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를 온전히 바친다(Ⅰ)    (창14:17-20)


하나님과 이스라엘 선민 사이에 맺은 대대에 이를 영원한 3대 표징이 있었습니다. 그 첫째는 난 지 8일만에 받는 할례였습니다. 그것은 선택 언약의 선민된 표시였습니다. 이것은 신약의 세례와 같습니다. 둘째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약의 성찬과 직결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안식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약의 주일입니다. 예외가 없이 절대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명(神命)의 규례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된 선민(選民)의 표요 성민(聖民)의 표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영적 차원의 표징들이었습니다.
또 하나 다른 종류의 표징이 있다면 소득의 십일조를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헌제행위였습니다. 이것은 물질적 축복과 직결하는 하나님 자신의 명령입니다. 거룩한 구속사의 전통을 따르는 경향인도 예외가 없이 소득의 십일조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복된 생활 강령으로 여기며 영예롭게 여깁니다.

Ⅰ. 십일조의 기원과 역사

십일조가 맨 처음 언제, 어디서, 누구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 나타난 확실한 기록을 보면,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그가 취한 전리품 중 십분의 일을 바쳤다는 사실입니다(창 14:20). 그 후 그의 손자 야곱이 하나님께 십일조 서원을 하였습니다(창 28:22).
이것이 모세 시대에 와서, 시내산에서 여호와로 말미암아 선민의 생활 규례로 입법화되었습니다(레 27:30-34, 민 18:20-32, 신 14:22-29).
선지 시대(예언)에 와서 히스기야 왕 때 신앙부흥과 함께 십일조 운동이 일어나고, 경제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대하 29:, 31:5-7). 느헤미야 시대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십일조 생활을 복구하였습니다(느 13:10-13). 말라기 선지 시대에는 하나님의 십일조를 도적하므로 하나님의 엄한 책망을 받은바 있습니다(말 3:7-10).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400여 년 어간에도 외경(Apocrypha)과 탈무드(Talmud)에서 계속해서 십일조 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도래와 함께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들은 십일조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십일조 생활을 칭찬했는데, 그것이 외식화 되었을 때는 꾸중을 하였습니다(눅 18:12, 11:42).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으로 자신도 십일조 생활을 성실히 하셨을 것입니다(마 5:17).
초대교회는 십일조선을 넘어서 버린 유무상통과 복음 선교활동을 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행 2:44-47, 4:32-35).
바울은 전도자의 생활에 대하여 말할 때 구약의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이 성전의 십일조에 의존했던 것처럼, 신약 교회의 십일조와 연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고전 9:13-14, 민 18:21, 24, 신 18:1). 히브리서 저자도 십일조를 언급하였습니다(히 7:8).
초대교회 교부들 가운데 이레니우스(Irenius)는 “유대인들이 십일조를 바쳤거든 하물며 은혜 아래 있는 성도라면 소유의 전부라도 주를 위해 바쳐야 할 것인데, 십일조를 기쁘게 바치지 않는다면 이것은 확실한 모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구약의 십일조에 얽매이기보다, 자유를 얻은 크리스챤은 주님 사업을 위하여 모든 재산을 바칠 각오를 하고 필요할 때까지 재산의 가치있는 부분을 즐겁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바쳐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부 크리소스톰(Crysostom)은 오리겐(Origen)이 한 말 즉 “크리스챤은 구약시대의 유대인보다 헌금에 있어서 앞서야 된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구약의 십일조를 능가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터툴리안(Tertullianus)은 “십일조는 창조의 법칙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Augustinus)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의 유익과 축복을 위하여 헌금정신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십일조를 태만히 하는 것은 확실히 범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고, 하나님을 섬긴 아담(?)과 아벨(?) 이후에 아브라함 때 나타나고, 모세 시대에 법제화되었습니다. 왕정시대에 경제부흥의 요건이 되었으나, 선지 말기 시대에 와서는 십일조를 불이행하다가 개인과 가정과 나라가 궁핍하여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후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이 제도를 시인했고, 오순절 이후 교회 시대는 확실히 십일조선을 더 넘어서는 헌금의 내용들을 볼 수 있습니다.

Ⅱ. 십일조 신학

전 성경에 나타난 십일조의 참된 의의는 사실상 십일조 신학을 정립시키고 있습니다.

1. 십일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① 성부 하나님 자신의 명령입니다.
레위기 27장 30절에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레 23:16-18, 민 28:26-31, 잠 3:9-10).
② 성자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20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③ 성령님의 축복 역사였습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34, 35절에는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신약 교회는 물질이 성도들을 섬기는 중대한 역할을 하였고 후한 연보, 거액의 연보가 복음 전파행위에 힘있는 수단이 되었습니다(행 11:28-30, 롬 16:, 고후 9:, 빌 4:18…). 이미 신약 교회는 구약의 십일조 한계를 훨씬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였습니다. 구원의 날에 드려지는 감심적인 헌금 행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2. 재물의 참된 소유주를 알려주는 계시의 원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요 소유주이심을 알려주는 계시행위가 십일조 명령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시 24:1, 역대상 29:11-14, 요 1:3).
학개서 2장 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8장 18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재물의 창조주요 소유주가 하나님 자신을 알리는 방법 중에 하나가 십일조 명령이었습니다.

3. 성민된 삶의 표식입니다.
① 그것은 하나님 경외를 물질적으로 나타내는 가시적 행위였습니다.
잠언 3장 9-10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할례는 몸의 성별이었습니다. 안식일은 시간의 성별이었습니다. 유월절은 영의 성별이었습니다. 십일조는 물질의 성별이 됩니다.
② 그것은 또한 사랑과 감은의 표식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한 표식입니다(고후 9:15).
③ 그것은 또한 복음전파를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가 바치는 십일조와 그 외 여러 가지 물질 봉사의 행위는 바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수단이 됩니다.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교회를 세우는 필연적인 수단이 됩니다(마 6:33, 28:19-20). 십일조는 위대한 복음 선교의 자원이 됩니다.

4. 청지기 의식과 사명의 표식입니다.
① 십일조 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살 동안 하나님의 물질을 위탁받은 자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욥은 이러한 사실을 고백하기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라고 하였습니다(욥 1:20-21).
② 주인의 뜻대로 사용한다는 고백적 표식입니다(출 23:19, 시 96:8).
③ 그리고 주인께 그 마지막을 결산한다는 표식입니다(마 25:13-30, 롬 14:12, 갈 6:7).

5. 축복계시의 원리입니다.
① 영적인 축복이 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후 9:7). 또한 그것은 그가 십일조의 신명(神命)에 순종하는 축복입니다. 그의 순종 신앙에는 성장하는 성화의 축복이 따라옵니다.
② 물질적 축복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문을 열어주시는 축복을 받습니다(말 3:10). 이 말은 하늘에서 늦은비와 이른비와 소낙비를 내려주심을 뜻합니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하늘의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주지 아니하는데 어찌 땅이 그 소출을 낼 수 있겠는가? 하늘이 열리지 않은 땅의 창자들은 모두 말라 버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어주시는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말 3:10). ‘쌓을 곳이 없도록 가득히 채워주시는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말 3:10). 모든 재앙에서 보호받는 복이라고 하였습니다(말 3:11). 모든 자원의 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름다운 땅’을 가리킵니다. 비옥한 땅, 기름진 땅, 생산력의 자원이 있는 땅을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인생에게 명령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명령은 우리에게 신앙과 순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지고하신 명령이 인생에게 무수한 축복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다고 영생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요 3:16, 행 16:31).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고 하는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출 20:12, 엡 6:1-2). 모든 소득의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늘의 문을 열고 너희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주신다고 하는 물질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말 3:10).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인 치약회사 ‘콜게이트’는 바로 그 회사의 창설자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는 영국에서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아버지와 폐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로 인해 거지생활을 하며 방황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가는 상선 짐짝 사이에 숨어 있다가 나중에 발각이 되었습니다. 그는 끌려가서 매를 맞으며 문초를 당하는 중 울면서 자기 가정 사정을 이야기하며, 돈벌이를 하러 가기 위해 몰래 배를 탔다고 실토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장은 콜게이트를 그 날부터 자기 양자로 입적하였습니다. 나중에 그 선장이 늙은 후 그 배를 팔아 치약회사를 설립하고 그 회사 이름을 콜게이트라고 하였습니다.
콜게이트는 어릴 때부터 독실한 신자인 부모로부터 주일예배 생활과 십일조 훈련을 엄격히 받은 자였습니다. 항상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를, 왼쪽 주머니에는 수입금을 넣도록 훈련받으면서 자랐던 것입니다. 그는 미국에 와서도 어릴 때 그 습관을 따라 수입이 많든지 적든지 간에 십일조를 정성껏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현재 이 콜게이트 치약회사의 하루 수익은 금으로 바꾸어 네 사람이 질 수 없을 만큼이 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회사는 십일조를 구별시키는 축복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 콜게이트대학까지 설립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죤 워너메이커는 전세계에서 제일 먼저 백화점을 창설한 사람으로 백화점 왕이라고 칭송받는 사람입니다. 또 그는 주일학교 왕이라고도 불립니다. 미국 정부로부터 장관으로 부름을 받았을 때도 주일학교 교사직을 계속한다는 단서를 받고 장관직에 취임할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가 경영하는 벽돌공장에서 일하면서 독실한 기독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가 아홉 살 때 벽돌공장에서 쉬는 시간에 성경을 읽다가 이런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로 하여금 천하에서 헌금을 하나님께 제일 많이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 신앙의 사람이고 보면 백화점 황제가 된 결과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석유 대왕이라 일컫는 록펠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주일학교에 다니던 여덟 살 때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큰복을 주신다는 성경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가 갖고 있던 20센트에서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소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그였지만 1870년에 스탠다드 석유회사 소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비망록에 쓰기를 ‘나는 재산이 자꾸 늘어나도 어기지 않고 그대로 십일조를 꼭꼭 바치는 것이 내 평생의 행복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이 축복의 비결을 가르치고 또 실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그 막대한 재산을 조금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각종 공공 사업에 희사하고, 또 시카고대학을 설립하였습니다. 록펠러 재단의 설립자로 병원과 의학연구소와 교회와 학교 등 문화사업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록펠러가 ‘만일 내가 주급이 1달러 50센트였던 나의 첫 봉급에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면 내가 바친 100만 달러의 십일조도 바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한 말은 우리에게 축복의 명언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잘 살고 행복하게 되는 원리는 사람 스스로가 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와 그 가운데 법칙들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께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십일조의 원리도 하나님 자신이 인생에게 축복의 수단으로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십일조 행위를 통하여 재물의 소유주는 오직 하나님 자신이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물질을 맡은 청지기임을 알려 줍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림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민(聖民)된 고백의 표시를 삼습니다. 결국 물질 소득에 대한 하나님의 십일조 명령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30배, 60배, 100배로 물질적인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이 위대한 축복의 명령은 지금 경제적으로 세계의 머리가 되고 있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들이 이 사실을 웅변적으로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의 현재 십일조가 30배, 60배, 100배로 더하여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석원태 목사 설교자료 중에서