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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6:1-3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서 부모 효도에 대한 말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기독교(基督敎)는 이 세상 다른 어느 종교보다도 부모님께 대한 효도를 강조하고 있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흔히 “예수쟁이들은 제 부모도 몰라 본다”고 말합니다. 이유인즉, 기독교인들은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제사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사행위는 유교사상에서 온 것입니다. 유교의 삼강(三綱)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입니다. 위로 임금을 잘 섬기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래로 부인을 잘 거느리라는 사상입니다. 이는 부모 효도는 사후까지 발전하여 조상신 숭배인 제사까지 이른 것이며, 구주 공천을 떠다니는 혼령이 신이 되어 제사를 통하여 온다는 샤머니즘 사상과 결합한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은 부모에게 불효하기 때문이 아니요, 죽은 자를 위해서 제사를 하는 것은 우상 숭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십계명 중 1-2계명에 걸리는 엄청난 죄악입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효도해야 합니다. 죽은 다음에 아무리 효도하는 것은 참된 효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조상숭배가 효행(孝行)인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자들은 부모님도 모르고, 조상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그 단편적인 실례가 십계명 중 5계명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한마디 요약(要約)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10계명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향한 계명 중 제일 먼저 오는 것이 제 5계명의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공경한다”라는 말은 인간에게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길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을 공경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부모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 하듯이 부모님에게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대는 점점 악해져서 부모에 대한 효도개념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부모를 흡족하게 하는 자녀들도 많지 않은 것 같고 자녀들이 닮고 싶어 하는 멋있는 부모들도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의무보다 권리를 주장하는 일방통행(一方通行)이 피차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흔히들 효(孝)라고 할 때 자식들이 부모님께 좋은 옷을 해드리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종종 찾아 뵙고, 부모님께서 불편하지 않도록 봉양해 드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또 자신이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님의 명예를 높여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학 들어가는 것이 하도 힘드니까 일류대학 들어가는 것이 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것만으로 효(孝)를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물론 이런 것도 효(孝)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인 관점에서 효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부모에 대한 자녀의 올바른 도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더 더욱 힘든 일이 있다면 좋은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요셉은 부모를 존귀케 하여 가장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런가하면 압살롬은 부모를 거역하고 슬프게 하여 가장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압살롬의 돌무덤을 지날 때는 저주의 표로 돌을 던진다고 합니다. 거역하는 자식들이 있는 집에는 아무리 풍부한 물질을 가졌더라도 복된 가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통하여 좋은 자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좋은 자녀가 되려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1절)
바울은 본문 1절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좋은 자녀가 되려면 먼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순종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순종하다”라는 말은 ?휘파쿠오?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 의하여, ... 아래에”라는 의미를 가진 “휘포”라는 단어와 “듣다, 청취하다”라는 의미를 ?아쿠오?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귀를 기울이다. 따르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좋은 자녀라면 언제나 부모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경청해야 순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려면 부모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을 귀를 기울이는 선행될 때에 순종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불순종합니다. 불순종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님에게 고기를 열 번 사다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한 번이라고 제대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낫습니다. 순종은 하지 아니하면서 고기만 사다 드리는 것은 좋은 자녀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순종의 범위를 “주 안에서”순종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은 흑백논리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과 부모님의 법이 서로 대립되면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부모님 중에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분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도 큰 효도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주 안에서”라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 말씀을 주 안에 있는 부모님의 말씀만 순종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거나, 부모님의 말씀이 주님 뜻과 대치가 된다면 무조건 불순종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순종하라”라는 말씀을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이 말씀은 "주안에서 순종할 일과 순종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라"는 말씀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본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는"네가 주님 안에 있다면" "네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네 삶이 예수 믿고 달라졌다면"
만약 그렇다면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골 3:20에서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는 말씀과 같은 내용으로 우리가 주 안에 있다면 부모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석가 ?핸드릭슨?는 여기의 “?주 안에서?라는 말씀은 부모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상반 될 때를 염두에 두고 바울이 말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님에 순종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우 강조해야 함) 그러므로 여기의 “주 안에서”라는 말씀은 마땅히 엡 5:21의 말씀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경외한다면 부모님의 말씀에도 복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주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바르게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그것은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일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1절 하)
본문 1절 하반 절에서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은 옳은 일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단순히 "좋은 일"(is good)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즉,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그런 것이 아니라 안하면 "나쁜 일"(is wrong)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은 주를 믿는 사람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하지 않으면 나쁜 일을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은 일로서 죄를 짓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는 두 가지 마땅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님께 순종하는 일입니다.
순종의 법칙(法則)을 깨트리는 사람에겐 형벌이 따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식이 잘되지 않는 것을 보지 못했고, 순종하지 않는 자식이 잘되는 경우를 본 일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3:1-2에서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자기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을 그만두기 시작할 때가 바로 종말(終末)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은 부모님은 우리를 낳아 기르시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대부분의 은혜를 부모님을 통하여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섹스피어는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를 고통 가운데 나셨으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나를 기르셨습니다. 내가 배가 몹시 아파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며 나의 배를 자상하게 쓸어 주시던 아버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붕어빵이 몹시 먹고 싶어 서랍에서 부모님의 돈을 몰래 훔쳐 붕어빵을 사서 맛있게 먹다가 어머님에게 들켜 종아리를 맞고 울 때 나를 붙들고 울며 기도해 주시던 어머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모든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과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옳은 일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없고 부모를 우습게 여기는 자식이 있다면 그는 짐승만도 못한 자일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부모에게 불효한 자식에게는 올빼미 재판에 회부하였다고 합니다.
(예화) 옛날부터 동양인 특히 중국인들은 올빼미를 매우 혐오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이러한 올빼미를 증오한 까닭이 있습니다. 올빼미는 어려서는 제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는데 일단 장성하면 그 어미를 잡아먹는 불효하는 새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 새를 보기만 하면 모조리 잡아 죽였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그 사체를 만 사람 앞에 전시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중국 사람은 부모에게 못된 죄를 범한 사람은 죽여서 머리를 만인 앞에 전시하는 형을 집행하였는데 이를 ?효수?, 즉 "올빼미 머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 30:17에서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효하는 자는 짐승에게조차도 조롱 받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잠언 19:26에서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모에게 함부로 대하는 자식에게는 그 이상의 수치와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부모님에게 대하여 불량한 자녀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신 21:18-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고 책망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 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자녀가 되려면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께 순종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순종은 상대방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룻이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 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말하면서 시어머니 나오미를 기쁘게 한 것처럼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룻 1:16) 만약 여러분이 부모님을 사랑한다면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말로만이 아니라 바른 길을 자가 부모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 23:19-20에서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화) 효(孝) 실천 연구회 회장이며, 가나안 농군학교 교장인 김평일 장로님이 만든 '가나안 효도실천 10계명'을 잠시 소개하려고 합니다. “효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효자 가문이 번창하고 믿는 집안에서 효자가 난다.”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3가지 측면에서의 효도를 강조하였는데, 그 첫째는 정신적인 효도입니다. 둘째는 물질적인 효도입니다. 셋째는 행동적인 효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10계명을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신으로>
1. 신앙을 갖도록 해 드려라.
2. 대답을 잘 하고 말씀을 잘 들어 드려라.
3.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말라.
4. 궁금증을 풀어드려라.
<물질로>
5. 자유롭게 쓰실 수 있도록 정기적인 용돈을 드려라.
6. 향토적인 음식을 해드려라.
7.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려라.
<행동으로>
8. 일거리를 찾아 드려라.
9.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 드려라.
10. 등을 긁어 드리고, 손톱 발톱을 자주 깎아 드려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이 계명처럼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쓰면, 부모님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효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면은 당연히 해야 할 효를 다한 자식들에게 참으로 엄청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부와 명예, 의와 진리, 지혜와 기쁨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후회하지 않는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을 잘 받들어 섬겨야 합니다. 부모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됩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부모가 떠난 다음에 효도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로,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려면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불순종하는 자는 결코 부모님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께 거역하는 자식은 부모님을 자랑하기는커녕 부모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깁니다.
(예화)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링컨 또한 초등학교를 조금 다니다가 만 학문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눈물겨운 노력 끝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고고하고 지식 많고 거만한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무시하면서 헐뜯고 괴롭혔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에 나가서 연설을 하려고 하는데, 한 의원이 일어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입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들고서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도 링컨 대통령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저의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신 분이셨습니다. 나도 어깨 너머로 배운바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 나거든 가져오십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자식은 부모님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직업, 아버지의 선택, 아버지의 삶, 어머니의 살아온 생에 대하여 "잘 하셨습니다. 훌륭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하셨던 일을 나는 존경합니다. 나도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자식이 진짜 효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까? 잘나고, 못나고, 돈이 있고, 없고, 지위와 명예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리의 부모님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를 이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부모님을 세상에서 제일 높으신 분, 위대한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진정한 효는 물질적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입니다. 부모님께 무엇을 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말대꾸하는 것은 큰 불효입니다. 더욱이 부모님을 때리고 학대하는 사람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패륜아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자녀라면 잠 23:25-26에서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2. 좋은 자녀가 되려면 부모에게 공경해야 합니다.(1절)
바울은 본문 2절에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좋은 자녀가 되려면 두 번째로 부모에게 공경해야 합니다.
순종과 공경은 동전의 양면으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순종하는 자는 부모님을 마땅히 공경할 것이며 또한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부모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할 것이다. 공경(恭敬)은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태도입니다.
공경(恭敬)이란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부모님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높이는 모습입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간에 흉허물이 없이 지낸다 할지라도 자식과 부모 사이에는 넘지 못할 선이 있습니다. 그 선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실천하려면 하나님께서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흔히 ?부모대접을 받으려면 부모다워야지??어른대접을 받으려면 어른다운 행동을 해야지?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냐? 아니야? 라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내 부모”라는 사실이, “나보다 어른이라”는 사실이 더욱 귀중합니다. 질서(秩序)의 하나님께서는 한 가정 안의 질서가 존중되기를 원하시고, 공동체 안의 질서가 존중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세우신 부모를 통해서, 세우신 윗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성숙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8이하의 말씀을 보면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혹 우리의 직장에서 내 마음에 안 맞는 까다로운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 부모나 내 시부모나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공경하라고 성경은 말씀 합니다. 왜일까요?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우리의 인격이 성숙해지고 주님의 인격을 이루어 가는데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부모를 주셔서 나를 다듬어 나가시는 주님! 나에게 주신 윗사람을 통해서 나를 더욱 주님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와 뜻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드러난 결과를 보아도 부모에게서 좋은 훈련 받으면서 자란 사람과 아무렇게나 방임하는 가운데 자람 사람과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윗사람에게 잘 배우며 훈련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나 윗사람을 통한 훈련이나 통제가 당장에는 거추장스러울 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나를 다듬어 나가시고 나를 완성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기쁨으로 순종하여 내 삶에, 내 인격에, 내 생활에 좋은 열매를 많이 남기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까?
첫째로, 부모님에게 공경하는 일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입니다.(2절 하)
본문 2절 하반 절에서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부모에게 공경하는 일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경할 때에 그 결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계명이 십계명인데 그 중 제5계명으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1-4계명까지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10계명까지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인간의 윤리 중에서 제일 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왜 부모 공경을 모든 윤리에 첫째로 주셨을까요? 부모를 제대로 공경할 줄 모르는 자는 다른 모든 것을 잘해도 위선이거나 가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옛 선조도 나라의 충신을 뽑을 때에 평소 때에 행한 그의 효심을 참고하였다고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상황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경우에도 해야 하는 명령입니다.
예수께서도 나이든 부모를 여러 가지 이유로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막 7:9-13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7장을 보면 '고르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아니, 태초부터 첫 인간이 만들어질 때부터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모님께 드려야 하는 것에 대하여 '고르반' -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 - 라고 하면서 부모님에게도 하나님에게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부모 공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도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부모에게 공경하는 일은 우리가 잘 되고 장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3절)
본문 3절에서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부모에게 공경하는 일은 우리가 잘 되고 장수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은 출 20:12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말씀과 신 5:16에서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는 말씀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고 틀어진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잘 되고 오래 사는 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 공경에 대한 복은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면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우리가 발을 디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잘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잘되고 오래 살기 위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순종합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하는 것을 보아서 얼마나 잘 해 드릴까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부모 순종과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니 싫든 좋든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사람은 한결같이 부모님께 효도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삭은 족장 가운데 제일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죽기까지, 번제로 자기의 몸이 하나님께 드려지기까지 부모님께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족장 가운데 제일 오래 살았으며, 굴곡이 없는 깨끗하고 평탄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부모님을 흉보고, 욕하다가 저주를 받은 자녀도 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이 그러했습니다. 함은 술이 취해서 벌거벗고 자는 아버지의 흉한 모습을 보고 형제들에게 소문을 내다가 아버지의 저주를 받아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뜻에서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 첫걸음은 다름 아닌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잘 섬기는 것이 사람이 해야만 하는 첫 번째 도리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효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명령하신 효를 바르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서 우리는 창 9:20-27의 말씀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 9:20-27을 말씀을 보면 부모 공경에 대한 원리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홍수 이후에 노아는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로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는 실수를 합니다. 이때 노아의 아들 함이 그 아버지의 나체를 발견하고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이 사실을 고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두 아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부친 노아의 하체를 덮어드렸습니다. 후에 노아가 술에서 깨어나서 그 아들들이 자기가 술에 취하였을 때에 행한 일을 알고 가나안은 저주를 하고 셈과 야벳은 축복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모 공경의 원리를 배우게 되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부모님의 실수를 알게 되었을 때에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노아의 두 아들 셈과 야벳은 아버지 노아를 비난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함은 형제에게 그 사실? 이야기하였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부모가 실수했거나 잘못했을 때, 부모의 부족한 점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끄집어내어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녀는 부모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공격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잘못을 비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부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똑똑하고 훌륭한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은 아버지 노아가 술 취하여 벌거벗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경건한 신앙의 사람인 아버지가 위선자요, 외식자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아버지의 실수를 결코 그냥 넘어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형제들에? 아버지의 허물을 이야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②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 치 않고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녕 부모님께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크다고 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어떻게 감히 부모님의 실수? 언급할 수 있겠습니까? ③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자녀에 대해서 엄격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출 21:17에서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자라면 부모에 대해서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둘째로 부모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셈과 야벳은 술에 취하여 벌거벗고 누워있는 아버지 노아에게 뒷걸음쳐 가까이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부족해 보이고 실수를 많이 하는 것 같아도 가까이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현대 자녀들은 부모를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귀찮은 존재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모와 대화도 나누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가정사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것은 시급? 시정해야 할 사항입니다. 적고, 큰일 모두 부모와 상의하며 행하는 것이 부모를 가까이 하는 것이요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또한 부득이 부모를 모시지 못하고 떨어져 있어도 매일 전화도 드리고 자주 찾아뵙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녀를 만나는 것이 부모의 즐거움이요 보람인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부모님의 실수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샘과 야벳은 벌거벗고 누워있는 아버지에 나아갈 때에 뒷걸음쳐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의 단점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로 부모님의 필요와 부족을 채워 드리는 것입니다.
셈과 야벳은 수치를 들어내고 벌거벗고 누워있는 아버지 노아를 위하여 옷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옷을 가지고 아버지께로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채워드려야 합니다. 부모님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서 그것을 보충해드리는 것이 자식들의 도리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그 자식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부모의 허물과 수치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셈과 야벳은 뒷걸음쳐 들어가 눈을 돌린 후 옷으로 아버지 노아의 수치를 덮어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비록 단점이 많고 실수가 있어도 모두 덮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자식의 본분이요, 도리입니다. 어느 나라 부모보다 자식 사랑이 뛰어난 우리의 부모님들이 더 이상 자식들 때문에 가슴에 상처를 받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부모공경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가 되어 부모를 멀리하고 멸시하는 자녀들이 점점 그 수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좋은 자녀가 되려면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 악한 세대에 살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일이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옳은 행실이고, 약속 있는 첫 계명이며, 우리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