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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종 목사 (요한복음1장42절) 2006.05.16 조회 : 76
월트 디즈니는 쥐를 포근하고 사랑이 넘치는 동물로 마음 속에 그렸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자기 마음속에 그린 대로 쥐를 가지고 평화와 박애의 상징인 미키마우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이것을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고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기를 잡던 평범한 한 어부 시몬을 보고, 흥분에 찬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1:42) 사람들의 눈에 시몬은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만 예수님의 눈에는 시몬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눈에 시몬은 장차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큰 반석 베드로로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관점에서 시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청년 때 자신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신의 앞날에 대한 꿈과 준비가 달라집니다. 평범한 시몬으로 내 앞날을 준비하고 기대할 것인가? 아니면 큰 반석인 베드로로 내 앞날을 준비하고 기대할 것인가? 이 결정은 청년 때, 다른 어떤 결정보다도 중요한 결정입니다. 이 결정은 당장 시간을 택하고, 당장 돈을 택하고, 당장 어떤 학과를 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 때, 예수님이 요한의 아들 시몬을 바라보았던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현실의 관점이 아니라 비전의 관점에서 시몬을 바라보았다. 예수님은 비전의 관점에서 시몬을 바라보니까, 시몬의 앞날이 보였고, 시몬이 아닌 베드로의 모습으로 보인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대로만 자신의 앞날을 바라보는 청년은 위대한 인생을 만들어 갈 수없습니다.
그렇다면 비전의 관점에서 내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가? 첫째는 자신을 ‘현재’가 아닌 ‘장차’의 관점에 바라보는 것이다. 앞날에 대한 환상으로 가슴 설레야할 청년들이 현실의 굴레 속에 갇혀있으면 좋은 비전을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 장차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과거와 현재 그 자체가 청년 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원가회계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고려하지 말아야할 원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지불된 원가인 함몰원가(sunk cost)입니다. 이 원가는 미래의 의사결정에 결코 반영되어서는 안 되는 원가입니다. 그런데 청년 때 의외로 많은 청년들이 지나온 과거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 자기인생에서 펼쳐질 ‘장차’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는 환상을 그리는 것입니다. 시몬이 장차 베드로가 되어 복음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시몬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그려져 있었습니다.
앞으로 시몬이 양육되어 성령의 사람이 되면, 시몬으로서의 인생이 아니라 반석인 베드로서의 값진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예수님은 바라보았습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장래에 대한 이런 환상을 그릴 때, 청년 시절의 현재가 더 진지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잡고 있어야 할 것은 과거나 현실이 아닙니다. 장차에 대한 환상입니다. 청년 때 이 환상을 잡지 못하면, 청년 때의 삶이 곤고해지고 방자해집니다. 청년의 때 비전을 가지고 자신을 재발견하기에 힘쓰십시오. ‘장차’와 ‘환상’의 두 비전의 기둥을 잡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