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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신0:12-22,갈5:16-24)
"말씀 따라 이루는 새 천년"이라는 주제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말씀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던 중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며, 그의 말씀대로 변화된 삶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이 열매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먼저 이런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영과 육의 관계
마태복음 산상설교에 보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진리이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로 바뀌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가 없는 것은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바탕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 우리의 삶은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속에 하나님이 주신 영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의 지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우리 속에 있는 영은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이 영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런 영의 인도를 받았던 육체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육체의 본능을 영이 통제하기 때문에 육체의 삶이 결코 죄에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가 들어오면서 영의 통제가 약화되고 죄의 소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죄로 깨어지면서 하나님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악의 소리만이 우리 속에 울려 퍼지면서 우리의 육체는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육체의 욕망은 온갖 죄악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던 영이 죄로 말미암아 죽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인 갈라디아서 5장에서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른다"(17절)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체의 욕망"은 바로 죄의 지배를 받는 우리의 육체가 원하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육과 영을 대조하고 시키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6-7
바울은 우리 인간이 육과 영으로 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육신"은 악에 의해 지배를 받는 우리의 삶을 뜻하는 것이고 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영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이 회복되면 우리는 그 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생명의 길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오시게 되면 우리는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죽었던 우리의 영을 되살리시고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던 자리에서 벗어나 이제는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사는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16
성령을 따라 행하라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나의 삶의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을 일깨워 주셨음을 뜻합니다. 그 영을 통해서 성령께서 계속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을 전달하심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지배에서 서서히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변화된 삶을 이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속에서 들려오는 두 가지 음성을 듣게 되는데, 하나는 육체의 욕망에서 들려오는 소리요, 다른 하나는 영을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이 두 사이에서 갈등하게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2-23
내 속에서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대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내가 따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법'보다는 오히려 원치 않는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는다고 하면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 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탄식하시는 까닭은 죄악으로 너무 굳어진 마음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죄의 법'의 지배를 받던 우리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법을 따르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힘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돌작밭과 같은 굳어진 마음을 갈아엎고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릴 수 있는 영을 자리잡게 만드는 일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할 수밖에 없는 힘든 작업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역사 하시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명령은 끊임없이 우리를 붙잡으려는 '죄의 법'의 손길을 뿌리치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려주시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것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조용히 묵상하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성전을 찾아나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를 하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중언부언 많은 말로 하나님께 구하기도 하지만, 무엇을 구하기 전에 조용히 묵상하면서 자기의 삶을 돌아보며 잘못 행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성찰을 통해서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산 삶의 어리석음을 잘못됨을 회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맑아지면서 성령의 말씀을 더 분명히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 분주하여 정신 없이 살아가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성령의 간구를 듣지 못하며, 그들 속에 영이 자리잡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별 생각 없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면서 온갖 불의와 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그런 육체의 일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거리는 연회와, 또 이와 비슷한 것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죽음에 이르는 행위입니다. 이런 악행들을 행하면 반드시 그 결과가 따르게 마련이어서 그 행위가 악한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그 육체를 악의 세력이 조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려면 먼저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고 악의 결과가 얼마나 더럽고 무서운 것인가를 발견하면서 거기서 벗어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 명상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바르게 이끌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육체의 욕망을 쏟아 버려야
그러면 내가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른 행위로 나열된 악의 목록들을 살피면서 그런 행위에서 내가 벗어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령을 따르기 시작한 첫걸음이라고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정의할 때 우선 소극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봅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은 겸손하며'라고 말하는 대신에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한 것은 궁극적으로 겸손에 이르러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교만하지 아니하기만 해도 그것은 벌써 사랑에 이른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사랑 희락 화평 같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먼저 육체의 일을 버리기만 해도 그것은 바로 성령을 따르기 시작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먼저 하여야 할 일은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산 나 중심의 삶을 회개하고 그 행위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내 속에 들어있는 악을 쏟아내지 않고서는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예수를 믿기는 하는데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먼저 가지고 있던 욕망들을 쏟아내지 않고 그 위에다 그냥 성령의 은사를 간구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마치 부자 청년이 예수님 앞에 와서 영생을 구한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자기가 쌓아온 부와 명예와 도덕적 삶에다 더해서 영생을 얻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가진 것 모두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기존에 가졌던 나 중심의 삶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을 쏟아버리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새 영을 내 속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내 속에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히 육체의 욕망을 지배하는 악령의 소리일 뿐입니다. 옛것을 쏟아버리지 않았기에 그것이 여전히 나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그의 말씀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지 못하고 내 입과 귀에서 겉돌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히 거듭나려면 먼저 육체의 모든 욕망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서는 거듭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그 정욕과 탐심을 버리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더 키워주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그 채워지지 않던 욕망을 채워주시는 것처럼 설교하고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 아니라 점점 그 욕망을 키운 것입니다. 그래서 대단히 이기적이고 분파적인 사람들이 되어 지도자들은 교권 다툼에 정신이 없고, 평신도들은 자기 복받는 일만을 위하여 기도할 뿐입니다.
이제 조용히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방향은 올바로 잡았는데, 우리 속에 자리잡았던 육체의 욕망들을 회개하면서 쏟아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지 못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 중심으로 살아왔던 삶을 회개하십시오. 육체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복을 빌던 기도를 멈추고 대신 내 속에 자리잡은 모든 더러움을 씻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욕망을 제어해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욕망을 억제할 때 비로소 점점 내 속에 있는 영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따라 새 천년을 이루자고 하지만 나의 육체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서는 말씀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결국 말씀을 따르자는 것은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소리입니다. 내 속에 가득찬 모든 것들을 다 쏟아내고 마음을 비우라는 소리입니다. 가난한 마음, 빈 마음 속에 비로소 성령이 오시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기" 때문에 둘이 동시에 함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버리지 않은 채 성령 충만을 간구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잘못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주인인 육체의 욕망을 내쫓고, 새 주인인 성령을 모셔드릴 때 비로소 우리는 거듭나기 시작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리에까지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금년에는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 속에 있던 육체의 정욕과 탐심과 허영심을 모두 쏟아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하면서 결단을 내리고 이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날마다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그 폐해를 알게 되면서 결단하여 담배를 끊어버리듯 우리의 이기심과 욕망이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 지금 우리는 과감하게 그 욕심을 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담배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어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이요, 결국 그는 그 때문에 병들게 될 것이며, 그 병으로 죽음을 맞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육체의 생각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예수를 믿어 교회에 나오면서도 여전히 그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 미적미적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과감하게 결단하여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그는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육체와 모든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심으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유경재목사님 설교자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