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으로서의 십일조    (말3:7-12)


지난주에는 재물에 대한 청지기로서의 자세를 살폈습니다. 오늘은 그 재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구체적 표현인 헌금 중에서 십일조를 생각하겠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①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쌓을 것이 없도록 부어주시겠다(10절)는 것 때문에 그것을 목적으로 드리는 태도입니다.
②구약 율법적이라는 오해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입니다.
이런 오해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십일조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정리하므로 십일조를 이왕 하는 분들은 그것이 진정한 의미를 담은 복이 되기를 바라며 아울러 오해로 인하여 주저하던 분들은 이 복된 자리에 동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십일조는 율법이므로 구약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십일조는 율법 전에 이미 생긴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전쟁에서 롯과 소돔 사라들을 구하고 돌아와서 승리의 감격을 십일조에 담아 드렸습니다(창14:20).
야곱의 십일조도 나옵니다.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야곱이 루스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받고 감격 속에 서원한 것이 십일조입니다(창 28:22).
이들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감격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의 고백이 담긴 헌금입니다.
승리를 맛본 후에 아브라함이 드린 것이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체험한 야곱이 벧엘에서 감격스럽게 서원한 것입니다.
율법이 생기기 약 5백 년 전에 이미 십일조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의 첫 책인 창세기에 십일조가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 역시 십일조를 언급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감격의 표시로서 드려진 십일조입니다. 말라기의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면서 생긴 잘못된 헌물과 십일조 생활을 바로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주님도 이 구약의 십일조를 인정하셨습니다.
마태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주님이 십일조를 폐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것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정신적으로 더 높은 의의 삶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십일조란 하나님이 주인 됨을 고백하는 가장 중요한 헌금입니다.

신약은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전부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롬12:1).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주장은 구약에서 뿐 아니라 신약에서 특히 강조하는 중심적 사상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므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롬14:8).
이런 정신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모든 것이 주의 것이고 나는 주의 뜻이라면 모든 것을 하겠다는 신앙고백을 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십 분의 아홉을 내가 쓰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바로 드린 사람에게는 나머지 10분지 9를 바로 사용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드렸으니까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머지를 바로 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식어 버리고 영적인 질병에 걸렸을 때 십일조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십일조는 우선 순위의 고백입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현재의 수입을 가지고는 십일조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 저것 꼭 써야 할 것을 다 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좀 더 수입이 늘면 그 때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가지고는 십일조든지 다른 어떤 헌금이든지 제대로 드릴 수 없습니다. 십일조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 여유가 생기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도 그런 일들은 있습니다. 밥을 굶더라도 꼭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면 수입을 가지고 우선 그것부터 챙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입니까?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인 분이라면 우리는 먼저 그 분의 것을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남는 것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형편이 좋아지고 나면 또 다른 것을 핑계로 삼습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십일조는 내 삶에 하나님이 가장 우선적인 분임을 고백하는 표현입니다.

십일조는 내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고백입니다.

분명히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데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지금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얻게 하신 결과임을 아는 고백입니다.
자. 분명하게 확인합시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쌓을 것이 없도록 부어주실 것을 바라보고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목적이라면 잘못 투자한 것입니다. 감격이고 신앙고백이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십일조를 드리는 중요한 동기라면 차라리 적금을 드십시오. 그것이 훨씬 빠르고 정직한 일입니다.

신앙고백으로서의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라면 삶도 달라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마태23:23에서 주님은 십일조와 함께 '의와 인과 신'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이라면 의와 인과 신을 함께 그 삶에 나타내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되 의도 인도 신도 없다면 십일조는 십일조답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지 않은 것처럼 하늘의 문도 닫히게 될 것입니다.
말라기의 강조점도 삶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거룩한 삶의 한 표현입니다(5,6절).

십일조, 그것은 신앙고백입니다.
그것은 정말 주님을 나의 전부로 여기며 우리의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임을 고백하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더 이상 주저하지 마십시오. 또 그것을 가지고 율법적이니 구약적이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버리고 우리의 감격과 고백을 그 속에 담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진정한 풍성함을 누리며 삽시다.

출처/김관선 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