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우물에서 생수   (창세기 26:12~18)  
  
성경에는 우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출애굽 한 인물가운데 유일하게 가나안에
들어간 갈렙은 그의 딸 악사를 옷니엘에게 시집보내면서 위샘과 아랫샘을 선물로 주었습니
다(삿 1:15). 열대성 기후에 국토의 상당부분이 사막으로 형성된 팔레스틴에서는 흐르는 강
물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유목생활을 하는 그곳 사람들은 어디에나 지하수 근원이
있는 곳이면 우물을 개발하고 그것을 생명줄처럼 소중히 여기곤 합니다.
지금도 성지순례를 가면 오랜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우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모세
가 이드로의 양들에게 물을 먹였던 우물은(출 2:16) 시내산 밑의 캐더린 수도원 안에 있고,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생수의 교훈을 하신 야곱의 우물은(요 4:6) 사마리아 유적지에
서 볼 수 있습니다. 또 사막의 도시 브엘세바에 가면 한 울타리 안에 두 개의 우물이 있는
데 이것을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물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우물의 유적들을 살펴보면서 귀한 것일수록 언제까지나 그 가치가 보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우물들은 적어도 4천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지금도 거
기서 생수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인물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믿음의 3대 족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선민 이
스라엘의 조상이며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 이르도록 신앙계열의 뿌리가 됩니다. 그들의 살아
온 자취와 남겨 놓은 역사는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바른 신앙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
다.
오늘날 급변하는 문화와 환경 가운데서 반드시 지켜야 할 전통이 있고 계승하여야 될 유산
이 있습니다. 여기 믿음의 사람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을 다시 파고, 아브라
함이 부르던 대로 이름을 부르며 자자손손 거기서 나오는 생수를 마시게 하였다는 것은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과 우리 교회가 어떤 것을 붙들고 지켜야 할 것인가를 시사해 주고 있
습니다.
오늘 뜻 깊은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옛 우물에서 퍼내는 생수의 의미를 살펴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I. 신앙의 우물입니다.

브엘세바에 있는 아브라함의 우물은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앙과
삶의 증거로 상징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21:22-34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
멜렉과 알력이 있을 때 그 문제를 평화스럽게 해결하고는 자기가 판 우물을 가지고 증거로
삼았습니다. 그곳 지명을 브엘세바라 부른 것도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21:33-34에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본문 말씀 17-18에 보면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그 아비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팠으며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을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름 지은
맹세의 우물 앞에서 자기 아버지가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 했던 그 신앙과 정신
을 계승하려 했던 것입니다.

(1) 계시의존(啓示依存)의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말씀 중심의 믿음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
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사람 따라서 믿음의 종류나 색깔이 다양합니
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지성이나 감정에 따라서 좌우되는 주관적인 신앙을 가집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같은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기의 지식이나 감정이나
의지를 조절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늙도록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
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고(창 12:2) 자손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였습니다. 창세기 15:5-6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였습니
다. 히브리서 11:11에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
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2)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곧 믿는 대로 행동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믿음과 생활이 일치하는 사람이
라야 온전한 신자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
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가리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특징지었습니
다. 히브리서 11:8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또 17절에는 “아브라
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
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말씀 한마디에 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떠나 온 것이나, 백세에 얻은 독자를 자기 손으로 불태워 제물로 바치라는 말에도 아무런
조건 없이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보지 못하는 일을 보는 것처럼, 먼 후일에 되어 질 일을 현재에
체험하는 것처럼 살아온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이어졌습
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8:56).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위시하여 구약시대를 살고 간 여러 족장들이나 선지자
들에게 계시해 주시는 언약의 실체는 사실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이삭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사람이 옛 우물에서 나오는 한 가지 생수를 마셔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오직 한 우물 곧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거기서 시대와 환경에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심
령을 소생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셔야 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요 4:14).

Ⅱ. 경건의 우물입니다.

솔로몬 왕은 그의 신부 술람미를 가리켜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
이요 봉한 샘”이라고 하였습니다(아 4:12). 이는 예수님께서 자기 교회를 두고 하는 말입니
다. 덮은 우물, 봉한 샘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생수를 뜻합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깨끗한
모습으로 성도의 순결을 지켜야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물은 더러움을 씻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가랴 13;1에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면서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
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엡 5:26-27).

(1) 예수 그리스도가 순결하신 분입니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다”고 하였습니다(사 53:2). 히브리서 7:26에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
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예수님의 보혈을 강조하면서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벧전 1:19). 이처럼 예
수님은 하나님의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으로서 그의 순결한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내는 샘물의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2) 성도의 신분은 깨끗한 것입니다.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무리를 뜻합니다. 계시록 19:8에 보면 하늘 보좌 앞에서 이십 사
장로와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무리들이 있는데 모두 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더
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복 입은 자들은 성도들을 뜻하는데 로마서 13:14에 보면 “어두움의
옷을 벗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는 선택 받은 자기 백성을 향하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
다”고 하였습니다(레 11:45).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
합한 성도들은 그 신분이 깨끗하고 성별된 자입니다. 항상 물로 씻어 내듯이 죄를 회개하고
사유함을 받아 깨끗한 심령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예수께서 성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나와 상
관이 없느니라”고 하셨고, 또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하였
습니다(요 13:8-10). 우물의 생수처럼 깨끗케 하는 예수님의 보혈로 사죄 받고 성별된 사람
은 날마다 경건한 삶으로 거룩한 신분을 보존하여야 만 됩니다. 빌립보서 2:15에 “이는 너
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
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라”고 하였습니다.

(3) 경건을 위한 연습을 하여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소양이 되는 경건생활을 강조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4:7-8에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
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말세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며, 그
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로 바뀌게 된다고 하였
습니다(딤후 3:4-5).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내다보면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딤후 3:12).
오늘날 세상은 날이 갈수록 패역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신앙이 변질되면 도덕도 윤리도 양
심도 지킬 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파수하는 전통적인 교회와 경건
한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 이 시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죄와 싸
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 한다”고 하였습니다(히 12:4). 곧 목숨을 걸고 죄를
배격하여야 된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경건의 신앙과 전통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Ⅲ. 축복의 우물입니다.

옛 우물 곧 조상 때부터 한 우물을 파고 거기서 나는 물을 자손대대로 마시게 되는 것은
여간한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상의 믿음과 경건한 삶을 계승하는 것이며 또한 약속된
축복을 대대로 이어가는 특권인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이 후손들
에게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신앙가문의 복

이삭이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파고 그 아비
가 불렀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것은 아버지의 신앙과 삶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입
니다. 무엇보다도 같은 우물에서 계속하여 흘러나오는 생수를 먹게 되었으니, 이는 부자가
다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축복의 도리를 붙들고 살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팠던 우물을 이삭이 먹었고, 야곱이 사마리아 수가성에 파두었던 우
물은 요셉과 그의 후손이 먹었습니다(요 4:5-6). 부모는 자식에게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하
고 자식은 부모의 신앙적 유산을 계승하고 발전해 나가야만 합니다.
사도 요한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녀들에게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
기를 간구한다고 하였습니다(요3서 1:2-4).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복

성경은 범죄한 인간이 겪는 불행의 원인을 생수의 근원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
다. 예레미야 2:13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하였습니
다.
예수님께서는 사막 같은 세상에서 목말라 갈급해 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생수의 샘물을 공급
하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7:37-38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
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지 이스라엘에는 「네게브」라는 사막지대가 있습니다. 사해에서 홍해에 이르는 남서쪽으
로 국토의 절반에 가까운 지역이 온통 모래와 돌멩이들로 된 황무지입니다. 2차 대전 후 고
토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멀리 갈릴리 호수의 물을 지하 수로로 끌어들이고 곳곳에
우물을 파서 수원을 공급하고부터는 사막의 신기루라고 할 만큼 비옥한 땅을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메마른 사막이라도 물이 공급되면 옥토가 되는 법입니다. 이사야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 할 날이 온다고 하였습니다(사 35:1).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신약교회의 환상을 노래하면서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사 35:6).

(3) 생산적인 교회의 축복

신령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행사하는 기관입니다. 그것은 사막 같은 세상을 향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생수를 공급하는 일입니다. 옛날 바벨론 포로지에서 활동하던
선지자 에스겔은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겔 47:1). 성전
안 제단 밑에서 발원(發源)된 물줄기가 성전 밖으로 스며 나와 점차 불어나서 개울이 되고
범람하는 강물이 되었습니다. 그 물이 흘러가면서 주변의 메마른 땅을 기름지게 하여 초목
이 우거지고 짐승들이 노니는 낙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아라바 바다까지 흘러들어
가서 죽은 바다를 살려내고 온갖 어족들이 모여 드는 황금어장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겔
47:6-12).
교회는 우물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생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통적인 바른 신앙의 교육
을 받고 건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한 인물들은 어디에서나 축복의 공급자가 되어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생명을 윤택하게 하여 줍니다.
옛 우물에서의 생수는 전통 있는 교회와 비전 있는 청소년들의 사명을 일깨워주는 상징적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