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피사로(Camille Pissarro)
활동년도 : 1830~1903
작가소개 : 서인도제도 앙티유 섬에서 출생한 피사로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가의 길을 선택한다. 1855년 파리로 와서, 1857년 스위스 아카데미에 들어간 피사로는 모네, 세잔느, 바질, 르누아르, 시슬레, 앵그르, 쿠르베, 코로 등을 알게 되었고, 특히 코로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면서 종종 그의 조언을 받기도 했다. 또한 쿠르베의 사실주의도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피사로는 1863년에는 <낙선전>에 1864년부터 1870년까지는 <살롱>에 출품한다. 1870년 보불전쟁이 나자 그는 영국으로 피신해서 모네와 함께 영국 풍경화가들, 특히 콘스터블의 그림세계에 매력을 느낀다.


특히 그들 자신의 회화적 탐구 방향과 아주 유사한 터너의 작품을 보면서 눈과 얼음의 효과를 깊이 연구했다. 루브시엔느와 퐁투아즈에서 주로 작업하던 작가는 1872년 퐁투아즈에서 세잔느와 작업하며 2년을 보내게 되었는데, 함께 작업하며 인상주의적 시각과 기법을 가르쳐준 바 있는 세잔느의 영향으로 피사로는 다른 인상주의자들과 달리 대지와 전원을 소재로 하면서도 단단하고 잘 짜여진 형태와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을 할수 있었다.
1885년에서 1890년까지, 호기심이 많은 성격 덕분에 늘 새로운 기법을 탐구하던 피사로는 쇠라와 시냑의 점묘법, 즉 색깔을 아주 잔 터치로 점을 찍듯이 칠해 섞여 보이게 하는 색채의 분할 기법을 도입한다. "내 생애는 바로 인상주의의 역사와 뒤얽힌 것이었다."고 말한 그는 인상주의자 그룹의 모든 전시회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유일한 고집센 작가였다.

말년으로 갈수록 점들을 흩뿌려 놓은 듯한 더욱 작고듬성듬성한 붓질을 보여준 그는 1890년 이후 파리나 루앙의 길을 깊은 투시로 묘사한다. 점묘법9아주작은 점이나 얼룩 등을 톡톡 찍어 그려 멀리서 볼 때 형체를 알아볼수 있게 하는 회화기법)으로 신 인상주의의 길을 가던 그는 인상주의로 되돌아간다. 1892년 뒤랑-뤼엘이 그에게 현정한 <특별전>에서 작가는 도시 풍경 특히 파리 풍경을 그린 후기의 연작,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중심가로 창문이 방에서 바라보는 전망을 그린 작품들<대로>,<오페라가>,<튈르리 공원>등을 보여주었다.



작품명 : 바렌느 생 틸레르의 나룻배
제작년도 : 1864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27x41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구체적인 장소가 명시되어 있고 정확한 제작 날짜도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이 작은 그림은 1860년대 피사로가 살롱에 출품하였던 야심작들의 전주곡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본래 가셰박사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으로, 1951년 오르세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다소 어둡지만 힘있는 터치로 가득찬 이 작품은 이후 피사로에 대한 연구에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오르세 미술관의 주요 컬렉션 중의 한 점이 되었다.



작품명 : 루브시엔느의 밤나무
제작년도 : 1871-72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41x54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매우 독특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그림은 크고 두꺼운 화폭 위에 그려져 한번도 캔버스 틀이 보강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래의 약식 테두리 틀에 끼워져 있었다. 미술관에 소장되기 전 전혀 복제되거나 전시된 바가 없다. 그러나 반 고흐가 오베르의 가셰 박사 집 첫 방문 때 "가셰 박사는 겨울눈 속의 붉은 집을 그린 아주 아름다운 피사로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있다"며 경탄했다는 사실로 이미 유명해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피사로의 아들, 루시앙 피사로는 "붉은 집은 피사로 가족이 살았던 곳, 루즈시엔느 근방에 있었는데, 은퇴하여 혼자 외로이 은둔해 살았던 수수께끼 같은 한 노인의 소유였다"고 그림의 배경이 된 장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었다. 이렇게 소재가 루브시엔느에서 취해졌을 것이라는 사실이 유력한 것으로 보아, 날짜는 적혀있지 않지만 이 작품이 1869년이나 1870년이나 1871-1872년 겨울, 피사로 가족이 오베르에 머물고 있던 시기에 그려졌을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작품명 : 루브시엔느의 길
제작년도 : 1872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60x73.5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내 생애는 바로 인상주의의 역사와 뒤얽힌 것이었다" 라고 말한 카미유 피사로는 인상주의자 그룹의 모든 전시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유일한 화가이다. 그는 1870년대 내내 프랑스 인상주의 운동의 중심 인물로서, 완고하고 때로는 따분하며 심지어 권태로울 정도로 자연 관찰에 주력하였다. 1878년에 한 비평가는 그를 "그들 모두 중 최고의 자연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1870년 독일군이 침공하자 피사로는 프랑스를 떠나 런던으로 왔고, 클로드 모네를 만난다. 거기서 그들은 콘스터블의 예술에 매혹되었고, 특히 그들 자신의 회화적 탐구와 아주 유사한 터너의 "눈과 얼음의 효과"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이 놀라운 효과가 흰색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면 원하는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수많은 서로 포개어진 다양한 터치들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피사로는 서리가 내린 풍경이나 눈 덮인 풍경을 즐겨 다루었다. 파리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 루브시엔느의 길을 그린 이 그림에서도 잔설이 남아 있는 길에 오후의 짧은 햇빛이 드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길 오른쪽의 양지와 왼쪽의 음지는 전통적인 원근법 구도 속에서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한적한 시골길의 안정감과 고요함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작품명 : 하얀 서리
제작년도 : 1873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65x93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이 작품은 1874년 제1회 인상주의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바르비종파와 밀레의 진정한 후계자인 피사로는 시골 생활에 깊게 매료되었다.

화면 위로 점차 상승하는 원근법을 씀으로써 화면에 하늘을 작게 담아 상대적으로 서리가 내린 겨울 들판이 전경에 가득 차도록 하였다. 수평선이 가로지르는 간결한 구성은 이 시골 풍경에 없어서는 안 될 견고함을 부여한다. 나무들의 비스듬한 그림자가 서리가 덮인 밭고랑을 가로지르고 있다. 거칠고 마른 붓질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잘 살려내고 있다.



작품명 : 빨간지붕들,마을구석,겨울인상
제작년도 : 1877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54.5x65.6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이 그림에서 마을의 정경은 단지 풍경화라는 범주에 들게 하는 구실일 뿐이다. 견고하고 단순한 구성을 위해 마을 풍경 대신 지붕의 붉은 색채가 주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 이미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완연한 겨울 빛을 띠고 있다. 마을 둔덕과 들판에 군데군데 남아 있는 마지막 녹음들, 그리고 깊은 흙 빛, 이 풍부한 색조들은 붉은 지붕 색과 어우러져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두텁게 발라진 풍부한 색조들이 그림의 단순한 기본 구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겨울의 정취를 살려내고 있다.



작품명 : 포도밭의 여인, 에라니 초원의 봄 볕
제작년도 : 1877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45.4x65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1884년 퐁투아즈 지역을 떠난 피사로는 그 근방의 에라니 쉬르 엡트에 정착하였다. 그는 그 곳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피사로는 1885년경부터 쇠라와 시냑을 알게 되면서 작은 색 점을 캔버스에 점을 찍듯 그린 점묘법을 시도하게 된다. 이는 팔레트에서 색을 섞는 대신에 캔버스에 순색의 작은 색점들을 캔버스에 바로 바르면, 눈의 망막에서 색의 혼합을 감지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신인상주의의 원리를 수용한 이후, 피사로 작품의 변화된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피사로는 포도밭의 풀밭과 나뭇잎들에 순색을 그대로 병치시켜 발랐다. 자연스럽고 묵직한 색감으로 서정적인 풍경화를 보여주었던 그의 화풍은 작은 붓터치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생동감 있는 화면으로 변화하였다. 1889년 이후 피사로는 다시 예전의 화풍으로 돌아가 1990년부터는 파리나 루앙의 길을 깊은 투시로 묘사한다.



작품명 : 퐁투아즈의 봄
제작년도 : 1877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65.6x81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1871년 6월 피사로는 런던에서 프랑스로 돌아와 루브시엔느를 다시 찾는다. 그리고 1872년 퐁트와즈에 정착해서 1884년까지 그 곳에 거주했다. 이 무렵 피사로는 시골의 자연과 농촌생활을 그리는 화가로서 확고하게 자리잡는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밀레의 전통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세계는 밀레의 낭만주의적 감상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피사로는 물이나 물위에서 반사하는 빛보다는 땅이나 경작지, 들과 언덕, 마을과 과수원, 집과 나무들에 관심을 갖는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인간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그는 성실하고도 사실적으로, 매일매일 일하고 있는 농부들과 시골 시장들을 묘사한다.

거목을 화면 한가운데 배치한 대담한 구성을 보이는 이 작품은 정확한 삼각형의 나무 형태로 짜여져 있다. 나무 뒤로는 하늘색의 파란 지붕의 건물이 있고, 화면 아래 수평으로 깔린 초록색의 채마밭은 묵직한 색감으로 그림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봄의 분위기는 흰색의 작은 꽃봉오리들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에밀 졸라가 말했듯이 그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대지의 심원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작품명 : 눈덮인 퐁트와즈 사육장
제작년도 : 1879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피사로는 1879년을 퐁트와즈에서 보냈는데 생활이 몹시 비참했다고 한다. 그러나 퐁트와즈의 평화로운 풍경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화면에 채색하는 피사로의 붓의 움직임이 새의 깃털처럼 부드럽고 가볍게 느껴진다.



작품명 : 빨래너는 여인
제작년도 : 1887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41x32.5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1884년 지조르 근처의 에라니에 정착하면서 피사로의 예술은 체계화되고 보다 단순한 경향으로 흐르게 된다. 바로 그 해에 그는 자신도 참가했던 앙데팡당전에 출품된 쇠라의 <아니에르에서 목욕하는 여자>에 감탄하여, 1886년 마침내 신인상주의로 전향한다.

그는 신인상주의를 인상주의의 연속선상에서,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체계 위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한다.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인상주의자 전시회에서 피사로는 쇠라, 시냑과 나란히

분할묘법의 미학에 따라서 그려진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이 미학을 열렬히 선전하는 예술가로 나타난다. 이후 약 4년간 성실하게 신인상주의를 실행했으나 그의 방법은 쇠라나 시냑의 것에 비하면 유연한 것이었으며, 참신하고 자연스러운 시각을 결코 잃지 않았다.

밀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은 터치로 볼 때는 쇠라나 모네의 후기 작품을 연상시킨다. 점묘법의 실험이기도 했던 이 작품은 온화한 색조의 조화와 밝은 햇살의 표현 등을 통해, 일상의 한 장면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풀밭 위에 앉아 있는 왼쪽의 어린아이의 머리는 금빛으로 빛나고 있고, 완만한 대각선으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길은 깨끗하게 빨아 널은 침대보처럼 포근함을 준다. 모든 날카로운 선이 제거된 동글동글한 오브제들은 화가의 삶에 대한 애정과 어린 시절의 향수를 일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