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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목사
우리는 분명 예수 믿는 크리스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감정이 충만하다고 믿음도 충만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말만을 앞세운 믿음은 요란한 빈수레이기 쉽습니다. 또한 믿음을 하나의 사상이나 정신세계로만 이해해서도 안됩니다. 믿음에 대한 많은 지식이나 이해 자체가 믿음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성경이 증거 하는 믿음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믿음은 행함을 통해 훈련되고 성장합니다. 운동선수가 한 팀에 소속되면 그 소속의 의미로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그러나 유니폼을 입은 것이 곧 훌륭한 선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소속이 인정되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거듭되는 훈련과 실전을 통해 선수로서의 실력이 쌓아져야 합니다. 행함 없는 믿음이란 경기에 출전하거나 훈련을 받는 일없이 유니폼만 입고 다니는 운동선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행동할 때 개발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고여 있는 물이 썩고, 사용되지 않는 기계에 녹이 슬듯이 행함 없는 믿음은 쇠퇴하고 연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행함을 통해 쓰여지고 활용되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값진 보물을 창고에 쌓아두고서도 행함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생활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믿음은 이같은 훈련과 검증의 과정을 통과할 때 참으로 자기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행함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믿음의 은혜와 능력이 증거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행동은 말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합니다. 우리는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행동합니다. 세계 제일의 거부이자 컴퓨터의 황제로 유명한 빌 게이츠는 지금도 매일 15시간 이상을 일한다고 합니다. 기도만 하고 그만이어서는 곤란합니다. 믿는다고 외치는 데에만 그쳐서도 안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믿고 생각하되, 모든 것이 내게 달려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행함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도 인정하시지 않으시고, 나에게는 성장이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카네기는 네 종류의 사람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네 종류의 사람이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무지한 사람,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보통의 사람,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나태한 사람, 마지막으로 아는 것을 행하지 않는 자기 기만적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서도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21:22)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말씀을 지키고 믿음을 행하는 일에 자주 실패합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실천적인 적용의지는 전혀 없이 그저 말씀을 듣는 것 자체만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무능력과 한계를 핑계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말합니다. 세째는 말씀을 듣거나 읽는 것을 하나의 의무나 형식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열심히 듣고 읽은 후에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착각하며 스스로 만족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인으로서 분명히 장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장애요인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믿음을 생활에 적용하고 행동화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저는 '믿음의 습관화'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믿음을 의식화하고 생활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믿음의 습관을 가지는 것입니다.
몸과 생활에 배어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반복되어 나오는 행동을 우리는 흔히 습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습관은 제 2의 천성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모든 면에서 항상 습관처럼 저절로 우러나올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에 따라 판명된 존재이다. 따라서 우수성이란 단일 행동이 아니라 바로 습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성품은 근본적으로 습관의 복합체라고도 표현됩니다. 또한 행복과 성공의 근거가 되는 올바른 원칙을 내면화한 것이 바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의 씨앗을 뿌리면 행동의 열매를 얻게 되고,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또한 습관의 씨앗은 성품을 얻게 하고, 성품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습관화의 위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습관이라는 밧줄을 매일같이 짜고 있으며 일단 짜여진 밧줄은 쉽게 풀어지지 않습니다. 습관을 정복하면 인생을 정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습관을 믿음으로 정복할 때 믿음의 행동화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을 우리 생활 가운데 습관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께로 관점을 바꾸라.
우리는 종종 "믿습니다"하고 교회 문을 나서면서 바로 염려와 근심으로 불안해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믿음은 환경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마음과 감정을 믿음으로 다스리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을 행동화, 습관화하는 데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 것은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일단 낙심이 되고 불안해지기 시작하면 믿음을 행동화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이 점에 있어서 우리의 관점의 변화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자신의 병 목록을 적어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검진을 끝낸 의사는 그녀에게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걸 확신했습니다. 단지 그녀의 병은 삶에 대한 그녀의 부정적인 자세, 이를테면 슬픔과 원통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녀의 쌓인 감정을 풀어주는 것이 해결책이 될 거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잠시 뒤 의사는 자신의 진료실에 딸려 있는, 온갖 종류의 약들이 즐비한 조그만 방으로 여인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빈 병으로 가득 찬 선반을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속이 텅 비어 있는 병들이 보입니까? 저것들은 제각기 서로 다르게 생겼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흡사하지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 병들이 그 안에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제 제가 그 중 하나를 집어서 안에다 사람 한명 쯤은 너끈히 죽이고도 남을 만큼의 양의 독을 집어넣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열을 내리게 하고, 욱신욱신 쑤시는 두통을 사라지게 하고, 몸에 잠복해 있는 박테리아를 퇴치하기에 충분한 만큼의 약으로 병을 채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결정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무엇을 선택하든 나는 그것으로 병을 채울 수 있습니다."
의사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매일은 이런 빈 병들 중의 하나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가짐, 혹은 사랑으로 그것을 채울 수도 있고, 반대로 지극히 해롭고 파괴적인 생각들로 그 병을 채울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바로 자신에게 달려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보통 감정에 지배당하기 쉽습니다. 마음이 우울해지고 걱정이 되면 표정과 말, 행동까지도 우울하고 절망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행동이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시시 때때로 찾아드는 부정적인 감정에 우리의 믿음을 내어 주어서는 안됩니다. 감정과 환경을 극복하고 믿음을 살리는 길은 먼저 믿음의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수록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행동을 유도하도록 하십시오. 가만히 앉아서 감정과의 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공언하고 믿음의 찬양을 드리고 웃고 기뻐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또 할 수만 있으면 남을 도와야 합니다. 믿음의 행동이 믿음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적극적인 믿음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회복시키고 지켜 나가도록 하십시오.
믿음의 습관화를 위해 전환해야 할 또 하나의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기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해 고생하고 있는 김 집사님이 있습니다. 기도도 하고 금연학교도 가면서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의 동기는 빨리 이 습관을 끊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오직 자신을 괴롭히는 죄책감을 떨쳐 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또 한 분, 탐식의 버릇이 있어 언제나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하는 정 권사님의 관심사는 오직 자신의 몸매와 건강에 있습니다. 나쁜 습관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관한 헌신과 소망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습관을 전환하려는 동기가 다분히 이기적인 것일 때 우리는 쉽게 그 습관에서 자유해질 수 없습니다.
믿음을 행동화, 습관화한다는 것은 단지 밖으로 드러난 몇 가지 나쁜 습관을 고치는 기술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혹은 좋은 습관 한 두 가지를 늘리는 단순한 문제도 아닙니다.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본적인 경향이 바뀌기를 원하십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드러난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통증만을 다를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소로라는 학자는 "악의 이파리를 수천 개 잘라 내는 것보다 그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을 습관화하는 것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희생의 태도로 바뀌어질 때 우리에게는 참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우주의 중심부임을 설명하면서 모든 행성운동이 쉽게 파악되었듯이 우리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 맞추어 질 때 질서와 형통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현실과 연결되고 습관화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접고 무슨 일을 하든 동기를 나의 이기적인 모습을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어 보십시오. 그러면 진정 믿음의 성공자가 될 것입니다.
둘째, 인생의 표지판인 행동원칙을 만들라.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 잭 웰치 회장은 경영철학과 행동원칙이 분명함으로 성공한 분입니다. 그의 행동원칙과 경영철학 몇 가지를 보겠습니다. 먼저 종업원들의 팔, 다리만 아니라 그들의 두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업가는 자신의 '열차'에 탄 종업원들에게 종착역에 꿈이 있음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부서간, 조직간의 벽을 없애고 학습의 분위기를 만들어 거기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이용, 신속히 실행에 옮겨야만 21세기에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뚜렷한 가치관 없이 아랫사람을 압박해 목표 수치 달성에만 얽매이는 사람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원칙에 따라 삶이 습관화됨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모델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에 대한 원칙을 가질 때 우리 행동은 정확성과 일관성을 갖게 됩니다. 행동원칙은 어려운 상황이나 흥분된 감정 속에서 주요한 결정을 할 때 혹은 어떤 일을 판단할 때 소중한 가치와 기준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혼란이나 갈등의 범위를 줄이게 하고 목표를 향하여 명확히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들은 얘기로만 길을 찾아가는 것과 정확하게 그려진 약도를 가지고 길을 가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다릅니다. 또 표지판 없는 길을 간다면 만나는 사람마다 길을 묻고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곳곳에 표지판을 세워두면 우리는 손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행동의 원칙은 이렇게 우리 인생의 약도이자 표지판 역할을 해줍니다.
우리 행동의 근본적인 원칙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원칙을 세워놓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인생의 행동원칙만 철저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행동원칙을 세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인생철학 신조를 자기 사명선언서로 작성하는 일입니다. 프랭클린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자기만의 과업과 사명을 가지고 있다" 고 말했습니다. 자기 사명선언문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즉, 성품적인 면과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 하는 업적에 관한 사항이 기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와 행동이 바탕을 두고 있는 가치와 원칙에 초점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인이 특히 안전한 이유는 바로 성문화된 헌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문서화된 개인헌법이라 할 수 있는 자기 선언문을 갖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려 하며,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변함없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와 원칙이 습관적으로 자리를 잡을 때 다양한 상황에도 믿음의 행동으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시험을 마치고 대학을 꿈꾸는 수험생은 더더욱 이러한 자기 사명선언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믿는 자로서 자기 사명선언서가 있습니까? 없다면 이 기회에 인생의 약도이자 표지판인 행동원칙을 만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마치 비전에 따라 움직여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모든 일을 한가지씩 하라.
한꺼번에 우리 생활의 전부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단번에 나쁜 습관들을 청산하고 믿음을 습관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믿음을 생활화하기로 결단하고, 관점을 분명히 하고, 행동원칙을 가졌다면 이제는 한 가지씩 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시간을 내어 자신의 습관과 생활 태도를 천천히 점검해 보십시오. 누구나 고쳐야 할 나쁜 습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주 화를 낸다거나, 무슨 일이든 뒤로 미루는 나태한 태도, 항상 자기만을 앞세우는 이기주의, 시기와 질투가 잦은 마음, 비판적인 말투 등도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흡연이나 음주, 혹은 부정한 정욕과 같은 습관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21절에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반복되고 지속될 때는 이미 나쁜 습관으로 우리 생활에 깊이 자리잡은 것입니다. 탐욕, 오만, 분포, 근심, 불안 같은 것들을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들이 믿음의 행동을 방해하는 쓴 뿌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버려야 할 습관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십시오. 그리고 그것들에 일일이 이름을 붙여서 정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모지에 적어 항목화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헛된 생각을 자주 하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잘못된 생각들에 환상, 망상, 상상 등의 이름을 붙여서 정리했다고도 합니다.
믿음의 습관화에 성공하려면 대상이 분명해야합니다. 무슨 행동을 어떻게 해나가겠다는 구체적인 파악과 이에 대한 작전이 필요합니다.
1973년 일본 마이니치 마라톤에 1972년도 뮌헨 올림픽 우승자였던 프랭크 쇼터가 출전했을 때의 일입니다. 선두로 질주하던 그는 레이스가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때쯤 잠자기 배를 움켜쥐더니 시민들이 흔들어대는 깃발을 차례로 찢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코스를 이탈하자마자 갑자기 풀밭에 주저앉았습니다. 복통이 나서 급한 용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찢어간 작은 깃발은 화장지 대신 사용되었습니다.
관중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용무를 마친 쇼터는 아랑곳없이 다시 코스로 돌아와 경기에 임했고 그 대회에서 2시간 12분 3초라는 대회 신기록으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88년 미국 마이너리그 A팀인 발린턴 대 블루필드 전의 이야기입니다. 양 팀은 9회를 다 치르고도 점수를 내지 못해 2-2인 상태로 연장전에 들어갔고 양 팀은 계속해서 점수를 내지 못했습니다. 참다 못한 관중들은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27회 초가 되어서야 블루필드가 1점을 올려 경기는 3-2로 종료됐으나 시간은 무려 8시간 16분이나 흘렀습니다. 경기가 종료된 공식 시간은 새벽 3시 27분. 이 게임은 사상 최장시간 게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드라미틱한 스포츠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말해 주려는 것입니까? 성공하려는 대상이 분명하면 어떤 부끄러움도 참을 수 있다는 것과 끝까지 인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분명한 대상을 가지고 하나씩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외국어 공부가 한가지 언어에 능통하게 되면 2개 국어, 3개 국어로 늘어가는 일이 손쉬어 지듯이 믿음의 습관화도 한 가지에 성공하게 되면 가속도가 붙습니다. 따라서 일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고쳐가고 바꾸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제 믿음을 현실로 연결하려고 결단하시는 분은 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은 분명한 대상을 가지고 한가지씩 이루어 가기 때문입니다.
넷째, 도움을 요청하라.
캐나다의 대 실업가 노리오 로이 크람프는 처음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크람프가 캐나다의 태평양 철도회사에 개찰 안내원으로 입사한 것은 그의 나이 16세 때의 일이었고, 최하급 말단인 그 자리에서 관리직인 부지배인으로 승진된 것은 43세 때의 일이었습니다. 무려 27년 동안 그는 개찰 안내원이라는 최말단 하위직에서 일했던 것입니다. 당시 그 회사에서 크람프처럼 오랫동안 말단에서 일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10년, 늦어도 15년이면 간부직으로 승진했기 때문이다.
물론 크람프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저학력자였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27년은 이해할 수 없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료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한참이나 경력이 뒤진 후배들에게도 추월 당하여 그들을 상사로 모셔야 했습니다.
처음으로 그의 후배가 상사로 발령받아 부임하던 날, 사람들은 크람프가 사직서를 쓰고 출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다음날 가장 일찍 출근한 사람은 바로 그였습니다.
그는 27년만에 관리직으로 승진한 이후, 서서히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다시 13년 만인 56세에 그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장 취임식장에서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다만 완행열차를 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느리게 달리고 있지만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고 믿었지요."
그렇습니다. 믿음의 습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분명한 것은 생활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나 아닌 다른 도움이 필요로 됩니다.
먼저,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위에서 강조한 바와같이 믿음의 습관화와 행동화는 인격적인 변화와 근본적인 태도의 전환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17절은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좇아 살다보면 그 과정과 결과로 육체의 일은 물러가게 됩니다. 성령을 좇는 것과 습관적인 죄를 깨뜨리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고백해야 할 죄나 잘못된 태도들을 시인하도록 하십시오. 변화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할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겸손히 구하십시오. 성령님께 여러분의 감정과 상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표현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태도와 습관에 대해 하나님과 함께 상의해가면서 풀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태도는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갈급함입니다. 성령을 좇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하는 소원과 헌신의 태도를 하나님은 찾으시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도 기꺼이 요청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깊은 시름에 빠졌을 때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 세 사람에게 특별히 기도를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신적 권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동료와 이웃 특히 믿음의 친구와 가족들의 중보기도와 위로는 지속적으로 큰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고 또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열린 마음이 될 때 변화는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기도와 위로를 통해 자기 중심적인 경향과 고집을 꺾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한 몸의 지체로서의 사역이 가능하게 됩니다. 믿음의 형제들 없이 신앙을 잘 지켜 나가기란 어렵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서로의 영적 상태를 도와주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믿음의 형제들의 도우심으로 믿음이 현실에 연결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