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3:5-9

서론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살다가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넓은 마음을 보여줌으로 어른다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사람은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품을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일은 작게 만들고 작은 일은 거론하지 않고 알고도 속아주고 모르고도 속아주며 바보 아닌 바보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여 화평을 도모하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1.같이 살수 없음을 아는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본문 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하였습니다.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롯이 아무리 양보하고 살려고 해도 그 땅 환경이 용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땅은 좁고 가축과 소유가 많아서 더 이상 그곳에서 도저히 살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가나안 땅에 임한 기근 때문에(창 12:10) 목초와 물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헤어지지 않고는 버틸 방법이 없는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같이 살자니 짐승과 소유를 버려야하고 헤어지자니 아쉬움이 남는 사이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아브라함은 현실을 받아드리고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여 시기에 적절하게 대책을 간구 하게 되었습니다. 재난이 부모형제간에도 함께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돈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돈은 근심을 불러오고 있습니다(딤전 6:9-10 약 4:1 대상 29:12 마 6:25-32 마 6:33 눅 12:15-21).

2.싸우면서 살수 없다는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본문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하였습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롯의 양 가정의 분쟁이 먼저 목자에게서부터 비롯된 것은 필연적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목초지와 샘의 근원을 확보하여, 가축 사육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최우선적인 임무는 목자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하였습니다(창 26:20). 그리하여 그와 같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더하면 더할수록 양가 목자들 사이의 반목, 질시는 더하였을 것입니다. 팔레스틴 내에서 우물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이 우물을 포기한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대한 마음으로 양보한 것일 뿐입니다. 사실 이삭에겐 마음만 정하면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많은 인력(人力)이 있었습니다(창 26:16). 그러나 그는 싸워서 쟁취하는 것은 원치 아니하였습니다.

왜 그는 평화주의자입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것은 마귀의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화평케 한다고 하였습니다(마 5:9). 그리고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고후 5:18-19).
잠언저자는 기록하기를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하였습니다(잠 21:9). 이는 다투며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차라리 화목하고 지붕 한 모퉁이에서 사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하였습니다(잠 17:1). 이는 온갖 산해진미를 먹는다 해도 가정에 화평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15:17). 이것은 호화로운 식사보다 화목이 더 중요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하였습니다(잠 12:20). 이는 악을 꾀하는 것과 화평을 도모하는 것의 차이가 결과적 측면에서 대조하고 있습니다. 전자의 결과는 낙심과 곤경뿐이지만 후자의 결과는 사회적 복리와 희락으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조카와 싸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여 조카를 떠나보내고 다투지 아니하고 피차가 즐겁게 살도록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3.양보하는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본문 8-9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하였습니다. 골육이란 말은 형제간이란 뜻도 있지만 자신들간의 집안 싸움이 여호와의 성호에 누를 끼침은 물론 결코 스스로에게나 원주민에게도 덕이 되지 않음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로간의 다툼은 그 지역 원주민들이 자신들을 공격하고 추방하는 좋은 계기로 삼을 수 있음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양보는 자기 손해를 각오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아브라함은 손해를 각오하고 조카에게 우선권을 주고 많은 것을 양보하기로 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이익을 챙기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지 자기가 손해를 보면 결코 싸움이 나지는 아니하는 것입니다.

"결론"
어차피 같이 살 수 없는 환경이기에 그와 같은 형편에서 싸우면서 같이 살기로 고집하지 않고 자기가 양보하여 롯이 좋은 편을 택하여 스스로 결정하여 나갈 수 있도록 우선권을 그에게 주어 그를 떠나보내고 피차가 하나님 앞에서 화목을 도모하며 살도록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화목한 생활은 싸우며 함께 사는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싸우면서 권위를 주장하고 많은 것을 가지는 것보다 잃으면서 화목을 취하는 것이 더욱 좋다는 것을 알고 그를 보내면서 화목을 취하여 즐겁게 살도록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아브라함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출처/이윤근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