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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배의 축복을 얻는 비결 (창 26장 12-25절)
< 성도에게 주어진 문화적인 사명 >
사람들은 대체로 '돈 많은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돈도 귀하지만 예수님 믿는 것은 훨씬 귀합니다. 그렇다고 "돈은 필요 없어!"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을 외면하는 사람은 돈도 그 사람을 외면합니다. "돈이 뭐가 중요해!"라고 하는 사람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명예욕이 많은 사람입니다. 돈은 중요한 것입니다. 돈을 가치 있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돈도 좋은 곳에 잘 쓸 줄 압니다.
"돈을 우상으로 삼지 말라!"는 말과 "돈을 무시하라!"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돈을 무시하는 것은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삶은 영적인 허영이지 결코 사명적인 삶은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바른 삶은 돈을 잘 벌고 잘 쓰는 것입니다. 돈을 벌려고도 하지 않고 그래서 쓸 것도 없는 삶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기독교인의 문화적 사명을 외면하는 것이고, 별로 추천하고 싶은 삶도 아닙니다.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해 벌고 최선을 다해 쓰는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돈을 무시하면 인생이 알맹이가 없는 인생이 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돈을 제일로 여기면 인생이 부작용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제일로 알고, 돈을 사명과 비전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활용할 목적으로 돈을 번다면 그것은 장려할만한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앞세우는 철저한 신앙 안에서 돈도 벌고, 사업도 잘 하고, 인간관계도 잘 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새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복을 많이 받기를 원하면 복 받을만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13절 말씀을 보면 이삭이 농사하여 백 배의 열매를 얻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도 지금보다 백 배 이상으로 잘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백 배의 축복을 얻을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의 삶을 통해 몇 가지 원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유목민들에게는 육축을 먹일 우물이 큰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랄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메워버립니다(15절). 그러나 이삭은 포기하지 않고 또 팝니다. 그랄 사람들이 우물을 뺏어도 다른 데에 가서 또 우물을 팝니다. 그래서 이삭의 별명이 '우물 파는 사람'입니다. 그처럼 계속 포기하지 않고 우물을 파면 반드시 샘은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움은 힘든 것이지만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닙니다. 지나고 보면 다 유익한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72절 말씀에는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기도생활도 게을러지고, 충성심도 없어지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내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적은 고난 중에서도 큰 깨달음이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비전을 향해 나가다 보면 어려움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을 잃는 것은 약간을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은 것을 잃는 것이지만, 용기를 잃는 것은 다 잃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고 나아가면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와 더 함께 하실 것입니다. 어렸을 때 우리가 아프면 밤새 어머니가 우리를 지켜보시는 것처럼 우리가 힘들 때에는 하나님도 더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새롭게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두 사람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한 사람은 "더 못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조금만 더 가보자!"고 합니다. 얼마 후에 그들 앞에 무덤이 보였습니다. 포기하려는 사람은 "저들도 여기서 죽었구나! 이제 우리는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무덤이 있다는 것이 머지 않은 곳에 인가가 있다는 표시일 거야! 좀더 힘을 내게!"하고 말했습니다. 결국 인가를 찾아 살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렵습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너무 어려워 무덤이 어른거리고 죽을 것 같은 상황입니까? 죽을 것 같은 상황은 오히려 고난의 끝이 왔다는 표시입니다. 좀더 힘을 내보십시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축복된 상황에 오게 될 것입니다. 은퇴한다는 말을 영어로 '리타이어(retire)'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그 단어를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은퇴는 겁을 낼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것입니다. 은퇴를 잘 활용하면 지금보다 더 뜻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실패를 통해서도, 은퇴를 통해서도, 고난을 통해서도 더 큰 일을 이루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2. 양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 이삭의 농장은 100배의 결실이 있는데 블레셋 사람들의 농장은 그렇지 않습니까? 14절 말씀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불행은 그들의 시기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남을 시기하면 자기 영혼이 망하게 됩니다. 남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 시기하기보다는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문제는 저에게도 큰 기도제목입니다. 제 이웃 교회가 잘되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축하해준다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이기에 이 말씀은 제게도 필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누가 잘 되는 모습을 보면 그의 단점을 찾기보다는 장점을 찾아 본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시기심이 참 무섭습니다. 얼마나 잔인합니까? 광야에서 우물은 큰 재산이자 생명의 원천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물을 흙으로 메웠다는 것은 "너 죽고 나 죽자!"는 태도입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땅을 내놔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정도라면 대개 사람들은 사생결단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지냅니다.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지만 이삭은 그냥 양보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그곳에서 우물을 파니까 샘이 터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19절).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보(讓步)하면 진보(進步)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랄 목자들이 와서 또 그랄 골짜기의 우물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20절). 그래서 또 양보하고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가 비굴하거나 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며 마침내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평화를 맺자!"고 제의해 옴으로 결론이 나게 됩니다(28-29절). 하나님은 양보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잘 보면 선교하는 마음, 구제하는 마음도 양보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이만큼 가지고 있으니까 당신에게 저의 것을 조금이라도 나눠드리기를 원합니다"고 하는 양보하는 마음이 있기에 선교하고 구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양보하는 자에게 반드시 더 큰 축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축복하실 지는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한 계산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로 계산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의 모든 양보한 것들을 다 계산하시고 몇 배의 축복을 되돌려주실 것입니다.
3. 개척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삭이 어떻게 양보할 수 있었습니까? 그에게는 개척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가서 새롭게 개척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개척정신이 없는 사람은 남의 것을 뺐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개척정신이 있는 사람은 넉넉하게 양보합니다. 그래서 개척의 삶은 수고와 땀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그 수고와 땀은 반드시 성공의 밑거름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초라하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는데 우리가 그렇게 볼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비전을 가지면 우리의 재능이 초라해 보여도 그 초라한 재능마저 놀라운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적어도 비전을 위해 사용되면 그 적은 것으로도 큰 영향력을 미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질도 비전을 향해 있으면 그 기질조차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멋있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천풍언은 끝내주는 성격파였지만 그가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살았을 때 그는 '빈민촌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타락의 도구가 되고, 과시의 도구가 되고, 나를 높이는 도구가 되고, 남에게 아픔을 주는 도구가 되면 졸작 인생이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 주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때 우리의 인생은 걸작품 인생이 됩니다. 우리가 정신 차리고 비전을 위해 달려가면 우리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지 못할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초라하게 보지 마십시오. 자신을 필요 없는 사람으로 보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나를 필요 없게 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기대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분당 사랑의 교회의 같은 식구로 있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큰 일을 이루고자 계획을 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문을 열고 나서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재능이 부족한 사람도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건강이 부족한 사람도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물질이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받은 천국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께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결코 소극적으로 살지 마십시오. 개척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꿈과 비전을 꼭 붙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문제 속에서 포기하면 안됩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가고 또 가야 합니다. 그러면 험한 파다 건너편에 반드시 축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작고 초라해도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도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금년에 표어를 정한대로 "세 명에게 생명을 주는 해"로 만든다면 우리는 교회의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힘써 전도하고, 힘써 친절하게 행동하고, 힘써 헌신하고, 힘써 서로 격려하고, 저는 힘써 맛있는 설교를 준비한다면 우리 교회도 금년에 백 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개척 정신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뛰십시오. 아예 외모도 바꾸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깔끔하고 호감을 주는 외모로 만드십시오. 방송을 타는 분들은 몇 년만에 얼굴이 확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열심히 외모를 관리하면 누구든지 호감을 가는 외모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모를 잘 관리하는 모습은 일의 열정과 삶의 열정을 반영하는 하나의 중요한 표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악입니다. 그러나 나의 외모를 관리하는 사람은 되어야 합니다. 다 죽어 가는 외모를 하는 것, 삶의 열정이 보이지 않는 외모를 가지는 것은 내 비전이 희미해졌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쁜 것이 최고라는 말도 아닙니다. 호감을 주기 위해서 애쓰라는 말입니다. 무슨 일에 있든지 남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를 갖추어야 합니다. 더벅머리에, 이빨은 지저분하고, 얼굴에 미소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외모를 관리하는 것은 부지런함의 표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방송 아나운서들이 점점 호감을 주는 인상으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찍어 발랐네! 얼굴 고치느라고 돈 많이 들었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들의 변하는 얼굴을 보면서 일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삶의 열정과 개척정신과 도전정신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호감을 주는 외모로 변해간다는 것은 그 마음이 건강하게 변해간다는 의미도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한 모습으로 살지 마십시오. 낙심할만한 환경을 축복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도전해보십시오. 2003년도에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향해 줄기차게 도전하시고, 줄기차게 준비하십시오. 금년을 내 삶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생애 최고의 해로 만들어보십시오. 최소한 세 명에게 생명을 주는 해로 만들어보십시오. "믿음대로 된다!"는 것을 체험하는 한해가 되도록 하십시오.
4. 예배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르호봇에서 다툼이 멈추자 이삭은 고백합니다. 22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그러나 거기에서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거기에서 24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고, 이삭이 그곳에서 예배의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장막을 쳤습니다. 예배 중심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삭이 받은 100배의 축복은 예배 중심적인 삶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12-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여기에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라는 말을 주목해보십시오. 엄밀히 말해서 이삭의 원래 직업은 축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축산업자가 농사를 지어서 백 배의 결실을 얻어서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직업이 바뀌는 것이나, 일터가 바뀌는 것이나, 상황이 급변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것이 백 배의 축복을 받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복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직업이 무엇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얼마 전 국민일보에 LA에 사는 김용규 장로님 간증이 실렸습니다. 그분은 원래 태권도 사범이었는데 부상 때문에 도장 운영을 포기하고 85년에 LA에서 봉제공장을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잘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 부인이 기도해서 잘 되는 것이다"라고 했지만 장로님은 "내가 수완이 있어서 잘되는 것이지 무슨 기도 때문이냐!"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 반품 문제로 큰 부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수완을 발휘해도 부도를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손을 들었습니다.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그곳에서 신명기 8장 17-18절 말씀으로 철저히 깨졌습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그는 이제까지 자기가 잘해서 부자가 된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셔서 잘된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회개했습니다. 마음도 비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업하고 베풀며 살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기도원에서 내려와 구조조정을 하고, 직원들을 믿는 사람으로 바꾸고,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결국 위기를 극복하고 사업은 더욱 번창하게 되었고 마침내 나이키 회사의 의류 납품권까지 따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축산업자인 이삭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 농사일로 전업하고도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태권도 사범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니까 봉제일로 전업하고도 크게 성공했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십시오. 필요하다면 전업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여러분들께서도 반드시 백 배의 축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성실함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수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완으로는 2백의 결실을 얻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백 배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작은 부자는 본인이 노력하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 부자는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야 합니다.
2003년에 축복 많이 받으시고, 이번 해에 백 배의 결심을 얻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서 먼저 2003년도에는 마음을 온전히 돌리고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예배하는 삶을 소홀히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소홀히 하고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축복만 구하고, 문제 해결만 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떤 성도가 재미 삼아 포커를 칩니다. 딸 때도 있고 잃은 때도 있어서 재미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판돈이 점점 커집니다. 어느 날 엄청나게 돈을 잃습니다. 만회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날 기회가 왔습니다. 한판에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판돈이 엄청나게 커집니다. 가슴이 떨립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번 판만 따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 판을 졌습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이런 탄식이 나옵니다. "하나님! 너무 무심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 외면하시나요?"
이 이야기는 비유이지만 실제로 이런 비슷한 상황이 많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택해놓고 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처하고, 그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예 포커를 하지 말아야지, 포커를 하면서 돈을 잃었다고 원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2003년에는 그런 삶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향하지 않은 것 자체가 크게 보면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와주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 가야 합니다.
축복은 단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삭은 온갖 고생과 수고를 해서 우물을 팠습니다. 시간도 많이 들여야 했습니다. 땀도 물질도 많이 들여야 했습니다. 여러 곳을 시추했을 것입니다. 깊이 파느라고 아픔과 희생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물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경기가 힘들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나가면 100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03년에는 이런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출처/이한규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