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9:3-12

결혼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새로운 문화의 출현 정도로 생각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혼에 대한 질문에 대해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건강한 가정을 위해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결혼에 대해 생각합시다.

독신 등 결혼을 거스르는  문제


바울 사도의 권면을 생각해 봅시다.

고전7:8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결혼하지 말라는 말씀인가요? 그러나 독신은 하나님의 원리가 아닙니다. 주님도 10절에서 독신에 대한 질문를 받고 천국을 위해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본문은 특별한 상황에서의 교훈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혼하여 함께 하나님이 기뻐하실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독신문화는 창조원리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또 언제부턴가 동거가 유행을 타기 시작합니다. 살아보고 결혼하자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성경원리의 파괴입니다. 살아보고 결혼하면 이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단의 속삭임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경우 동거경험이 있는 부부의 이혼울이 40%로 동거경험이 없는 부부보다 높다는 사실이 그 허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중요한 비유로 사용되는 혼인


성경은 혼인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주님은 혼인을 중요한 가르침의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만 3번에 걸쳐 혼인잔치를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문제로 질문할 때 주님은 혼인잔치를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마9:15). 또 천국에 대한 설명을 혼인잔치를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마22:2).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 역시 혼인잔치를 비유로 사용하신 것(마25:10) 등 주님은 혼인잔치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혼인관계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내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간음으로 묘사하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그 백성을 향한 끊임없는 사람과 용서를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또 멸망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혼인으로 묘사됩니다(사62:4).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나님

그러면 주님의 혼인에 대한 교훈을 정리해봅시다.

4절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남성우월주의의 사회에서 주님은 창세기의 원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지 않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동일하고 동등한 한 인격으로 창조하셨고 그래서 결코 어느 한 쪽 성이 다른 한 성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모두가 존중되어야 할 하나님의 독특한 창조물입니다.

서로 존중되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것입니다.

한 몸


5절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결혼을 통해 한 몸을 이루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완벽한 결합입니다. 정신적인 결합을 말하지 않습니다. 육체적으로 하나라는 것입니다.

결혼한 부부는 서로를 자기 몸의 일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내 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내 몸을 자르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뉠 수 없습니다.

여기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우선 한 남자와 한 여자입니다. 성경에 여러 여자를 둔 경우를 봅니다.

이것은 잘못된 당시 중근동 지역의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좇았던 자들이 다 그로 인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여러 여인을 두었다가 집안의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다윗이 여러 여자를 두므로 심각한 가정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창조 질서를 어기면 심각한 문제를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질서입니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원리마저 깨집니다. 동성애자들이 늘어나고 당당해집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에이즈 등 온갖 심각한 죄의 결과들이 나타납니다.


결혼에 개입되는 하나님의 손길


6절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이 짝을 이루어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도 천생연분이라고 하여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남녀가 결합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중요한 개입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고 짝을 지어주셨다는 것은 주님의 해석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짝지어 주셨다는 말씀은 원문상 “함께 멍에를 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두 마리 소에 멍에를 같이 메어놓은 상태를 생각해보십시오. 두 마리 소는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뉘면 안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나누지 못하리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어떻게 사람이 망가뜨릴 수 있겠습니까?

왜 나뉘는가?


그러면 그럼에도 왜 나뉘게 됩니까?

8절 “완악함을 인하여”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완악함이 가정도 깨고 사랑도 파괴하고 사회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혼에 대한 법은 인간들의 악함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대로 두면 더 악한 짓을 하기 때문에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져야 한다는 원리를 주신 것입니다. 또 남성우월사회에서 여성들이 마구 버려지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혼인증서 등의 법을 주신 것입니다.

6절에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나누는 것은 나를 해롭게 합니다.

나누면 결국 내 몸을 찢는 것입니다. 내 몸을 찢고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고통입니다.

주님이 허용하신 단 하나의 이혼 사유, 그것은 음행입니다. 그것의 경우는 성경도 악행으로 보기 때문에 이혼을 허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들은 욕심이라는 것이지요.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중요한 사회적 기초법입니다. 이것이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을 건강하게 우리 자녀들이 건강한 가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출처/김관선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