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10
고명진 목사
역사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각은 일반적으로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숙명론적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고 둘째는 이성론적으로 보는 것이다. 셋째는 섭리적으로 역사를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숙명론적 역사관은 모든 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대로 운명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창조적인 계획이나 특별한 대안이 필요 없다. 실패한 역사든 성공한 역사든 원인이나 까닭을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되는 대로 사는 게 최선이라고 믿는 것이다. 역사 환경에 잘 순응해 사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믿기에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편안하고 그럴듯한 사관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는 마음과 사고가 있고 철학이 있기에 운명론적으로 역사를 보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성론적으로 역사를 보는 사람들은 역사적 사건을 꼼꼼히 따져 보고 논리적·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이들은 매우 분석적이며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으려고 주도면밀하게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그렇게 논리적·과학적·이성적으로 해석할 수만은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이성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숙명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바람직하지만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리더십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모든 역사적 일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한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팔자나 운명 또는 숙명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역사적인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성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처럼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섭리적 사관을 가진 자들은 그 일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무슨 일이든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는다. 섭리적인 사관을 가진 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다시 한번 역사의 미래를 향해서 도전한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뒤 먼 훗날 총리가 되었을 때 형들을 만나게 되었다. 요셉의 형들은 모두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요셉의 말을 들어 보라. 요셉은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구하시려고 나를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다”고 했다. 형들이 자신을 판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요셉의 탁월한 리더십은 섭리적 역사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로 비방하고 남의 탓이라 전가하는 세상에서 크리스천들만이라도 여유를 갖고 주님의 뜻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섭리적인 역사 의식을 가진 자가 많아야 세상이 밝아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