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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하라!(약4:5-10)
어느 뜻 있는 인사가 걱정하기를 '교육계는 난장판이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교무실은 싸움판이고, 교감은 눈치 판이고, 교장은 미칠 판이고, 학생은 놀자 판이고, 선생은 죽을 판이고, 교실은 난장판이다"
그러면 완전교육은 없는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성경 66권입니다.
딤후3:16-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현재 러시아는 65.999개의 초등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 교육에서 기독교 교육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미국의 수천만의 선교사들이 들어가 초등학교 성경교사 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여대생에게 "삼강오륜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삼강은 '대동강 한강 낙동강'이요, 오륜은 자동차 발동 네 개와 스피아 타이어 한 개를 합친 것이다"고 했답니다.
여러분! 인생 완전교육은 신앙교육밖에 없습니다. ◀제목소개!▶
우리의 인생 길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가까이 있어야 할 사람은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왜? 거기에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건도 그렇습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가깝게 있을 때 행복합니다.
사람도, 물건도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어야 할 것들이 멀리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은 허전하고 공허합니다.
오늘 날 현대인의 불행이 어디에 있습니까?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을 가까이 두지 못하고, 또 멀리 있어야 할 것을 가까이 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그것이 짐이 되어 불행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떨어져 있어야 할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 보니까 원수니 악수니 하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멀리 두어야 할 죄악을 가까이 하다보니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망가집니까? 멀리할 것은 멀리하는 결단이 신앙입니다.
현재 우리는 10년 전, 20년 전이나 반세기 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지식수준, 생활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소유가 풍성해졌고, 생활용품이 다양해졌고, 문화시설이 편리해졌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해지고, 편리해지고, 화려해졌습니다.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소외감과 패배의식과 낙오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가지, 가장 소중한 것을 가까이 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여호와를 가까이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주님을 가까이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만 나와 함께 하시면, 그분이 내 가까이 계시면, 그분이 나를 도와주시면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 삶의 인도자가 되시며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와 가까이 교재 하느냐에 따라 인격과 삶이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옛 충신은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백로가 물들까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에게 배우느냐? 누구를 따르느냐? 누구와 가깝게 지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도 신앙도 삶도 달라지게 됩니다. /믿/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가 능력을 받습니다. 힘있는 자가 함께 할 때, 힘이 생기고, 빛이 있는 자가 가까이 계실 때, 빛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과 멀어질 때는 어두움이 오고, 근심이 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멀리할 때, 하나님은 심판하셨습니다.
노아의 물의 심판, 소돔의 불의 심판,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당한 심판, 유다가 바벨론에게 당한 모든 심판은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멀어질 때 모든 시험이 오고 죄악이 옵니다.
여러 찬송가의 가사들도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은혜가 되고, 하나님과 멀어질 때, 죄에 빠지고 멸망에 빠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을 멀리 함으로 그 가정에 어려움이 왔고, 시험이 왔습니다. 아들 두 형제가 전쟁터에서 한날, 한 시에 죽었습니다. 엘리 제사장 자신은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의 며느리는 아이를 해산하다가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이 '이가봇'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떠나갈 때, 그것은 슬픔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있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가치가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73:28절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고, 오늘 본문 8절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모든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습니다. 약한 자가 하나님과 가까이 할 때 강해집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지만 하나님과 가까이 하다가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한나가 기도를 하는데 입으로 '속닥속닥' 그렇게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것을 보고 술 주정하는 것으로 알고 야단을 칠 정도로 그렇게 '증얼증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과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너무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과 짝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아멘/
여러분 중에 '왜 나는 그분이 가까이 계시지 않는가?' 이렇게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그 이유를 성경에서는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①죄가 많으면 하나님이 가까이하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시66:18절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②교만하면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멀리 있다고 생각되시면 이 두 가지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죄 중에 빠져 있지 않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는가? 내가 좀 안다고, 좀 배웠다고, 좀 있다고, 지위가 좀 높다고, 교만하지 않는가?'를 살펴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을 가까이 하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을 봅시다. 야보고 장로님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몇 가지의 귀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8절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사55:6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은 우리 옆에 가까이 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 때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잠8: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할/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수지맞는 쪽이 우리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우리가 얼마나 수지 맞는가? 본문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1. 성령의 사모함이 임합니다(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오늘은 세계 교회가 성령강림절로 주일을 지킵니다. 여기 '시기'한다는 말은 '뜨겁다'는 말로 불 붓는 마음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할/
①성령이 누구십니까?
⑴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⑵예수 그리스도를 처녀의 몸에 잉태케 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⑶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그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⑷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장사되었을 때 그를 죽음에서 일으켜 주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⑸선지자와 사도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신구약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⑹이 세상에 교회를 탄생케 하시고 그 교회에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하나님의 권세를 입혀 주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부가 하나님이요, 성자가 하나님인 것처럼 성령도 하나님이십니다.
②성령의 또 다른 이름은 무엇입니까?
⑴보혜사(요14:16): 글자 그대로 보호하여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환영하고 모시고 의논하고 같이 살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보호하여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⑵보혜사를 헬라어로 표현하면 '파라크레토스'입니다. 성령은 '옆에 와서 도와주는 이'입니다. 성령을 환영하고 모셔들이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성령님이 옆에 오셔서 도와주십니다.
⑶보증자: 롬8:15절 "너희는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 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여기 양자의 영이 바로 보증자라는 뜻입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보증하는 이가 보증하는 것만큼 돈을 빌려 받게 됩니다. 100억 담보를 보증하면 100억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1,000만원 보증을 서면 1,000 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보증하여 주시는 보증자입니다. 성령을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성령과 함께 살면 성경의 기적들이 다 믿어지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5병 2어로 5,000명을 먹이고도 12 광주리가 남아진 것이 믿어지면 성령께서 임재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가른 것이 믿어지면 내 안에 성령께서 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한 사실이 믿어지면 성령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 믿어지면 성령님이 내 안에서 보증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⑷능력자: 성령의 다른 별명은 능력자입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리라"
▶성령과 함께 살면 능력이 임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두나미스'라고 합니다. 이는 '다이나마이트'라는 말입니다. 무지무지한 힘입니다.
지금 이북이 핵을 3개 내지 4개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한 개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에 100배라는 것입니다. 히로시마 온 도시가 불바다가 되어 풀 한 포기 나지 않았습니다.
이북이 가지고 있는 핵이면 남한을 완전히 초토화시켜서 수십 년 동안 풀 한 포기 나지 않게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런 힘을 '두나미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은 파괴의 능력이 아닙니다. 축복의 능력입니다.
③우리가 성령 충만 받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⑴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어떤 환경과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반면 넘어지고 불안해하며 조그만 일에도 낙담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태산 같은 환란이라도 발로 누르고 일어날 수 있는 힘과
능력은 바로 성령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⑵성공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며,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않다고 약속합니다. 그럼에도 실생활에 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은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영이 임하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를 사로잡아 어떤 분야에도 뛰어나며 두각을 나타나게 됩니다.
⑶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 충만이 곧 승리의 원천입니다. 사탄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공격합니다. 사탄의 공격을 물리쳐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성령 충만입니다. 나 자신의 정욕, 세상의 불의, 그리고 사단의 권세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성령 충만함에 있습니다.
술 취하면 술에 지배를 받지만, 성령 충만하게 되면 성령의 지배와 통치를 받게 됩니다.
④성령 충만하지 못한 결과가 어떠합니까?
⑴우리 영혼이 병듭니다.
예배가 지루하고 답답하며 교회 나와서 봉사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봉사가 기쁨과 감격 속에 봉사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기도가 절로 나오고요,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말씀과 예배하는 즐거움이 영원토록 우리의 심령을 주장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로 믿습니다.
⑵인격이 병듭니다.
예수를 오래 믿어도 예수님 닮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이 찔림을 받고는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듣기 싫다고 귀를 막고 달려들어 돌로 쳐죽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했던 스데반 집사는 천사 같은 모습으로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⑶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남 미워하고 원망불평이 나옵니까? 성령 충만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믿음이 강건해 지고 견고해져 흔들리지 않습니다. 폭풍 같은 환란과 시련이 닥쳐와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는 믿음, 그것은 성령 충만해야 가능합니다.
⑷우리의 생각이 병들게 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면 하지 말아야 될 생각, 더러운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두 성령 충만해야 될 것입니다.
2.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6)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런데 어떤 자에게 주신다고 했습니까?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은혜는 '선한 것, 최상의 것, 아름다운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와 긍휼도 여기에 속합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약1:17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여기서 '내려오나니'는 현재분사로써 계속하여 지금도 내려주십니다.
그런데 이 축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며"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꺾어버립니다. 이 교만은 언제든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멀게 만드는 무서운 죄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과 그의 주권에 대적하는 죄입니다. 그런데 그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가 됩니다.
우리 교만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물리치시며 기도의 응답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물이 낮은 계곡을 향하여 흐르는 것처럼 겸손한 심령을 향하여 계속 흐르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교만은 마귀의 영성입니다. "내가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이런 사람들은 섬기는 자리에 서기보다는 항상 지배하고 다스리는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겸손은 주님의 영성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빌2장을 보면 우리 주님이 낮아진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땅에까지 낮아지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고, 결국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어 죽으셨습니다. 한도 없이, 끝도 없이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빌2:9-11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낮아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십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겸손합시다. 수입이 많아지고 생활이 넉넉해지더라도 겸손합시다. 우리의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경륜이 붙더라도 자신은 낮추십시오. 내가 나를 낮추면 하나님이 나를 높이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할/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십니다(약1:5). 하나님은 필요를 따라 은혜를 더해 주십니다.
히4:16절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 앞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본문에서 겸손한 자라 칭함은 하나님 앞에 점점 가까이 나아가는 특권을 말합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겸손한 자는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우리 모두 겸손한 자 되어 이 축복을 받으십시다!
3.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축복입니다(7).
'순종, 복종, 순복' 다 군대 용어입니다. 특히 순복은 군대 용어로써 이 말의 뜻은 포로가 무조건 항복하는 것을 뜻입니다.
우리의 교만한 이성과 논리에 종지부를 찍고 창조주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젊은이들에게는 이 순복의 명령이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어느 시대에도 비교 할 수 없는 반항의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자식이 부모에게, 학생이 선생에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반역을 일삼는 그런 세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눅2:51절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예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며 받드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의 말을 순종하는 것은 기본윤리입니다. 성도가 주의 종의 말을 순종하는 것은 복 받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하나님께 순종한 자들입니다. 그중 특히 아브라함과 노아는 그 순종이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⑴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명령문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다가 복의 근원이 되었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⑵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엡6:1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⑶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히13:17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⑷우리 서로 피차 복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엡5: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 충만한 성도는 자신의 말을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복종하는 잡니다. 그러므로 '순종, 복종, 순복'은 영성의 마크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자랑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겸손히 복종합니다.
▶순종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신28장은 축복 장과 저주 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2절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그런데 15절은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 즉 '아멘'맨 입니다. 고후1:20절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4.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마귀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귀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요10:10절 "도적(마귀)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마귀는 우리 것을 도적질 해 갑니다. 기쁨을 빼앗아가고, 능력을 빼앗아가고, 건강을 빼앗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빼앗아갑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여기 '대적하라'는 군사용어입니다. 군인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적군을 물리쳐야 합니다. 전쟁은 죽이느냐, 죽느냐 입니다. 사생결단이 있어야 승리합니다. 영적 전쟁이란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여러분! 마귀와의 싸움은 타협도 안 되고, 협상도 안 됩니다. 공산당들도 마귀의 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하고는 협상이 안 됩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합니다. 대적하기 위해서는 철통같은 무장이 필요합니다.
주님도 광야에서 시험하는 마귀를 향하여 "사탄아 물러가라"고 대적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야고보 장로님은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고, 베드로 사도는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고 벧전5: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마귀를 대적할 것인가? 엡6:11절이하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하십니다.
내 힘으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도 영물입니다. 우리가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태양으로부터 먼 곳은 한대지방입니다. 그곳은 겨울이 길고 날씨가 춥습니다. 그러나 태양으로부터 가까운 곳은 날씨가 뜨겁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공급이 어렵습니다. 그 결과 능력 부족으로 마귀에게 무릎을 꿇고 맙니다.
북한이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에서 미국은 철수하라고 떠들어대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력이 자신들의 적화통일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론 미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이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미군 철수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순간 마귀는 바로 내 곁으로 다가와 나를 자기의 종으로 함락시켜 버립니다.
여러분! 운동 경기에 지는 것도 속상하고 억울합니다. 한일전에 우리가 지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국가 간 전쟁에 지면 노예가 됩니다. 영적 전쟁에 지면 마귀의 종이 됩니다. 마귀의 종이 되면 마귀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합니다. 마귀는 실컷 부려먹다가 결국은 지옥으로 보내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마귀를 대적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벧전5:8-9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믿음은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성전과 가까이 하는 것이요 예배 시간에 나와 말씀을 받아야 믿음이 들어가고 기도할 때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믿/
5.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손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8절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이 말은 위생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 성결을 의미합니다.
구약에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에 손을 씻었던 것처럼 우리의 죄를 씻어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마치 더러운 손이나 피 뭍은 손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다음 손을 깨끗이 하라는 말씀은 우리들의 행실을 바르게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손으로 많은 죄를 짓습니다.
②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다가도 세상을 따라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아멘/
▶성결은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여기 성결하다는 말은 '단순한 마음, 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성결치 못한 마음은 더러운 마음인데 '두 마음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는 언제든지 우리의 마음을 둘로 갈라놓으려고 노력합니다.
여러분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것이요,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잠4: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주님은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닮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손과 마음이 깨끗하고 성결하게 됩니다.
6.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들은 '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도 난해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는 "너희들이 이제까지는 세상 즐거움에 살았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았던 인생들아 그것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바꿉니까?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여기 '우는 마음'은 '깨진 마음, 상처 진 마음'입니다.
세상 즐거움 때문에 히히덕거리고 자신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분주하게 계획을 세우는 자신을 향하여 "이 인생아! 세속에 빠져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 세상의 썩어진 것들이 진짜 기쁨이 아니며 그것은 마치 소금물처럼 먹어도, 먹어도 갈증이 나는 것인데 왜 어리석게 그러냐?"라는 음성입니다.
한 마디로 세속에 취해 있는 죄인 된 모습에 대해 슬퍼해야 하고, 애통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보면서 애통하고 우는 심령을 우리에게 하나님은 요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이 주간에도 여러분의 즐거움을 위하여 무슨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까? 그 즐거움은 지나가는 즐거움입니다. 그 즐거움은 언젠가 더 큰 아픔으로 바뀔 즐거움입니다.
참다운 즐거움이 아닌 것을 위하여 살았던 내 모습을 보고 하나님 앞에 원수 되었던 삶의 모습을 보고 슬퍼하고 애통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산상설교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7.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한 마디로 겸손하라는 말씀입니다. 겸손하지 않는 자는 절대로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냐? 교만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교만이 원죄의 뿌리다"고 했습니다. 교만이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또한 교만은 무식한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약한지, 내가 얼마나 초라한지, 내가 얼마나 무능한지,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몰라서 교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낮추라. 낮추어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요즘 '왕따'가 왜 생겼나? 따돌림을 받는 자가 왜 생기고 가해하는 자는 왜 생겼나?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 교만의 결과랍니다. "너는 특별하다. 다른 사람과 달라. 너는 최고야. 너는 천재야. 너는 제일이야" 이렇게 자라다 보니 모두가 공주인 줄 알고 왕자인 줄 압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애들이 자기와 같지 않으면 따돌리고 가해하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①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②하나님의 집, 즉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만날 수 있고, 기도 속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성전은 예배드리는 처소요, 기도하는 집입니다. /할/
시145:18절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시도다"
시63:8절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신다"고 했고, 시34:18절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출처/송수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