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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7:1-7
한 크리스천이 체계적인 성경 공부를 하지 못해 매일 아침 되는대로 성경을 펼쳐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그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루는 성경을 펼쳤는데 '유다는…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말씀이 그날을 위해 주시는 것으로 여길 수 없어 다시 펼치니 이번에는 '너도 이와 같이 하라'였습니다. 한 번 더 펼치니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였습니다. 우리의 성경공부는 어떠합니까! 성경은 체계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사람이 옳은 일을 행하려고 할 때에 항상 걸림돌이 되는 것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악할 때에는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핍박을 받고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경건하게 믿음을 지키면서 살려고 하면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딤후3:12).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종교적 암흑 시대에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하여야 했습니다. 이는 핍박이 심한 때에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순교를 당하여야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영적인 능력 때문이었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최고로 타락한 시기였던 아합 왕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를 보호하시고 지키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이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불손한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외모는 아름다웠으나 마음이 사악한 시돈 여자 이세벨을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그녀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죽음을 당했고 바알 숭배가 국가적 종교로서 온 나라에 확립되었습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오직 칠천 명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참되게 남아 있었으나 이들은 왕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온 나라는 우상 숭배의 거대한 물결에 정복당한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길르앗 산지의 디셉이라는 멀리 떨어진 마음에는 아마도 가난한 농부였을 듯싶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의분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여호와의 영광을 위한 그의 질투심은 거룩한 열정으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이름을 위하여 그 백성들의 불의를 질책하고 그 불의한 행동을 멈추게 할 심판을 온 나라에 내림으로써 온 이스라엘을 무릎 꿇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약 5:17).
하나님께서는 그 디셉 사람의 간절한 외침에 응답하시어 그들의 거룩한 왕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로 되돌리기 위한 도구로 그를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이 막중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모든 권위를 부여받았습니다. 그의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내리지 않을 것이었습니다(1절).
하나님께 이익과 권능은 이 종에게 맡겨졌습니다. 그것은 그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으로 채비를 갖추고 그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아합의 귀에 선포하기 위해 사마리아로 나아갔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이와 비슷한 훈련을 거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의 이름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으로서 그는 B.C. 9세기경의 '아합' 왕 때부터 '아하시야' 왕 때까지 활동한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주고 북 왕국을 중심으로 예언 활동을 했는데 그의 가계나 출신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고 다만 '길르앗'출신으로서 '디셉'사람이라는 것만 소개되어 있습니다(왕상 17:1). 그는 열렬한 종교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불타는 애국자이기도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그의 봉사와 민족에 대한 신실한 관심은 분리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사무엘'이 시작했던 선지학교를 활성화시켜서 선지자 '엘리사'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그는 유다인들의 예언적인 기대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말 4:5에서는 '엘리야'가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다시 올 것으로 예언되어 있었고, 예수께서는 이 예언이 세례 요한에게서 성취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마 11:10). 또한 그는 육체적인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함으로써 에녹과 함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생애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사건은 '갈멜'산상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어느 신이 참 하나님이신 지를 가리는 사건, 즉 제물에 불을 내리는 방법으로 바알과 하나님을 대적케 하여 하나님만이 참신임을 증거한 사건으로서 그는 이 일을 통해 450여 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일시에 처형케 했습니다.
엘리야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아합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게 해주었습니다. 자기 앞에 하나님을 모신 자들은 지상의 어떤 왕 앞에서도 결코 비겁한 자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루터'와 '존 녹스'의 도덕적 중추를 굳건하게 받쳐 준 것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이 의식이었습니다. 오순절 이후 베드로와 요한도 엘리야와 같은 거룩한 담대함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행 4:19, 20).
엘리야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켰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불경한 자들의 마음에 닻을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도 그를 통해 현시되었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헌신을 받아들이셨으며, 당신의 거룩한 보배를 가득 담은 질그릇으로 삼아 주셨습니다(고후 4:6, 7). 그는 비밀리에 그의 하나님으로 인해 승리를 얻었으며, 이제는 공개적으로 상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종들 중에는 이렇게 뜻하지 않던 곳에서 불쑥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엘리야의 도덕적, 영적 존재의 온 힘은 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편에 있었습니다. 그 둘 사이에는 단일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구하는 모든 생각은 여호와의 임재하시는 불길에 의해 모두 말라져 버렸습니다. 여호와를 섬기고자 하는 자들이 자기 자신의 개인적 이익이나 명예에 연연할 경우 매우 불유쾌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함에 있어서의 용기와 능력을 얻는 비결은 그분의 뜻을 알아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데 있습니다.
종의 눈이 다음의 지시 사항이 무엇인지 기다리면서 주인의 마음을 쫓듯 엘리야의 삶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영혼도 그분께 시중들게 하십시오. '어느 쪽이라도 좋다'(Ready for either)라는, 제단과 쟁기 사이에 서 있는 황소에 대한 모라비아 사람의 금언은 매우 시사적입니다.
여호와께서 정하신 자로서 희생도 할 수 있고, 몸 바쳐 일할 수도 있도록 준비하고 계십시오. 엘리야는 결코 나태한 태도로 하나님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온 나라에 만연하고 있는 우상 숭배라는 죄에 대적하여 싸우기 위해 삶을 바친 사람의 두려움 없는 모습으로 그분 앞에 섰습니다. 우리도 이같이 우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마 5:16).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그는 마치 하나님의 권세와 천국의 재원이 자신의 처분에 있는 것처럼 자신 있게 이야기했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그에게 주어졌고 이슬과 비의 보배는 그가 하늘 문 열기를 기뻐할 때에만 쏟아질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실한 종의 손에 쥐어주시는 무섭고도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습니다.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는 자는 그 자신의 힘만 지닌 채 전장으로 보내지는 법이 없습니다. 엘리야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권위를 가진 자로서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말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엘리야와 같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막 9:23).
디셉 사람 엘리야는 아합 왕을 찾아가서 자신의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아합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우상 숭배를 일삼는 데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아합 왕을 찾아가 그와 같은 심판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아합은 우상 숭배에 빠져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아합에게 찾아가서 그러한 말을 증거한다는 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선지자로서 생명을 걸고 사명을 감당하여야 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예언을 증거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엘리야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증거하여야 할 선지자적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세상에서 선포하여야 할 말씀을 이미 성경을 통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씀을 선포하며 증거하여야 합니다. 불의를 보고 잠잠히 있으면 수동적으로 불의에 가담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유대인들의 외식된 신앙 생활을 비판하시면서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증거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우상 숭배를 행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죽음으로써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선포하려면 여러 가지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어떠한 핍박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행하고 선포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여야 하겠습니다.
출처/강성찬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