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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환(한남대 기독교학과 기독교상담전공 교수) 2003.07.09 조회 : 325
고등학생인 민수가 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한복을 입은 한 중년남성이 다가오더니 민수에게 말했다.
"도를 아십니까?"
민수가 대답했다.
"아니."
그 남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아하니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반말을 하시면 됩니까?"
"마음이지."
"그래도 그런 것이 아니지요."
"남이야 반말을 하든지 말든지."
그러자, 그 중년남성은 얼굴이 벌게지더니, 소리를 질렀다.
"야! 임마. 내가 집에 가면 너만한 아들이 있어. 어디서 반말이야?"
이번에는 민수가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말했다.
"아직 수행이 부족하시군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유머이다. 우리는 수행, 즉 인격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인간이 변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속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변화에 대한 생각은 둘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의 성격은 변한다''와 ''변하지 않는다''가 존재한다. 인격의 변화가능성을 강조하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태도를 갖게 된다. 지위와 능력과의 적합성보다 지위에 따른 개인의 적응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좋은 환경을 제공하면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사람들을 격려한다. 그러므로, 이런 태도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는, 과거에 대한 관심이 적다. 과거의 기록에 대한 관심도 적다. 현재의 인간은 과거와 일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격의 변화가능성을 부인하는 경향이 높은 사회에서, 개인은 어려서부터 관찰의 대상이 된다. 특히 능력이 뛰어나지만 규칙을 어기는 행위를 하는 어린이는 요주의 인물로서 사회에서 탈락된다. 성인이 되면 뛰어난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다. 즉, 개과천선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재기의 기회가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변화가능성을 강조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상담을 요청하거나 공부하는 분들은 "저를 변화시켜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내 성격에 문제가 많아요." "너무 수줍어서 인간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아내하고 잘 지내고 싶은데, 내 성격이 불같아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분들은,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이 만족할 수 없는 부분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나쁘게 판단한다. 자신에게 완벽성을 기대하고, 자신을 평가한다. 사실, 이런 기준에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적어질 위험성이 있다. 자신의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면, 자신의 부족함이나 부적절성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긍정적 부분이 존재하고 있음을 잊게 된다. 이런 태도는 자신감의 훼손으로 연결될 수 있다.
다양한 가치가 혼재하는 사회에서, 성격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쉽지 않다. 한 상황에서 덕이 될 수 있는 태도가 다른 상황에서 악이 될 수 있다. 위의 유머에서, 어른에게 반말을 사용하는 민수의 태도는 덕일까? 악일까?
더구나, 복잡하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수없이 복잡한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끊임없이 완전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경쟁에 시달리는 현대인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할 시간도 정열도 부족하다. 차라리, ''나 자신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상황에 맞추어 나를 조금 수선한다'' 혹은 ''내 성격에 잘 부합되는 상황을 찾겠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쉽다. 여기서, ''쉽다''는 것은 현대인의 정서와 현대 사회구조와 부합하기 때문에,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내가 성공했구나!''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경험이 계속 늘어나면, 자신감도 커지고 성공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그런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자신을 변하지 않는 존재로 인정하게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오히려 "내가 변화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자신을 또 변화시켜야 한다는 묘한 상황이 나타난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자책하는 또 하나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온 문화와 부모의 영향으로 "내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정하도록 돕는다. 그러지만, 이런 생각이 자신의 고통을 증폭시킨다는 것도 인정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안고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이제, 기독교 상담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