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42
대상13:9-14
우리 나라 사람들은 신정이나 구정을 맞이하게 되면 한해 동안 가정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주도 보고 토정비결도 보며 혹자는 점을 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주나 토정 비결이나 점은 혹 어떤 경우에 맞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진리로서 그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고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5월은 가정의달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으면서 우리네 가정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은 ‘잘되는 가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⑴, 말씀대로 사는 가정이 잘됩니다.(9-10)
사도 요한은 계1:3 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대로 사는 가정이 잘 되는 가정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의 아비나답의 가정은 하나님의 궤를 20년간이나 모시고도 복은 고사하고 화를 입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방치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생활의 한구석에 내어버려 두면 안됩니다. 아비나답의 가정이 화를 입은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과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법궤를 옮기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사업은 중간에 일어난 참변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사건은 법궤를 옮기는 수레의 행렬이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이미 타작을 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던 이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돌연히 궤를 실린 수레를 끌고 가던 소들이 뛰므로 수레가 넘어질 것 같은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수레를 몰던 아비나답의 두 아들 중 하나인 웃사가 급히 손을 뻗어 법궤를 붙잡았습니다. 경황없이 행한 실수 때문에 웃사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웃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성별 되지 않은 자로서 법궤에 손을 댄 그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법궤에 관하여 몇 가지 특별한 규정을 세워 주셨습니다. 즉 법궤를 이동할 때는 반드시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이동할 것이며 고핫 자손들이라 할지라도 여러 성물을 비롯하여 법궤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약에 이 같은 규례를 어기면 반드시 죽게 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웃사가 궤를 옮기는 중에 법궤에 손을 대었으므로 하나님은 경고하신 대로 웃사를 처벌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진노는 비단 웃사의 실수 때문에 촉발된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기럇 여아림에서 부터 법궤를 옮겨오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규례를 어김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다윗은 법궤 이동 행사의 절차에서 드러나는 부분에 치중한 나머지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를 소홀히 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웃사가 하나님의 진노로 급사를 당한 곳은 이후로 '베레스 웃사'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베레스 웃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시사하는데 그 중 가장 큰 교훈은 방법의 중요성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적 못지 않게 이를 이루는 방법과 과정도 중요시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사장 이외에는 법궤에 손을 대면 안됩니다. 그런데도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외시하고 제멋대로 행한 결과입니다. 결국 웃사의 교훈은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봉사하면 그 가정이 잘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⑵, 자책할 줄 아는 가정이 잘됩니다.(11-12)
사울 왕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않았다(13:3)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푸대접한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라가 안정된 후에 하나님의 궤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점령하자마자 성막을 짓고 하나님의 궤를 모셔 오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즉 나라(가정)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게 된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우리의 생활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이때 다윗이 크게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방법과 똑같이 궤를 수레에 실어 옮겼습니다.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궤를 붙들었다가 즉사하였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옮기는 도중 웃사가 급사한 베레스 웃사 사건 때문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분노는 애초부터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하여 비극의 단서를 만든 그 자신이나 실수를 범한 웃사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터무니없게도 다윗은 웃사를 징벌하신 하나님께 대한 노를 발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편협하고 볼품없는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먼저 그 자신의 정치적인 권위가 실추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전국민적 행사가 망쳐진 것을 분히 여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열의는 있었지만 많은 단점과 한계를 지닌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분노는 이내 두려움으로 변했습니다. 이 두려움은 웃사를 징벌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경외심 때문인 동시에 그 자신의 경솔했던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실종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에 대한 경외감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다윗이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실로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를 살 만한 죄를 범했습니다. 규례를 무시한 채 자신의 뜻대로 법궤 이동 계획을 세웠으며 이것이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성급하고 경솔하게 분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침으로 더 큰 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처음에는 자기 실수에 대해서 분히 여겼으나, 즉 자책할 줄 알았습니다. 이처럼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자책할 줄 아는 사람은 가정이 잘되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⑶, 인가 귀도 되는 가정이 잘됩니다.(13-14)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하나님의 소식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일가 친척(아비의 가족)에게 증거한 결과 믿고 함께 구원을 얻었습니다. 즉 인가 귀도 되어 그 가정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돔의 롯은 사위들이 믿지 않다가 죽는 불행을 당했습니다.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기로 했던 하나님의 법궤는 베레스 웃사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당초의 계획과는 달리 중도에서 다른 안치 장소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새로운 안치소로 물색된 곳이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이었습니다. 오벧에돔은 레위족의 거주지인 가드림몬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레위의 후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베레스 웃사에서 일어난 끔직한 사건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궤를 그이 집안에 안치하는 일에 동의했습니다. 이것은 오벧에돔이 하나님에 대한 분명하고 바른 신앙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하나님이 공의의 원칙에 따라 상급과 징벌을 내리시고 무단히 진노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오벧에돔의 권속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벧에돔 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담대하고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법궤가 머무는 동안에도 오벧에돔의 가족들은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꾸려 나갔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지정된 성소가 아니었음에도 하나님의 법궤는 석 달 동안 아무 탈없이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오벧에돔의 권속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규례를 좇아 그 자신들의 삼갔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벧에돔은 뭇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법궤를 그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였으며 석 달 동안이나 훌륭하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의 집안과 소유에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이 받은 축복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며 베레스 웃사에서 발하셨던 진노를 거두셨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오벧에돔이 자기의 권속과 함께 있었다는 말은 인가 귀도를 의미합니다. 온 집안이 함께 법궤를 잘 모셨기 때문에 다윗 왕궁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인가 귀도 된 가정이 잘되고,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