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4: 1 - 9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중략)…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종이 이에 주인 아브라함의 환도뼈 아래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창세기 24장 1∼9절)

아브라함은 그의 종 엘리에셀을 메소보다미아로 보내서 이삭의 신부를 구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외아들 이삭을 장가 보내려고 집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던 늙은 종 엘리에셀을 고향 땅인 메소보다미아로 보내 그곳 처녀를 구하여 들여오도록 했습니다. 엘리에셀은 약대 열 필에 보화와 선물을 가득 싣고 떠났습니다.

1. 아브라함과 이삭과 신부

아브라함은 우리 하나님을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소유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삭은 예수님을 표상합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에게 만유를 상속으로 주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는 오늘날 성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소유를 상속받을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재산을 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하늘과 땅의 권세를 모두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우리 를 위해 계십니다.
이삭은 바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뜻을 좇아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희생제물이 되려고 했습니다. 장작불 위의 제단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조금도 거역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좇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5∼11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십자가 처형은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입니다. 극악한 죄수의 죽음을 주님은 조금도 불평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받아들였습니다.
이삭의 신부는 이삭과 함께 아브라함의 상속을 받을 자입니다. 리브가는 이삭과 결혼해서 아브라함의 모든 상속을 함께 받게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만유를 상속으로 받을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의로운 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여 하나님을 반역했지만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아주시므로 이제 우리는 값없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주와 만물을 상속으로 받게 됐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신 그 공로로 말미암아 예수께 의지해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온 우주를 상속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6∼17절에서 바울선생은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디도서 3장 6∼7절에는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만유를 상속으로 받을 후사입니다. 후사란 말은 대단한 것으로, 재벌의 후사만 되어도 굉장한 특권을 누립니다. 하물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로 받아서 우주를 다스리는 것에 함께 동참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천사를 다스리고 천사를 명하는 자리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로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받아서 아버지를 섬기고 온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2. 메소보다미아로 간 종 엘리에셀

창세기 24장 10∼11절에 “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는데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약대를 성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이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신부를 구하기 위하여 메소보다미아로 떠난 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늘날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구하러 오셔서 역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엘리에셀은 메소보다미아 나홀 성에서 약대 열필을 데리고 우물가에서 신부를 기다렸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구하러 오실 때 우물가에서 신부를 기다립니다. 우물가는 무엇입니까? 교회가 오늘날 이 세상에 있는 우물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말씀과 성령의 생수가 솟아나는 우물입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나홀성 우물가에서 약대들을 앉혀 놓고 신부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이 세상에 있는 우물 즉, 교회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처럼 엘리에셀은 성령을 상징하고 함께 간 수행원들은 천사들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신부가 될 처녀의 조건을 보십시오. 엘리에셀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24장 14절에 서 엘리에셀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라고 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부의 조건입니다.우물에 와서 물을 좀 달라고 할 때 엘리에셀에게만 물을 마시게 하지 않고 자원해서 약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약대에 물을 마시우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약대 한 마리가 80리터의 물을 마시는데 10마리면 800리터입니다. 800리터의 물을 마시우게 하려면 우물에서 약대가 있는 곳까지 마흔번은 왕복해야 되고 시간도 2시간 이상 걸립니다. 이렇게 물을 길러 약대에게 주려면 온 몸이 물투성이가 되고 땀이 비오듯이 흐르고 온 어깨가 뻣뻣하도록 수고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에셀은 자신에게 물을 주고 그 다음에는 약대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자원하는 자를 신부로 택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택하러 오셨는데 우리는 제일 먼저 성령님께 물을 대접해야 합니다. 이는 교회에 와서 성령의 음성인 말씀을 듣고 기도를 통하여 성령과 교통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 우리는 하늘나라를 전혀 알 수 없고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성령과의 교통은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출발이요, 생명입니다. 성령과의 교통 없이 교회는 존재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신부도 될 수 없습니다.
한편, 약대는 시험과 환난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리브가가 10마리의 약대에게 물을 마시게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사막을 지나온 약대는 리브가가 부어놓은 물을 단번에 마시우고 또 다시 달라고 울어댑니다. 80리터의 물을 마시게 하려면 진땀이 납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고 열마리에게 물을 댄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와 수고가 아닙니다.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약대에게 물을 먹이듯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과 환난의 약대를 수고로써 인내해야 합니다. 약대에 물을 먹이지 아니하면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약대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주위에는 남편 약대, 아내 약대, 자식 약대, 시부모 약대, 친척 약대, 이웃 약대들이 많습니다. 남편 약대는 끊임없이 물을 달라고 외칩니다. 세상 사람 같으면 인내하지 못하고 그만 헤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런 약대에게 끊임없이 물을 주어야 합니다. 남편 약대가 자꾸만 물을 달라고 하면 참고 사랑으로 이해하고 동정하며 계속 물을 주고, 아내 약대가 불평하고 원망하면 아내에게 물을 먹여야 됩니다. 갈증으로 목마른 약대는 물로 채워지면 더 이상 불평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식 약대도 부모에게 고통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는 자식을 위해서 인내하며 기도하고, 눈물 흘려 달래고 돌보아 계속 물을 마시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왜 이러한 시험이 다가올까요? 아브라함이 이삭의 신부를 구하기 위해 그의 종에게 보화를 실은 약대를 함께 보내듯, 성령께서 우리를 신부로 단장시키기 위해 약대를 끌고 오십니다. 약대는 마귀가 끌고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약대를 끌고 옵니다. 우리의 고집과 성격, 사랑 없는 마음, 불순종, 불신앙 등을 깨뜨리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약대에 물을 마시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내와 순종으로 약대에 물을 먹이면 변화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변화 받아 깨어지면, 온유하고 순종하고 사랑하며 믿음의 사람으로 되는 것입니다. 열 마리의 약대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사랑과 인내와 헌신의 시험입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또한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도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과 환난과 고통이 나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상적인 며느리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상적인 신부가 되는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성령의 은혜로써 거듭났을지라도 시험과 환난의 용광로를 통해야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인 자랑에 전념한 엘리에셀

엘리에셀은 리브가가 자신과 약대에게 물을 다 대접하자 약대에 싣고 온 금과 은 귀고리, 팔찌, 목걸이, 코걸이들을 걸어주고 그를 신부로 데려올 것을 작정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령과 교통하면서 시험과 환난을 통해 변화받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엘리에셀은 곧장 리브가의 아버지, 어머니 집으로 가서 오직 아브라함과 이삭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창세기 24장 34∼38절에서 엘리에셀은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부인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나의 주인이 나로 맹세하게 하여 가로되 너는 내 아들을 위하여 나 사는 땅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아비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하시기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에 대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자신에 대해 말씀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사람이나 교회, 교파를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에 대한 것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14절에서 예수님은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리브가의 결단을 보십시오. 부모님이 보내려해도 신부 본인이 안가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4장 55∼58절에 “리브가의 오라비와 그 어미가 가로되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라는 리브가의 결단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에게 가기로 결심한 리브가에게 아버지, 어머니, 오빠들은 “한 열흘이라도 우리하고 좀 더 있다가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아닙니다. 당장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약대에 싣고 온 짐을 풀어 금은 보화를 쌓았습니다. 엘리에셀은 가져온 금은 보화로리브가를 치장시키고 새로운 옷을 입게 하니 그녀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가지고 온 보배로 치장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리브가와 같은 결단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시험과 환난을 이기고 살아가려면 마음에 단호한 결단으로 세상을 등지고 오직 하늘나라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결단을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다음 세상과 마귀를 등지고 오직 하늘나라를 위해서 살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그 길로 걸어가면 신부의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마귀도 따라가고 교회도 따라가야겠다고 하면 하늘나라에 합당치 못합니다. 리브가가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고 이삭에게 가겠다고 한 것처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한 우리는 단호하게 세상과 마귀를 등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 자신을 헌신하는 결단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대가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약대는 선물을 싣고 왔습니다. 창세기 24장 53절에는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종 엘리에셀을 보낼 때 약대에 선물을 잔뜩 실었습니다. 약대의 수가 열 마리라는 것은 온전한 숫자를 의미합니다. 어마어마한 선물을 실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이삭에게로 시집 가겠다고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을 때 엘리에셀은 약대에 싣고 온 선물 꾸러미를 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니면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왜 하나님은 복을 안주십니까?”라고 원망하는데, 이는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살겠다고 작정을 해야 성령께서 천국 보화를 열어주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9∼10절에서 사도 바울은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은총과 그 놀라운 축복을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의 단호한 결단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놀라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마귀와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가겠다고 결단을 내리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보화를 채워 주십니다. 사실 세상을 따라 살아가면 재미있을 것 같지만 이 세상에서 얻게되는 재미는 더 많은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는 결단으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되면 세상이 주는 기쁨과 재미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다 썩어질 것, 더러운 것, 추한 것 밖에 없지만 하늘나라는 영원하며 아름답고 귀하고 행복한 영광으로 충만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면 알 수 없습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비로소 하늘나라의 영광이 얼마나 큰 지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마음의 결단을 내린 사람을 위하여 하늘의 보화를 부어 주십니다. 그리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됩니다. 약대에 물을 마시게 하기 위해 온갖 고통을 당하고 눈물을 흘렸으면 그 다음에는 얼마 있지 않아 축복이 다가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시험과 환난과 고난은 그 이후에는 전에 왔던 고난과 동등하거나 혹은 고난 그 이상의 크기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고난이 없으면 축복도 없습니다. 시련이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괴로움이 없으면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시험과 고난을 이기고 나면 반드시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 밤이 되면 낮이 오고, 폭풍이 있으면 조용한 날이 오고 험한 길을 걷고 나면 평탄한 길이 오는 것처럼, 약대에 물을 먹이고 나면 성령께서 하늘의 보화를 우리에게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12편 1∼3절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33편 12∼13절에도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세계 선진국가들의 경제연합체 OECD 회원 30개국 중에서 단지 일본과 터키를 제외한 28개국이 모두 기독교 국가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잘사는 30개 나라 중에 28개 나라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자 성령이 물질적인 복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한국전쟁 후 잿더미에서 일어나게 된 것도 우리나라의 5만 교회, 10만 주의 종, 1200만 성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기 위해서 리브가를 부르셨습니다. 엘리에셀은 리브가의 선물만 준비한 것이 아니라 싣고 온 약대의 보화를 부모와 형제들에게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성령께서 싣고 온 축복을 부어주실 뿐 아니라 예수님을 안 믿는 우리 동포들에게도 복을 함께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더 잘 살려면 교회가 부흥되어야 하고 성도들이 더 열심히 주를 섬겨야 합니다. 그럴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어 예수님을 안믿는 우리 동포들에게도 큰 축복과 은혜를 주십니다.
리브가는 물을 마신 약대를 타고 이삭에게로 갔습니다. 창세기 24장 61절에 “리브가가 일어나 비자와 함께 약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시험과 환난을 당한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리브가가 약대에게 물을 마시게 할 때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시집갈 때 바로 그 약대를 타고 갔습니다. 사막을 건널 때 약대를 타고 가야합니다. 우리가 시험과 환난을 당한다고 불평하지만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얻은 믿음을 통해서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되는 남편 덕분으로 천국에 가고, 괴로움을 주는 아내 덕분으로 천국 가고, 골칫거리 자식들로 인하여 천국 가고, 고통을 주는 이웃 때문에 눈물 많이 흘리고 깨어지고 기도한 결과 그 믿음을 가지고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순절 이후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신부를 찾으시고 예비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하여 사랑과 인내와 헌신의 신부 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성령님의 은혜로 신부 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시험과 환난이 바로 신부단장입니다. 인내로 단장하고, 사랑으로 단장하고, 온유함으로 단장하고, 순종함으로 단장하고, 거룩함으로 단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약대에 물을 마시게 해서 신부인 우리를 단장시키시고 나중에 그 약대를 타고 천국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모습이요,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요, 리브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성령을 상징하는 엘리에셀을 보내어서 이삭의 신부 리브가를 찾은 것처럼 오늘날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우리들을 찾고 계십니다. 어디에서 찾으십니까? 우물가입니다. 우물가가 어디입니까? 교회가 우물가입니다. 말씀과 성령의 우물인 교회에서 우리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령님과의 교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그리스도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을 받을 때 우리는 결코 불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받고 난 다음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 마귀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약대 곧 시험을 끌고 오신 것입니다. 시험을 참으십시오. 시험을 극복하고 이기십시오. 그러면 약대가 실어온 보화가 우리들을 단장해 줄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이웃까지도 단장해 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시험을 통한 견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후사로서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조용기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