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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히 11:29~12:2)
날이 갈수록 일제의 탄압은 심해졌습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자들은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일제의 폭력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은 달랐습니다. 끝까지 신사 참배를 거부한 주 목사님은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평양 노회는 그의 목사직을 파면하고 가족들을 추운 겨울 사택에서 내쫓았습니다. 마침내 1940년 그가 시무하던 산정현 교회를 폐쇄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을 일 년 앞둔 1944년 4월 21일 밤 9시 감옥에서 순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그토록 어려운 시기에 한국 교회의 자존심을 지킨 대표적인 인물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오정모 여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산정현 교회 교인들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투옥된 주 목사님은 몰라도 교회가 폐쇄된 후에도 심방을 다니며 교인들이 신앙을 지키도록 돕고 주 목사님이 끝까지 일제에 항거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그녀를 다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육에 헌신할 것을 꿈꿨던 그녀는 결혼 3년 만에 남편이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그 후 가시밭길을 걸어야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 걸러 금식 기도를 했고 한 달에 3일은 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몸은 극히 약했지만 기도의 힘 때문이었는지 귀신 들려 날뛰던 사람도 그녀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곤 했다고 합니다.
우상 숭배에 동참함으로써 일제에 굴복했던 교회는 해방이 되자 재빨리 주기철 목사 우상화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철저했습니다. 산정현 교회 교인들이 주 목사님의 동상을 세우려 하자 “왜 주 목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느냐?”라고 호통을 치며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녀는 말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는데 그녀가 죽을 때까지 그녀의 투병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장기려 박사는 그녀에 대해서 “성경 히브리서 11장에 추가할 만한 믿음의 영웅”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만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도 엄청난 환란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로마 당국은 힘없는 성도들을 마구 짓밟았습니다. 로마 시민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노리개감으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막 싹이 나기 시작한 교회는 싹이 자라기도 전에 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로마 당국에 의해서 완전히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후 313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지 않았습니까?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로마 제국을 마침내 교회가 굴복시키지 않았습니까? 놀랍게도 막강한 로마 제국이 연약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기 백성들이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토록 어려웠던 시절에도 성도들은 세상을 이겼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그렇다면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과연 어떤 믿음입니까?
그 믿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를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거친 파도에 휩쓸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홍해를 마른 땅을 걷는 것처럼 건널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애굽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시험했다는 것은 의심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또한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도 그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칠 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그 말씀대로 돌았습니다. 엿새 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성을 돌고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돌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명령입니까? 그들은 아무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성을 도는 동안 언제 적병이 뛰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믿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 그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했던 여리고 성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그들은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탐꾼들을 숨겨준 것이 발각될 것 같으면 온 가족이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백성들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그녀는 그런 위험한 선택을 했습니까? 우리는 그 까닭을 여호수아 2장 9절 이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정탐꾼들에게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수 2:9 상반절) 사실 그녀만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리고 성의 주민 모두가 다 듣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듣고 알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믿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 하반절)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과연 목숨을 걸고 믿는 믿음의 사람들을 결코 이길 수 없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앞을 보는 눈을 가진 믿음입니다. 사실 여리고 성을 도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정도 불안했을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라 엿새가 지나도록 여리고 성은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끝까지 성을 돌았습니다. 과연 그런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성을 돌았을 때 믿음의 눈으로 본 모습 그대로 여리고 성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결코 외로운 길이 아닙니다.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가리켜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옛날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싸웠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싸워 이기지 않았습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 35절 하반절 이하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과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 때문에 근심하고 있습니까? 원수의 세력이 아무리 강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원수가 쫓겨가는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보며 담대하게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아무리 풀기 어려운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문제들이 거뜬하게 해결되는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보며 전진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세상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 1:6 상반절)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마침내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만 바라보며 끝까지 싸워 승리하는, 그리하여 그 영광의 보좌에 주님과 함께 앉게 되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강석공 목사 설교 중에서
날이 갈수록 일제의 탄압은 심해졌습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자들은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일제의 폭력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은 달랐습니다. 끝까지 신사 참배를 거부한 주 목사님은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평양 노회는 그의 목사직을 파면하고 가족들을 추운 겨울 사택에서 내쫓았습니다. 마침내 1940년 그가 시무하던 산정현 교회를 폐쇄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을 일 년 앞둔 1944년 4월 21일 밤 9시 감옥에서 순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그토록 어려운 시기에 한국 교회의 자존심을 지킨 대표적인 인물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오정모 여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산정현 교회 교인들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투옥된 주 목사님은 몰라도 교회가 폐쇄된 후에도 심방을 다니며 교인들이 신앙을 지키도록 돕고 주 목사님이 끝까지 일제에 항거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그녀를 다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육에 헌신할 것을 꿈꿨던 그녀는 결혼 3년 만에 남편이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그 후 가시밭길을 걸어야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 걸러 금식 기도를 했고 한 달에 3일은 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몸은 극히 약했지만 기도의 힘 때문이었는지 귀신 들려 날뛰던 사람도 그녀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곤 했다고 합니다.
우상 숭배에 동참함으로써 일제에 굴복했던 교회는 해방이 되자 재빨리 주기철 목사 우상화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철저했습니다. 산정현 교회 교인들이 주 목사님의 동상을 세우려 하자 “왜 주 목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느냐?”라고 호통을 치며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녀는 말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는데 그녀가 죽을 때까지 그녀의 투병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장기려 박사는 그녀에 대해서 “성경 히브리서 11장에 추가할 만한 믿음의 영웅”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만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도 엄청난 환란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로마 당국은 힘없는 성도들을 마구 짓밟았습니다. 로마 시민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노리개감으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막 싹이 나기 시작한 교회는 싹이 자라기도 전에 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로마 당국에 의해서 완전히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후 313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지 않았습니까?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로마 제국을 마침내 교회가 굴복시키지 않았습니까? 놀랍게도 막강한 로마 제국이 연약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기 백성들이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토록 어려웠던 시절에도 성도들은 세상을 이겼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그렇다면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과연 어떤 믿음입니까?
그 믿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를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거친 파도에 휩쓸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홍해를 마른 땅을 걷는 것처럼 건널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애굽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시험했다는 것은 의심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또한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도 그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칠 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그 말씀대로 돌았습니다. 엿새 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성을 돌고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돌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명령입니까? 그들은 아무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성을 도는 동안 언제 적병이 뛰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믿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 그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했던 여리고 성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그들은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탐꾼들을 숨겨준 것이 발각될 것 같으면 온 가족이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백성들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그녀는 그런 위험한 선택을 했습니까? 우리는 그 까닭을 여호수아 2장 9절 이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정탐꾼들에게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수 2:9 상반절) 사실 그녀만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리고 성의 주민 모두가 다 듣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듣고 알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믿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 하반절)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과연 목숨을 걸고 믿는 믿음의 사람들을 결코 이길 수 없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앞을 보는 눈을 가진 믿음입니다. 사실 여리고 성을 도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정도 불안했을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라 엿새가 지나도록 여리고 성은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끝까지 성을 돌았습니다. 과연 그런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성을 돌았을 때 믿음의 눈으로 본 모습 그대로 여리고 성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결코 외로운 길이 아닙니다.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가리켜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옛날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싸웠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싸워 이기지 않았습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 35절 하반절 이하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과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 때문에 근심하고 있습니까? 원수의 세력이 아무리 강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원수가 쫓겨가는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보며 담대하게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아무리 풀기 어려운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문제들이 거뜬하게 해결되는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보며 전진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세상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 1:6 상반절)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마침내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만 바라보며 끝까지 싸워 승리하는, 그리하여 그 영광의 보좌에 주님과 함께 앉게 되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강석공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