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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신앙인 (사 41:8-14 마 14:22-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합니까? 어른들은 열심히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고통스런 일들을 잘 견딥니까? 일하는 것이 고통스러워도 배우는 일이 힘들어도 그것이 내 인생에 유익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업그레이드 하고자 하는 욕심은 거룩한 욕심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마태복음 14장 22절부터의 줄거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호수 건너편으로 가게 하고, 예수님은 흔자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배 타고 호수 한 가운데로 나갔는데 마침 바람이 세게 일어났습니다. 큰 물결이 일어나서 배가 위태 위태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풍랑 때문에 그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으로 생각하고 놀라 소리를 지릅니다. ‘유령이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로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예수님께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습니다.
그 때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아이쿠 무서워’하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그의 몸이 물에 빠졌습니다. 그가 소리를 지릅니다. “주님, 나를 살려주세요!”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함께 오르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인생을 어떻게 업그레이드 할 것인가 하는 세 가지 원리가 나와 있습니다.
인생 업그레이드 첫째 원리: 즉시 도전하라.
인생 업그레이드의 첫째 조건은 즉각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즉각 도전하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 실패를 두려워 말라.
여러분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성공자입니까? 실패자입니까?’ 여러분은 베드로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는 물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했지만 결국은 믿음이 작아서 실패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가 믿음이 작아서 물에 빠졌지만 그래도 그는 물위를 걷는 대단한 경험을 한 성공자입니까?
실패자의 모습도 보이지만 성공자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은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나중에는 물에 빠지는 실패가 있었을지라도 성공자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제자들은 물에 빠지는 실패는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물 위를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성공과 실패가 함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성공과 많은 실패를 동시에 가진 사람이 훨씬 성공적이고 풍부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실패의 모습을 크게 보기 보다는 그의 물 위를 걷고자 했던 도전과 물 위를 걸어갔던 성공적인 모습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패가 크게 보이면 도전을 못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돈으로 장사를 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는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가장 안전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절대로 실패 안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실패를 피하려면 아무 일도 안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실패인 것입니다.
여러분 실패를 두려워 마십시오. 실패를 많이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실패를 많이 경험한 사람은 성공을 많이 경험합니다.
한 학급에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학생이 문제를 많이 틀렸을까요? 수학 꼴찌가 문제를 많이 틀렸을까요? 수학에서 일등을 하는 학생은 무수한 문제를 풀면서 좌절의 경험을 이미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잘 푸는 것입니다. 꼴찌하는 학생은 아예 풀려고 도전한 문제가 없습니다. 실패를 전혀 안했습니다. 그래서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수 많은 모델을 개발하지만 바로 실패한 모델 때문에 더욱 성공적인 모델들이 개발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무슨 일을 하면 즉각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완전한 성공은 없습니다. 교회의 사업은 성공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 충성이 목표이지 성공이 목표는 아닙니다. 교회의 사업은 부족한 만큼 실패가 아니고, 충성한 만큼 성공입니다.
권투의 초보자는 상대방에게 한 번 펀치를 날리고 그 펀치가 명중하지 않았다고 자괴감에 빠집니다. 그 때 상대방의 주먹이 그에게 날아와서 케이 오 패배를 당합니다. 그러나 챔피언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펀치가 빗나가더라도 그가 명중시키는 단 한 번의 펀치가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절대로 아무 일도 안하면 절대로 실패가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절대적인 성공은 없습니다.
2. 한 번의 소중함을 알라.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가 실패했습니까? 사실 베드로는 대단한 성공자입니다.
이 중에 계신 분 중에서 일 평생에 단 한번이라도 물 위를 걸어본 적이 있습니까? 베드로는 비록 나중에 물 속에 빠졌지만, 이미 처음에 물 위를 한 번 걸은 사건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사람입니다.
일평생에 딱 한 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정말 위대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 월드컵에서 결승 골을 쏜 일,
-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일,
- 올림픽에서 신기록을 세운 일,
- 남극을 정복한 일,
- 에베레스트에 올라간 일 등등
셀 수 없는 수 많은 일들이 일 평생에 한 번만 경험해도 최고의 성공이 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저도 나중에 물에 빠지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물 위를 걸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땅에 떨어지더라도 맨 몸으로 하늘을 한 번 날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을 날다가 믿음이 약해서 떨어지더라도 주님께서 천사의 날개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한 번 경험해 보았다는 것이 인생의 질을 바꾸어 놓습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은 인생의 질이 다릅니다.
베드로가 잠간이지만 물 위를 한 번 걸어보았다는 경험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믿고 의심치 않으면 물 위도 걸을 수 있다.’ 이 교훈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가 나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바닷가에서 또 다시 만났을 때, 예수님이란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바다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갈 수 있었습니다(요21:7). 이 때는 베드로가 물에 빠지지 않고 자기 믿음으로 호수가에 있는 예수님에게 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도 다른 제자들은 단 한 명도 베드로를 따라서 물 위를 걸으려고 시도해던 제자가 없었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다른 제자들은 이런 기적에 도전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렇게 소극적이었을까요? 왜 다른 제자들은 주님께 말 한 마디도 못합니까? ‘나도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주님. 나는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물 위를 멀리 멀리 걸어가게 해 주세요!’ 이 말도 못합니까? 무리한 기도를 한다고 예수님이 벌을 주십니까? 돈을 요구하십니까?
베드로가 ‘주여, 나를 명령해서 물 위를 걷게 해 주세요’ 했을 때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오라’ 단 한 마디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도전을 아주 기쁘게 생각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도전을 조건없이 실현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주님의 일에 도전해 보십시오. 주님께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3. 즉각 행동에 옮기라
우리도 베드로처럼 즉시 도전해야 합니다. 즉각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도전하는 삶은 즉각 행동에 옮기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을 배우고, 즉각 실천에 옮기는 도전을 하십시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새로운 삶의 방법을 실천했습니다. 도전하는 신앙은 즉각 행동에 옮기기를 원합니다. 즉각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즉시 장사를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도전하는 사람은 일을 앞두고는 마음이 흥분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즉각 행동에 옮겨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도전 정신입니다. 믿는 사람은 도전할 수 있습니다. 도전은 아주 안정된 마음 상태에서 가능합니다.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도전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절대로 미루지 않습니다. 얼마 전 밤에 하나님께서 ‘너를 다시 나에게 바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로 ‘하나님 나를 드립니다.’ 하늘을 향해서 팔을 벌리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신앙 생활도 배워야 합니다. 아버지 학교, 어머니 학교, 치유 상담 과정, 성서대학, 새가족 공부, 새신자 공부, 제자 훈련, 사역자 훈련 등등 무수히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실행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버지 학교를 다녀온 첫날 남편이 아내를 뒤에서 껴안았습니다. “아니, 이거 뭐하는 짓이예요? 왜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죠?” “응, 이거 아버지 학교 숙제야.” 다음날 남편이 또 아내를 뒤에서 껴안습니다. “또 숙제하는구려” “아니, 이번엔 진심이야.”
열심히 배우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배우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히 배우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행동은 배움의 마지막 단계가 아닙니다. 배움의 자연적인 열매가 행동이 아닙니다. 행동 자체가 배움의 과정입니다. 경험과 행동을 통한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책상에서의 배움과 행동을 통한 배움은 언제나 동시에 있어야 합니다. 행동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믿고 행하는 것은 총체적 자기 변화의 과정입니다. 도전함으로써 한 가지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총체적으로 변합니다.
인생 업그레이드 둘째 원리: 환경을 두려워 말라
인생 업그레이드의 둘째 조건은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걷다가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자,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폭풍과 파도의 현실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폭풍과 파도가 크게 일어나서 베드로를 덮쳐서 빠진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빠져들어갔다고 했습니다.
1. 환경을 두려워하는 마음의 문제다.
첫째 환경을 두려워하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환경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환경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환경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바라보는가는 인식의 방향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서워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첫째 왕 사울 왕이 죄짓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가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삼상15:24).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모두 다 죽이라 하셨는데, 왜 왕은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만 했습니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합니다. “나는 정말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했는데,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습니다.”
이 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아주 유명한 말을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이 때 사울이 사무엘에게 한 대답 속에 결정적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울은 하나님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면 실패합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불신앙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두려워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두려워하고, 두려운 사람은 도전하지 못합니다.
복수초라는 꽃이 있습니다.
복수초(福壽草)라는 이름은 한자로 복 복(福)자에 목숨 수(壽)자, 즉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코스모스와 비슷하게 생긴 노란 꽃잎을 가진 꽃입니다. 복수초는 이른 봄에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들꽃입니다. 이꽃의 특징은 봄이 오기 시작할 때, 얼음 속에서 피는 것이 특징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얼음을 뚫고 올라와서 피는 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연약한 꽃이지만 순에서 열을 내어서 그 열로 얼음을 녹이면서 얼음 속에서 피는 것입니다.
연약한 들풀도 얼음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우는데, 우리 위대한 인생들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환경을 탓하지 맙시다.
2.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다.
둘째,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입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물에 빠지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주님, 나를 살려주세요.”
베드로가 도움을 요청하자 마자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서, 그를 붙잡고 ‘믿음이 작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없는 자”가 아니라 “믿음이 작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시련의 원인이 의심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의심’으로 말미암는 시련이 끊임없이 존재합니다.
‘의심’의 독일어 단어의 의미는 (Zwei-fel = Zwei-fältig) 두 겹, 두 가지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의심이란 ‘두 가지 마음’의 뜻입니다.
‘의심’의 그리스어 단어에서도 ‘두 가지 방향으로 나가는 것’ ‘두 방향으로 발을 내디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사람이 동시에 두 길로 가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겠습니까?
야고보서 1장 6-7절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잘 믿어야 합니다. 작고하신 한경직 목사님께서 목사 세미나에서 목사님들게 당부하신 말씀이 “하나님을 잘 믿으세요” 였습니다. 목사님들만 모인 자리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세요.” 목사건 평신도건 그 구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1:22-23)
3.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임재가 문제다.
셋째로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계시는가가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니까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배라고 하면 ‘교회’를 의미하기도 하고, ‘인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교회와 인생과 가정에 예수님께서 계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면 외부적 시련을 모두 이길 수 있습니다. 외부적 시련이 오더라도, 외부적 시련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원래가 풍랑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내 능력 밖이라 여겨지는 일들 가운데 스스로 절망하며 넘어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비록 믿음이 부족해서 물에 빠져들어 갈지라도 주님이 옆에서 손을 내밀어 건져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동행하고 계심을 기억하며 주님 안의 보물을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오라’하시면 무조건 갈 수 있다. 주님이 오라시면 물 위도 걸을 수 있고, 불 속도 통과할 수 있고, 십자가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응답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도전의 시작입니다.
인생 업그레이드의 셋째 원리: 나를 변화시켜라.
인생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세번째 원리는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나를 변화시켜라.’
우리 인생의 최고의 도전은 자기변화의 도전입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바다를 걸었습니다. 내가 주님을 모심으로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세상이 변해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도 자기 변화가 없는 사람은 망합니다.
예술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음악가가 음악을 배우면서 항상 자기가 과거에 생각했던 그 음악에 고정되어 있다면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자기의 과거의 음악성, 습관 등 자기를 바꾸지 않는 사람에게 발전이 없습니다.
기업이 항상 20년 전 모델만 생산한다면 그 기없이 살아 남을 수 있겠습니까? 교수가 100년 전 철학만 강의하면 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목사가 20년전 신학교에서 배운 것에만 고착되어 있어서 세상 탓만하고 사회 탓만하면 되겠습니까? 교회가 과거에 해오던 편한 것만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자기 변화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이 자기 변화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그냥 죽는 겁니다.
변화는 영적 싸움
변화는 영적 싸움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순종하는가 하는 영적 전쟁입니다. 순종은 영적 싸움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기를 연습하십시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위대한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명령에 대한 순종이 바로 다른 모든 명령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큰 손해를 입힌 사람이나 원수처럼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런 사람들은 사랑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마음을 먼저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은 가장 치열한 영적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평생 주기적으로 ‘자기 변화의 혁명’을 꿈꾸고 ‘자기 변화의 혁명’에 도전해야 합니다. 진정한 혁명이란,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의 나를 통째로 뒤집어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나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지 않고선 세계가 변화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저 자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기 방어적이 되지 않고, 자기 개방적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탈란트를 갈고 닦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워서 나의 단점을 고칠까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3년마다 변화를 모색합니다. 그리고 5년째는 혁명을 꿈꾸고 나를 속 사람부터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업그레이드 되기를 노력합니다. 지난 시대에 형성된 신학을 새롭게 하고, 굳어진 습관들을 바꾸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영성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자기 변화란 과거의 자기를 죽이고,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여려분도 ‘자기 변화의 혁명’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일상 속의 나를 뒤집어 변화시키는 혁명’, 그래서 ‘나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혁명’을 꿈꾸시기를 바랍니다. 역사를 뒤흔든 혁명도 개인의 결단과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거창한 얘기가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으로의 변화입니다. 삶이 바뀌면 역사도 바뀝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패해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한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여러분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 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박병욱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