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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필도 목사 (누가복음 2:8-14) 2005.12.12 조회 : 179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나신 날을 축하하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제나 이때만 되면 전 세계는 평화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되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축하하며 기뻐합니다. 그런데 금년도 예년과 다름없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예수님을 안믿는 사람들까지도 모두가 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하시는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밖에서 한 밤중에 양떼를 지키고 있는 목자들에게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서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상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본문 10-11절)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나서 홀연히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 하는 큰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습니다. 참으로 생각만해도 꿈만 같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예루살렘 사람들은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 메시야가 나셨다는 말을 듣고 소동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밖에서 한밤중에 양을 치던 목자들은 천사들이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을 전하려 왔을 때 크게 무서워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백성들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야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백성들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야가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천사들이 찾아왔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즐거워해야할 터인데, 왜 이렇게 소동들을 하고 왜 이렇게 무서워 떨었을까요? 그 이유는 많이 있겠으나 중요한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1)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살지를 못하고 죄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이 기쁜 소식을 들었지만 오히려 소동을 하고 두려워 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시장에 가면 돌아오실 때 무엇을 사가지고 오실까 고대하며 기다리지요. 그러던 중 드디어 엄마가 오시면 엄마야! 하고 뛰어나가서 반가이 맞이합니다. 그런데 이날은 아이가 안 나타나는 것이예요. 이상해서 아무개야 어디 있느냐 불러봐도 대답이 없어요. 왜냐하면 그 아이가 독을 하나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엄마가 왔을 때 기쁨으로 맞이하고 싶어도 잘못이 있어서 야단맞을 것을 생각하니까 무서워서 다락 한 구석에 꽁꽁 숨어 나타나질 못했던 것입니다.
2)메시야를 만날 준비가 안돼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평소에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바르게 살던 성도들은 기뻐하며 즐거워 찬양하면서 주님을 영접할 것이지만 밤낮 죄를 물마시듯 마시고 죄 가운데 살면서 예수님 맞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살던 사람들이라면 두려워 떨거나 큰 소동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는 그러한 분이 한분도 안 계실 줄 믿습니다.
이와같이 밖에서 한밤중에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천사는 말하기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크게 기뻐할 만한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크게 기뻐할 만한 소식이 무엇일까요?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우리를 위하여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는 소식입니다.
매년 성탄절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그러나 기뻐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면 술집 주인이나 장사하시는 분들은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돈벌 생각을 하고 기뻐할 것이고 철없는 아이들은 먹고 마시고 재미있게 놀고 선물받을 생각을 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탄절이 오면 왜 기뻐하십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참으로 기뻐해야 할 이유는 이 세상에 구주(메시야)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17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심판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18절) [누구든지]입니다. 죄가 적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죄가 적든지 많든지 누구든지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했든지 좋은 일을 전혀 하지 못했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구원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던 강도 중에 오른편 강도는 옆에 계셨던 예수님과 몇 시간을 같이 지내는 동안 이분이 말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죽기 불과 얼마전인데 그 중 한사람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믿게 된 것이지요 평생 죄를 범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순간에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주여 나를 기억해 주시옵소서” 했습니다. 염치가 없기 때문에 다른 부탁은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강도질이나 하고 못된 짓만 한 그런 죄인이지만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 멸망치 않으며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며 구원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크게 기뻐할 만한 소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가 받게 된 축복은 너무나 크고 많습니다.
(1)무엇보다도 귀한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복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죄가운데 삶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원수가 되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마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19-22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을 예수 안에 거하도록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에베소서 2:11-18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목적을 두가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화목하게 하고, 둘째,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화평이 이뤄지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2)모든 저주에서 속량함을 받게 되는 복입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본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복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저 버리고 죄를 범하므로 말미암아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16-17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간교한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따먹었을 뿐아니라 자기 남편에게도 주어서 먹게 하였습니다.(창세기 3:1-6) 그래서 창 3:17-19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렇게 책망을 하십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수되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된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말씀을 잘 아시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복을 받고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모든 저주가 너희에게 임하며 미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인간은 모두 다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저주를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그 뿐만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누구나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살면 아브라함과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7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고 했고, 3:9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라고 했으며 3:29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믿음으로 그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모든 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어찌 우리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게 되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귀한 축복이요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고 또, 로마서 8:32, 35, 39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사랑 가운데 최고의 사랑은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랑입니다(요한복음 15:13). 그런데 로마서 5:3-8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친구를 위해 죽은 것도 아니요 죄인들을 위해서 죽어주셨다고 했으니 이것이 보통 사랑입니까?
그러므로 요한일서 4:9-11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고, 3:16에도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3:17이하에 보면 아주 구체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정도로 사랑해야 하겠지만 그 정도로는 못한다 하더라도 궁핍한 형제가 있으면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한 마음으로 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한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도 책망 받을 것이 없으니 담대하게 설 수 있고 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게 되니까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으리라 믿습니다.
사랑 가운데 최고의 사랑은 대신 죽어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땅에 보내주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 크신 사랑을 생각할 때 어찌 우리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 날을 기뻐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4)영생을 얻게되는 복입니다.
요한복음 10:10에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으며, 6:38-40에 보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 것이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지는 것입니다(요한복음 5:24).
또 요한복음 10:28-29에 보면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셨는데 아무도 우리를 빼앗아 갈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까? 절대로 원수 마귀가 빼앗아 갈 수가 없고 저와 여러분은 영생을 누리게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1-3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리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뻐합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진심으로 뜨겁게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