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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환 (한남대 기독교학과 기독교상담 전공) 2003.10.13 조회 : 386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마 18:28). 이것은 베드로의 유명한 질문입니다. "몇 번까지 용서할까요?" 우리도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참아야 하나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용서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일방이 상대방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잘못한 분을 향해 정정당당한 분이 베푸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정정당당한 분은 우월한 위치에 서 있고, 잘못한 분은 열등한 위치에 엎드려 있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용서는 시비를 가린 후에 도덕적 승자가 패자에게 베푸는 행위가 됩니다. 즉, 용서는 시비를 판단하는 과정을 전제로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용서는 ''내가 도덕적 승자다''라는 교만의 무의식적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질문에 포함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무의식의 차원에서, 베드로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의인이고 내 형제는 죄인입니다. 주님, 이 사실을 확인해주십시오."
젊은 부부가 집안 청소를 끝내고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제대로 치워지지 않았는데 아내가 넘어가는 것에 대해 화를 냅니다. "이것 봐. 난 완벽주의자인데, 당신은 그렇지 않은 게 탈이라구." "맞아요! 바로 그래서 당신은 나하고 결혼한 것이고 또 나는 당신과 결혼한 거 아니에요?"
대화에서 서로 치고 받는 이 부부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방이 "내가 잘못했어요"라고 말하고, 상대방이 "용서해 줄께"라고 말한다면, 이것도 부부싸움만큼 심각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부부의 관계가 평등하지 않고 일방이 상대방에 대해 우월한 수직적 관계로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비를 가리는 것에 초점을 두고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있는 분이 열등한 분에게 베풀어주는 용서에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나 배려, 그리고 화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있다고 항변하는, 일종의 방어기제입니다. 아마도, 자신이 상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전지전능해야 한다''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환상이나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나만은 예외이다'', ''꼭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다른 사람을 꼭 패배시켜야 한다''는 엄청난 그러나 잘 감추어진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용서하게 될 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상대방에 대해, ''이 분도 부족한 인간이구나''를 깨닫고 수용합니다. 내가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나도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준 분도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도 약점과 한계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상대방도 그렇다는 것을 압니다. 그 분이 최선을 다했지만, 약점과 한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가까이 있던 내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도, 서로 필요했기 때문에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인간이기 때문에 상처를 주었고 받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과거를 슬퍼할 수 있고,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살면서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엄청난 재난을 당할 수도 있다는 실존적 태도를 갖게 됩니다.
한 집사님이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의사이셨는데, 항상 무시를 당했고 육체적 폭력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너무 너무 아빠를 무서워하고 증오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집에서 독립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직업을 갖고, 가정을 함께 꾸미고, 자녀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힘들지요. 정말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괴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괴로움을 푸는 방법으로 저를 힘들게 하신 것이지요. 정말 힘들었지만, 이제는 이해합니다."
이 집사님은 아버지를 용서하고 있습니다.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같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약점과 한계 때문에, 어린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하셨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의 기억을 재구성하면서, 과거를 떠나보냅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 이 분은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를 용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