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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없는 인생의 불행 (민수기 14:20~38절)
2007년도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가정속에 감사가 넘치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이 죽은 후 430년간 노역생활과 괴로움을 당하다가 출애굽한 이후의 내용입니다. 430년이 되었을 때 온 백성이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못살겠습니다. 죽겠습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이 준비하신 지도자 모세를 애굽에 보내어 모세를 통하여 430년간의 애굽에서의 생활, 종살이 생활을 청산하고 애굽에서 출애굽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나안 복지 이스라엘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종살이하며 고통속에서 괴로움을 당하던 그들이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데 여러분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북한에서 탈북한 분들이 “죽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좋습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감사하기는 커년 원망하고 불평만 했습니다. 430년간 종살이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배운 것은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종의 특징이 뭡니까? 원망과 불평아닙니까? 이게 아주 익숙해 버렸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듣는게 원망뿐입니다. 못살겠다. 뭐 어떻다. 매일 듣는게 원망입니다. 430년간 원망과 불평을 들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원망이 익숙하고, 불평이 평범해졌습니다. 그래서 축복의 땅을 향해서 가면서도 그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오늘 말씀은 원망하고 원망하고,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도 참으시던 하나님이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을 포기하는 내용입니다.
“너희가 내게 원망하던 그 말대로 해주겠다” 심판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20세 이상으로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살고 광야에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너희들이 말한 그대로 해주겠다고 하셨고 그대로 되어졌다는 겁니다.
출애굽기 14:1에 보면 홍해 앞에서 원망합니다. 홍해가 가로막자 그곳에서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또 출애굽이 15:24에는 홍해를 건너고 수르광야에 들어갔는데 목이 마르니까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16:2-3에도 배고프니까 배고프다고 원망합니다. 17:3에는 르비딤에 이르렀는데 목이 마르자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원망에 원망을 계속 해 나갑니다. 조금 전에도 물이 말라 목 마를 때 하나님께서는 물을 내려주셨고, 배고플 때는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만나를 내려주시는데 또 목이 마르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이제 광야 여행을 계속 하면서 드디어 가나안 땅 접경 지역, 가장 가까운 지역인 가데스바네아 지역에 들어왔습니다. 그거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이제 쳐들어가서 차지하면 되는데 전쟁을 하기 전에 그곳에 먼저 정탐꾼을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하도록 했습니다. 40일이 지나 12명의 정탐꾼이 돌아와서 10명의 믿음없는 정탐꾼들이 먼저 보고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보고! 거기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그 땅은 기름지고 좋지만 그곳에는 네피림이 있는데 그들은 거인들이다. 우리는 그들 보기에 메두기 같다. 우리는 그들을 치지 못한다. 우리는 큰 일 났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고 불고 야단을 치며 모세를 향해서 원망을 쏟아 부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이 광야에서 죽어버리면 더 좋지 않겠는냐?” 이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말 어찌 할바를 모르고 원망하는 그들을 향해서 “조용히 하시오. 내 말을 좀 들으시오”라고 안정을 시킨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차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밥입니다. 이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 합시다.”라고 했지만 말이 먹혀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계속 원망하는 원망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이제는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0세 이상으로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너희 입에서 나온 그대로 해주겠다고 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리던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원망하다고 광야에서 비참함 종말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0: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 사건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저희의 당한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계로 기록되었느니라”고 합니다.
민수기의 말씀은 그 이후를 살아가는 이 땅의 크리스찬이 이 사건을 통하여 원망하면 복을 받지 못하고 망하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거울로 삼아서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경계로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를 거울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원망하면 망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믿음이 부족하여 원망하고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다가 그 인생이 끝이나고 만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감사가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나아가서는 감사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오늘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때때로 힘들고 어려워질 때 그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는 조금만 힘들고 내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현대인의 특징에 대하여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2에 “말세가 되면 감사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디모데후서 3장에서 계속 말씀하시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말세가 되면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감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서로 분쟁하고 불화하고 이런 어려움들이 더 많아 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셨던 장상총장은 오래전에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선진 개발된 나라들 가운데서 학생들이 스승에 대해서 제일 감사치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라고 했습니다. 기성세대는 크게 자각해야 합니다. 감사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이 앞으로 커서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원망과 불평에 익숙한 사람들이 성장하고 자라서 국가와 기업과 가정에 충실하며 살아가겠습니까? 감사치 아니하고 은혜를 모르고 자란 사람들이 그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습니다. 넘치는 생산과 넘치는 풍요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만큼 많은 자원들을 낭비하며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너무나 잘 먹고, 잘 입고 살아갑니다. 저희들이 학교 다닐 때 옷이 없어서 군인 잠바, 국방색 잠바를 물을 들여서 입으면 일년 열두달 입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오천원만 줘도 천지배까리입니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며칠전에 목사님들 모임이 있었는데 “세종 대황이 이 핸드폰 가져봤나? 일본을 가봤나? 중국을 가봤나? 동남아시아를 가봤나? 필리핀이 있는지, 유럽이 있는지 알았겠나?”라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조시대 왕들보다 수십배 좋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특징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움 속에서 살면서도 그 어느 시대보다 감사가 없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이 있는데 사람이 편해질수록 감사가 줄어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풍요로운 환경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풍요로워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은 결코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행복하냐 아니냐는 마음에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이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궁궐같은 호화로운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어도 그 마음에 감사가 없으면 결단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하는 아내와 살아가는 남편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감사하는 남편과 살아가는 아내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반찬을 해줘도, 2-3가지 제대로 볶아 내지도 못하지만 ‘여보, 수고했다. 감사하다’고 하는 가정이 행복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부모와 사는 가정이 행복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녀와 사는 부모가 행복합니니다.
아이가 40명 중에서 38등을 했습니다. 어떤 아버지는 뒤집어 집니다. “이놈아 내가 무슨 맛으로 살겠노” 야단 법섞을 떠는데 그런 아이를 두고도 끌어안고 “니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니가 내 자식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고 말하는 부모님과 사는 아이는 정말 행복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 가정의 아이는 밖에 나가서 “우리 집은 정말 행복하다. 천국이다. 나는 부러운게 없다”고 할 것입니다. 얼마나 건강하게 자라나지 않겠습니까? 조금만 불평이 있어도 이게 뭐고, 저게 뭐고 야단입니다.
감사가 없이 살면 그곳에 바로 지옥이 되는 겁니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감사가 없으면 하루 하루가 지긋지긋하고 몸서리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불평하는 아내가 있으면 집에 들어가기 싫습니다.
불평원망하는 남편이 있으면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도망가고 싶어요. 그 인간 얼굴을 어떻게 보느냐 이겁니다. 사람이 감사가 없으면 계속 싸웁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원망과 불평을 통해서 싸움을 만들고 매일 매일을 싸우는 겁니다. 매일을 찡그리고 사는 가정을 만드는 겁니다.
또 감사가 없는 사람은 건강이 좋지 않아요. 이것은 의학상 통계로 나온 겁니다.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는 사람을 비교해 보았더니 감사하는 사람은 좋은 것을 먹지 않아도 건강합니다. 다니엘은 채소만 먹어도 더 건강했습니다. 감사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감사치않는 사람은 너무나 고독하게 살아가고 외롭게 살아갑니다. 감사치 않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벌은 외로움, 고독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자식도 붙지 않습니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감사를 많이 해야 합니다. 무조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불평하고 원망하면 친구도 떠나가고, 자식도 떠나가고, 다 떠나갑니다. 나중에는 외로워서 하나님도 그를 떠납니다. 감사치 않고 원망하는 자는 ‘나는 너를 내 자식으로 두지 못하겠다“고 하며 하나님도 떠난다고 했습니다.
또 감사치 않는 자의 특징은 성실하지 않습니다. 감사가 없기 때문에 일을 해도 성실하게 일을 하지 않습니다. 창조적으로 살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성공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막아 버립니다.
감사치않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고를 가졌습니다. 창조적인 그런 세계를 열어가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이 성공하려면 계속적인 영감을 통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질 때 성공적인 사람이 되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장사를 해도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뭐든지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영감을 가진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 사람이 탁월한 사람이 됩니다. 감사치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영감이 없습니다.
감사치 못하는 자는 주위가 막혀있습니다. 어둠의 권세에 눌려서, 마귀에게 눌려서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은 어리섞게 판단하고 어리섞은 길을 계속 갑니다. 얼마나 불행한 길을 가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저는 수십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자랍니까? 감사가 없는 사람이 믿음이 자라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초신자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날로 날로 하루가 다르게 그 믿음이 쑥쑥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여러분 감사함으로 날마다 믿음이 자라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감사치않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감사치 않는 자에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에게는 주신 것도 거두어 가십니다. 그래서 불행한 인생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닦쳐와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우리 집의 비밀을 하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안 좋은 소리를 할 때 우리 집사람은 멋있게 팅기면서 말을 합니다. 그 말을 하면 저는 기분이 달라집니다. 저도 그럽니다. “이쁘게 생겨가지고 왜 그래?” 그러면 달라집니다. 딴 소리를 못하는 겁니다. 집에 가서 써먹기를 바랍니다. 한번 실험해 보세요. 애가 뭐할 때 “이렇게 멋있는 놈이 왜 그래?” 그러면 애가 싹 달라집니다. 집에서 실험해 보세요.
여러분들, 감사치 않는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아버립니다. 원망과 불평할 때 하늘문을 철커덕 닫아버립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화목하게 살아갑니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감사하는 가정에 들어가 보세요. 집이 환합니다.
불빛이 없어도 집이 환합니다. 얼마나 얼마나 화창한 봄날 같은 가정인지 모릅니다.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감사하는 가정에는 기쁨이 넘칩니다.
둘째로 감사하는 가정은 다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외롭지 않고 밝고 활기차게 살아갑니다. 감사하는 가정의 사람들은 섬기면서 살아갑니다. 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누구에게 보답합니까? 사람에게 봉사하면서 감사함을 보답하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충성하고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얼마나 보람있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이게 감사하는 사람의 축복입니다. 감사가 있으니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남을 돕고 봉사하지 않으면 마음에 기쁨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자꾸 자꾸 좋은 일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믿음이 날로 날로 성장하고 갈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게 되는 겁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사람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복을 받도록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가 잘 되시길 바라지요. 그러면 자녀들이 잘 되길 원한다면 뭘 가르쳐야 된다고요? 감사를 가르쳐야 됩니다.
어떤 유대인 여성이 세자녀를 너무나 잘 키웠습니다. 교육도 많이 받은 분도 아니고 보통 사람인데 셋을 다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의 교육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저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첫째로 너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둘째로 원망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셋째로 감사하는 사람과 늘 사겨라.” 무슨 말인지 알지요. 너 자신이 감사하는 자가 되라. 두 번째는 원망불평쟁이하고는 사귀지 마라. 전염된다. 원망불평은 전염이 잘 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과 사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감사를 배우게 된다는 겁니다.
불평이 이만큼 있는 사람도 감사하는 사람을 만나서 자꾸 감사를 들으면 불평은 쑥 들어가고 집에 가서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감사를 가르쳤더니 내 아이들이 다 잘되었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감사할 때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저는 특별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할렐루야!” 이게 너무 중요합니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불평하면 완전히 절망이 되지만, 아무리 캄캄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 바울과 실라가 감사하고 찬양했더니 옥문이 열렸습니다. 다니엘이 감사했더니 사자의 입을 틀어막어서 그 속에서 생명의 살림을 받았습니다.
병이 들어도 감사하면 병을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사업이 어려워도, 길이 막혀 있어도 감사하면 사업의 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쏟아지는 겁니다. 어떻게 살겠습니까?
링컨은 조지 워싱턴이 감사절을 정했는데 제퍼슨 대통령때 감사절을 없애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은 감사절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16대 대통령이 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음 제일 먼저 한 것이 감사절을 회복한 것입니다. 11월 셋째 목요일을 감사절로 정하고 4일동안 국경일로 정했습니다.
이 감사절만은 온 미합중국국민들이 하나님을 감사하고, 감사의 축제로 살아가라고 4일 동안 공휴일로 정했습니다. 공휴일을 제정하면서 이 링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이 왜 복을 받는가? 그걸 아셔야지요. “우리 국민들은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이 어려움 가운데서 쟁취한 감사의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며, 우리의 후손들에게 잘 전하여 결코 포기함이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감사의 정신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 나라가 복을 받는다라고 링컨 미국 대통령이 설명했습니다. 미국이 왜 복을 받습니까? 이와같이 감사를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감사절기를 정하여 국경일로 지키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나라, 감사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복을 받는 겁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성공을 주시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은혜의 문을 열어주시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끊임없이 받아누리시는 우리 대흥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끝으로 우리가 이와같이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경험하면서 남은 인생을 가장 값지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감사가 내 맘속에서 넘치려면 세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를 바로 깨달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김용식 선생님이 깨달아야 될 것은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줄로 믿습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같은 죄인이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언제 죽어도 천국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니다.
이 구속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내가 죽음의 자리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병이 들어서 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될 것은 나는 지금 죽어도 내가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 나라에 나의 들어갈 집을 마련하시고 나를 그 나라로 영접해 주실줄로 내가 믿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한 겁니다. 오늘 죽어도 감사합니니다. 병이 나도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영원히 살 수 있습니까? 언젠가는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나같은 죄인이 구원받고 천국갈 수 있는 구원을 주셨다는 이 사실에 감격하여 날마다 하나님을 감사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지금까지 내게 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깨닫고, 앞으로 내게 주실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오늘의 어려움을 통하여 내게 더 좋은 것을 주실 줄로 믿기 때문에 질병가운데서도, 실패가운데서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주신 은혜 때문에 감사하고, 앞으로 내게 주실 환난과 역경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게 축복으로 쏟아 부어주실 그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 마음속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찬양하라 내영혼아!” 감사가 터질 줄 믿습니다.
복된 사람의 특징이 뭡니까? 은혜를 깨닫는 겁니다. 그리고 주실 은혜를 바라보는 겁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고린도전서15:10에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했습니다. 뇌성마비시인 송명희씨를 잘 아실 겁니다. 그녀의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쳤습니다. “나 남이 가진 것 내게 없지만 나 남이 가지지 못한 내가 가졌네.” 뇌성마비로써 얼마나 불편하고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남이 가진 것 바라보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나 남이 가진 것 내가 없으나 나 남이 가지지 못한 내가 가졌네...이것 보면서 아름다운 찬양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겁니다. 없는 걸 보는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 질병가운데서도 장애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겁니다.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2000년 11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CBS 10주년 기념 독창회를 했습니다. 10시 30분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청중들이 가지를 않는 겁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아닙니까? 그런데 가지를 않고 전부다 앉아서 박수를 치는 겁니다. 앵콜을 네곡을 했습니다. 보통 두곡을 하는데 네곡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박수를 치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조수미가 나왔습니다. 네곡까지는 수원시립교향악단과 맞춰놓은 곡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맞춘 곡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시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는 “오늘 내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겁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반주 없이 무반주로 부르는 겁니다. 거기에 앉은 회중들이,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불신자까지도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 노래가 온 회중을 은혜로 이끌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감격이 우리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목만 들으세요. 첫째는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야 감사하고, 둘째는 지금까지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장차 앞으로 내게 주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함으로 복을 받을 수 있고, 마지막으로 전천후로 감사하려면 쉬지않고 기도하여 성령충만 받을 때 끊임없이 감사가 터져나올 줄 믿습니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원수마귀가 불평의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영적으로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자다가 일어나도 원수 마귀가 원망과 불평의 씨앗을 뿌려서 자다가 일어나도 원망과 불평이 터져나옵니다. 그 가정은 깨지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하여 성령충만한 우리 대흥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렌즈가 바뀌어집니다. 보는 것 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어떤 사람은 마귀가 충만하니까 보는 사람마다 심술이 나고 견디지를 못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대흥교회 성도들이여, 오늘 맥추절이 얼마나 좋습니까? 상반기 6개월을 지나고 후반기 6개월을 맞이하면서 정말 감사함으로 축복의 미래를 열어나가고 일생에 잊지 못할 감격적이고 행복하고 승리하는 남은 생애를 열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최낙보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