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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8:1-6 에베소서 5:30-6:4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은 그 소중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1. 가정은 생명의 둥지다.
가정이 중요한 첫째 이유는 ‘생명의 둥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사람들과 부벼대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과 아웅다웅 하며 사는 것이 피곤하다고 해서 무인도에 떨어져서 혼자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 때문에 형무소에서도 중죄인을 독방에 격리해 두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초기에, 구 소련 치하의 어느 형무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곳에서는 죄수들을 일체의 빛이 차단된 감방에 집어넣고 외부와 접촉도 단절시켜 버렸습니다. 20일이 지나자 대부분의 죄수들이 심각한 정신 이상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일 심한 고문을 받으며 취조를 받던 죄수들은 오히려 정신적으로 건강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절대 조건이 생물학적인 식량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람에게는 관계가 필요합니다.
홀트 아동복지회를 창설한 홀트씨의 경험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홀트씨가 만난 대다수의 아이들은 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고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은 병원에 입원을 시카고, 전혀 가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대다수의 아이들이 사망한 데 반해 그가 데리고 산 아이들은 오히려 건강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집에 남은 아이들에게 그가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고작 그들을 껴안아 주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살갗으로 전해진 사랑이 죽음으로부터 아이들의 생명을 건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생명을 일으킵니다.
사랑이 생명의 사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생명의 사건을 일키도록 우리에게 이웃을 주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바로 집안 식구들입니다. 가족과의 만남이 흔들리면 세상 모든 관계도 흔들리게 됩니다. 어떤 사회문제라도 그 원인을 따져 보면 그 배후에는 문제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흔들리면 올바른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회의 모든 문제는 가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국가 경제가 어려우면 당연히 대부분의 가정 경제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문제를 이기는 힘 또한 가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대국인 미국이 지금 조금씩 기울어져 가고 있는 원인은 미국의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마약국이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가정은 부모님이 날 낳아주신 곳입니다. 내 작은 생명이 커오며 자란 곳입니다. 가정은 한 생명을 키워주고, 서로 염려하고, 안전을 지켜주고, 격려해주는 힘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강한 힘이 가정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이고,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힘도 가정에서 나옵니다. 가정은 생명이 자라는 구체적인 장소입니다. 가정처럼 생명을 키우는 장소가 또 있겠습니까? 가정은 생명의 공간입니다. 성령이 시작되고 성령으로 이어지고 보전되고 살찌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힘을 가정에서 얻습니다.
어린 시절은 부모로부터 사랑과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받아서 사는 힘을 얻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부부가 함께 가정을 지키면서 사는 삶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가정을 가꾸는데, 바로 힘드는 것이 나의 힘을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힘드는 일 속에서 도리어 힘을 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배 속에서 나온 생명을 보살피고 키우는 일만큼 힘드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 만큼 엄마에게 소중한 일이 있을까요? 아이가 아프면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아이 때문에 수없는 고통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 아이만 없었으면 내 인생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울텐데’ 하는 마음은 별로 들지 않는 것입니다. 도리어 자식 때문에 없던 힘도 솟아나는 것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기 욕망에 자기가 속아서 아이들을 버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버리기도 하고, 실제로는 못 버리지만 정서적으로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살펴야 할 자식을 내버려두고 자기를 실현해 보아야 도리어 자식에 대한 상처와 자기를 향한 상처만 키울 수 있을 따름입니다.
가정은 가족의 모든 생명을 키우는 생명의 둥지입니다.
2. 가정은 보물섬이다.
둘째로 가정이 소중한 것은 가정이 ‘보물섬’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런던 타임스’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공모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1위부터 4위를 차지한 행복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위 ‘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아이’.
2위 ‘아기의 목욕을 다 시키고 난 어머니’.
3위 ‘세밀한 공예품을 만족스럽게 완성하고 휘파람을 부는 목공’.
4위 ‘어려운 수술을 성공하고 막 한 생명을 구한 의사’.
행복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행복은 자기의 평범한 삶의 자리에서 발견하는 것이고, 한결같이 수고와 고통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혹시 우리가 너무 먼 곳에서 또는 틀린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인생의 보물을 찾기 위해서 비밀스런 지도를 구하고, 생명을 거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인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인생을 겁니다. 그러다가 꿈은 이루지만 인생을 대가로 치루는 일도 있습니다. 결국 목표는 달성했지만 인생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때로는 꿈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을 그냥 낭비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물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습니다. 보물 있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진정한 보물은 가정에 있습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부모님, 남편, 아내, 자녀들, 형제 자매들이 나의 행복이요 나의 보물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보물섬입니다.
3.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셋째로 가정이 소중한 이유는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도리를 굳게 붙잡자
가정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방법은 믿음의 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이혼율이 미국에 이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의 나라와 2위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이혼을 배척하던 사회에서 왜 이렇게 급격히 이혼이 늘어났습니까? 사회의 변화, 의식의 변화가 그만큼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부는 무엇으로 사나요? 하는 질문에 대부분의 부부들이 하는 대답은 1위가 ‘사랑으로 살지요’입니다. 실제로 사랑으로 산다는 것보다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대답한 것입니다. 요즘 TV를 켜면 온통 사랑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인터넷에서도 사랑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부부사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전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혼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부부사이에서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I Love You’를 말하고 사는 나라에서 도리어 이혼율이 더 높습니다.
반대로 사랑을 제일로 생각하지 않는 나라일수록 이혼율이 낮다는 것입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나라들이 그렇습니다. 사랑을 제일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가정이 더 심하게 파괴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부가 사랑을 최고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에 결핍을 느끼기 시작하고 결핍을 느낌으로써 욕구불만이 생기고, 그것이 쌓여 파괴로 나아갑니다.
부부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혼율이 낮은 나라, 고대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일수록 부부가 사랑으로 살려고 하기보다는 도리로 살려고 합니다. 남편의 도리, 아내의 도리, 아버지의 도리, 어머니의 도리,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도리, 그 도리 때문에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고 참고 인내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맨틱한 사랑이 부부가 사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면 그 가정은 그때부터 붕괴가 진행되는 빌딩과 같아질 것입니다.
저는 결혼 주례사에서 꼭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대들이 사랑해서 가정을 이루게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가정이 그대들의 사랑을 유지시켜 줄 것입니다.” 감정적인 사랑은 언제가는 식지만, 가정의 도리를 다할 때 사랑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부부가 행복해지려면 각자의 도리를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리를 추구할 때 자연히 따뜻하고도 진정한 사랑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히브리서 10장 23절에 그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히10:23).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가 그러했습니다. 어려움이 닥쳐도 도리를 다하려는 희생적인 사랑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부부는 믿음의 도리를 함께 붙잡고,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함께 따라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저는 결혼 상담 시간에 예비 부부에게 꼭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마주보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제는 서로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부부가 서로를 향해서 행복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같은 인생 철학을 가지고, 같은 믿음으로, 같은 목적으로, 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라고 합니다.
시편 128편 1절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 128:1).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모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해도 가정만큼 다양한 복을 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가정은 모든 세대를 통해서, 모든 분야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복이 바로 나의 행복입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2-3).
기도하는 가정이 되자
가정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두번째 방법은 기도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기업을 일으킨 뒤 고향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 집은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매우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이건 너무 초라하지 않나요.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 주위 사람들은 걱정스럽게 포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이지요.”
지금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의 기념관에 가면 우리는 이런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헨리 포드의 성공의 이면에는 꿈꾸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이 함께 이룬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습니다.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깝고도 정확한 주소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누리는 기쁨은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일 뿐입니다.
부모 공경과 자녀 양육
하나님의 복을 받은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세대 간의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어린 자녀의 분노는 때때로 불가사의하고 부모에게 스트레스를 줍니다. 파괴적이고 도전적이며 위협적인 감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갖는 분노를 무시해선 안됩니다. 폭력성과 잠재성 때문에 잘못 다뤄진 분노는 불안과 두려움, 자기비하, 절망 등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노는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므로 부모는 아이가 분노를 건전하게 처리하도록 자녀를 도와줘야 합니다. 간혹 부모는 자녀의 분노의 원인을 생각하기 보다는 부모의 권위에 상처를 주는 불손한 태도에 흥분하게 됩니다. 결국 본질은 없어지고 감정만 남아 자녀를 훈계 또는 체벌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에게 벌을 줄 때도 화난 채로 하지 말고 잘못된 행동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침착하게 말해주어야 한다.
“아비들이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이 말씀은 야단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이유없이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체벌이나 꾸중 후엔 꼭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깊은 포옹으로 ‘너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단다’라는 마음을 전달해야 합니다. 아이가 분노 가운데 행동할 때 “네가 화가 났다는 걸 알겠어”라고 말해주며 건설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게 합니다. 산책, 자기 방에서 실컷 울기, 기도, 또는 모든 괴로움을 시원히 털어놓게 하는 것 등이 그 예입니다.
여러분의 아이가 ‘미, 양, 가’로 매겨진 성적표를 받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이 바보야,이것을 공부라고 했니!”
한참을 야단하고 난 다음에는 이상하게도 자기 신세 한탄을 합니다.
“아이구, 이 녀석아 너 교육시키느라 드는 학원비 레슨비가 얼만데, 겨우 이 정도냐?”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고 나면 현장에 없는 아버지를 끌어 들입니다.
“지 애비를 꼭 닮았으니 네가 무슨 공부를 잘 하겠니?"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말로 하든 안 하든 아이에게 전달되는 내용은 대동소이 합니다. 어떤 표현을 하든지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은 동일합니다. ‘이 멍청아, 돈이 아깝다. 아까워!’
아이들은 이런 야단을 수 없이 듣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아이대로 ‘그래, 나는 아버지를 꼭 닮아서 공부를 못하는데 왜 나보고 공부 잘하라는 거야?’ 하면서 화를 내고 반항하게 됩니다.
정신 분열증에 걸리면 귀에서 왕왕거리는 소리 때문에 자꾸 떠든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이것을 ‘마녀의 소리’ 라고 합니다. 마녀의 소리로 자녀의 머리 속에 기억될만한 말을 하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저주하고 폭언하고 비판하는 말은 곧 잊어버릴 것 같아도 머리 속에 나쁜 말은 나쁜 말대로, 좋은 사람은 좋은 말대로 기억됩니다.
어떤 치유 세미나에서 한 분이 발표한 한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어릴 때 매우 몸이 약했나 봅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찌를 했는데, 초등학교4학년 때였던가, 하필이면 추석 다음날에 운동회가 열렸습니다. 생전 운동회에 구경을 오지 않던 어머니가 그 날 따라 하얀 모시 한복을 차려 입고 구경을 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달리기에서 꼴찌하는 모습을 보아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성격이 활달하고 욕심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무엇이든 뒤쳐지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이 꼴등하는 꼴을 어찌 볼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속이 부글부글 끊었겠지요?
이 아이는 친구들과 놀다가 어둑어둑할 무렵 아무것도 모르고 대문을 막 들어서려고 할 때였습니다. 그때까지 마루에 분에 겨워 장승처럼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서면서 아이를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꼴등하는 새끼는 내 새끼가 아니니까, 나가서 죽어버려!”
그렇지 않아도 하루 종일 꼴등만 해서 기가 죽을 대로 죽어 있던 아이의 가슴에 어머니의 말이 비수가 되어 꽂혔습니다. 이 아이는 정말로 죽어버리려고 한밤중까지 아무도 없는 들판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결국 죽지는 못했지만 일년 후 5학년 때 다시 운동회 날이 돌아왔습니다. 운동회 날이 가까워 오자 가슴이 한없이 떨려 왔습니다. 나는 한 달 내내 운동회 연습을 하면서 고민했습니다. 매일 양잿물을 쳐다보면서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막상 운동회 경주가 시작되자 불안으로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 여파 때문에 그는 그 후로 히스테리 신경증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히스테리 신경증이 발작을 하면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에게 온갖 화풀이를 해댔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이제는 어머니께 공격적이 되었습니다.
“내 몸이 이렇게 약해진 것은 다 어머니 때문이야. 어머니가 그때 그렇게 야단치지만 않았어도 나는 아마 운동을 좋아했을 거야. 그리고 운동을 좋아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몸이 약해지지도 않았을 거구.”
그는 모든 탓을 어머니에게 돌렸습니다. 이제는 아들의 이같은 앙탈에 어머니는 묵묵히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분이 상담학을 전공하면서 교수와 동료 학생들 사이에서 자기 분석을 하게 됩니다. 상담자가 자기 분석을 잘해야 훌룽한 상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들여다 보면서 자기 속에 있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의 야단치는 모습 한 모습만을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자기를 위해서 희생당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향해서 끊임없이 고생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는 즉시로 어머니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씁니다.
자녀를 분노하지 않게 하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세대간의 연관된 문제인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부모님을 끝까지 기쁜 마음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도 효도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결코 나를 떠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은 나와 항상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 속의 부모님과 화해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내 마음에 평화가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맹목적인 도덕율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행복하게 되는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돌아가신 남편이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내 삶 속에 있습니다. 이혼한 남편도 아내도 나를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닙니다. 마음 속에서 용서와 화해를 이루어야 내가 평화로운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으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아버지가 주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넉넉히 받았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알면,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한 섭섭함이 아니라, 도리어 부모님의 약한 부분을 바라보며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효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존경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남편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신랑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처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주시고, 여성적인 사랑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 육신의 남편, 아내가 못 주는 엄청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진정한 가정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의 사랑 안에서 완성됩니다.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정에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가정을 통해서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복의 백과사전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보물을 발견하시고 생명의 둥지를 키워나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박병욱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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