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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내면 인품 (벧전 3:1~7)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함이라”( 벧전 3:1-7).
오늘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제1회 국민일보 선정,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건축 대상’ 6교회를 선정했는데 그 중 첫 번째 교회로 뽑혔습니다. 국민일보 5월 13일에 8면을 발행하여 제일 먼저 전면 기사로 사진과 함께 실어주었습니다. 저희 교회만큼 좋은 환경과 여건을 갖춘 아름다운 교회는 세계 어느 곳에도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여러분과 국민일보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도 언젠가는 낡아집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의 영광으로 지은 것인데 지금 그 건물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거할 왕궁도 20년에 걸쳐 웅장하게 지었지만 그것 역시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지은 것은 제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도 점차적으로 퇴화하게 되어있어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인정받는 이 교회를 주신 것,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름다운 물리적 성전보다는 여기서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아름다움이 몇 배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양 그것을 대단히 중요히 여깁니다. 그러나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더 중요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속사람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목회 중이이던 40대 초반 시절에 75세 가량의 한 어르신을 심방한 적이 있었지요. 머리숱은 거의 없고 주름도 많아 외모는 볼품이 없었고 걸음걸이도 불안한데다 이도 다 빠져 말이 새어나와 발음이 부정확하고 어눌했어요. 당시 겨우 40대 초반이었던 저로서는 그 분의 그 이전모습을 알리 없었지요. 그러다 그 집에 가서 경대에 세워놓은 사진에 너무도 당당하고 잘생긴 젊은이가 있어 무심코 몇째 아들이냐고 여쭈었는데 뜻밖에도 젊었을 때의 당신 자신이라고 하셔서 너무 놀랐습니다. 지금 눈앞의 어깨가 구부정한 노인이 바로 사진 속에 있는 당당한 젊은이였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거지요.
젊은이 여러분들은 아직 젊은 것을 축하합니다. 제가 예언자도 아니요 예언자의 아들도 아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예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분과 같은 노년이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겉 사람이 변할 날이 올 것입니다. 저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난날 주름도 없고 음성도 맑고 깨끗한 소리를 힘 있게 내는 트럼펫 같았었지요. 한때는 워싱턴의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제 설교음성에 저 스스로 반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흉내조차 낼 수 없게 되었지요. 이와 같이 인간의 겉 사람은 시간과 함께 쇠퇴하게 되어 있어요. 눈으로 보는 것은 사라집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고 바울도 말했듯이, 눈으로 보이지 않는 여러분의 속사람, 새사람, 영적인 그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야합니다. 속사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속에 생겨난 하나님의 성품이자 인격이고 품성이자 아름다운 영적인 자질들입니다. 아름다운 자질들은 여러분이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기 원한다면 또한 개발시키고 변화시키기 원하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 날까지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인지는 자명해집니다. 좋은 가정을 이루려면 할 일이 있어요. 그것은 여러분의 속사람 즉, 내면의 사람을 지속적으로 가꾸는 일입니다. 내면의 사람을 가꾸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는 일에 에너지와 시간, 노력과 정성을 지속적으로 쏟아 넣지 않으면 물리학의 법칙에 의해 그 모든 것은 점차 소멸되고 맙니다. 발전하려면 새로운 에너지를 계속 투입해야한다는 뜻입니다. 내면의 사람이 성장하며 아름다워지는 그때, 비로소 아름다운 인품과 인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3장1-3절에는 아내와 남편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대개 “아내들이여! 남편들이여!”하면 에베소서가 생각나지요. 에베소서 5장에서는 남편에 대한 권면이 주된 내용인데 비해 베드로전서 3장은 주로 아내를 향한 권면입니다. 즉 에베소서는 남자에, 베드로전서는 여자에 그 초점을 맞춤으로써, 성경의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강조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내면의 사람을 가꿔나가자는 것입니다.
본문1절을 보세요.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즉 불신자 남편이 그 아내의 순복하는 아름다운 내면의 모습 때문에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순복하라”는 말이 남녀 평등시대를 사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는 구시대적 발상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순종을 잘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도 성공한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순종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잘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내적 훌륭한 자질이 내면에 있어야 합니다.
첫째, 겸손이 있어야 순종합니다. 교만한 자는 절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벧전 5:5).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반드시 꺾으시되 겸손한 자는 축복하십니다. 순종하는 자 안에는 겸손이 있습니다. 겸손은 성공의 열쇠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똑똑하고 재주 많고 재치 있는 행동을 하여도 교만하면 결국은 망합니다.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이 겸손하면 그 사람은 돋보이고 하나님께서는 높이시고 또 높여주십니다. 여러분 모두는 겸손의 미덕이 있어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순종하고 선생님과 윗사람을 순종하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둘째, 사람을 존중해야 순종합니다. 사람을 무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자는 결코 순종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 지시를 따르지 않는데 어떻게 공부를 잘 수 있습니까? 자식이 잘 되기만 간절히 바라는 자기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 자식이 잘 될 리 만무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잘 되는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순종하는 자는 상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 남편, 아내, 심지어 자식마저도 존중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자질이요 아름다운 인품입니다.
셋째, 경청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남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제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곧 경청의 능력입니다. 누군가 말을 하면 그 말을 잘 듣기 위해 귀를 기울임은 물론 머리와 가슴으로 들으며 심지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등, 이렇게 온몸으로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잘 듣는 태도요, 훈련인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잘 듣는 사람은 상대의 말과 의도를 놓칠 리 없고 호감을 줍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이 세상에서 제대로 되려면 남의 말을 잘 듣는 훈련을 하십시오. 종종 제게 영어를 잘 하는 비결을 묻는 분들이 있는데, 외국어를 잘하는 원리도 이와 동일합니다. 정확히 듣고 그대로 흉내를 내면 잘하게 되어 있어요.
넷째, 순종에는 이해력이 있습니다. 순종하려면 말을 잘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제대로 알아듣고 정확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나름대로 들었다고는 하지만, 본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거나 왜곡하여 상대가 전하는 의도와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결코 순종이 아니지요. 잘 듣고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하여 실천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다섯째, 순종에는 공감력이 있습니다. 가슴이 통해야 해요. 같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공감(sympathy)이 아닌 감정이입(empathy)을 말합니다. 상대의 내면의 감정에 같이 빠져야 합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같이 좋아해 주고, 기쁠 때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 하고, 아파할 때는 동일한 심경으로 그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게 가슴으로 느끼고 마음을 공유할 수 있어야 상대가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순종할 수 있어요. 이런 내면의 자질들은 아름다운 품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상대의 계획에 동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상대와 하나 되는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듣고 이해한 것으로 끝날 뿐, 상대의 원하는 바대로 행동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그건 순종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비로소 순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은 이런 아름다운 내면의 자질들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들을 양육할 때는 반드시 순종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순종 속에 이런 내적 자질이 없으면 절대로 순종이 안 되기 때문에 순종은 좋은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어른이 말씀하실 때마다 온 마음을 집중하여 겸손하게 잘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 말하려 할 때, 이같이 겸손함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상대를 향해 바짝 정신 차려 귀 기울이며 정성을 다해 듣는 태도를 익힌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훌륭한 자질을 포함하고 있는 순종이란 단어에 거부감 갖지 마세요. 리더십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소위 성공한 자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성공한 많은 이들이 대개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인정받아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인정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결국 세계를 이끌어 가는 리더가 되었다는 결론입니다. 순종의 훈련과정을 거친 사람은 부모에게 순종할 뿐 아니라,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직장에 서는 상사에게 순종을 잘하게 되니까 인정받게 되고, 그것이 결국 자신에게 큰 격려가 되어 자신감이 생기고 더욱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순종의 순기능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축복의 비결입니다. 바로 순종을 잘 안면 인생의 복이 없을 것입니다.
순종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내적 자질을 잘 길러 놓으면 여러분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축복의 근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옛 여인들의 입 다물고 3년 귀 막고 3년 못본척 3년의 고달픈 시집살이와 같이 순종이 무조건 감정을 억누르는 행위는 아닙니다. 비록 자기 의사를 표현한다 해도 좋은 말과 좋은 목소리, 좋은 태도로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사실 대개의 부부싸움은 틀린 말을 해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아내의 말이 구구절절 너무 옳기 때문에 화가 나서 싸우거든요. 우리는 자신을 신랄하게 몰아부치는 배우자로부터 빠져나갈 틈이 없지요. 그러니 적반하장인줄 알지만 방어의 본능으로 화를 내게 되고 결국 싸움으로 번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좋은 태도로 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질이 필요합니다. 물론 화가 날 때는 절제가 좀처럼 잘 안되지요. 그러기에 어려서부터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좋은 품성, 좋은 인격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좋은 인격적 자질은 반드시 훈련을 통해서 개발됩니다. 소원을 가지고 노력하며 속사람을 길러야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내적 사람이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정결한 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은 순결하다는 뜻으로서 “성적인 깨끗함”(chaste conduct)을 의미합니다. 결혼한 모든 아내와 남편은 서로에게 신실하여 다른 이성들에 대해 한 치의 의혹이 없도록 자신의 배우자를 안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성적 배신의 상처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아픔으로써, 그 상처의 치유는 오래 걸립니다. 내 남편은 비록 돈은 많이 없어도 이성문제에 대해서만은 틀림없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시대에 배우자에게 자신의 깨끗한 행동을 보고 감동이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반반이 여자요 남자입니다. 부부란 그 많은 사람을 다 제쳐두고 한 사람만을 선택하여 하나님과 부모님과 그 사람에게 약속한 사이입니다. 부부는 남남끼리이기 때문에 이 약속을 지키게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자녀와 피가 섞여있기에 본능적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부부는 만나 약속으로 맺어진 관계이므로 서로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고 그 마음에 평화를 주는 것은 신실성에 대한 내적 자질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세계가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하기 바랍니다.
3절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물론 외모도 하나님이 주셨으니 잘 가꿔야지요. 그러나 성경은 겉만 치장하고 속사람을 가꾸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한국 역사상 지금처럼 모든 산업이 발달했던 때는 없었습니다. 먹고 살만하게 되자 겉모습을 치장하기 위해 엄청난 관심과 정성을 쏟습니다. 그러나 겉의 아름다움은 곧 사라지고 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속사람을 아름답게 가꾸라고 하십니다.
4절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온유함은 부드러운 품성이지요. 이것들은 ‘썩지 않는 아름다움’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내들은 없어지지 않을 온유로 아름답고 안정감이 있는 여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값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여러분의 내면의 모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것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5절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거룩한, 경건한 여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의지하며 그분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여인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모든 환경과 여건과 좋고 나쁜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경건한 모습들이 우리에게 있길 바랍니다. 사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신뢰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6절 “너희가 선을 행하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삶의 특징이라야 합니다. 여러분 속에 늘 선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선이십니다. 그 분을 추구하십시오. 속사람이 아름다워지고 아름다운 속의 것들이 언행으로 드러나고 태도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모습과 용모로 나타나게 되기 바랍니다.
유일한 선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꾸준히 원하고 따르면 여러분의 속사람이 선해지고 인격이 선해져서 움직일 때마다 내면의 아름다운 선이 삶 속에서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열매들을 개발함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닮아가는 삶 속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영적인 열매는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속에 아름답지 못한 것이 나올 때마다 바로 회개하십시오. 아름다운 인품과 품성, 그리고 자질과 인격을 꾸준히 추구함으로써 삶의 많은 성장이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겉 사람은 약해지더라도 속사람은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아름다운 품성을 개발하는 부부와 부모 그리고 자녀는 평생 성장해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품성은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한 사람이 아름다워지면 그로 인해 자신이 행복하고, 행복한 자신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행복해지고 교회와 직장과 친구까지도 행복하게 됩니다. 그 행복은 내면의 세계, 아름다운 품성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외모보다는 속사람의 성장을 추구해서 많은 사람들의 복의 근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출처/김상복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