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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24~ 25
우리나라가 가정의 위기 상황에 도달해 있는 것을 신문 지상을 통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이혼율이 2002년에 이르러서 40 %를 넘어서서 OECD 국가 중에서 2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840 쌍이 결혼하고 398 쌍이 이혼을 해서 결혼하는 부부의 절반가량이 이혼을 하는 셈입니다.
게다가 20년 이상 동고동락 해오던 부부들의 황혼 이혼이 매년 지속적으로 늘어나서 1990년에 비해서 3배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또 이런 이혼율의 상승뿐만 아니라 이런 이혼율에 따라서 어린아이를 버리는 유기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1년의 경우 3286명의 어린이가 버려진 통계가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깨어진 가정을 통해서 이런 불행한 일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경우, 고교생의 22 %가 아버지와 하루 1분의 대화 시간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고령 사회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국가 인권 위원회와 한국 노인회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 사람의 노인 학대 문제에의 의식이 몹시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노인의 3분의 1이 정서적 학대를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더욱 더 충격적인 사실은 노인 학대의 가해자가 42.9 %가 아들이요 ,39.9 %가 며느리로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평균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6명의 출산율로 ‘둘만 낳아 잘 기르자’하면서 가족계획 운동을 전개했었는데 지금은 평균 출산율이 1.3명으로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이나 일본보다도 뒤지는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의 위기 상황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부부 관계가 깨어지면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부관계는 가정의 핵심인데 부부관계가 바로 되어야 가정이 유지되고 자녀들을 잘 교육할 수 있으며 부모님들도 잘 모실 수 있습니다. 부부관계가 심각하게 위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부부생활에 왜 이런 위기 상황이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 한국 사회의 결혼생활이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했던 성경적 원리에서 많이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믿음의 성도 가운데에도 성경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사화적인 관습을 따르는 것이 많습니다.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헐버트라는 선교사가 한국 사람들은 철학적으로는 불교도들이고 사회 관습적으로는 유교도들이며 어려운 고난이 닥칠 때에는 미신 숭배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의 불교적인 사고방식이 강하고 사회제도 속에는 유교적인 것이 강합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많은 사람들이 미신적인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부부생활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셨던 결혼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결혼의 원리를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결혼식 때에 이 말씀을 많이 듣고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혼할 때에만 들을 말씀이 아니고 결혼생활을 해 나가면서 부부가 똑같이 늘 기억해야 될 말씀입니다. 건축가는 설계도를 따라서 건축을 합니다. 그 설계도는 건축을 시작할 때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건축하는 동안과 완성되기 까지 설계도를 보는 것처럼 우리들이 이 말씀을 따라서 우리들의 부부생활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결혼 생활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떠남의 원리입니다. 24절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결혼생활이라는 것은 먼저 부모를 떠나는 생활입니다.
부모란 어떤 존재입니까? 어린아이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전적으로 부모를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부모의 도움과 보호와 가르침을 받아 성장을 하고 부모를 떠날 수 있을 때에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 가정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보면 결혼할 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아니 결혼할 대상자를 정할 때부터 얼마나 비성서적인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한국의 여성들이 남성을 고르는 기준 가운데 돈키호테(돈이 많고 키가 크고 호 남형이고 테크닉이 좋은 남자라는 것)형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결혼할 때부터 우리의 기준이 무엇인가가 중요하고 결혼할 때에는 부모를 떠날 수 있는 훈련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결혼을 준비시킬 때에 물질적인 것에만 신경을 쓰십니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부모를 떠나서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가면서 독립훈련을 합니다.
대학생활을 마치면서 독립훈련이 된 가운데서 결혼을 하기에 부모를 떠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한국의 자녀들은 대학도 부모를 의존해서 다니고 결혼 전날 까지도 부모를 의지해서 합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의존해서 무슨 일만 있으면 딸이 친정에 전화하고 아들은 늘 부모님에게서 지나치게 사랑과 애정을 받고 살아서 어머니만 해준 것만 생각하여 전체 가족제도가 결혼생활을 바로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결혼을 할 사람이든지 시키는 사람이든지 간에 결혼의 원리가 첫째는 부모를 떠나는 것임을 알고 결혼하기 전에 부모를 떠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결혼을 했다면 일단 부모에게서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적으로 독립이 안 되어 있어서 혼수도 부모들이 다 사줍니다.
우리는 관습이 부모들이 혼수를 다 준비해서 결혼을 시켜 줍니다. 결혼식 때에 외국에서 보기 어려운 해프닝이 생깁니다. 자녀들 결혼식인데 부모님들이 나와서 인사하고 절 받고 왜 그럽니까? 자녀들 결혼식인지 부모 결혼식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부모님들은 비켜주시고 자녀들이 앞장서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 것은 부모를 떠나라는 원리를 온전하게 실천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남자 성도가 찾아와서 아내와 이혼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은 즉,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어머니 문제로 사사건건 아내와 다툰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어머니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머니를 선택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냐고 더 이상 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내와 어머니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점에 대해서 오해하지 마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를 선택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이요, 유교적인 관습입니다. 성경적인 원리는 아내가 우선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했으면 우선적으로 아내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생각하고 잘 이해시키고 격려하고 위로해서 아내와 함께 부모를 잘 모시도록 하는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결혼을 하면 부모님 모시는 것을 전부 며느리에게만 맡겨서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가 고부간의 갈등입니다.
전에 피스메이커 국제회의에 참석해서 각 나라별로 사회에서 갈등을 많이 일으키는 전형적인 문제에 대해서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는 고부간의 갈등이 가장 전형적인 갈등이라고 발표를 했는데 그 후에 미국 목사님이 한국에서 왜 고부간의 문제가 생기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대가족제도가 많아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고 답해주었더니 미국에도 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많고 그 목사님도 부모를 모시고 살지만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의아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짧은 언어와 지식으로 다 설명을 못했지만 그들에겐 왜 문제가 없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같이 살아도 삶의 영역이 따로 있어서 식사와 빨래도 각자대로 처리를 하기 때문에 큰 충돌이 없습니다.
한국 가정은 선이 없고 모든 것이 얽히고 설켜서 모든 것이 문제 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생활의 고부간의 갈등에 있어서의 원인은 아들 된 남편들이 자기 부모에 대한 의무를 아내를 통해 대리로 하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부모님들을 맡고 부모 된 자들도 며느리나 사위가 효도할 것을 생각지 말고 아들이나 딸이 효도할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각자의 어머니를 위해서 각자가 책임지고 효도하고 부부끼리 서로 도우면 해결됩니다.
결혼의 원리가 첫째는 부모를 떠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연합하는 원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부모를 떠나는 것으로는 생각을 하는데 그 떠나는 목적에 대해서 알지를 못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무조건 떠나려고 하고 무조건 분가하려고 합니다. 분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자기들끼리 연합하기 위해서 분가를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무조건 부모를 떠나겠다는 현실 회피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분가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는 것은 아내와 연합하기 위해서 입니다. 부모를 떠났으면 아내와의 연합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연합한다는 말은 원래 아교로 붙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지고 성격과 습관이 다르며 문화가 다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을 하나님께서 결혼하게 하신 것은 둘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둘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합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결혼을 했으면 부모를 떠나는 건전한 독립,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독립도 필요하지만 둘이 연합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연합하려고 하지 않고 따로 따로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진정한 결혼이 아닙니다.
고슴도치는 추운 겨울에 서로 같이 자려고 하면 가시로 서로를 찌르기 때문에 아파서 떨어집니다. 고슴도치는 서로의 가시가 아파도 떨어져서 살 수가 없어서 또 다시 모입니다.
그러다 보면 남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고 아픔을 견딜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부도 서로 다른 점과 부족한 점이 있고 죄인이고 죄성이 있기에 남을 찌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연합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결혼이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연합하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연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두 물체를 풀로 붙인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두 물체에 있는 이물질을 깨끗이 닦아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부생활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난 성격들을 가다듬어야 하고 잘못된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죄성을 고쳐야 하고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던 상처들도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우리의 잘못된 것을 고치고 상처를 치유 받겠습니까?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넓은 의미의 가정인 교회를 주셨습니다. 교회에 나오셔서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고 있는 ‘영성회복학교 ’는 상처치유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여러분의 모순과 잘못과 죄성을 고치고 회개하여 개인적으로, 영적으로 성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부 생활이 제대로 됩니다.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한다고 해서 부부인 것은 아닙니다.
먼저는 서로를 깨끗이 하는 과정을 밟아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가까워져야 합니다.
부부가 가깝게 하는 시간과 환경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부부들이 가까워질 수 없는 여건이 많습니다.
이것이 부부생활에 큰 방해가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남자들의 경우에는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부부생활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릅니다.
미국에 있을 때 보면 5시가 되면 집에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고속도로가 꽉 찹니다.
한국은 그런 현상들이 없고 저녁이 되면 술집과 음식점들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남편들은 어떻게 하면 집에 늦게 들어갈까 궁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일이 끝나면 남자들은 2차, 3차를 건수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러한 사회제도가 결혼생활과 부부생활에 얼마나 큰 지장을 주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고교생들의 22%가 아버지와 하루 1분의 대화도 하지 못한다는 통계가 있겠습니까? 서로를 깨끗이 하고 가까워진 다음에는 서로를 접착시키는 촉매작용을 하는 것이 필요한데 촉매작용을 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서로를 비난하고 책임을 추궁하면 연합이 안 되고 잘못을 감싸주는 모습을 통해 하나가 되고 연합이 됩니다. 사랑과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실수로 외도를 했는데 그 아내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남편을 용서하고 용납한 것 때문에 그 남편이 정말 감격해서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서 그 가정에 행복이 깃든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완벽한 것보다 잘못한 일이 있어도 용서와 용납이 있으면 연합이 되는데 우리에겐 이러한 것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결혼의 모습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 떠나라고 하셨고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 연합하라고 한 것입니다. 정상적인 부부는 부부일심동체라는 말처럼 생각도 ,지향하는 목표도 ,정서적으로도 하나가 되어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에 진정한 부부인 것입니다. 이런 부부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와 예배를 드리고 같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부부의 모습입니다.
부부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닮는다고 하는데 얼굴 모습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닮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중심으로 닮아야 하겠습니까?
신앙을 핵심으로 닮아야 합니다. 하나가 되되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된 상태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결혼을 잘하고 행복하게 지낸다 할지라도 신앙으로 하나 되지 않았다면 아직은 온전한 하나가 아닌 것입니다. 부부가 신앙적으로 하나 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녀들이 신앙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른 면으로 아무리 잘 맞는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 신앙적으로 하나가 되어 주님을 섬기지 못할 위험성을 뻔히 보면서도 허락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사회와 국가를 이루시고 이 세상을 이루셨습니다.
가정은 부부를 통해서 형성해 가십니다. 부부가 바로 되지 않으면 가정의 모든 것이 바로 될 수가 없습니다.
부부가 바로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설계도대로 나가야 합니다.
건전한 독립을 유지해야 하고 서로 연합하기를 힘써야 하는데 힘들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고슴도치도 결국은 함께 해서 연합을 성공하는데 예수 믿는 우리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왜 그렇게 연합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홀로 가려고 하십니까?
통계에 의하면 이혼을 안 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43%가 대부분 이혼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혼을 안 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절반이 이혼한 상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부족한 점을 고쳐야 하고 서로를 깨끗하게 해서 연합이 되도록 해야 하면 사랑과 용서를 나타내서 두 사람의 연합을 촉진시켜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마음적으로 온전한 하나를 이루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이철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