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42
다니엘의 믿음 (단6:1-10)
지난주간 우리는 캄보디아로 관광을 떠난 한국인 13명이 비행기사고로 모두 목숨을 잃는 충격적으로 슬픈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번 참사로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단위의 여행객이어서 더 슬펐습니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조정사의 잘못임이 밝혀졌습니다. 구체적인 비행내용을 블랙박스를 해독하면 더 밝혀지겠지만, 정상항로로 비행하지 않고 괘도를 이탈한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물론 조종사가 승인을 받아 비행을 했더라도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한 것은 큰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고도를 높이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이곳의 지형을 잘 안다는 조종사의 교만과 안일함이 무고한 생명을 잃는 비극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뿐인 생명을 조종사에 맡긴 채 쉬던 승객들의 운명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참 슬픈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단면입니다.
우리는 매일 비행기도 타고, 자동차도 타고, 기차를 탑니다. 우리는 매일 건물로 들어섭니다. 우리는 도로를 걷고 공원을 갑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비행기를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드나드는 건물이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걷는 도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위험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세상에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비행기도, 자동차도, 건물도, 심지어는 사람도 믿을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믿을 대상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는 비행기에 내 생명을 맡기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곳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셔서 지금까지 나를 지키신 것처럼, 나의 가는 길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만이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 오늘도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은 이사야, 예레미야에 이어 다니엘이라는 선지자입니다. 다니엘은 어떤 믿음의 사람일까요?
첫째, 용기 있는 믿음입니다. 다니엘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함께 구약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선지자입니다. 모두 특징이 있고, 시대마다 쓰임을 받은 모습이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볼 때 이사야는 멸망하기 전에 활동한 선지자이고,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멸망하던 시기의 선지자이고, 다니엘은 나라가 멸망한 이후 포로로 잡혀간 때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다니엘은 16세의 나이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스라엘의 장래와 앞으로의 세계가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한 예언을 받아 전하였고, 그의 예언대로 역사는 모두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는 대부분 예언서와 같은 성경이어서 구약의 계시록이라고 불리 울 만큼 미래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니엘 하면 세 친구가 떠오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로 알려진 친구와 함께 이방 땅 바벨론에서 별처럼 빛났던 인물들입니다. 다니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중심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그 시대에 어떻게 살았는가를 잘 나타냅니다. 그 가운데 본문은 다니엘과 친구들을 시기하던 사람들이 모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과 친구들의 흠을 잡기 위해 고소할 조건을 찾다가 왕의 조서를 만들었고, 누구든지 왕의 명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들어가는 위기에 처한 상황이 바로 본문의 배경입니다.
당시 왕의 명령은 절대적인 권세가 있었습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고, 만약 명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서 사자의 밥이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 위기의 때에 다니엘이 보여준 행동을 알려준 말씀이 본문 10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이게 무슨 말입니까?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어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실제로 행동에 옮깁니다. 아무리 왕의 명령이지만 그는 옳지 않은 것에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용기,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용기를 냅니다. 이것이 다니엘에게서 우선적으로 돋보이는 행동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런 모습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용기를 갖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용기가 곧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처럼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먼저 다니엘은 그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을 우선 순위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앞서는 거시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원동력은 그는 인생에서 하나님을 가장 크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니까 다른 것은 다 작게 보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가질 귀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우선 순위로 삼고, 하나님을 크게 보면 사람도, 왕도 작게 보일 뿐입니다.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두려움이 없는 용기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삶에 우선 순위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가장 크게 보고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사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환경입니까?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고, 환경을 보면 두렵고 불안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크게 보면 용기를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선 순위로 삼고, 그분을 가장 크게 보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기고 승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10절에서 성경은 다니엘이 왕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다고 강조합니다. 다니엘은 어떤 사람인가, 바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처음 성경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생애를 마칠 때까지 성경은 그의 다니엘의 많은 모습가운데 기도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결국 다니엘의 이런 기도를 통해 앞으로 일어난 미래의 사건을 알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다니엘에게 임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면서 준비하였고,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을 유지하였고, 기도하면서 쓰임을 받았으며, 기도를 통해 큰 은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아주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에서 그것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어제도 기도하고, 오늘도 기도하고 또 내일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에서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도합니다. 오늘 한번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계속 기도합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기도입니다. 그는 중단하지 않았고, 낙심하지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다니엘의 기도가 너무도 귀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이 곧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8장에서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눅18:1) 바울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우리는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고 권면 하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되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하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생활입니다. 기도하다가 중단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낙심하거나 절망하는 것은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지속되어야 하고, 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만큼 신앙생활의 특권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우리가 기도할 수 있기에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는 것이고, 기도하기에 나를 깊이 돌아보는 통찰력과 깨달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하기에 성숙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기에 우리는 하늘의 문을 열 수 있고, 우리가 기도하기에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기도할 때 역사 하십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십니다. 기도할 때 응답을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어려운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지속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기도했다고 오늘 중단할 수가 없습니다. 많이 기도했다고 그것으로 평생 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지속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특권이며 의무이고, 어쩌면 우리 믿는 자에게 주님 앞에 설 때까지 함께 가는 거룩한 부담일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낙심하거나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중단치 않는 것이 좋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특권을 누리시고, 계속 기도하면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마지막에 뭐라고 말합니까? 다니엘이 그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끝을 맺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믿음입니다. 다니엘은 감사하는 자였습니다. 감사가 그의 믿음에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감사는 특징이 있습니다. 환경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지금 환경은 어떻습니까? 아주 열악합니다. 죽음의 순간이 임박한 때입니다. 아무리 평상시에 잘 감사해도 이런 때는 적잖게 원망과 불평을 했을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었는데 이게 뭐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어떤 환경에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니엘의 감사는 현실 때문도 아닙니다. 지금 다니엘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나라는 멸망을 당했습니다. 나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 지는 보트 피플이 되어 봐야 압니다. 어디도 받아주지 않는 나라 없는 백성들의 슬픔이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온 현실입니다. 아무리 바벨론이 좋다해도 포로로 끌려온 이상 그는 여전히 포로입니다. 바벨론 국민일 수 없고, 권리와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더더욱, 그는 지금 감옥에 들어갈 현실입니다. 아무리 과거가 힘들어도,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지금 이 순간 편하고 좋으면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에게는 이것마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당면한 현실입니다. 나라는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왔고, 위기의 순간을 맞은 현실입니다. 이런 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감사는 기도의 응답 때문도 아닙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기도를 드린 사람입니다. 기도의 특권과 축복을 많이 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 세월이 흐른 뒤의 응답된 것들입니다. 여기 본문 10절에서도 그것을 잘 알려줍니다. 그는 기도합니다.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에는 분명 나라의 회복과 개인의 회복과 어려움의 극복이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참으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응답이 되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니엘의 감사는 기도의 응답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감사입니다. 상황 때문이 아니고, 현실 때문도 아니었으며, 응답을 결과로 감사한 것이 더욱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의 감사는 어떤 감사였을까요? 본문에 그 중요한 이유를 알려줍니다. 다시 성경을 보십시오. “그 하나님께...”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믿고 사랑하는 여호와 나의 주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영원토록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하여, 그는 감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감사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 불에 들어갈 위기에 처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위기의 상황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것이 그들으 믿음이고, 감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고 감사한 그들의 진정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떤 가난한 선비 집에 결혼을 앞둔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혼처가 두군데서 나왔습니다. 하나는 서쪽 마을에 사는 남자인데 요즘 말로 하면 재벌집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돈은 많은데 사람 됨됨이가 영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동쪽 마을에 사는 청년인데 사람 됨됨이며 성품이며 인격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한군데는 사람이 욕심이 나고, 한군데는 돈이 욕심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디로 딸을 시집 보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이때 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두 남자를 다 사위로 맞이하시지요. 잠을 잘 때는 동쪽 신랑한테 가서 자고, 밥을 먹을 때는 서쪽 신랑한테 가서 먹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동가숙 서가식’이란 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합니다. 세상남편도 좋아하고 예수남편도 좋아하는, 하나님도 괜찮고 세상도 놓지 못하는 이 시대의 모습을 깨우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환경, 현실, 응답이 아니더라도 오직 나의 하나님, 왕이신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맥추절은 유월절, 수장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절기가운데 하나로서 이스라엘이 대대로 지킨 절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따라 이 절기를 지킵니다. 특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맥추감사주일은 지난 반년동안 이끌어 오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반년의 획을 긋고 이제 남은 반년을 새롭게 헌신하기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늘 이 날에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물론 환경이 열악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감사할 조건이 없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지만 아직까지 응답이 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토록 나의 주님이 되셔서 왕으로 내 마음에 오셨고, 나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가장 큰 위로가 되신 하나님, 내가 잘못된 길로 갈 때마다 나를 깨우치시고 바르게 살도록 이끄시는 하나님, 이 어려운 시대에 나를 보존하고, 지키시고, 사랑하고, 붙잡고, 위로하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다니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용기 있는 믿음, 변함없이 기도하는 믿음,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으로 인해 감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에 주신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에 새기고 한 주간도 승리와 믿음의 길을 향해 힘있게 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