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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고향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 : 7 - 8
오늘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중추절입니다.
중추절은 조상을 생각하며 햇곡식과 햇과일을 먹는 날로서 온 가족이 모이는 즐거운 날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서 떠나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 32장 9절에 보면,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종족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였나이다"라는 야곱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는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음으로 형의 노여움을 샀기에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자기 외삼촌이 있는 타향에서 고생 고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거부가 되었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며, 그 고향으로 금의 환향하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추석에도 어마어마한 사람이 귀성길에 올랐기에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떠날 때에 장정만 60만이었다고 합니다. 이 출애굽 사건 역시 고향을 찾는 민족의 대 이동이었습니다.
여러분이여!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고향에는 사랑하는 부모 형제가 있으며, 그곳에는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향수가 있으며, 옛 친구와 흩어졌던 이웃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향에는 인정이 있고, 자기만이 느낄 수 있는 사랑과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참된 고향은 이 땅에 있는 부산, 대구, 마산, 대전, 목포, 광주, 속초, 강릉 등이 아니고 영원한 하늘 나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던 것입니다(빌 3 : 20 - 21).
또한 골로새서 3 : 1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듯이 영원을 사모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사모해야 할 곳은 바로 영원한 안식처요, 우리 영혼의 고향인 저 천국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그곳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하늘 나라를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1.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비유했습니다(딤후 2 : 3 - 4).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선한 싸움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는 본문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싸우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제 선한 것을 위하여 싸우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핍박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하여 악한 마귀의 세력과 싸우고 죄와 투쟁하는 성도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하늘 나라에 갈 때까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 마귀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합니다. 현대의 전쟁은 무기 개발 전쟁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가공할 위력의 최신 무기가 첨단 과학의 도움으로 계속 개발되고 있답니다. 지금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만 해도 지구를 몇 십 번이나 멸망시킬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서학자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불심판이 바로 인간 스스로의 죄로 인하여 비롯될 핵전쟁이라고 설명하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인간은 육적인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싸울 것은 이러한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 존재, 곧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강력한 핵폭탄이라도 영적 전쟁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여!
영적인 싸움에 필요한 무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영적인 전쟁에 필요한 무기와 무장을 이렇게 말합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 : 10 - 13)."
한 마디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라는 말입니다. 영적인 전쟁에 있어서 완전무장은 하나님의 전신갑주 위에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신을 신은 후,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한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또 한 손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10장 14절에서는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부수는 강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육의 싸움을 위해서는 수많은 돈을 들여서 무기를 사고 무장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그리스도의 군대로서 영적 싸움을 위해서는 너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의 선한 싸움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여 마귀의 노예가 되면 우리의 고향인 천국에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서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승리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2. 우리의 달려갈 길을 달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길과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간 성도의 본이 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했습니다. 선한 싸움과 함께 달려갈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물론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저는 이 성경 구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나누어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구원을 위한 사도로 택함을 받았으므로 전도의 사명이 곧 그의 달려갈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볼 때 이것은 곧 각자에게 주어진 생활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달려갈 길이 꼭 전도하고 기도하는 일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의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자기의 삶을 저버리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가장은 가장으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 주부는 주부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 곧 자기의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간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이 패역한 세상으로 변했고, 죄악이 관영했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빛과 소금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생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됩니다.
끊임없이 입술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생활이야말로 "나의 달려갈 길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신앙의 경주, 삶의 경주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서 주님 앞에 설 때에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쓰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본문 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또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비로소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달려 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웠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우리의 고향인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예비되어 있는 의의 면류관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일곱 교회의 환상을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않았도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권면하시기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계 3 : 8 - 11).
우리는 적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지켜 나아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받는 성도가 됩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 11 : 6).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신앙의 열녀가 됩시다.
이번 중추절을 맞이하여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분이심을 믿으신다면 우상의 제단에 절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믿음의 시험에서 승리하는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인간의 참된 고향은 육신이 속한 곳이요, 영원한 저 하늘 나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기의 본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가족과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이러한 사람들에게 "저 하늘 나라 우리의 본향"을 알려주어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이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함께 누리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11절 이하에 보면 이 세상의 고향이 아닌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축복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면서 자기 육신이 태어난 고향보다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그들을 위해서 눈물과 고통과 애통하는 것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과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과 생명의 면류관만이 있는 한 성을 예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한가위 명절이 수십 번 지났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고향만 바라보며 안타까와 하는 실향민들이 있을 줄 압니다. 오늘 히브리서 11장 14절 이하의 말씀이 위로와 소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은 추석 명절에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열심히 달리면서 믿음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랑하는 성도들께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 : 7 - 8
오늘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중추절입니다.
중추절은 조상을 생각하며 햇곡식과 햇과일을 먹는 날로서 온 가족이 모이는 즐거운 날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서 떠나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 32장 9절에 보면,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종족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였나이다"라는 야곱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는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음으로 형의 노여움을 샀기에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자기 외삼촌이 있는 타향에서 고생 고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거부가 되었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며, 그 고향으로 금의 환향하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추석에도 어마어마한 사람이 귀성길에 올랐기에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떠날 때에 장정만 60만이었다고 합니다. 이 출애굽 사건 역시 고향을 찾는 민족의 대 이동이었습니다.
여러분이여!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고향에는 사랑하는 부모 형제가 있으며, 그곳에는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향수가 있으며, 옛 친구와 흩어졌던 이웃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향에는 인정이 있고, 자기만이 느낄 수 있는 사랑과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참된 고향은 이 땅에 있는 부산, 대구, 마산, 대전, 목포, 광주, 속초, 강릉 등이 아니고 영원한 하늘 나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던 것입니다(빌 3 : 20 - 21).
또한 골로새서 3 : 1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듯이 영원을 사모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사모해야 할 곳은 바로 영원한 안식처요, 우리 영혼의 고향인 저 천국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그곳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하늘 나라를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1.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비유했습니다(딤후 2 : 3 - 4).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선한 싸움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는 본문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싸우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제 선한 것을 위하여 싸우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핍박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하여 악한 마귀의 세력과 싸우고 죄와 투쟁하는 성도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하늘 나라에 갈 때까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 마귀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합니다. 현대의 전쟁은 무기 개발 전쟁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가공할 위력의 최신 무기가 첨단 과학의 도움으로 계속 개발되고 있답니다. 지금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만 해도 지구를 몇 십 번이나 멸망시킬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서학자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불심판이 바로 인간 스스로의 죄로 인하여 비롯될 핵전쟁이라고 설명하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인간은 육적인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싸울 것은 이러한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 존재, 곧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강력한 핵폭탄이라도 영적 전쟁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여!
영적인 싸움에 필요한 무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영적인 전쟁에 필요한 무기와 무장을 이렇게 말합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 : 10 - 13)."
한 마디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라는 말입니다. 영적인 전쟁에 있어서 완전무장은 하나님의 전신갑주 위에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신을 신은 후,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한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또 한 손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10장 14절에서는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부수는 강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육의 싸움을 위해서는 수많은 돈을 들여서 무기를 사고 무장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그리스도의 군대로서 영적 싸움을 위해서는 너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의 선한 싸움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여 마귀의 노예가 되면 우리의 고향인 천국에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서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승리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2. 우리의 달려갈 길을 달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길과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간 성도의 본이 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했습니다. 선한 싸움과 함께 달려갈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물론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저는 이 성경 구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나누어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구원을 위한 사도로 택함을 받았으므로 전도의 사명이 곧 그의 달려갈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볼 때 이것은 곧 각자에게 주어진 생활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달려갈 길이 꼭 전도하고 기도하는 일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의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자기의 삶을 저버리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가장은 가장으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 주부는 주부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 곧 자기의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간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이 패역한 세상으로 변했고, 죄악이 관영했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빛과 소금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생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됩니다.
끊임없이 입술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생활이야말로 "나의 달려갈 길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신앙의 경주, 삶의 경주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서 주님 앞에 설 때에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쓰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본문 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또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비로소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달려 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웠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우리의 고향인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예비되어 있는 의의 면류관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일곱 교회의 환상을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않았도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권면하시기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계 3 : 8 - 11).
우리는 적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지켜 나아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받는 성도가 됩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 11 : 6).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신앙의 열녀가 됩시다.
이번 중추절을 맞이하여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분이심을 믿으신다면 우상의 제단에 절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믿음의 시험에서 승리하는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인간의 참된 고향은 육신이 속한 곳이요, 영원한 저 하늘 나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기의 본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가족과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이러한 사람들에게 "저 하늘 나라 우리의 본향"을 알려주어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이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함께 누리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11절 이하에 보면 이 세상의 고향이 아닌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축복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면서 자기 육신이 태어난 고향보다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그들을 위해서 눈물과 고통과 애통하는 것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과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과 생명의 면류관만이 있는 한 성을 예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한가위 명절이 수십 번 지났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고향만 바라보며 안타까와 하는 실향민들이 있을 줄 압니다. 오늘 히브리서 11장 14절 이하의 말씀이 위로와 소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은 추석 명절에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열심히 달리면서 믿음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랑하는 성도들께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