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밀레(Jean Francois Millet)
활동년도 : 1814~1875
작가소개 : 프랑스의 화가
노르망디 지방 그레빌 출생.
1833~36년 셰르부르에서 그림 공부를 하다가 37년 장학금을 얻어 파리로 진출하여 P.들라로슈의 제자가 되었다. 루브르미술관에서 푸생, 르냉, 샤르댕 등의영향을 받았으나, 도미에의 작품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48년 살롱에 출품한<곡식을 키질하는 사람>(루부르미술관 소장)은 그 후 농민생활을그리는 계기가 되었다.
48년 살롱에 출품한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루브르미술관 소장)은 그 후 농민생활을 그리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49년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으로 이사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대지와 맺어져 있는 농민생활의 모습과 주변의 자연풍경을 그렸다. 이 시절에 T.루소, C.코로 등과 친교를 맺고, 빈곤과 싸우면서 진지한 태도로 농민생활에서 취재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여 독특한 시적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품을 확립,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바르비종파 화가들과는 달리 풍경보다은 오히려 농민생활을 더 많이 그렸다. 그런 가운데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종교적 정감이 감도는 서정성으로 친애감을 자아내고 오늘날까지 유럽 회화사상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만년에는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아 화가로서의 영광을 누렸으며, 68년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중 <<씨뿌리는 사람>>(50), <<이상줍기>>(57). <<걸음마>>(58), <<만종>>(59) 등은 발표 당시부터 주목을 끌었으먀, 만년의 가작 <<봄>>에는 빛의 효과에 있어서 인상파를 예고하였다. 그 밖에 <<우유를 짜는 여인>>, <<저녁기도>>, <<실 잣는 여인>>,<<괭이 가진 남자>>, <<젊은 어머니와 아기>> 등이 있고, 소묘와 판화 등의 작품도 많다.



작품명 : 파르당 부인의 초상
제작년도 : 1841
: 캔버스에 유채
: 73.3x60.6cm
: 프랑스 . 개인 소장
: 1837년 고향 세르브르의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나온 밀레는 들라로시의 아틀리에에서 지도를 받는 한편, 루브르를 자주 방문하면서 주로 미켈란제로와 푸생 등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고전 작품을 연구했다. 그가 처음으로 살롱에 입선한 것이 40년이니까 파리에 나온 지 3년 후가 되는 셈이다.
이 시기 밀레의 작품은 주로 초상화와 신화(神話)를 테마로 한 그림들이었으며, 검은 색을 주조로 하면서 백색의 효과를 살리는, 전통적인 수법을 주로 사용하 고 있었다. 이 작품은 고향 세르브르에 돌아와주문받 은 초상화 가운데 하나로, 검은 색을 기조로 하면서 뉘앙스가 풍부한 수법을사용, 인물의 내면의 섬세한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태도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작품명 : 아가씨
제작년도 : 1844~5
: 캔버스 . 유채
: 캔버스
: 시카고 미술 연구소 소장
: 밀레의 초기 작품인 <젊은 여인>은 작가가 대단히 호감을 갖고 취급한 주제로서 빈민계급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구성상 27세기 네덜란드 회화와 같은 암시적 의미를 그리고 있는 풍만한 이 여성은 느긋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검은 바탕에서 떠오른 것 같은 시골풍의 친숙한 머리는 옆기둥이 잘 받쳐 주고 있다. 밀레의 밀치는 자유롭게 약동하고 있고 잿빛의 효과적인 배경은 여인의 살갗을 한층 돋보기게 하고 있다.



작품명 : 채석장
제작년도 : 1847
: 캔버스 . 유채
: 74x60cm
: 오하이오 톨레도 미술관 소장
: 농민화와는 다소 다른 소재의 그림이지만,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티브의 애착은 밀레의 작품 밑바닥을 관류하고 있다. 후기의 농민화에서 보는 정태적(靜態的) 묘사와는 달리, 여기서는 동적(動的)이면서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해 보이고 있다. 돌 틈바구니에 꽂은 지렛대에 매달려 있는두 인물의,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동작은 화면에 사선(斜線)으로 달리는 시각적 이동으로 인해 단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 시기 밀레는 특히 미켈란젤로가 묘사한 인물의 데상에 관심을 기울 였는데, 그것은 인간의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고통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밀레의 작품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활기와 박진감을 주고 있다.



작품명 : 귀가중인 양떼
제작년도 : 1846
: 캔버스 . 유채
: 46x38cm
: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 초기에서 점차 농민화로 전향해 가던 중간쯤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그런만큼 이 작품엔 누드화를 주로 다루 었던 시기의 제반요소와 농민화로서의 소재적 관심이 함께하고 있다. 아이를 업고 있는, 상의를 벗은 여인의 모습은 누드화의 연장 선상에서, 그리고 오른편으로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양떼는 농민화로서의 연결을 시상해 주고 있다. 아이를 업은 여인과 어깨에 농구(農具)를 진 남정네와 양떼를 몰고있는 앞쪽의 아이가 가운데 공간으로 집중되면서, 한 가족의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의 밀도를 엿보여 주고 있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양떼들이 화면 가운데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비로소 농민화가 밀레의 세계가 확립되어진다.



작품명 : 수 욕 (水浴)
제작년도 : 1848
: 판 . 유채
: 28x19cm
: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 밀레는 농민 화가로서의 자기 위치를 찾기 이전 초상화와 신화화(神話畵)를 그렸고,또 일련의 노동자들의 일 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 작품은 그 소재가 다소 예외 적이긴하나, 노동자들의 모습을 다룬 그림과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체의 억센형체감을 살리려고 한 의도가 노동자들의그림들과 일치된다. 작품은 남녀가 미역을감는 정경에서 취재된 것인데, 물에서 올라오는 여인을 남자가 안아서 끌어올리는모습이다. 두 인체가 마치 격투라도 벌이고 있는 듯한 억센 동감으로 표현되고 있다. 밀레가 미켈란젤로에게 매혹되었다고 하는 설이 이 그림을 통해 뒷받침된다.



작품명 : 어린 양치기
제작년도 : 1850~5
: 캔버스 . 유채
: 32.5x25cm
: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 밀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가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할 무렵 농가에 들어가 생애를 농민 화가로서 보냈다. 이 깊숙한 농민 생활의 체험은 그의 그림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입장이아니라 언제나 모티브 깊숙이 들어가 있기때문이다. 말하자면 몸으로 부터 우러나온 자연스러움이 그림 속에 배여 있다. 어린양치기의 모습과 양떼의 조화는 순진한 이미지의 동일성에서 밀레의 화인(畵因)을 자극한 것이 분명하다.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의 모습과 지팡이에 기댄 어린 양치기의땅과의 밀착된 관계가 돋보인다.



작품명 : 나뭇가지
제작년도 : 1850
: 캔버스 . 유채
: 37x45cm
: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소장
: 벌채한 나무를 두 사람이 운반하고 있는 이 그림은 인물에 비해 주변의 자연이 크게 설정되어 있는 특성을 엿볼 수 있다. 말하자면 자연 속의 극히 일부로서 인물의모습이 떠오르게 배치하였다. 나무를 끌어내리고 있는 두 시골 여인네의 마주 본 자세와 기다란 나무로 연결된 구성적 배려가기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밀레의 태반의 농민화들이 그렇듯이 여기서도 움직이는 인물들을 통해 노동의 실감을 전해 주고 있다. 더욱이 텁텁하고 난폭한 터치와명암의 대비를 통한 무대적인 화면의 구성은 농민들의 생활상을 리얼하게 묘출해 주고 있음을 말한다.



작품명 : 나뭇꾼
제작년도 : 1855
: 캔버스 . 유채
: 38x29.5cm
: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 <키질하는 사람>과 비슷한 구도의, 나무를패는 모습을 붙잡은 작품이다. 산 속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화면 가운데 나뭇군이 배치된다. 나뭇군의 앞과 뒤쪽 주변에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산 속에서 만난 평범한 나뭇군의 생활의 한 단면을 붙잡은 것으로, 쿠르베를 연상시키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는 리얼리스트의 태도가 역력하다. 나뭇군과 그 배경과의 관계, 원경의 숲과 앞쪽의 정경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명암의 강한 대비가 이 단순한 정경을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수평과 수직의 구성적 배려가 미묘하게 느껴지는 밀레의 독특한 시각이 있다.



작품명 : 건초를 묶는 사람들
제작년도 : 1850
: 캔버스 . 유채
: 54.5x65cm
: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 밀레가 바르비존으로 오면서 그 해 살롱에 출품한 작품으로, 점차 농민화의 전경을 드러내고 있다. 밝게 쏟아지는 햇볕 속에 건초를 묶고 있는 두 남자와 왼편에 건초를 긁어 모으는 여인의 모습은 일하는 즐거움과 노동의 신선함을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명암의 강한 콘트라스트가 주는 긴장감과 더불어 거대한 자연과 투쟁하는 인간의 숭고한 모습이 극적으로 각인되어 있다고 하겠다. 밀레의 농민화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요소 역시 자연과 인간의 대비적이면서도 조화 있는 관계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의 초상화 에서는 볼 수 없는 거칠고 투박한 표현이 농민화의 특성에 더욱 걸맞는 효과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작품명 : 누워 있는 누드
제작년도 : ***
: 캔버스 . 유채
: 33x41cm
: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 농민 화가로서의 뚜렷한 방향을 잡기까지 밀레는 한때 누드 그림도 그린 적이 있다. 초상화에서 농민화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커튼을 열어젖힌 안쪽 침대에 등을 돌리고 있는 나체의 여인 모습이 보인다. 침대의 흰 커버와 흰 이불 속에 드러난 알몸의 여인은, 그러나 그 정황에 비해 짙은 관능성(官能性)은 찾을 수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 중의 한 단면이라고나 할까. 모델로서의 누드가 갖는 흥미는 그렇게 드러나 있지 않다. 바라보고 있는 화가의 눈이 탐욕스럽지 않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초기의 초상에 비해 보면, 농민화에서 드러나고 있는 기법이 역력하다.



작품명 : 소와 농부
제작년도 : 1859
: 캔버스 . 유채
: 75x93cm
: 부르크 엔 브레스 미술관 소장
: <이삭 줍기>, <만종>, <양치는 소녀> 등에서 불 수 있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한 구도이다. 화면 3분의 2에 해당되는 대지와 3분의 1에 해당되는 하늘 부분의 안정된 구도에서 인간과 대지와의 밀착된 관계를 엿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만종>이나 <양치는 소녀> 와 같이 황혼녘의 들 풍경을 붙잡은 것이다. 역광(逆光)을 받은 소와 여인의 모습이 더욱 견고한 양감(量感)을 보여 주고 있다. <이삭 줍기>에서와같이 가난한 농부의 모습이 역력하다. 1859년 살롱에 출품하여 찬사를 받았으나,한편으로 이 해 살롱 평을 쓴 보들레르는 밀레가 그리는 농민은 너무도 비참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작품명 : 하루의 끝
제작년도 : 1865~7
: 캔버스 . 유채
: 59.6x73cm
: 뉴욕 개인 소장
: 이 그림은 원래 <하루 중 네 개의 시간>이라고 이름 붙은 4부작 가운데 하나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윗도리를 입고 있는 한 농부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예의 수평구도에다 대지에 우뚝 선 인물의 설정이 인간과 대지와의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황혼이 깃들고 서서히 저녁의 어스름이 덮인 대지를 걸어 가고 있는 하루 일을끝낸 농부의 표정은 실루엣의 견고한 양감(量感)을 통해 대지에 굳게 뿌리 박고 있는 느낌을 준다. 밀레는 점차 초상화는 거의 그리지 않고, 단지 일하는 농민들의 순간의 정경을 즐겨 다루었는데, '아름다움은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전체에, 또 어떤 주제의 액션에 어울리는 가운데서 빛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도 모티브의 기호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작품명 : 달밤의 목장
제작년도 : 1861
: 판 . 유채
: 39.5x57cm
: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 달밤에 양떼가 들어오는 목장의 장면이다. 달은 먼 지평선에 떠오르고 그 은은한 빛은 대지로 번져가는데, 목장으로 들어오는 양떼와 양 몰잇군의 검은 실루엣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밤의 야외 정경은 다소 특별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밀레는 이같은 모티브로 다룬 두 개의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하나는 1856년의 것이고, 또 하나는1861년 작인 이 작품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전작은 인물이나 동물이 하나하나분명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태반의 작품에서와 같은 견고한 조형성을 보여주는 반면, 후자의 이 작품은 달밤의 은은한 분위기가 화면 전체를 덮고 있어 더욱 시적(詩的)인 느낌을 주고 있다.



작품명 : 낮 잠
제작년도 : 1865
: 판 . 파스텔
: 72.x97.2cm
: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 일련의 농민화 가운데 하나지만, 이 작품은 여느 그림과는 달리 대범한 모티브 선택이면서도 다소 특이한 구도의 대담성을보여 주고 있다. 일을 마치고 낮잠을 즐기는 농부의 부부를 약간 아래쪽에서 비스듬한 구도로 붙잡고 있다. 발 쪽에서 비스듬히 상체가 보이는 인물의 포착은 어떤 포즈보다도 까다로운 것 인데, 밀레는 이 평범한 한순간을 포즈의 특이한 설정을 통해흥미 깊게 포착하고 있다. 남자의 상체에 기대어 자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반쯤 드러나 있는 정겨운 모습은 농가의 평화로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파스텔 특유의 경쾌한 데상 처리가 순간의 포착에 더욱 어울리는 것을 엿보여 준다.



작품명 : 다프니스와 크로에
제작년도 : 1865
: 캔버스 . 유채
: 231.1x131.5cm
: 도꾜 국립 서양 미술관 소장
: 롱고스 작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그리스의 전원 시적(田 園時的)인 소설 '다프니스와클로에'에서 취재된 그림 으로, 코르마르의 은행가 토마의 의뢰에 의해서 제작된 것이다. 사계(四季)를 나타낸 3점(봄, 가을, 겨울)의 타블로와 1점(여름)의 친정화 가운데 <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농민화가로서의 밀레에게는 다소 특이한 신화적 주제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초기파리 시대의 신화적 소재의 그림에서는 엿볼 수 없는 인물 이나 배경이 고전적인 완벽함을 보여 주고 있다. 밀레는 이 작품에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후에 몇 장의 소품으로 남기고 있기도 하기때문이다. 섬세한 필치와 아름다운 색채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작품명 : 자 , 입을 벌려요
제작년도 : ***
: 캔버스 . 유채
: 74x60cm
: 리르 미술관 소장
: 이 작품의 원제는 쪼아 먹다 [bwcquter]에서 나온 명사 'La becquee'이다. 어미새가 새끼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은 듯, 그러한 정경을 인간 세계로 가져 왔다. 마치 어미새가 새끼새에게 주둥이로 먹이를 먹여 주듯이, 어머니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숟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다. 자매인 세 어린이가 나란히 앉아 있고 어머니는 막 가운데 막내인 듯한 어린애에게 숟가락을 건네고 있다. 왼쪽 아이는 곧 자기 차례가 올 것을 대기하고 있는 자세이고, 오른쪽 아이는 언니답게 '자, 먹어.'하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부모와 자식간의 정애(情愛)가 실감있게 묘출되고있다. 밀레 자신의 가족이 모델이었을 것이다.



작품명 : 갓난 송아지
제작년도 : 1864
: 캔버스에 유채
: 81.6*100cm
: 시카고 미술관
: 바르비종의 화가들 가운데서도 밀레는 루소와 함께 이 그룹의 중심이었다. 밀레는 북프랑스의 한촌인 그루지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이 출신 성분은 그의 예술 생애에 기본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가 되었다. 농민의 화가라는 직업을 택한 것은 어쩌면 대혁명 후, 이른바 근대가낳은 새로운 공헌인지도 모른다. 밀레는 농민의 편에 선 화가라는 점에서 그 예술의 성실성과 독자성을 미술사에 기록하고 있다.
파리에서 폴 들라로슈에게 배운 뒤, 혼자서 작품 제작에 몰두했던 밀레는 얼마 후 바르비종으로 이주, 25년 이상을 그곳에서 지냈다. 이 <갓난 송아지>는 1864년 살롱에 출품되어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다. 전원 생활을 취한 주제는 수도의 일상 생활과는 현저하게 대칭을 이루기 때문에 파리에서 인기를 얻게 되는데 세기의 준간에는 그것도 산업주의 내지는 상업주의적 목적 때문에 좋아하게 된는 경향을 낳게까지 했다. 그리하여 밀레는 1868년,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작품명 : 이삭줍기
제작년도 : 1857
: 캔버스에 유채
: 83*111cm
: 파리 오르세 미술관
: <이삭줍기>는 <만종>과 더불어 밀레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 한다. 둘다 같은 시기에 그려진 작품으로서, <이삭줍기>는 1857년 살롱에 출품되어 찬부 양쪽의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보수적인 비평가는 그림속에 빈민급에 의한 혁명사상을 보고 비난했고, 중산 계급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역으로 진보적인 좌익계통의 비평가는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읽고 이것을 칭찬하고 환영했다. 그러나 염세주의자인 밀레는 그 이상의 현실적인 변혁을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가 여기에 그린 것은 여름의 노동이었고 노동에 의한 피로였다. 1849년 바르비종에 이주한 이래 그는 항상 네 계절의 농사에 친숙하게 접근했던 것이다. 바른쪽의 허리를 약간 편 채 서 있는 아낙네의 뒤쪽선이 한껏 멀리 뻗어나면서도 결국은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구도가 대단히 교묘하다.



작품명 : 만종
제작년도 : 1857
: 캔버스에 유채
: 55*66cm
: 파리 오르셰 미술관
: 이 <만종>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만종은 그러한 명성에 적합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 그림이 전전한 내력을 보면 흥미롭다. 벨기에의 바브르 남작이 밀레로부터 1천프랑에 사서 곧 벨기에의 대신 반 플라트에게 3천프랑에 팔았다. 그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게되어 그곳에서도 각지로 순회하여 명성을 올렸다.
그후 쇼사르가 프랑스를 위해 80만프랑으로 되돌려 샀다가 루브르 미술관으로 보내진 것은 1906년이었다.
밀레는 <씨뿌리는 사람><양치는 소녀> 등의 많은 작품에서 농민을 그렸는데, 그들은 바르비종에서 극빈 속에 땅을 갈고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분명히 밀레는 땅을 가는 사람들에게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습, 영원의 모습을 느끼고 빈고를 의미화하여 그련 나갔던 것이다. 밀레에게 인류라는 이념과 노동의 신성이라는 관념은 1848년공화혁명이 그에게 새겨준 사실이었다.
하루의 고단한 노동이 끝나고 저녁 기도의 종소리가 들려오자 젊은 부부는 마주서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 단순하기 작이 없는 화면은 인류의 영원한 모습, 바로 그것임에 틀림없다.
밀레는 이 작품을 <문학적인 감정보다는 음악적인 감정>이 한층 깊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작품명 : 양치는 여인
제작년도 : 1871~74
: 캔버스에 유채
: 70.9*91.4cm
: 시카고 미술관
: 밀레가 만년에 그린 이 작품엔 프랑싀 전원생활, 즉 시골티 나는 이른바 성서화, <추수하는 사람들의 저녁식사>의 묘사속에 이 화가의 약동하는 심장이 드러나고 있다. 밀레는 이러한 생활에 한사람의 이웃으로, 그것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갖고 대응했던 것이다. 불행한 별빛 아래 태어난 네덜란드의 하가 반 고호가 이러한 밀레의 화면에 심취, 그 콤포지션을 자기의 작품 속에 얼마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작품명 : 양치는 소녀
제작년도 : 1869~71
: 캔버스에 유채
: 162*112.4cm
: 보스턴미술관
: <양치는 소녀>는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밀레의 작품 72점 가운데 가장 대작인 동시에 가장 빼어난 작품의 하나다. 노동을 기품있게 취급한 회화는 파리의 부르즈와들에게는 충격이었지만 진지한 노동은 민주주의의 미국, 특히청교도들의 뉴잉글랜드에서는 환영받는 테마였다. 바위에 걸터앉아 마른 풀을 들고 있는 이 양치기 소녀에게서 가난의 미덕과 정신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밀레는 소녀를 밝은 배경 한가운데 배치하고 얼굴에 그늘이 지게 함으로써 한층 효과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