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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3:15-17
바울 서신을 보면 벗으라는 말과 입으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벗고 입는 행위는 인간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입고 벗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털갈이나, 허물 갈이는 있습니다만 사람처럼 옷을 벗거나 입는 일은 없습니다.
창세기 3:21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가죽옷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은 인간이 벗고 입는 일에 관여하셨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은 벗어버리라"고 했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에베소서 4:22-23에서 말씀했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병이 있던 사람이 병을 고침 받은 후에 건강에 더욱 힘써 그런 병에 다시 걸리지 않게 해야 하는 것처럼 은혜를 받았으니 다시는 은혜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이 지시하는 벗으라, 입으라는 행위는 단순한 의상 착용에 관한 교훈은 아닙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옷을 벗고 입는 패션의 발달은 인간만이 누려 온 문화 특권이기 하지만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벗고 입는 문제는 영적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에 물든 영혼의 옷은 벗어버리고 예수를 옷 입듯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고, [그리스도를 힘입으라]고 한 것입니다.
1. 우리가 벗을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에베소서 4:22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옛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는 해산 용어 가운데 [유산] [난산] [사산] [순산] 이라는 있습니다. 유산이란 임신 도중 임산부가 받은 물리적, 외적 충격이나 정신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난산이란 해산 과정이 순조롭지 못해 임산부가 태어나는 아기가 고통받는 것을 말합니다. 사산이란 문자 그대로 태어나는 아기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순산은 고통과 긴장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이 순조롭게 태어나 고고 성을 터트리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인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도 흡사합니다.
믿는 척하다가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산과 같습니다. 믿긴 믿는데 남을 괴롭히고,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자신도 고통스럽게 살면서 가까스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난산과 같습니다.
가롯 유다처럼 예수 따라 다니고 직분도 받고 집회 참석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 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영혼이 멸망하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사산과 같습니다.
그러나 시험과 연단을 잘 견디고 그리스도와 교회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잘 참으면서 마침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순산]한 사람인 것입니다. 교회 다니고 교인 행세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유산, 난산, 사산 신자가 되고 맙니다.
예수께서도 네 가지 밭에 대한 비유에서 길 같은 밭이나, 돌밭이나, 가시밭 같은 마음은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말씀하시며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거듭난 성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거듭나지 못한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벗어 버리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히 [벗으라]가 아닙니다.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벗는 것만으론 안된다는 것입니다. 벗은 것을 멀리 버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생 가치가 없기 때문에 폐기 처분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2를 보면 그것은 「썩어져 가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썩어져 가는 것은 도려내고 수술을 해야 새살이 돋아납니다. 썩어져 가는 것을 아깝다든지 아쉽다고 해서 그대로 놔두면 생명이 위험하게 됩니다. 나의 옛사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욕심과 탐욕, 인색, 이기심, 방탕, 시기, 질투, 음란, 도적질하는 것, 훼방, 분쟁, 고집등 입에 담기도 민망스럽게 더러운 죄악들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죄악의 옷을 입고 하나님을 찾았으니 그저 이 죄들을 회개할 뿐입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손이 깨끗하고 우리의 입술이 깨끗하고 우리들의 행위가 태양의 1000만배 보다 밝은 하나님의 눈앞에 정결하여 은혜를 구하고 큰복을 구해야 하거늘 그러지 못하고 정결한 척 하면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 응답을 안해 주신다고 염치 눈치도 없이 하나님을 못 마땅해 했던 죄를 다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회개를 「썩어져 가는 것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빨리 벗어 버려야 합니다.
가롯 유다도 옷 벗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벗질 않고 고집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감했습니다. 골로새서 3:5를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 부정, 사욕, 정욕, 탐심이라"고 했고 3:6을 보면 "이런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걸치고 있던 누더기를 빨리 벗어버립시다. 누더기에 묻어 있는 세균이 내 몸을 온통 썩게 만들기 전에 지금 벗어 던집시다.
이번에 정원장님도 자기에게 기도를 받을 때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재산을 하나님을 위해 받치겠다고 하던 사람이 약속을 4번씩이나 지키지 않다가 마지막에는 죽을 지경이 다 하니 그 하찮잖한 재물을 마누라와 딸에게 유산으로 준다고 했다가 병이 심해져 죽어 버리더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을 속이면서 집요하게 물욕에 빠져 살아가는지---- 그런 거짓말쟁이가 어떻게 천당에를 가겠습니까? 4번씩이나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그의 약속을 믿으셨는데 결국 하나님을 속이고 지옥에 가는 영혼이 가히 안타까울 뿐입니다.
2.무엇을 입어야 합니까?
에베소서 4:24에서는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고, 골로세서3:17에서는 "그를 힘으라"고 했습니다. 낡고 더러운 옷을 훌훌 벗고 나면 알몸이 됩니다.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나체주의자나 정신 착란증 환자일 것입니다. 벗었으면 다른 것을 입어야 합니다. 입되 벗어 놓은 것을 다시 입으면 안됩니다. 바울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를 힘 입으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고약한 마음을 고쳐 보기 위해 어느 날 속옷, 와이셔츠, 넥타이, 벨트, 양복, 양말까지 새 것으로 갈아입고 출근을 했습니다. 기분도 상쾌했고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그리고 그 기분이라면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100만원을 빌려 간 뒤 석달 째 종적을 감추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침에 갈아입고 , 나온 새 옷 때문에 그 사람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옷만 갈아입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한 새 사람이란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 예수의 소유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형 의학의 발달로 신체의 모든 부분의 성형이 가능해졌습니다. 쌍꺼풀 수술도 가능하고, 코도 높였다 낮추었다 하는 것이 가능해 졌고, 가슴 크기도 마음대로 조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형으로 안 되는 것도 많습니다. 작은 키를 10CM정도 크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더 안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격은 성형 의학으로 교정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인간의 영혼을 교정하고 바로 잡는 것은 어떻게 세상의 방법으로 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국가가 예수를 힘입으면 선진 국가가 됩니다.
교회가 예수를 힘입으면 은혜로운 교회가 됩니다.
가정이 예수를 힘입으면 평안한 가정이 됩니다.
중국에는 기공 술이라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220보트의 전기를 자기 몸에 흐르게 한 뒤 그 전류가 흐르고 있는 손으로 다른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입니다. 전류가 흐르고 있는 손으로 전구를 잡으면 그 전구에 불이 들어옵니다. 전류가 흐르는 손으로 사람의 손과 목덜미를 만질 때마다 강한 전기가 감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를 힘입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힘을 내가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전류가 내 몸에 흐르는 것처럼 그리고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예수님의 힘을 내가 받고 예수의 힘을 옷 갈아입듯 입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힘이 없지만 예수를 힘입으면 나도 힘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쓸모가 없지만 예수를 옷 입으면 쓸모 있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망설이고 미룰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누더기는 벗어버리고 예수를 힘입어야 합니다.
3. 그를 힘입고 난 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덧입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이번에 기도를 받으신 우리 성도들에게 나타난 증조가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를 덧입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조가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이제부터 말하려는 증조가 없다든지 약한 사람은 은혜를 덜 받은 사람일 수 받게 없습니다.
1)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15).
예수를 힘입고 새 사람이 되면 평강이 우리 삶속에 임합니다. 그리고 그 평강은 세상에서 얻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세상 평강은 기분이나 조건에 좌우됩니다. 그 길이도 짤막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기분이나 조건이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 길이 또한 영원합니다. 그리고 사람도 마귀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시131: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리고 주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 사람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눅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눅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이번에 집회를 참석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우선 마음에 평안히 있을 것입니다. 먹장 구름 같은 근심이 사라지고 답답한 심정이 없어지고 주님의 평안히 임하신 줄 믿습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가 대통령 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 어느 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으로 재직할 동안 보람도 있었고 일도 많았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많았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진정한 평안과 위로였다"고 평강은 예수 믿는 사람이 받는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선물입니다.
2) 감사하게 됩니다(15).
일반 회사와 교회의 다른 점이 여러 가지입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가 용어입니다. 일반 사회의 감사는 조사하는 것을 의미하고 교회는 은혜, 감사, 사랑, 믿음은 성도들이 은혜 받았을 때 사용하는 말씀들입니다. 특히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용어입니다. 정말로 거듭나고 예수를 힘입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감사가 차고 넘쳐야 합니다.
우리들의 감사는 좋을 때는 감사고 어려울 때는 불평이 되는 변신하는 감사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입으로는 감사를 하지만 마음으로는 짜증을 내는 외식 적인 감사가 되어서도 안되겠습니다. 말로는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드리라는 감사의 예물은 드리지 않는 얌체 감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감사는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자꾸 감사를 하면 덩달아 다른 사람에게도 감사할 일이 생기게 마련인데 혼자서 독식하는 감사가 되어서는 안되고 모든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감사가 되여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우리와 함께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늘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기도를 모으려고 이 땅에 두 천사를 내려보냈습니다. 한 천사는 그의 바구니에 사람들의 소원 기도를, 다른 천사는 감사 기도를 모으려 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되돌아 왔습니다. 한 천사는 바구니가 넘칠 정도로 인간들의 수많은 소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사 기도를 담아 오겠다는 천사의 바구니는 거의 비어 있었고, 그 천사는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를 하지 않거나 더디 하거나 인색하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벗어버리라는 것을 아직 벗어버리지 못하고 입으라는 것을 입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나는 키가 작은데, 나는 공부를 못하는데, 나는...,이외에도 많은 불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난 공부는 못하지만 운동을 잘하니까 감사합니다. 난 키는 작지만 건강하니까 감사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잘 둘러보면 감사할 조건이 생각 외로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하셨으니 이는 좋을 때는 물른이고 어려움이 있을 때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살후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둘째는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셋째는 물질로 표시해야 합니다.
3) 신령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령한 삶은 16-17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는 말씀이 풍성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이 넉넉하기 때문에 그 영혼이 배고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시끄럽고 불평이 많지만 배가 부르면 온갖 불평이 잠잠해지고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 짜증스럽고 교회 생활이 불평스런운 사람은 [내가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프구나]라고 진단하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둘째는 신령한 노래를 부릅니다. 찬송은 감사, 고백, 경배를 한데 묶어 드리는 곡조 붙은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중병을 앓고 있거나 탈진 상태에 빠진 사람은 소리가 작습니다. 찬송 소리가 작은 사람, 찬송 부르며 딴 잡념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영적 건강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를 힘입으면 찬송의 크기가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셋째는 모든 일에 예수의 이름으로 합니다. 기도도 예수 이름으로 찬송도 예수님께, 봉사도 예수 이름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옷 입으면 나는 감춰지고 예수가 드러납니다. 더럽고 추한 내 모습은 예수로 감싸지고 예수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예수 이름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입은 바 된 예수의 그 옷과 힘을 다시 벗어 던져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31:10에서 시인은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인하여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힘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블레셋 여자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 주색에 몸과 영혼을 망쳤습니다. 그의 힘은 온데간데없어져 버리고 개처럼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40:31을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힘있는 자는 살아남고, 힘없는 자는 마귀 밥이 될 것입니다.
예수를 힘입고 새 사람이 되면 영적인 세계에서 당당한 승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를 힘입고 승리합시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