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90
( 출 33:17-23, 요 14:9-14, 히 4:12-13 )
1.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초월자이십니다. 참 종교라면 자기들의 신(神)이 볼 수 없는 신이라는 사실을 고백해야만 할 것입니다. 참 신(神)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낼 때에만 인간들이 만날 수 있고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서 세워놓고 자신을 구원할 신(神)이라고 경배하고 섬기는 것은 우매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수욕을 당하나 숨어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은 영원한 구원을 얻고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라”(사45:16-17) 하셨습니다.
2. 긍휼의 하나님 품 안에 있는 피조물들 (출33:17-23)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소개하시는 말씀가운데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33:19)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은혜’와 ‘긍휼’이라는 말 ‘라훔’은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하는 ‘레헴’(Womh)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성은 모성(母性)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잉태하신 어머니와 같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의 태중에서 탯줄을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는 아기와 같습니다. 태중의 아기가 자기 마음대로 어머니의 얼굴을 보려고 세상으로 뛰어나오는 순간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태중의 아기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어머니와 호흡을 같이하며 어머니의 모든 것을 함께 먹으면서 어머니의 모든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생명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자궁)로 말미암아 공급되는 생명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얼굴은 감추시고 등만 보이시는 하나님 (출33:20-23)
“너는 나의 등은(backs)보게 될 것이나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라”(23절)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얼굴”과 “등(背)”은 은유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역사적 구원사건”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들의 증언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의 증거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면 반드시 죽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났다고 증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얼굴을 그린 책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사건들을 “믿음의 눈”으로 확인한 것을 기록한 증언록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졸라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하셨습니다.
4.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은 헛된 빈 말이(요1:1-14) 아니라 여러분들의 생명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래야만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오래오래 잘 살 수 있습니다. (신32:47) 하나님은 말씀이요,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요1:1)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요1:3)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나타나신 분이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구원행위’와 우리의 심령을 쪼개고 부수셔서 새로운 생명으로 창조해 가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운데 계속 나타나심을 의식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히 4:12-13)
결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의 눈 안으로 들어오시는 작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숨어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생명줄로 모든 생명들에게 생기를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항상 역사하십니다.
출처/손인웅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