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십일조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말3:7-12)

미국의 최고의 재산가였던 '록펠러'는 자신의 비망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의 재산이 자꾸 늘어간다. 재산이 늘어 갈수록 십일조를 더 드리는 것이 내 인생의 최고의 행복이다"
그는 자녀들에게도 반드시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4억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막대한 금액을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에 건축헌금으로 냈습니다. 그래서 1927년 미국 뉴욕에 '리버사이드 처치'라는 엄청나게 큰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그 교회에는 74개의 종이 달려 있는데, 한 번 종을 울리면 뉴욕의 전 시민이 그 소리를 듣는답니다. 그 교회는 뉴욕에서도 손꼽히는 역사적이고 아름다운 건물이 되었습니다.
'록펠러'는 아홉 살 때부터 남의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첫 월급부터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을 온전히 성수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와 함께 하옵소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많이 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그는 10의 1조만 드린 것이 아니라, 10의 2조, 3조, 5조, 8조, 9조까지 드렸던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훗날 시카고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또한 록펠러재단을 설립하고 엄청난 돈을 자선사업을 위해 썼습니다. 그리고 뉴욕 시민은 지금도 수도 요금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록펠러가 이미 다 지불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역사적으로 하나님 앞에 가장 충성하고 축복 받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까지 모두 축복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록펠러재단에는 십일조만 정산하는 경리부서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중요한 열쇠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천국에 들어가는 열쇠인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그 믿음이 열쇠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②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인 '기도'입니다. 기도는 지금도 역사를 일으킵니다. 기도는 지금도 응답됩니다.
마7:7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③물질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인 '십일조'입니다. 오늘 본문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성경에는 '십'자로 시작하는 정신이 세 가지 나옵니다. '십계명 정신', '십일조 정신', '십자가 정신'이 그것입니다.
'십계명 정신'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십일조 정신'은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정신입니다.
'십자가 정신'은 인류의 죄를 청산하시려고 갈보리언덕 십자가위에서 피흘려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우리의 생명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정신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왜 미국이 유대인 편만 들고, 아랍인 편을 들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정치, 경제, 사회, 법조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만 보더라도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 가면 은행과 증권회사들이 몰려 있는데, 그곳도 유대인들이 거의 다 장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세계 다이아몬드의 90%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물질적인 부를 가지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십일조를 잘 드리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축복하시고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에는 원리와 원칙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라면 국법을 준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법을 통하여 적정 이윤에 대한 정직한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탈세자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또 건강한 청년이라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피자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교통법규를 준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하나님은 선민(選民)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주셔서 지키게 하셨고, 그렇지 않을 때 심판을 하셨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말라기 선지자(B.C. 432년경)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를 회개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물질의 축복을 받으라고 전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마지막에 나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B.C. 722년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B.C. 586년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끌려가 오랫동안 포로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교만했던 죄를 다 회개하고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B.C. 537년 바사의 고레스 왕 때 1차로 스룹바벨의 인도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B.C. 458년 2차로 에스라의 인도로 돌아와 신앙개혁운동을 일으켰습니다. B.C. 444년 3차로 느헤미야의 인도로 돌아와서 성벽까지 재건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국가가 세워지고 부요하고 평안한 삶을 살게 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온 지 100년이 지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바사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무거운 세금을 바쳐야 했고, 계속되는 가뭄과 병충해, 특히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논밭과 포도원이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들은 점차 믿음을 잃고 원망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저주를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기 때문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본문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공산주의 국가가 왜 망하는지 아십니까? 기독교 국가는 선진국이요 복지국가인데, 우상숭배하는 나라는 왜 가난하고 재난과 저주가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보십시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떠났습니다.
이북과 이남을 비교해 보십시오. 다른 조건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 이북은 교회 문을 닫고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교회가 있던 자리에 김일성 동상을 세우고 우상처럼 숭배합니다. 그래서 흉년이 들고 엄청난 가난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고통받고 굶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반면 이남은 하나님을 믿고 교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남한은 하나님을 잘 믿어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잃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고 돌아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지 않나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으로! 십일조로!

1. 십일조의 유래를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이므로 구약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십일조는 율법 전에 이미 생긴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전쟁에서 롯과 소돔 사람들을 구하고 돌아와서 승리의 감격을 십일조에 담아 드렸습니다(창14:20).
야곱의 십일조도 나옵니다. 창28:22절 이하에 보면,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받고 감격 속에 서원한 것이 십일조입니다.
이들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감격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의 고백이 담긴 헌금입니다. 승리를 맛본 후에 아브라함이 드린 것이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체험한 야곱이 벧엘에서 감격스럽게 서원한 것입니다.
율법이 생기기 약 5백 년 전에 이미 십일조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의 첫 책인 창세기에 십일조가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 역시 십일조를 언급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감격의 표시로서 드려진 십일조입니다. 말라기의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면서 생긴 잘못된 헌물과 십일조 생활을 바로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이 구약의 십일조를 인정하셨습니다.
마23: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주님이 십일조를 폐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것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정신적으로 더 높은 의의 삶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2. 십일조를 드리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인가?

①십일조란 하나님이 주인 됨을 고백하는 가장 중요한 헌금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주장은 구약에서 뿐 아니라 신약에서 특히 강조하는 중심적 사상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므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롬14:8).
②십일조는 우리들의 삶에 우선 순위의 고백입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현재의 수입을 가지고는 십일조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 저것 꼭 써야 할 것을 다 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좀 더 수입이 늘면 그 때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가지고는 십일조든지 다른 어떤 헌금이든지 제대로 드릴 수 없습니다. 십일조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 여유가 생기면 하는 일이 아닙니다.
③십일조는 내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지금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이(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얻게 하신 결과임을 아는 고백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쌓을 것이 없도록 부어주실 것을 바라보고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목적이라면 잘못 투자한 것입니다. 감격이고 신앙고백이어야 합니다.
④신앙고백으로서의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라면 삶도 달라야 합니다
마23:23절에서 주님은 십일조와 함께 '의와 인과 신'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라기의 강조점도 삶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거룩한 삶의 한 표현입니다(5,6절).
십일조, 그것은 신앙고백입니다. 그것은 정말 주님을 나의 전부로 여기며 우리의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임을 고백하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3. 십일조를 드려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①십일조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공짜로 그 하나님의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특별히 가축의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첫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민족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내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십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에게 돌려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②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복을 받겠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도 사람의 것을 도적질하면 절도죄로 중형을 받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서야 어떻게 되겠습니까?

③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저주와 심판을 받습니다.

4. 그렇다면 우리들의 십일조를 통한 복은 무엇일까요?

①하늘 문이 열리는 복과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은 말라기 선지자의 말이 아닙니다. 목사의 말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주인이심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늘과 땅과 바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속이지 말고 수입의 십분의 일을 온전하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드리는 것이 축복의 기름길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창고', 즉 성전, 나의(하나님) 집인 교회에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축복이 어디에서 옵니까? 하늘에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제때에 비가 풍족하게 오면 농사가 잘되어 목축도 잘되고 사람도 풍족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때에 비가 오지 않고, 6개월, 1년, 2년, 3년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식물은 다 말라버리고 짐승과 사람도 굶주리게 됩니다. 하늘로부터 적당히 비가 내려야, 하나님께서 근본적인 축복을 주셔야 모든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14:22, 29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고 가르쳤습니다.
대하31:6, 10절에도 히스기야도 유다 백성과 함께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복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와 헌물이 축복이 되어 다시 그들에게 돌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번성케 되었습니다(창14:20;17:6).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창28:22; 32:10). 기쁨을 얻었습니다(신12:6∼7). 범사에 복을 받았습니다(신14:28∼29). 칭찬을 받았습니다(신26:12,15,19). 차고 넘치는 복을 받았습니다(대하31:5∼7, 10). 하나님께서 해를 막아 주셨습니다(말3:10∼11).
'복인복과(福因福果)'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된 일을 하면 복된 결과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좋은 씨를 심어야 좋은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 앞에 축복과 사랑을 받으려면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100년 전 우리 나라 기독교 초기에 황해도 재령의 동부교회에서 김익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의 일입니다.
김 목사님은 본래 병자를 잘 고치기로 유명하셨기 때문에 수많은 환자들이 와서 안수를 받으려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건강한 젊은이가 와서 자기한테도 안수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이상해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슨 안수를 해 줄까요? 어디가 아픕니까?" "아픈 곳은 없습니다. 십일조 안수를 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것이 무슨 말인지 들어보았더니, 믿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아 십일조를 내기가 아까우니 그것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 이름이 뭐요?" "정찬유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 평생 동안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게 하옵소서" 기도하신 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십일조 주머니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찬유라는 사람은 나중에 재령읍 동부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큰 축복을 받아서 개인 재산으로 교회를 건축하여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래서 이 두 분은 한국교회사에 전도 많이 하고 성전 많이 지은 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어서 그렇지 믿음만 가지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②황충이 금하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11).
여기서도 다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황충을 금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황충은 아프리카 사막지대의 메뚜기 떼로, 순식간에 논밭의 곡식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우기 때문에 한해 농사를 망치고 맙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것을 드리지 않을 때에 황충이 달라붙습니다. 사고, 질병, 사기, 문제, 부도 등의 바로 황충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재앙을 막아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재산이나 건강이나 가정에 손해나 손실을 입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③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 복을 받습니다.
과일은 떨어지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어야만 합니다. 수고한 대로 먹고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의미 깊은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을 바로 드리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 그곳에는 놀랍고 풍성한 복이 있습니다.

④땅이 아름다워지는 복을 받습니다(12).
'땅이 아름다워진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의 땅은, 하나님께서 옥토가 되게 하셔서 농사가 잘되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즉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는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셔서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삭 같은 경우도 그 나라에 가뭄이 들었는데 이삭만 그 해에 농사 100배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⑤열방이 복되다고 칭찬하는 복을 받습니다(12).
우리 기독교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이론적인 종교가 아니며 실제적, 현실적인 종교입니다. 우리가 바로 믿고 순종하면 현실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줄 믿습니다.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라가 잘되고 번창해서 "과연 당신네 나라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하고 주변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의 칭찬이 자자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잘났다고 하면 뭘 합니까? 남들이 인정해 줘야 합니다. 내가 내 자식 칭찬하면 뭘 합니까? 주변에서 칭찬해 줘야 그것이 진짜 칭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열방이 복되다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패가 아니라, 성공하는 역사를 베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거지도 자기들끼리 모이면 되게 자기 자랑하는 거지가 있습니다. 자기는 남보다 수입도 많고 잘나고 똑똑하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랑을 해도 거지는 거지일 뿐입니다. 거지가 잘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남이 칭찬을 해 주어야 진짜 칭찬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어도 남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칭찬 받고, 사람 앞에 칭찬 받아야 합니다. 또한 열매가 좋고 자손이 잘되어야지 자기 자랑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사람에게는 열방이 복되다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친척뿐만이 아닙니다. 이웃뿐만이 아닙니다. 주변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이웃의 모든 나라가 복되다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한국도 1천만 기독교 신자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 이스라엘보다도 더 복 받는 나라가 될 것을 믿습니다. 일본보다 중국보다 더 잘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일본과 중국을 따라잡겠습니까? 광활한 땅, 13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을 우리가 무엇으로 따라 잡겠습니까? 일본의 선진 제도를 어떻게 따라 잡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잘 드리는 민족이 되면, 하나님께서 한국을 축복받는 나라로 만들어 주십니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앞으로 한국이 21세기에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도, 여러분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는 IMF가 오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나라가 저주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정치가 잘못되고, 경제가 망하지 않도록 축복하옵소서. 모든 교회와 전 한국 민족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려서 저주는 떠나가고 축복이 임하게 하옵소서'

▶청주 중앙순복음교회 백남순집사님의 간증입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집사님은 감사헌금은 드렸지만 십일조는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더니 남편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쓰러지셨어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는 아들이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비만 1000만 원이 나왔습니다. 집사님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왜 우리 집안에 이런 사고가 많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동안 하나님께 십일조를 도둑질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에 내야 하는 돈이 십일조의 5배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십일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비로소 지켜야 할 것은 다 지킨 것 같습니다. 새벽 예배, 수요 예배, 금요 예배, 주일 예배, 모든 예배를 다 드리고, 십일조까지 드렸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차례입니다.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런데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이 생기니까 먼저 가정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교회에 따라 나오면서, 수술을 해도 못 고치고 평생 고질병이었던 치질이 나았습니다. 술과 담배를 끊었습니다. 아들은 일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딸은 교수로 채용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학교 선생이었던 집사님은 교장으로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 자꾸 생겼습니다.

5. 십일조를 드려도 복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즐거움과 감사로 하지 않고 부담감과 의무감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수입이 많은 분일수록 인간의 계산이 앞섭니다. 그러나 의무감으로 드리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의 일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②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③십일조를 드리고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의롭게 생각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내가 십일조를 드리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는다고 교만하면 안됩니다. 더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아주 인색하기로 소문이 난 김 권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재산은 많았지만,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는 것이 아까워서 감사헌금만 조금씩 드렸습니다.
그런데 3대 독자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며느리가 임신을 하기만 하면 낙태를 합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세 번째 임신을 하자,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뭐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함께 기도해 보십시다"
그런데 목사님이 기도하시던 중에 하나님께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는 말씀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펼쳐 놓고는 권사님에게 말했습니다.
"권사님,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렵겠지만 십일조를 드리셔야 되겠습니다"
이때부터 인색하기로 소문난 이 권사님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며느리의 배가 점점 불러지더니 기한이 다 되어 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옥동자 같은 아주 귀여운 손자를 낳았습니다.
권사님은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십일조가 세긴 세구나!"
그는 진작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축복을 받으려면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솔선해서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