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에 대한 태도 (히 13:17)

(서론)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과 스승의 주일이 찾아 왔지만 충남 보성 초등학교 교장 자살사건, 교육행정 정보 시스템 문제, 전교조의 반미 수업 논란 등으로 교단 갈등이 심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 보다 학원 선생님께 선물하는 학부모나 학생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공교육이 추락하고 사교육이 성황을 이루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선생님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스승은 존경 받아야 하고, 그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빈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서는 안된다고 해습니다. 군사부 일체라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똑같습니다.
선생님은 제자와 화장실을 함께 안 쓴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스승은 인생의 등불입니다. 그러므로 학생의 일상문제를 다루는 순간에 교사가 따뜻하고 은밀히 조언을 해주고 영롱한 감성이 상처받지 않게 자상하게 배려하고 관심 있는 대화로 용기를 복돋워 주기 때문에 학생들은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저절로 갖게 됩니다.

또한 존경받는 인격으로 자란 아이들은 남을 존경할줄 알게 됩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이상에 설레고 있는 학생들 앞에 비추어지는 가장 가깝고 긴밀한 관계에 있는 교사의 품위있는 말과 존경스런 태도가 학생들에게 높은 이상을 심어 주게되고 스승을 신뢰 할 수 있게 합니다. 교사가 보여주는 작은 관심과 미소. 격려의 말은 평생 잊혀지지 않고 그 학생의 뇌리에 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를 인도하는 자들은 주의 양무리를 돌보도록 하나님께 임명받은 영적스승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들의 지도를 거역하거나 불순종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복종하라'는 말은 "너희가 계속 완전히 항복 상태에 있으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지도자인 스승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은 자신의 영적유익을 위해서는 물론 인도자들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스승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一) 교회의 지도자(스승)의 특징

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 "라고 했습니다.

여기 '인도자들'은 목사, 장로, 전도사, 사역자, 권사, 교사, 목자 등등입니다. 이들을 세워주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 이라"고 했습니다. (엡 4:12)
인도자들은 가르치고 양육하여 영혼을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워주신 영적 스승들입니다. 이들은 성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깨어지키는 자들로 마치 자신이 그것에 대하여 셈(계산)을 치르는 자인 것처럼 계속 경성하는 자들입니다.
'경성한다'는 말은 "막다, 잡다"라는 동사와 "잠"이라는 합성어로 "잠을 자지 않고 보초를 선다"는 말입니다.

영적스승(인도자)들은 그들이 인도하는 영혼(심령)들에 대해서 "깨어서 불철주야 돌보는 자들"입니다. 즉, 한영혼 이라도 잃어버린다면 주님께 책망을 받을 것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인도하는 교회 영적지도자(스승)들입니다.

야곱은 하란에 거하는 20년동안 외삼촌 라반의 양떼를 쳤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수고했습니다. (창 31:40) 주의 양무리를 치는 자들도 바로 그와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양들을 노리는 포식자들이 어디에나 포진하고 있기에 영적지도자인 스승들도 그들이 치고있는 양떼들에게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그정도로 철저한 책임의식(책임감)을 가진 자만이 영적지도자(스승)의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 자기가 회계할자인 것같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기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라는 말은 "셈을 정산해야 할 자들처럼"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양떼들이 주님의 재림시에 심판을 받을 때 목자(스승)는 양떼들의 과오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각오로 그들을 돌본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책임감이 강한 목자들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은 영적인 부요를 충분히 누리게 됩니다. 모든 목자(교사)들은 성도들에게 권위를 내세우고 복종을 강요하기 전에 바로 이와 같은 신실한 목자의 모습을 보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양떼를 인도할 목자들은 주님께서 결산하실 때 그분이 원하시는 선한 목자가 되고자 힘써야 합니다.


(二) 목자(스승)에 대한 태도(성도들의)

성도들은 목자(스승)들이 목회를 잘하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목자가 근심으로 하지않고, 즐거움으로 하도록 도와주고 협력해야 합니다.
17절 보면 "저희로 하여금 이것을 ... 즐거움으로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근심으로 하게' 라는 말은 "한숨짓다", "탄식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 5번 나온다. 그런데 "탄식하다"는 말로 4번 (막 7:34, 롬 8:23, 고후 5:24), "한숨짓다. 원망하다"는 의미로는 1번 번역되었습니다. (약 5:9)
영적지도자들이 양떼를 인도할 때, 양떼들이 거역하고 불순종 할때는 탄식하고 원망(한숨 짓는다)합니다. 이 탄식과 한숨(원망)은 지도자를 괴롭게 하지만 양떼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만 먹고 사는 것이 지겨웠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달라고 원망하며, 모세를 거역하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기뻐하지 아니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탄식하면서 자신의 고초를 토로했습니다.

민 11:11-15절 보면
11절에는 "주께서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하시나이까?"
12절에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하시나이까?"
13-14절에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없나이다"
15절에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않게 하옵소서"라고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메추라기를 하늘에서 내려주시며, 고기를 먹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무수한 백성이 죽음을 당하고 말했습니다.
민 11:33절에 "고기가 아직 잇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양떼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지도자가 탄식하고 한숨지으며 사역한다면 결국 양떼에게 큰 손해가 미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결론)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피흘려 사신 신천교회의 양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지도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이들이 영적스승이요, 목자들이다. 이분들이 주님께 받은 사명을 즐거움으로 사역하도록 성도 여러분들은 순종과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존경하고 협력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우리 모두 하나가 되십시다. (딤전 5:11)



출처/원사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