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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영 목사
밀알의 교훈
요한복음 12장 24절
1347년 도버해협 양쪽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의 일입니다.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결국 백기를 들었습니다. 항복 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영국 왕의 태도가 차츰 누그러져 이렇게 명하였습니다. “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칼레의 시민을 대표하는 6명은 교수형에 사용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걸어 내 앞에 나와야 한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용감하게 나선 6명이 있었습니다. 모두 그 도시의 핵심인물이며 절정의 삶을 누리던 부유한 귀족이었습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희생을 자원하자 장 데르,자크 드 위상,장 드 피에네,피에르 드 위상,앙드레 당드리에 등이 영국 왕에게 바치는 칼레시의 열쇠를 들고 밧줄을 목에 건 채 맨발로 나섰던 것입니다.
하지만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에드워드 3세는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듣고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렸습니다.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시는 조각가 로댕에게 그 용감한 6명의 칼레시민들을 위한 기념동상을 주문했습니다. 바로 로댕의 ‘칼레의 시민’입니다. 비장한 슬픔으로 얼룩진 이 조각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교훈을 남겨주는 동시에 한 알의 밀이 썩어질 때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교훈을 일깨워 줍니다.
칼레 시민들이 예수께서 가르쳐준 밀알의 법칙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밀알의 삶의 원리를 실천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썩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주셨을 당시 수많은 사람이 뒤따를 만큼 인기 절정의 시기였습니다. 많은 치유 기적과 이사를 보여주셨고 사람들은 열광하며 주님을 따랐습니다. 38년 된 중풍병자를 비롯,소경 문둥병을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도 살리셨습니다. 오천명을 먹이시는가 하면 물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주님은 이제 내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제자들이 듣고 싶던 말입니까? 저마다 꿈에 부풀어 있던 제자들은 바로 이때다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르기 때문에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광의 의미는 곧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죽음은 슬픔이요 절망입니다. 아무도 죽음을 영광으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인기 있는 순간에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이 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 적용됩니다. 칼레의 시민들도 그런 교훈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칼레의 용감한 6명의 시민이 칼레시를 구한 것처럼 교회도 밀알의 법칙으로 삶을 헌신하여 교회를 세우고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면 이 땅의 진정한 부활을 위해 오늘 다른 일을 찾기보다는 썩어지는 밀알이 되도록 헌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