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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히11:11∼12)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오늘은 우리가 사라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입니다. 사라를 통해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도 역사 하실 것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어떤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집에서 미술 숙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물감으로 풍경화를 그리는 숙제였습니다. 아이는 먼저 팔레트 위에 여러가지 색깔의 물감들을 차례대로 짜놓았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붓으로 물감을 듬뿍 찍어 발랐습니다. 그리고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서서히 붓을 도화지 위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에 붓에 듬뿍 묻어있던 물감이 도화지 위로 몇 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도화지는 떨어진 물감 자국으로 얼룩이 져버렸습니다. 아이는 그림을 망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급기야 울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달랬습니다.
"얘야, 괜찮다. 네게는 이 아빠가 있지 않니? 내가 너를 도와줄 테니까 울지 마라."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붓을 건네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수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도화지 위에 떨어진 물감 자국은 아버지의 손이 갈 때마다 풍경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물감 자국은 검은 바위가 되었습니다. 어떤 물감 자국은 나무 뿌리로 바뀌었습니다. 점차로 아름다운 풍경이 도화지 위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그려 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감격해서 손뼉을 쳤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저질러 놓은 실수를 이용해서 오히려 멋진 그림을 그려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인 우리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우리 삶의 그림이 엉망이 된 것 같아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 암담해서 절망 가운데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믿음으로 우리 삶의 화폭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십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의 붓으로 우리를 위해서 새롭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광경을 연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혹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그림을 친히 그리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맨 먼저 하나님은 흑암 가운데서 빛을 그리셨습니다.
"물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
하나님은 하늘도 그려 넣으셨습니다.
"뭍은 드러나고, 땅은 온갖 식물을 내도록 하라."
하나님은 땅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온갖 푸르고 아름다운 산천 초목을 그려 넣으셨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을 그리셨습니다. 물에는 물고기들을, 하늘에는 새들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땅에는 온갖 짐승들을 그려 넣으셨습니다. 맨 마지막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습을 그림 속에 담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세상이 완성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우리 삶의 화폭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면 하나님은 은혜의 붓으로, 능력의 붓으로, 축복의 붓으로 우리를 위해서 언제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그림이 망가졌다 해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 삶의 화폭을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 삶의 그림을 새로이 아름답게 그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하는 사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라는 나이 늙어 단산했습니다. 잉태하는 힘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죽은 자와 방불했습니다. 그는 산송장 같은 몸이었습니다. 정말 암담한 그림이었습니다. 어쩌면 먹물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믿음으로 자신의 삶의 화폭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겼을 때, 하나님은 사라의 그림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고쳐서 그려 주셨습니다. 하늘에는 허다한 별을 그리셨습니다. 해변에는 무수한 모래를 그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열국의 어머니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의 그림을 완전히 다른 광경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라의 믿음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세 가지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의 능력(The Power of Faith)입니다. 11절 상반부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내용(The Contents of Faith)입니다. 11절 하반부입니다.
셋째로, 믿음의 결과(The Result of Faith)입니다. 12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죽은 자와 방불할 정도로 어둡고 암울하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우리 삶의 화폭을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 삶의 그림을 다시금 아름답게 그려주실 것입니다. 메말라 빠진 우리의 삶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창대하고 풍성한 삶으로 다시금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믿음의 능력입니다.
11절 상반부입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사라는 나이 늙어 단산했습니다. 이미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였습니다. 그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나이 늙어 단산했지만, 잉태하는 힘을 얻은 것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라가 그의 남편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잉태하는 힘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라고 했습니다. 전적으로 사라 자신의 믿음으로 잉태하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이요, 믿음의 능력입니다.
사라의 믿음을 우리가 잠시 한번 살펴보십시다. 사라가 본시부터 믿음이 대단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남편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곧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사라가 어떻게 했습니까? 꾀를 부렸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을 썼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자기의 여종 하갈을 자기의 남편인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지금 아랍 족속의 조상입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얼마나 큰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나서 13년 동안이나 아브라함과 영적인 교제를 단절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창18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두 천사와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는 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하나님 참 웃기시네. 내 나이 늙어 단산한지가 언제인데 저런 말씀을 다 하실까?'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사라는 속으로 웃었지만 하나님은 사라가 속으로 웃는 웃음소리를 듣고 계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까 사라의 속마음을 꿰뚫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의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시듯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왜 웃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는 내년 이맘때쯤 아들을 낳을 것이니라."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 말씀에 사라는 번쩍 정신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구나. 내가 왜 지금까지 모든 것을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을까?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능치 못한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사라는 자기의 불신앙을 뉘우쳤습니다. 사라는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 웃음을 취소했습니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아마도 사라는 이러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제가 아멘으로, 할렐루야로 화답을 했어야 하는데 믿음이 없어서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이 여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 순간에 사라의 마음 속에 믿음이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사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믿음으로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과 신방을 꾸몄습니다. 99세 된 할아버지와 89세 된 할머니였습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사라의 믿음에 아름다운 보상을 주셨습니다. 사라는 그날 밤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90세라는 믿기지 않는 나이에 사라는 약속의 아들, 믿음의 아들인 이삭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믿음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로 지극히 큰 군대를 이루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론의 메말라 빠진 지팡이에서도 새로운 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에 얽매일 필요도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눈앞을 절망의 산이 가로막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희망의 터널을 뚫어버리십시다. 우리의 믿음은 오늘의 어두움을 내일의 광명으로 바꾸어놓는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사라는 믿음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라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믿음의 내용입니다.
11절 하반부입니다.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사라가 무엇을 믿었습니까? 사라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믿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바를 어기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러길래 사라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날 밤에 남편 아브라함과 신방을 꾸몄던 것입니다. 민23:19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사람 가운데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 젊은이가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못 마땅하다는 듯이 이렇게 불평합니다.
"야, 너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하는거야?"
친구가 능청스럽게 이렇게 받아넘겼습니다.
"뭘 그걸 가지고 그러니? 약속이란 것이 본래 그러하지 않아? 너는 약속이란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약속이란 약간 속이는 거야."
여러분, 과연 그렇습니까? 약속이 약간 속이는 것입니까?
몇 해전에 상영된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It could happen to you,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주인공 찰리는 평범한 경찰관이었습니다. 찰리는 사람이 참 좋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 인근에 있는 커피샵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여종업원 이본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보였습니다. 찰리는 그의 기분을 좀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팁이라도 듬뿍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주머니를 살펴보니까 팁을 줄 만큼의 돈도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 자기의 아내를 위해서 산 복권 한 장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그것을 끄집어내었습니다. 그리고는 여종업원 이본느에게 그 복권을 보여 주면서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이 복권에 당첨되면, 당첨금의 절반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다음 번에 내가 올 때에는 오늘 팁까지 합쳐서 두 배의 팁을 주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찰리의 복권이 400만 불짜리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48억 원입니다. 찰리는 자기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절반인 200만 불을 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본느에게 그 돈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Promise is promise, 약속은 약속입니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자기는 그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부족과 허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한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물며 신실하신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이야 어떠하시겠습니까? 신실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십니다. 단 한번도 그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열국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사라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사라로 하여금 열국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신 말씀, 우리에게 주신 약속도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가장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만드셨습니다.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는 것 같지만, 중단 없이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잘 갈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부드럽게 만들어 버리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믿음의 결과입니다.
12절입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믿음의 결과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사라는 나이 늙어 단산했으며, 죽은 자와 방불했습니다. 자기 한 사람으로 자신의 인생이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라는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믿음의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라의 후손은 계속해서 번창해 나갔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늘의 허다한 별처럼, 해변의 무수한 모래처럼 창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결과는 언제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에 아름답게 보상을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히11:6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잊지 않고 우리의 믿음에 아름답고 큰상을 주십니다. 그러길래 사도 바울은 빌3:14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을 바라보면서 푯대를 향하여 날마다 좇아가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삶을 원하십니까? 인생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림을 새롭게 그려 주실 것입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가 되기로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그의 몸을 진단해 보더니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너무나 병약하기 때문에 이 몸으로는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목사가 되었다가는 일년도 목회를 못해서 쓰러져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가 될 생각은 아예 꿈에도 꾸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는 순교할 각오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다 죽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오른손으로 그를 붙드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84세까지 살면서 건강한 사람보다도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많은 구제 사업을 펼쳤습니다.
그의 노년에 그 당시 왕 에드워드 7세가 그를 버킹검 궁으로 초대했습니다. 그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왕은 그에게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남기고 싶은 말을 한 마디 쓰라고 했습니다. 그때 윌리암 부스가 방명록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예술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명성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황금입니다. 그러나 나의 야망은 오직 한 가지, 사람들의 영혼구원입니다."
그는 영혼구원의 열정을 가지고 일평생토록 복음을 전하면서 불쌍한 이웃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병약한 몸이었지만 건강한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의 말년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제가 젊었던 시절에 저는 목사가 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때 제 몸을 진단했던 의사가 날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때 의사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신실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 믿음이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을 믿으면 실망할 때가 옵니다. 사람을 믿으면 그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날 때가 옵니다. 돈과 명예를 믿으면 그것이 사라질 때가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결코 후회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11:28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보혈의 붓을 들고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주기를 원하십니다. 죄인이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예수님은 용서와 의의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병약한 이가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예수님은 건강한 모습의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 찌든 이가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예수님은 성령충만의 모습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절망의 산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자가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예수님은 희망의 터널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자가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예수님은 부활의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영생과 영광의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라의 믿음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사라는 믿음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습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었습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었습니다. 탄식을 즐거움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라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라가 믿음으로 변화와 축복을 누렸던 것처럼, 우리들도 믿음으로 변화와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을 날마다 매 순간마다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상훈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오늘은 우리가 사라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입니다. 사라를 통해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도 역사 하실 것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어떤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집에서 미술 숙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물감으로 풍경화를 그리는 숙제였습니다. 아이는 먼저 팔레트 위에 여러가지 색깔의 물감들을 차례대로 짜놓았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붓으로 물감을 듬뿍 찍어 발랐습니다. 그리고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서서히 붓을 도화지 위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에 붓에 듬뿍 묻어있던 물감이 도화지 위로 몇 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도화지는 떨어진 물감 자국으로 얼룩이 져버렸습니다. 아이는 그림을 망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급기야 울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달랬습니다.
"얘야, 괜찮다. 네게는 이 아빠가 있지 않니? 내가 너를 도와줄 테니까 울지 마라."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붓을 건네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수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도화지 위에 떨어진 물감 자국은 아버지의 손이 갈 때마다 풍경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물감 자국은 검은 바위가 되었습니다. 어떤 물감 자국은 나무 뿌리로 바뀌었습니다. 점차로 아름다운 풍경이 도화지 위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그려 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감격해서 손뼉을 쳤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저질러 놓은 실수를 이용해서 오히려 멋진 그림을 그려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인 우리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우리 삶의 그림이 엉망이 된 것 같아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 암담해서 절망 가운데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믿음으로 우리 삶의 화폭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십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의 붓으로 우리를 위해서 새롭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광경을 연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혹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그림을 친히 그리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맨 먼저 하나님은 흑암 가운데서 빛을 그리셨습니다.
"물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
하나님은 하늘도 그려 넣으셨습니다.
"뭍은 드러나고, 땅은 온갖 식물을 내도록 하라."
하나님은 땅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온갖 푸르고 아름다운 산천 초목을 그려 넣으셨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을 그리셨습니다. 물에는 물고기들을, 하늘에는 새들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땅에는 온갖 짐승들을 그려 넣으셨습니다. 맨 마지막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습을 그림 속에 담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세상이 완성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우리 삶의 화폭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면 하나님은 은혜의 붓으로, 능력의 붓으로, 축복의 붓으로 우리를 위해서 언제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그림이 망가졌다 해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 삶의 화폭을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 삶의 그림을 새로이 아름답게 그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하는 사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라는 나이 늙어 단산했습니다. 잉태하는 힘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죽은 자와 방불했습니다. 그는 산송장 같은 몸이었습니다. 정말 암담한 그림이었습니다. 어쩌면 먹물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믿음으로 자신의 삶의 화폭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겼을 때, 하나님은 사라의 그림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고쳐서 그려 주셨습니다. 하늘에는 허다한 별을 그리셨습니다. 해변에는 무수한 모래를 그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열국의 어머니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의 그림을 완전히 다른 광경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라의 믿음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세 가지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의 능력(The Power of Faith)입니다. 11절 상반부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내용(The Contents of Faith)입니다. 11절 하반부입니다.
셋째로, 믿음의 결과(The Result of Faith)입니다. 12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죽은 자와 방불할 정도로 어둡고 암울하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우리 삶의 화폭을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 삶의 그림을 다시금 아름답게 그려주실 것입니다. 메말라 빠진 우리의 삶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창대하고 풍성한 삶으로 다시금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믿음의 능력입니다.
11절 상반부입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사라는 나이 늙어 단산했습니다. 이미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였습니다. 그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나이 늙어 단산했지만, 잉태하는 힘을 얻은 것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라가 그의 남편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잉태하는 힘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라고 했습니다. 전적으로 사라 자신의 믿음으로 잉태하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이요, 믿음의 능력입니다.
사라의 믿음을 우리가 잠시 한번 살펴보십시다. 사라가 본시부터 믿음이 대단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남편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곧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사라가 어떻게 했습니까? 꾀를 부렸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을 썼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자기의 여종 하갈을 자기의 남편인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지금 아랍 족속의 조상입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얼마나 큰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나서 13년 동안이나 아브라함과 영적인 교제를 단절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창18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두 천사와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는 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하나님 참 웃기시네. 내 나이 늙어 단산한지가 언제인데 저런 말씀을 다 하실까?'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사라는 속으로 웃었지만 하나님은 사라가 속으로 웃는 웃음소리를 듣고 계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까 사라의 속마음을 꿰뚫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의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시듯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왜 웃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는 내년 이맘때쯤 아들을 낳을 것이니라."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 말씀에 사라는 번쩍 정신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구나. 내가 왜 지금까지 모든 것을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을까?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능치 못한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사라는 자기의 불신앙을 뉘우쳤습니다. 사라는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 웃음을 취소했습니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아마도 사라는 이러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제가 아멘으로, 할렐루야로 화답을 했어야 하는데 믿음이 없어서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이 여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 순간에 사라의 마음 속에 믿음이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사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믿음으로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과 신방을 꾸몄습니다. 99세 된 할아버지와 89세 된 할머니였습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사라의 믿음에 아름다운 보상을 주셨습니다. 사라는 그날 밤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90세라는 믿기지 않는 나이에 사라는 약속의 아들, 믿음의 아들인 이삭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믿음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로 지극히 큰 군대를 이루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론의 메말라 빠진 지팡이에서도 새로운 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에 얽매일 필요도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눈앞을 절망의 산이 가로막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희망의 터널을 뚫어버리십시다. 우리의 믿음은 오늘의 어두움을 내일의 광명으로 바꾸어놓는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사라는 믿음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라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믿음의 내용입니다.
11절 하반부입니다.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사라가 무엇을 믿었습니까? 사라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믿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바를 어기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러길래 사라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날 밤에 남편 아브라함과 신방을 꾸몄던 것입니다. 민23:19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사람 가운데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 젊은이가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못 마땅하다는 듯이 이렇게 불평합니다.
"야, 너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하는거야?"
친구가 능청스럽게 이렇게 받아넘겼습니다.
"뭘 그걸 가지고 그러니? 약속이란 것이 본래 그러하지 않아? 너는 약속이란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약속이란 약간 속이는 거야."
여러분, 과연 그렇습니까? 약속이 약간 속이는 것입니까?
몇 해전에 상영된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It could happen to you,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주인공 찰리는 평범한 경찰관이었습니다. 찰리는 사람이 참 좋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 인근에 있는 커피샵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여종업원 이본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보였습니다. 찰리는 그의 기분을 좀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팁이라도 듬뿍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주머니를 살펴보니까 팁을 줄 만큼의 돈도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 자기의 아내를 위해서 산 복권 한 장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그것을 끄집어내었습니다. 그리고는 여종업원 이본느에게 그 복권을 보여 주면서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이 복권에 당첨되면, 당첨금의 절반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다음 번에 내가 올 때에는 오늘 팁까지 합쳐서 두 배의 팁을 주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찰리의 복권이 400만 불짜리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48억 원입니다. 찰리는 자기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절반인 200만 불을 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본느에게 그 돈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Promise is promise, 약속은 약속입니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자기는 그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부족과 허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한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물며 신실하신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이야 어떠하시겠습니까? 신실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십니다. 단 한번도 그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열국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사라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사라로 하여금 열국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신 말씀, 우리에게 주신 약속도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가장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만드셨습니다.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는 것 같지만, 중단 없이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잘 갈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부드럽게 만들어 버리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믿음의 결과입니다.
12절입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믿음의 결과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사라는 나이 늙어 단산했으며, 죽은 자와 방불했습니다. 자기 한 사람으로 자신의 인생이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라는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믿음의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라의 후손은 계속해서 번창해 나갔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늘의 허다한 별처럼, 해변의 무수한 모래처럼 창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결과는 언제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에 아름답게 보상을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히11:6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잊지 않고 우리의 믿음에 아름답고 큰상을 주십니다. 그러길래 사도 바울은 빌3:14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을 바라보면서 푯대를 향하여 날마다 좇아가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삶을 원하십니까? 인생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림을 새롭게 그려 주실 것입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가 되기로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그의 몸을 진단해 보더니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너무나 병약하기 때문에 이 몸으로는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목사가 되었다가는 일년도 목회를 못해서 쓰러져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가 될 생각은 아예 꿈에도 꾸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는 순교할 각오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다 죽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오른손으로 그를 붙드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84세까지 살면서 건강한 사람보다도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많은 구제 사업을 펼쳤습니다.
그의 노년에 그 당시 왕 에드워드 7세가 그를 버킹검 궁으로 초대했습니다. 그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왕은 그에게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남기고 싶은 말을 한 마디 쓰라고 했습니다. 그때 윌리암 부스가 방명록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예술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명성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황금입니다. 그러나 나의 야망은 오직 한 가지, 사람들의 영혼구원입니다."
그는 영혼구원의 열정을 가지고 일평생토록 복음을 전하면서 불쌍한 이웃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병약한 몸이었지만 건강한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의 말년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제가 젊었던 시절에 저는 목사가 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때 제 몸을 진단했던 의사가 날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때 의사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신실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 믿음이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을 믿으면 실망할 때가 옵니다. 사람을 믿으면 그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날 때가 옵니다. 돈과 명예를 믿으면 그것이 사라질 때가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결코 후회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11:28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보혈의 붓을 들고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주기를 원하십니다. 죄인이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예수님은 용서와 의의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병약한 이가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예수님은 건강한 모습의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 찌든 이가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예수님은 성령충만의 모습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절망의 산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자가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예수님은 희망의 터널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자가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예수님은 부활의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영생과 영광의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라의 믿음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사라는 믿음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습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었습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었습니다. 탄식을 즐거움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라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라가 믿음으로 변화와 축복을 누렸던 것처럼, 우리들도 믿음으로 변화와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을 날마다 매 순간마다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상훈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