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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빌2 : 5-11)
빌립보서 2 : 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인생행로에는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는데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문이니, 이 길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개척하신 길로서 우리는 그 길을 가리켜 십자가의 길이라 합니다.
주님에게는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들이 열려 있었습니다.
먼저 돌로 떡을 만들어 자신도 배불리고 민중의 빵 문제도 해결해 주므로 자기 백성을 기아 가운데서 건져낼 수 있는 경제적 메시아의 길도 있었으며, 드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되 발하나 상치 않음으로써 민중의 박수와 갈채를 밟는 종교적 메시아의 길도 있었으며, 마귀에게 엎드리어 절을 하고 세속적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박해받는 유태민족을 로마의 악정권에서 해방해 내는 정치적 메시아의 길이라든지, 철학자 헬라 사람과 같이 헬라로 가서 저들의 랍비가 되어 주므로 쓴잔을 도피할 수 있는 안락한 메시아 길도 없지 않으며, 하늘 아버지께 구하여 하늘 군사를 불러 하나님 앞에 파리떼와 같은 로마병정 일당을 물리칠 수 있는 군사적인 메시아의 길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이 모든 길은 청년 예수님에게 있어서 얼마든지 구미가 당기고 매력이 있는 길들이었고, 따라서 제자와 백성들로부터 인기와 환영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 모든 입신양명의 길을 거부하시고 가장 좁고, 험하며, 괴롭고, 쓰라린, 십자가의 길을 향하여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며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걸어가신 생명과 진리의 길인 이 십자가의 길은 어떻게 출발하시어 어떠한 노정을 밟으시며, 그 종점과 결과는 어떠하셨는지 '십자가의 길'이란 제목으로 본문 말씀을 함께 상고하겠습니다.
1. 십자가의 길은 그 출발이 자기 부정이었습니다.
본문2장 6절은 도성인신을 가르치신 말씀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가 하나님과 동등되는 자격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주님의 철저한 자기부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주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려고 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며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신앙생활을 하는 첫째 조건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의식이 뚜렷한 현대인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분도 계실지는 모르나, 자기부정은 신앙생활 입문에 첫 관문이요, 주님의 제자가 되어 그 뒤를 따르려는 데 첫 조건이 됩니다.
제가 군대에 처음 입대했을 때 상관은 우리보고 백지로 돌아가서 새로운 군인정신으로 무장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생명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데 어찌 자신을 비우지 않고,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 이성이 사유의 시험관 속에 들어가 분석되고, 정리되고, 실증되어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간은 신의 실존을 올바로 인식하여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참된 의미에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라고 하는 겸손한 고백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계시의 빛은 인간 이성의 어두운 장막을 뚫고 개인의 영혼 위에 비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치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빛 앞에 엎드러진 사울이 바울이 되어 고백하기를,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요, 만물의 때만도 못한 자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의 빛이 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새로운 생명의 빛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 철두철미한 자기부정에서부터 새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으며,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했습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 31미 자기 부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십자가의 길은 그 노정이 자기 비하입니다.
빌립보서 2장 7절 -8절에 보면, 하나님과 동등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출생하신 것을 비롯하여 나사렛촌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시어 천대와 멸시로 일생을 보내시며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약자를 도우시며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일생동안 풍찬노숙(風餐露宿)하시며 집없는 생활을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고 하신 것이 그의 생활이기도 합니다.
셋째,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벅찬 말씀을 하시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죄인을 용납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며,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제공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에도 자신을 비하시켜서 겸손과 성실로 일관하여야 할 것이며 열심으로 전도하여 영혼을 사랑하며 이웃의 슬픔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이 높이 들어 비쳐 주시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몸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인간 세상에 와서 겸손과 봉사로, 무저항주의로 일관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러했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러했고, 리빙스톤이 그러했으며, 슈바이처가 그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손양원 목사님이나, 이용도 목사님이나, 길선주 목사님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손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섬기며, 자기를 비어 주어진 개척의 사명을 완수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라크의 후세인은 자기를 부정하기 싫고 자기를 비하하기 싫어서 끝까지 콧대를 높이다가 패망국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소요와 문제가 생기는 것도 자기의식을 너무 내세우는 데서 와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십자가의 길은 그 종점이 자기 희생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하반절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첫째, 주께서는 자기 몸을 비어 낮추실 뿐 아니라 마침내 자기 몸을 인류를 구원하는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상에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인류를 죄악 가운데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주의 피를 희생으로 지불하셨습니다. 대만의 생번들이 사람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악풍을 없애기 위하여 오풍선생의 희생이 필요하였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영생을 위하여 주님께서 대속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주께서는 우리에게 이 십자가의 희생의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을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 종점이 자기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사도가 그러하였고, 오늘까지의 수많은 순교자가 그러했습니다. 구속에 감격하여 살아온 많은 성도가 그러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성공과 축복만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희생과 고달픔이 먼저 올 때가 많으며 괴로움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그 언덕너머에 영원한 안식과 영생이 있습니다.
결 론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 출발이 자기부정이며, 그 노정이 자기비하이며, 그 종점이 자기희생입니다. 결과는 무엇을 가져오겠습니까? 한때 구라파 천지를 마음대로 뒤흔들던 불란서의 영웅 나폴레옹이 센트 헤레나로 유형가서 죽기 전에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검을 가지고 구라파를 정복하려 하였으나 내가 최후에 얻은 것은 나를 파묻을 한 평의 무덤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를 못박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던 나사렛 예수의 사랑은 오늘날 땅끝에서부터 땅끝까지 온 세계를 정복하고 말았구나"고 한탄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하신대로 결과는 망하고 마나 십자가의 뒤를 따라 그의 사랑 안에서 사는 성도에게는 자기 부정과, 자기 비하와, 자기 희생을 통하여 영원한 영생을 가져옵니다.
또한, 참 신앙은 영생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1절-12절 말씀에 "주와 함께 죽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앞에는 영생과, 영광과, 부활과, 승리가 있으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주께서 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갑시다. 우리의 기도가 속히 응답이 안온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길이 십자가의 길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