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을 받으라 (행 19:1-7)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시에 에베소 교회에 들려서 질문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그때에 에베소교인들은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하였노라"고 대답하였고,
바울은 다시금
"그러면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요한의 세례라"고 대답했을 때,
바울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들 위에 안수를 했을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미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에게 이상한 질문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 앞에 나온 것을 말함이 아니라 성령의 세례를 받았느냐 즉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체험을 하고 그리스도의 영이 네 안에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첫째. 성도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구약은 성부 하나님의 시대요, 신약은 성자 예수님의 시대요, 지금은 성령 하나님의 마지막 은혜주실 때(고후 6:2)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뜬세상의 꿈과 죄악세상의 잠을 깨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도 가까워졌습니다(롬 13:11-).

성령 충만은 환난 날에 승리하기 위한 중무장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반드시 환난의 날은 오고야 맙니다(단 12:1, 마 24:9, 계 2:10).
그러나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는 환난 날에도 해함을 받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계 9:4).
하나님의 신에 충만한 사람만이 요셉처럼 죄의 유혹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창 39:12, 41:38).
성령충만 받은 사람이라야 스데반처럼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고 순교할 수 있고, 알곡 되어 천국창고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행 7:60).

둘째. 성도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소망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들어가서 머물러 움직이니 내일을 예언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아야 젊은이도 환상을 보고 늙은이도 꿈을 꾸게 됩니다(행 2:17).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것은 육안으로나 육체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환상은 성령의 계시요,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하는 방법입니다.
성령충만은 구속의 도리와 십자가의 도가 믿어 집니다.
부활 승천과 재림, 심판이 믿어 집니다.
신천신지를 믿고 사모하는 일들은 모두 성령충만 받은 자의 환상에 속합니다.

까닭에 성령충만 받은 사람에게만 내일의 소망이 있을 뿐입니다.
미래가 없는 사람이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음은 시간 속에 영원히 들어오는 것이요, 어둠속에 빛이 임함이며, 죽음 속에 생명이 임함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음은 불가능속에 가능이, 제한 속에 무제한이 임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음은 저주 속에 축복이, 슬픔 속에 기쁨이 임하는 근본적인 변화인 것입니다.

셋째. 성령충만을 받아야 교회도 부흥합니다.

교회성장의 부진은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지 못함에 있습니다.
교회성장 부진의 근본 원인이 조직의 결함이나, 제도의 미비나, 건물의 빈약, 환경의 악영향에 있음이 아닙니다,
오순절 성령의 불이 꺼져 있기 때문입니다.
학문이 많은 아볼로의 주지주의로 에베소교회가 살거나 부흥할 수는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장은 성령충만 받은 무리들이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에 힘쓸 때 구원받는 수는 날로 늘어가게 된 것입니다(행 2:47).

출처/박광현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