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37:22-40    
  
시편의 특징중의 하나가 악인과 의인을 비교하여,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모습을 열거하고, 의인의 모습을 열거한 후에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고, 의인의 길은 흥하고 구원될 것이므로 의인의 삶을 살아가라고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21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악인은 망하고 의인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잘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22절에 보면 주의 복을 받은 자와 주의 저주를 받은 자가 비교되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주의 저주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심판입니다. 그것은 환란의 날이며, 멸망의 날이며, 심판의 날입니다. 그들은 끊어질 것이나 주의 복을 받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4절에 저는 넘어지나(의인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아주 엎드려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어찌 아버지가 그 자녀에 대하여 무심하겠습니까? 젖먹이 여인이 그 자식을 잊을찌라도 나는 너희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25절에 보면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가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그렇습니다. 의인은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버림을 당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또는 잠시 환난과 시험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버림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의인의 자녀, 기도하는 자녀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이 말은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나카의 말입니다. 기도하는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해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밖에 없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인의 삶을 살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27)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우리는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노를 품는 것에서도 시기하고 질투하는 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나의 마음대로 살았던 것에서도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본문에 보니까 함께 나누는 삶입니다. 종일토록 베풀고 꾸어주고 함께 나누는 삶이 선을 행하는 삶입니다. 초대교회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함께 나누는, 선을 행하는 공동체를 이루어야합니다. '34)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의인의 삶은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는 삶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으며 삶의 기준이 여호와의 도, 그 교훈과 말씀과 가르침에 있는 것입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수 없듯이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참된 기쁨과 자유 함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39절에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넘어져도 곧 일으켜 주시고 버림당하지 않고, 그 자손이 복을 받고 그리고 결국에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의인의 삶,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는 삶이 꼭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출처/김진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