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90
단 5:25-31
벧사살은 느브갓네살이 세운 바벨론의 왕입니다. 그는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그가 왕이 되자 제일 먼저한 일은 그의 왕 즉위를 축하하는 대 만찬이었습니다. 그는 귀인 일 천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가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예루살렘 성에서 취하여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함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성전의 기명으로 마실 때에 금은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짓을 한 것은 그렇게 나라를 번창하게 한 느부갓네살 왕보다도 자기가 더 위대한 왕임을 과시하게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아비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풀불무 사건 이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는데 7년 동안을 하나님의 벌을 받아 정신 이상이 생겨 들짐승처럼 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으나 그의 때가 다 되어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 주게된 일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경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의 부친의 일을 아들인 벨사살은 몹시 못 마땅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우리 아버지와 같이 노예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다. 우리를 이렇게 번영하게 해 준 우리들의 금 은 신을 섬기며 나는 우리 아비보다 훨씬 위대한 왕임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즉위식을 거대하게 치르고 그의 섬기는 금 은 신상에게 경배를 하게 되였습니다. 이런 그의 행위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아비가 두려워했던 하나님을 멸시하는 짓이며 교만하기 이를데 없는 망나니 짓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의 이런 행동을 “(단5:22)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단5:23)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라고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신비한 네 글자를 썼습니다. 깜짝 놀란 그들은 그 나라에 있는 왕의 박사들이 다 들어왔으나 아무도 이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어서 다니엘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글자는 “(단5:25)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단5:26)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단5:27)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단5: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 나라는 메데 파사라는 신흥 국가에게 망하게 될 것이고 벨사살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그야말로 그 왕과 나라가 끝장이 나 버린다는 하나님의 저주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 [메네]라는 뜻은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벨사살 왕의 나라와 일생이 끝이 나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각 사람마다에게는 하나님의 정해진 날을 두셨습니다. 그 날이 오면 아무리 권세가 큰 사람도, 아무리 큰 이상과 꿈을 가진 사람도, 아무리 덕망이 높은 사람도, 아무리 많는 재산을 가진 사람도 그 모든 것에서 손을 떨고 일어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고개를 깊이 숙이고 두려움과 공포감에 가득 차 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땅 위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날 동안만을 살다가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너의 이 땅에서의 순례자의 여행이 끝났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 날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에게 하신 것처럼 너는 교만하다라고 하시면 그 후에 그 사람이 격여야 하는 고난과 고통은 영원히 계속되는 저주가 시작 될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그의 아비 느부갓네살이 교만하여 7년씩이나 땅을 기어다니면서 짐승처럼 풀을 뜯어먹고 사는 것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가 미쳐서 저 모양이 되고 말았구나 하며 조소하고 멸시했을 망정 하나님 앞에 교만하여 하나님의 종들을 괴롭히고 그의 신상을 만들어 온 백성에게 절을 하게 한 교만의 결과로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단5:22)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단5:23)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을 보고 알면서도 교만하여 하나님을 무시하면 벨사살 왕의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不朽(불후)의 (영원히 산다는) 감각이 있습니다. 죽는다는 생각이 거의 없습니다. 항상 그들 앞에서는 전 생애가 희망에 찬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40대에 이르면 반생을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인생을 심각하게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되면 지금까지 해오던 직업을 바꾸는 것을 고려해 보기도 합니다. "내가 이것을 나의 전 인생을 두고 해야할 것인가?" 라고 스스로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나 온 일들을 꼼꼼히 생각해 보기고 많은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욕망을 가지고 새 인생을 설계해 보기도 하고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挽回하고자 하는 또 다른 욕망을 가지기도 합니다. 아직도 앞을 바라보고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60대에 이르러서는 인생의 지나온 과거를 또 다른 각도에서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이 때가 되면 많은 중고등학교 때 동창들이 이미 가버리고 없으며. 그 자신도 연약함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무엇을 시도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작이 옛날과 같이 그렇게 재빠르지 못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젊은이들과 아이들이라도 부러워하게 되고 그들의 발랄하고 활기찬 모습에서 옛 날의 자기를 회상하는 즐거움에 빠지게 됩니다.
모세는 그의 노년기에 기도하기를 "우리의 사는 날을 가르치사 우리의 마음이 지혜롭게 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나의 사는 날이 다만 10년이나 20년 남았던지 또는 더욱 적은 날을 살아야할지도 모르는데 나를 도우사 그 날들을 지혜롭게 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실 수 없이 살아 갈 수만 있어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젊은 날에 늙은이의 생각을 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젊음과 지혜를 동시에 가지게 될 것입니다.
파우스트라는 작품을 쓴 퀘태는 늙은이의 지혜를 가진 젊은이의 모습을 파우스트라는 작품에서 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늙은이의 지혜를 가진 젊은이가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그런 사람이요,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윗도 그런 사람이었으며 솔로몬도그런 사람입니다. 바울이 칭찬한 디모데도 늙은이의 심중함과 지혜를 가진 젊은이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지혜를 가진 것은 그들의 지혜로움이 아니었습니다. 젊음은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이였으며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한 것이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II.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이다.
저울은 공의를 상징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생각 속에는 선과 악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올바른 처리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올바른 일은 열심히 정성껏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나쁜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런 올바른 사고 방식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가 바로 벨사살 왕의 경우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악한 것에 대해서는 거부를, 선한 것에 대해서는 수용 심을 가지는 것이 저울의 균형 잡힌 형태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기는 것이요, 우상을 버리고 악을 버리는 것이 균형 잡힌 인격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은 정반대의 불균형적 인격을 가지고 있어서 저울의 불균형으로 벨사살 왕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능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를 느부갓네살 왕이 7년 간 정신이상이 되었던 사실을 알고 있고 제 정신이 돌아왔을 때 하늘의 왕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이 선언한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그 할아버지가 성전의 금, 은, 기명들을 그가 높이 찬양한 하나님께 드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참람히 멸시하고 감각이 없는 금, 은, 놋, 목, 석으로된 신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들은 듣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우상들입니다. 그의 호흡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총을 감사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배신하였던 일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은 그의 교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들에게 흔하게 들리는 말 가운데 개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혁이라는 말은 새롭게 한다는 말입니다. 개혁은 참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좋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개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늘 하나님을 향해 개혁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하나님 자신이 개혁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여 개혁을 말합니다. 이것은 악마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현대 음악도, 대중 가요도, 문학 작품도 예술들도 이런 악마적인 개혁 운동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추석에 티비에서는 많은 영화가 상영 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들 가운데 많은 작품이 사단적인 요소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형무소에 죄수를 이용하여 엄청난 비리로 축제를 하는 형부소장이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잘 믿고 성경을 줄줄 외우는 사람이 다라든지, 어떤 범죄 조직을 비호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경찰 간부가 있었는데 그는 어떤 교회의 장로라든지 하는 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매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장면이나 메시지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강조되어 있어서 마치 그리스도인들은 다 도적이요 폭행자요 고문 경찰이라는 인상을 관객들에게 심어 주는 것입니다.
미국의 팝송 가운데 YMCA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70년대에 선풍적인 유행을 몰고 온 이 노래를 기독교의 청년 운동인 YMCA를 노래하는 것인즐 알고 즐겨 듣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는 그런 노래가 아니고 남성 동성연애자들이 함께 모여 즐기자는 사단의 노래인 것입니다.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런 사단의 간교하기 짝이 없는 수단에 넘어가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항 입으로 사단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망령되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수없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깨여 있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하면 강도가 드는 것처럼 사단이 어느새 우리의 영혼을 좀 먹고 우리들의 심령을 황폐하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호흡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우리의 생명이 그에게 달려 있으며 그가 유지하시고 우리의 날들을 그가 결정하십니다.
우리의 몸에 자율 신경에 의해 지배되는 근육이 있고 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근육이 있습니다. 우리의 폐나 심장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율 신경에 의해 지배되는 근육에 속하고 팔 다리를 움직이고 음식을 먹는 모든 것들은 뇌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 데로 지밸 수 없는 근육으로 이루어진 기관들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기관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관할에 두셨습니다. 우리가 심장이 뛰도록 생각하지 않아도 되며 "지금 숨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 놓으신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벨사살 왕의 입에서는 술의 악취를 풍기며 그 더러운 호흡으로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저주하는 말을 예사롭게 하였는데 바로 그가 저주하고 욕한 하나님께서 그의 호흡을 주장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른 체 어리석은 왕은 호흡도 못하는 금, 은, 철, 석으로 된 우상을 찬양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너의 생활을 저울에 달아본 바 되었으니 너는 부족하다"고 선언하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행한 악한 일들이 그의 행한 선한 행실로써 상쇄할 것이라는 실수를 자주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간사하기 짝 없는 생각과 행위를 저울에 달고 있는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여 스스로 속이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두 저울이 있습니다. 악에 대해서 선으로 상쇄해 보겠다는 저울이 있다면 다른 저울은 우리의 의와 예수님의 의에 관한 저울이 있다.
주님의 저울로 우리들의 모든 것을 달아보신다는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그것은 공평치 못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평하거나 불공평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결정할 심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능가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세인 보다 더 낳은 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하나님은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선언하셨습니다. 그곳에도 조금이라도 불순한 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의에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감이요 하나님이 받으시는 의는 예수님의 의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예수님과 같이 의로울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옮겨주시는 길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 만남을 의로 여기십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어 보려고 열심히 애를 쓴 바리새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루는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구세주이신 예수를 만나고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항복하였습니다. 후에 그가 율법아래서 도달하려고 했던 의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했던 것(저울 위에 내가 놓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인함이라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4-9).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저울에 우리들의 어떤 의로운 행위를 얻어 하나님의 저울에 무개가 실리도록 할 것인가? 아무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우리들의 의로운 행위도 우리가 지은 범죄에 대한 상쇄적 효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내 편 저울에 얹어 놓은 것은 얼마나 영화로운 것인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의로움이 반대편 저울에 있는 나의 모든 죄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III. 베레스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데와 바사 나라에 주어질 것입니다.
30절에 보면 "그 날 밤에 갈대아왕 벧사살이 죽임을 당했고 메데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벨사살과 그의 왕국의 마지막 길이었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이름도 사망자 명부에 기록될 것인데 하나님께서 "너는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면 우리들의 모든 것은 하나도 남김이 없이 우리가 바리지 않는 누구에게 선물로 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너는 넉넉하다”하시면 우리의 후손들은 “부족하다”는 사람들의 것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축복 속에 평안히 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부자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재산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너무 부해서 이 부를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꼬. 내가 오래된 집을 헐고 큰 창고를 지어서 거기에 축적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내가 너의 영혼을 불러 가면 너의 부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계획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에 하나님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포함시키되 하나님이 주도하시도록 계획을 세운다면 가지지 못한 것들도 가지게 되고 없는 것도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언제나 중요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