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요14:16-20)

                                                        
현대 사회를 주도하는 컴퓨터 분야에 선두 주자, 빌 게이츠를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빌게이츠는「생각의 속도」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는 바는 '정보가 곧 힘'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이 시대를 가리켜 '무한경쟁'의 시대라고 합니다. '무한경쟁'이 무엇입니까? 핏대를 세우고 달려들지 아니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경쟁력이 필요한 시대가 바로 '무한경쟁'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결국은 경쟁력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빌게이츠는  오늘날의 힘, 경쟁력은 바로 '정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변화 속도를 못 좇아가면 결국은 자괴감에 의해 정신병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잠시도 살 수 없는 살벌한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사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시대에 교회의 힘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힘은 과연 무엇입니까? 정보가 힘이라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성경적 지식과 종교적 정보가 힘이 됩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교회의 힘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힘은, 신자의 경쟁력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힘을 세상처럼 가질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이 가질 수 없는 단 한 가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세상을 능히 다스릴 수 있고, 세상의 모든 고통과 많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 성령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경쟁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이 성령은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의 힘은 시대마다 끊임없이 변합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신 불멸의 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시대의 문제도 성령으로 해결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당면할 모든 문제도 성령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변함이 없고, 하늘로부터 오는 유일한 이 힘을 우리 모두가 덧입으면 21세기가 아무리 무한경쟁 시대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연약한 사람들을 붙들어 일으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마음에 모시고 사시는 사랑하는 예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결단코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십시오. "내 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 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보혜사'는 '돕는 자'(helper)라는 뜻으로 성령의 별명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돕는 자 라고 말씀하신 데 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은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만 바로 깨달으면 우리는 아무 아쉬운 것 없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돕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는 돕는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성령은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 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케 하셨고,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바로 이러한 분이 우리를 돕는 자로 와 계신다는 말입니다.

언제까지 우리를 도우십니까? '영원토록' 입니다. 누구와 함께입니까? '너희와 함께'입니다.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17절을 보십시오. "저는 진리 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세상은 성령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압니다. 성령이 교회 곧 우리 안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계시겠다고 예약 해 놓은 장소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 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나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살아 계신 예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우리 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요?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여기서 '내가'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살아 계신 예수 그리 도가지금 우리 마음속에도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내적 공허의 고독을 느낍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오셔서 채워야 될 것을 다른 것으로 못 채우니까 전부 텅텅 비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고독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숨기고 티를 안 내려 고 하니까 그렇지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현대인들은 젊은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가만히 혼자 있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핸드폰을 들었다 놓았다, 켰다 껐다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혼자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혼자 있을 때면 음악을 틀든지 텔레비전이라도 켜 놓고야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바보 상자가 그래도 자기에게 고독감을 덜게 해 주는 좋은 위로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혼자라는 고독에 바들바들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 역시 인간인지라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외로워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느끼는 실존의 고독은 느끼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 영혼 의 빈곳을 가득히 채우고 계십니다. 주님은 절대 우리를 혼자 두지 않습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저는 이 사실을 분명히 믿고, 즐깁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습니까? 즐깁니까? 향유 합니까? '내 안에 계시는 성령,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 그분 때문에 나는 고아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고아처럼 세 상에 던져 놓고 계시지 않는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는 사실 때문에 여러분이 얼마나 달라지고 있습니까? 예수 없는 세상 사람과 얼마만큼 다른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근심과 고독과 무기력 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합니까? 왜 이토록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왜 이렇게 내 마음은 텅텅 비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성령앞에 무릎 꿇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옵소서." 성경에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내 안에 성령으로 살아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한 장의 종이는 누구나 쉽게 찢을 수 있을 만큼 너무나 가냘픕니다. 그러나 이 가냘픈 종 이를 두터운 콘크리트 벽에다 붙여 보십시오. 함부로 그 종이를 찢거나 뚫지 못합니다. 강 하고 두터운 콘크리트가 그 종이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스스로를 놓 고 보면 정말 미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약한 인생이지만 죄와 사망 을 이기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만유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오심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아무도 우리를 꺾거나 찢을 수 없습니다. 생활이 궁핍합니까? 몸에 어떤 질병이 생겼습니까?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이 닥쳐왔습니까? 그게 인생입니다. 나 만 겪는 일 이 아닙니다.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나 세상을 살다보 면 한번씩 겪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것들로 인해 꺾이지 않습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강하십니다. 그분이 주시는 능력만 입으면 아무도 나를 꺾지 못 합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내 속에서 충만해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나를 다스려주시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운전사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충만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성령 충만한 성도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그 입에 서 찬양이 떠나지 않습니다. 가슴에서 성령의 샘물이 터져 나와 입으로 막아 둘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살기가 얼마나 고달픕니까? 그러나 성령 받은 우리는 고달픈 세상에서도 노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찬양으로 세상을 헤쳐 나갑시다.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것을 어떻게 풉니까? 노래방에 가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그런데 가서 마이크 잡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30 분이고 1시간이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앞에 찬양하라고 하면 입이 안 떨어져서 '또 부른다. 아이고 지겨워 죽겠네.'하고 앉아 있다면... 이래 가지고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이기겠습니까? 성령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충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찬양하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온 가정에 근심 걱정이 짙게 깔려 있으면 자녀들도 벌써 그것을 느낍니다. 부모가 이야기를 안 해도' 굉장히 어려운 염려를 안고 엄마 아빠가 마음에 고민하고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집을 감싸고 흐르는 분위기는 감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어머니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엄마가 자기도 모르게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의 찬양이 어린 자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상상하실 수 있습니까? 그 어머니의 찬 양 한 소절이 아이의 마음에 있던 무거운 먹구름을 걷히게 합니다. 그 찬양이 아이의 마음에 믿음을 뿌리 박히게 합니다. 어머니의 작은 찬양 소리가 집안에 생기를 흐르게 합니다. 찬양이 근심을 쫓습니다. 찬양은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면 누구든지 찬양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찬양이란 무엇인가? 마귀를 쫓는 가장 최고의 수단이다." 만일 성령 충만해야 될 가정에 마귀가 자리를 펴고 앉아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입에서 찬양의 향기가 언제나 퍼지게 하십시오. 그러면 마귀는 여러분 가정에서 결코 그 추악한 악취를 피울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이 세상을 산다면 우리는 이 세상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 니다. 아무리 정보의 속도가 놀랍도록 사람들을 위압하고, 위축되게 하며, 어떤 면에서는 우리를 낙심케 한다 해도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입기만 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이깁니다.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입으면 우리는 날마다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어떤 원수가 우리를 에워싼다 해도 우리는 평안한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리와 능력을 우리 것으로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 의 능력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승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종옥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