
   말씀을 보고 싶어서
   그래서 읽고, 읽고 또 읽고 외우려고
   성경을 한 장씩 찢어갔다는 이야기가 사실 오늘 우리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옛날 부흥사들이 촛대를 옮긴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부유하고 많은 사람이 모여도  
   지금 게으르고 안일하면,
   지금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에베소교회에 경고하시던 그 말씀 그대로
   촛대를 옮기신다는 것입니다.
   설마 설마라고 하다가
   오늘날 옮겨진 촛대를 보면 정말 두려운 마음을 느낀다고 고백한다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말씀만을 사모하는 선교지교회(중국, 러시아, 캄보디아 등등)들을 보면
   정말 숙연해 질 때가 많습니다.
   그들이 이 시대에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로구나!
   우리는 10분, 20분도 못 참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며칠씩도 참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립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은혜를 받으시되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음으로 읽는 자의 복을 모두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들 드립니다.
   말씀을 읽읍시다.
   속는 셈 치고 한 읽어보십시오.
   세상에 꿀맛이 그것보다 더 달까요?
   깨소금이 어찌 그 말씀보다 더 고소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둘째, 말씀을 듣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굶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듯이
   말씀을 듣는 자들의 복이 큽니다.
   편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의심하는 자는 의심하는 믿음대로 됩니다.
   종종 설교 듣고 난 뒤에 뒷말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이 탑니다.
   물론 우리교회 이야기는 아닙니다.
   구실 붙이고, 핑계대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믿음입니다.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면 복이 됩니다.
   저건 김 집사 이야기, 저건 백집사 이야기, 어 저건 내 이야기인 데 누가 전했을까?

   성령께서 전해 주시는 이야기로 들어야 합니다.
   듣는다는 말은 귀로 듣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 그놈 참 말 잘 듣는구나!”라고 할 때
   듣는다는 말은 순종을 잘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소극적인 믿음이 아니라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소 꼭지 빨지 말고 젖꼭지 빨아야 한다.”는 할머니 말씀처럼 말입니다.    

   듣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말씀을 바로 들으라는 이야기입니다.

   부정적이거나 비판하지 말고,

   이유나 핑계하지 말고,

   식초, 간장, 양념 뿌리지 말고

   말씀대로 들어서 복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 들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복된 자리를 지킵시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가야 말씀을 듣습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은 어디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어디서나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일 낮 예배는 언제나 가장 기초적인 신앙을 강론합니다.

   사실은 초청이나 전도 설교가 대개 주일 낮입니다.

   중요한 시간은 찬양예배, 수요일, 구역예배, 심야기도회와 각종 성경공부 시간입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시되

   딱딱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복을 누리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말씀은 아멘의 힘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집사님 한 분이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 제 귀에 쏙 들어오더라고요.

   “경유 차는 힘이 없어도 ‘오라이!’ 그 힘으로 간다!”

   얼마나 멋진 농담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말씀은 아멘의 힘으로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아멘”이라 함으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아멘”이 가증스러운 아멘이 되지 읺아야 합니다.

   가증스런 아멘이란?

   입술로만 하는 아멘입니다.

   내 삶으로 아멘이 되어야 합니다.

   실제적인 삶을 통한 아멘이 되어야합니다.

   말씀대로 지키고 사는 아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난 후에 수 없이 들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누가 헤아려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에는 약속이 삼천 육백 오십 가지가 있답니다.

   하루에 열 가지씩 복 받을 만한 약속이 성경이 기록되어 있답니다.

   힘들어도 말씀대로 지켜 삽시다.

   그 약속들이 그냥 사라져 버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말씀대로 사는 것이 능력이 됩니다.

   말씀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믿고 실천하면 반드시 그 결과가 있습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소성함과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시19:7-9).

   말씀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리며,

   의롭게 되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정금보다 귀하고 송이 꿀보다 더 단 말씀으로 말미암은 큰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편 1편을 다시 한 번 소리 높여 읽읍시다.
  “복 있는 사람은 … ”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여호와께 인정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손윤탁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